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파이어 - 쇠락하는 어느 소도시에서 일어난 연쇄방화 이야기
모니카 헤시 지음, 박동복 옮김 / 돌베개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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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쇠락하는 지방 소도시-방화-결핍되고 불안한 인간' 의 순으로 챕터가 진행된다. 여기서 보듯 방화범죄에서 모니카 헤시가 바라보는 것은 환경과 인간이다. 이 논픽션이 소설적인 긴장을 가지고 있어서 읽는데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 특히 결핍된 인간과 그 결핍을 채워줄, 또 다른 결핍된 인간의 만남이 사랑이냐 아니냐. 단지 나의 목적을 위해 너를 이용한 것이냐. 라는 질문에선 슬픔과 비정함이 느껴졌다. 재밌게 읽었다. 모니카 헤시라는 작가를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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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 멜랑콜리 ㅣ 채석장 그라운드 시리즈
장문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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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토리노 기차역에 내리자 황금빛 세상이었다. 하지만 눈이 부시지 않았던 것은 빛바랜 황금빛이었기 때문이다. 라는 내용이 긴 논의의 마지막에 나온다. 차라리 이 대목을 논의의 시작으로 배치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소설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문학적인 수사같은 이 내용은 저자를 평생 토리노에 대해 연구하게 만든 운명같은 예언이기도 하다. 도시를 감싼 빛바랜 황금빛의 정체는 멜랑꼴리이다.


토리노를 대표했던 기업 피아트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피아트 노동자들의 시작부터 현재까지가 이 논의의 주된 소재인데, 경제적 자유를 향한 피아트의 노력과, 반파시즘을 향한 노동자들의 노력은 부딪치고 협력하며 나아간다. 자유로운 인간이 되어야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던 둘은 열심히 달려갔지만 현재 피아트는 토리노에 없고,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투쟁하던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쓸쓸함과 슬픔이라는 이름의 멜랑꼴리이다.


“시몬 베유가 지적했듯이, 힘과 힘이 부딪치는 투쟁의 본질이 인간을 사물로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힘에 종속된 영혼은 수동적인 물질로 전락하여, 한편으로 “재앙의 눈먼 원인을 이루는 화재, 홍수, 바람, 사나운 짐승들”이 되거나 다른 한편으로 “겁먹은 동물, 나무, 물, 모래”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멜랑꼴리는 자신의 사물화, 즉 인간성의 상실을 깨달은 상처 입은 자의 감정으로서, 투쟁하는 인간을 항상 따라다니는 엷지만 길게 드리워진 그림이다. 피아트의 도시, 반파시즘의 도시 토리노가 본질적으로 멜랑꼴리의 도시가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 p220


한 도시를 응시하는 이 훌륭한 통찰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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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나날들 - [할인행사]
테렌스 멜릭 감독, 리차드 기어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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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청년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반사회적, 반도덕적 행위를 하는데 출구가 보이지 않으니 규칙을 위반해서라도 현재를 즐기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행위에는 외로움과 불안이 있다.


카메라가 인물을 클로즈업할 때, 카메라가 광활한 자연을 담을 때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전자에선 공허한 표정에서 청년이 방향을 잃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후자에선 광활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청년의 처지와 어긋났기에 더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즐거운 음악에 슬픈 가사를 담은 노래가 슬픔을 더 깊게, 현실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과 같다고 할까.


​무엇을 해야 할지 알거나 어디로 가야 할지 안다고 해서 고통이 없는 건 아니지만 방향을 모르는 삶은 더 외롭다. 따지고 보면 이들의 반사회적, 반도덕적 행위는 우발적인 측면이 있었다.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런 것도 아니었고, 단지 사랑하는 애인, 가족과 함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었다.


