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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알레스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욘 포세 지음, 정민영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8년 10월
평점 :
욘 포세의 희곡에서 인물들 사이에는 상반된 정서가 흐른다. <어느 여름날>에서는 ‘즐거움과 불안’이 흐르고 <가을날의 꿈>에서는 ‘사랑과 죽음’이, <겨울>에선 ‘떠남과 머무름(또는 가능과 불가능)’이 흐른다. 감정이 한 인물한테 고정되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리니 삶은 유한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영원한 즐거움도 없고 영원한 불안도 없으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삶이 아이러니하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희곡에서 상반된 감정들은 붙어 있는 듯, 한 뿌리에서 나온 듯 너무 가까이 있었다.
희곡에서 욘 포세는 인물에 특정한 이름과 직업을 부여하지 않았다. 인물들은 단지 ‘남자’ 와 ‘여자’ 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남자와 여자의 성별특징이 부각된 것도 아니었다. 희곡의 대사에는 말과 말 사이에 (사이), (짧은 사이) 처럼 쉼이 많았다. 이렇게 인물의 외형과 말을 꽉 채우지 않을 때, 즉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을 때 여백이 생긴다. 여백은 대상의 구체적인 형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내면에 담고 있는 내용을 나타낸다. 희곡에서 인물들 간 감정이 크게 차지하고 있는데다 감정은 내면의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이 희곡의 중요한 장치는 여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희곡을 무대에 올리면 참 재밌을 것 같다. 여백을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궁금하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 사실은 많은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