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일에 대하여 - 뤽 다르덴 에세이
뤽 다르덴 지음, 조은미 옮김 / 미행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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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의 본질은 흐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을 잘 베푸는 것을 봤고,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 사랑을 베풀지 못하는 것을 봤다. 누군가는 사랑이 흘러가게 하지만 누군가는 사랑이 흘러가게 하지 못한다. 내가 내 자신에게만 사랑을 베풀거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사랑을 베풀어도 사랑이 아니다. 흐르지 않고 고이는데 어떻게 사랑이라 할 수 있겠나. 벽을 넘어 소외된 타자에까지 흘러 가야 진짜 사랑이다.


뤽 다르덴은 <인간의 일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살아가는 존재가 되는 것, 자신을 사랑하고 타자를 사랑하는 것, 서로를 모두 분리된 자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의 일의 가능한 결말이다!” p83 이 또한 사랑이 흘러가야 한다는 소리이리라.,


뤽 다르덴이 “무한한 사랑을 주지 못한 사람들을 단죄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왜 우리 사회가 무한한 사랑을 주기 어렵게 되었는지를 이해하자는 것이다.”p184 라고 말했을 때 의미심장했다. 이 책은 <자전거 탄 소년>을 준비하면서 적은 글을 모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왜 우리 사회가 무한한 사랑을 주기 어렵게 되었는지를 이해하자는 것’이라는 저 말이 다르덴 형제가 영화를 왜 만드느냐에 대한 답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나니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 본 것은 다시 보고 싶고, 보지 않은 것은 챙겨보고 싶다. 우선 <자전거 탄 소년>부터 이번 주말에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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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뤼아르 시 선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21
폴 엘뤼아르 지음, 조윤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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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뤼아르 시 선집>에서 행동이나 사물을 나열하는 시가 꽤 있었다. 나열하여 속성을 드러내고, 전체를 보여주는 건데, 이를테면 <자장가>에서 ‘딸과 엄마와 엄마와 딸과 엄마와 엄마와....’가 그러하다. 짧은 시구는 딸을 품에 안고 좌우로 흔드는 엄마를 눈 앞에 그린다. <끊임없는 시>도 그러하다. 속성을 연이어 나열할 때 나열된 속성은 모여 하나의 상황(또는 사람)을 드러낸다. 이 방법이 재미있는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자. 나는 나를 어떻다고 생각하고, 친구들은 나를 어떻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은 나를 어떻다고 생각하고, 직장 동료들은 나를 어떻다고 생각한다. SNS 친구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한다. 나는 여기선 이런 사람, 저기선 저런 사람이고, 다양한 모든 것들이 모여 나를 형성한다. 내가 모르는 나도 나고, 내가 싫어하는 나도 나다. 나는 한 명이면서도 여러 명인 것이다. 현실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상황을 시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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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이면 을유세계문학전집 122
씨부라파 지음, 신근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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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부라파의 <그림의 이면>에 등장하는 사랑(인생)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열정은 없어도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사랑과, 열정이 있는 사랑이다. 전자는 30대 왕족 여사와 50대 부자의 사랑, '나'와 처의 사랑이고, 후자는 유학생 시절 20대 평민 '나'와 30대 왕족 여사의 사랑이다. 전자는 태국에서 일어나고 즉 전통적이고, 후자는 태국 밖, 즉 선진국 일본에서 일어나는 사랑으로 전통에서 어긋난다.


일본에서 열정 있는 사랑을 갈구하던 '나'가 태국에 돌아와선 열정이 없는 사랑을 하면서 당연시 여기는 걸 보면 전통은 한 인간의 사랑과 열정을 무겁게 억압한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전통을 벗어나기 힘들고, 전통을 합리화하며 억압을 받아들이고, 억압 속에서도 나름의 행복을 찾으려한다. 전통의 뿌리는 얼마나 단단한지 인간의 정신을 알게 모르게 얽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림은 가장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겠는가. 얽매였던 정신이 죽음의 순간에 비로소 해방이 되었으니 말이다.