​영화의 마지막도 이를 나타내는데 혼자 남겨지자 학교를 도망친 소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병사를 따라 기차를 타는 여인. 둘은 밝게 웃는다. 여인이 홀로 군인들을 따라서 가거나 소녀가 친구와 함께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은 정말 위험하지만 외로움과 불안에 지친 이들에겐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게 위안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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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 싸이코패스
마틴 맥도나 감독, 우디 해럴슨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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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 싸이코패스>에서 마틴 맥도나는 증오와 분노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영화가 싸이코패스들이 총질을 하는 뼈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잔혹한 복수를 위해 총을 드는 홍콩 느와르 영화와 서부극을 비튼 것인데 총질은 멋있기는커녕 우스꽝스럽다.(총에 머리를 맞았는데 머리가 수박처럼 터진다거나 총에 머리를 맞았는데 즉사하지 않고 강아지한테 손짓을 하고, 장난감처럼 생긴 조명탄 총을 들고 있거나 하는 식이다.) 서부극의 매력인, 악당한테 복수를 하는 쾌감, 쫓고 쫓기는 빠른 속도감과 광활한 자연 풍광에서 오는 해방감을 차용했지만 그또한 반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세븐 싸이코패스>에서 속도감은 짜릿하지도 않고 광활한 자연 풍광이 해방감을 주지도 않는다.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디어 헌터>에서 베트남전으로 파괴된 청년 역할로 나왔던 크리스토퍼 워큰의 목소리로 베트남전에 참했던 베트남 사람이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복수를 다룬 영화에서 가해자가 싸이코패스일 수는 있어도 복수의 총질을 하는 사람이 싸이코패스일 수는 없다. 복수라는 행위는 논리적인데, 싸이코패스는 비논리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복수의 총질을 하는 싸이코패스를 등장시킨다. 그것은  복수의 논리란 성립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베트남 사람에 대한 동일한 이야기를 여러 인물이 다르게 이야기하는데, 시나리오 작가는 그중에서 증오와 분노가 없는 이야기를 선택해서 영화를 만든다. 인생이라는 영화.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이야기에서 분노는 나타날 수 밖에 없겠지만 증오와 분노는 우리에게 절대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주제를 전개하는 방식, 감독의 철학. 모두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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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어 사전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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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은 순서대로 낱말을 모은 뒤 각각의 발음, 의미, 용법을 해설한 책을 일컫지만 나탈리아 긴츠부르그는 <가족어 사전>이라는 제목에서 ‘사전’을 가족이 쓰는 말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 같다.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오며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2차대전이 끝난 후까지가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다. 아버지는 가정의 규율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하고,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을 아버지가 못하게 하니 속상해한다. 가족들끼리 소설책을 읽고 이야기하고, 시를 짓는 등 여느 가정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이어지는데 소설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사회의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전반부에서 아버지와 오빠가 파시즘에 반대하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후반부로 가면 2차대전이 심화되어 가족은 수용소로 끌려가고, 가족 중 누구는 파시즘에 희생이 된다. 전쟁으로 궁핍한 상황도 묘사가 된다.


​가족의 말에 유머가 흐르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삶을 긍정하는 자세야말로 이 가족의 말, 가족어 사전이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슬퍼하던 어머니는 빨간색 옷을 사서 입는다. 빨간 옷을 입고 빈소를 지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웃기는데 어머니는 그 이유를 외할머니가 빨간 색을 좋아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떠니? 우리 어머니는 검은색 옷을 정말 싫어하셨지. 어머니도 이렇게 예쁜 빨간색 옷을 입은 나를 보면 아주 좋아하실 거야.” p237


출판사에서 일했던 나탈리아 긴츠부르그는 체사레 카베세와의 일화를 비롯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그중에서도 2차대전이 끝난 후 젊은 시인들이 출판사로 시를 보낸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데, 출판사로 온 많은 시들은 가혹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으로 다들 비슷해 보였다고 한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이 끝난 후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시인이라고, 정치가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자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제 다들 각자 다시 자기 일을 어깨에 지고 가야 했고 그 일의 무게와 일상의 피로와 고독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무게와 피로, 고독만이 똑같이 고독 속에서 절망하고 궁핍하게 사는 이웃의 삶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P239. 희망, 의지, 좌절, 인내, 망각은 가혹한 현실에 처한 사람들의 언어(현실의 고통을 드러내는 시를 씀, 시를 쓰지 않음, 시를 쓸 수 없음)에서 드러난다.


<가족어 사전>의 매력이 무엇이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인간이 혹독한 시간을 통과해야만 했지만 삶을 긍정하고 있다는 것. 당대 사회와 일반인들의 삶과 지식인들의 삶을 현미경처럼 보여준다는 것. 나에서 우리로 확장되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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