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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연극 ㅣ 지만지 고전선집 447
야스미나 레자 지음, 이용복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영화와 연극을 하는 친구 B군은 사람 구경하는 게 연기연습이라고 했다. 걸어가는 노인을 관찰하고 사랑에 빠진 커플의 몸짓을 관찰한다는 것이었다.
야스미나 레자의 희곡 <스페인 연극>을 읽고 연기는 무엇이고 삶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스페인 연극>은 배우들이 <스페인 연극>이라는 연극을 하면서 연기론에 대해 했던 인터뷰와, <스페인 연극>이라는 희곡과, <스페인 연극>이라는 연극 속에서 배우가 <불가리아 연극>이라는 연극을 하는, 극중극중극의 구조로 되어 있다.
누군가를 연기하는 것은 B군이 했듯이 모방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내 안의 누군가를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연기자가 비슷한 배역을 연기하는 것은 연기자가 그 역할을 제일 잘 표현하기 때문에 연기자에게 맡겨진 것이기도 하지만 캐릭터 안에 숨은 정서(이를테면 연민 같은 것)를 연기자가 원해서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소설가가 작품활동을 하며 많은 소설을 쓰더라도 결국은 소설가가 정말 말하고 싶은, 소설가 내면 속의 몇 가지 주제일 뿐이고 그것들이 자기복제 되는 것이듯 말이다.
<스페인 연극>에서 연출은 배우에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라.”p49 고 말하고, 배우가 ”어떻게 연기해야 하고 이제 뭘 해야 하냐고 묻는 것을 싫어”p81 한다. 연기는 연출가가 작품에서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연기자의 연기는 연출가한테 채택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스페인 연극>에서 연출은 배우한테 연기를 지시하지 않는다. 배우는 혼란에 빠진다. 연기자의,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고민은 삶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삶이 세계라는 무대에서 내가 하는 연기라면 나는 배우이다. 그렇기에 연기자의 고민이 삶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되는 것이 당연하다. 연기가 타인을 모방하고 나를 발견하는 일이듯 삶 또한 타인을 모방하고 나를 발견하는 일이니 말이다. <스페인 연극>에서 인물 간 힘의 충돌과 화해는 일상에서 사소한 것으로 표출된다. 이 또한 배우가 무대에서 하는 연기와 내가 일상에서 하는 삶이 같은 것이라는 뜻처럼 느껴졌다.
<스페인 연극>에서 화해는 갈등을 겪던 이들이 함께 평범한 것을 계속 하는 것으로 이뤄졌다. 야스미나 레자의 의도대로라면 이 문장에서 방점은 ‘함께’와 ‘계속’ 에 찍혀야 한다. 삶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야스미나 레자는 ‘함께’와 ‘계속’이라고 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