소설이 흡사 영화 시나리오같았다. 짧은 장으로 이어지는 것도 그러하고 다른 소설적 장치보다는 여사와 '나'의 대화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이 그러하다. 이 소설은 영화로 여러 번 만들어졌다고 한다. 보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장면, 여사가 남긴 그림을 카메라가 클로즈업할 때 그건 관객의 마음에 오랫동안 남을 프레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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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독본 - 미시마 유키오 문장론 미시마 유키오 문학독본 1
미시마 유키오 지음, 강방화.손정임 옮김 / 미행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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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는 소설을 기가 막히게 잘 쓰는데, 천황폐하 만세. 어쩌고 하면서 할복한 걸 보면 똘아이다. 작가로서의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 인간으로서는 아주 골때리는 인간이라 관심이 많이 간다. 미시마 유키오는 일반독자로 만족하는 사람을 독서가의 길로 이끌기 위해 <문장독본>을 썼다고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 즉 일반독자에서 만족하지 말고 더 깊이 문학을 즐기자.라는 것이다. 또는 좋은 글은 이렇게 써라. 라는 것도 되겠다.

그런데 나는 독서가가 어떻게 되느냐보다는 미시마 유키오를 알고 싶어서 <문장독법>을 읽었다. 미시마 유키오는 자신이 읽은 책에서 문장을 뽑아내 장르별 문장 특성을 설명하는데, 작가의 독서 경험을 아는 것은 작가의 작품세계를 아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윤동주가 투르게네프의 휴머니즘을 자기식으로 비틀어 부끄러움을 표현했고, 봉건과 근대가 혼재되었던, 대격변기 중국에서 루쉰이 바이런을 소개하며 자유를 위해 싸우는 진취적인 정신을 알리려고 했듯이 말이다.

미시마 유키오는 뭘 읽었길래 천황주의자가 되었나. <문장독법>에 언급되는 책은 헨리 제임스, 발자크, 괴테, 플로베르, 모리 오가이, 시가 나오야, 다니자키 준이치로, 히구치 이치요 등 한국에도 소개가 된 작품이다. 거기서 천황주의자 미시마 유키오를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알았던 것은 이 사람이 정말 제대로 읽는 사람이었다는 것 정도라고 할까. 희곡 문장 특성을 설명하고, 에로티시즘 소설 특성을 설명하며, 간결한 문장 특성을 설명하는 대목은 예리하다. 작가나 교수라고 해도 엉뚱한 소리 하는 사람이 많은데, 미시마 유키오는 핵심을 정확하게 분석한다. 깊게 수긍을 했다.

책을 다 읽고 다시 미시마 유키오가 읽은 책을 살펴보니 루쉰, 톨스토이, 투르게네프는 없다. 식민지의 문학(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남미, 중국과 한국)도 없다. 식민지 문학을 읽지 않은 것은 일본에 소개가 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루쉰, 톨스토이, 투르게네프가 없는 건 의아하다. 투르게네프는 20세기 초 한일 양국 문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는데 말이다. 만약 미시마 유키오가 루쉰, 톨스토이, 투르게네프를 읽었다면 천황주의자가 되지 않았을까. 평화주의자가 되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참고로 다자이 오사무도 없는데, 미시마 유키오가 다자이 오사무를 혐오했다는 걸 떠올리자 당연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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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주운 로또. 이 영화는 예상되는 상황에서 예상되지 않은 일이 일어나며 웃음이 생긴다. 또는 계획한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서 웃음이 생긴다. 예상되지 않은 일이 일어나거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에는 우연이 작용하고 있는데, 연대장을 만났을 때, 우연히 본 독일영화로 위기를 탈출하고, 북한 농장에 간 병사가 우연히도 축산학과 출신이라서 가축의 생산량을 늘려주는 것 같은 것이다. 다 죽을 뻔했는데 다 살아 난 결말에도 우연이 작용하고 있다. 우연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데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이야기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감독의 능력이 참 좋았다.

​우연은 다른 말로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외부의 힘이 나한테 작용하는 건데 남북이 분단된 것이나 내가 GP부대에 배치된 것이나 운명이고 우연이다.

​내내 그러더니 영화는 마지막까지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돈일지라도 사이좋게 나눠 갖는 마지막은 이들이 의지로 문제를 해결하는 걸 의미한다. 드디어 의지가 부조리한 운명을 이긴 것이다. 그때의 웃음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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