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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이면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22
씨부라파 지음, 신근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9월
평점 :
씨부라파의 <그림의 이면>에 등장하는 사랑(인생)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열정은 없어도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사랑과, 열정이 있는 사랑이다. 전자는 30대 왕족 여사와 50대 부자의 사랑, '나'와 처의 사랑이고, 후자는 유학생 시절 20대 평민 '나'와 30대 왕족 여사의 사랑이다. 전자는 태국에서 일어나고 즉 전통적이고, 후자는 태국 밖, 즉 선진국 일본에서 일어나는 사랑으로 전통에서 어긋난다.
일본에서 열정 있는 사랑을 갈구하던 '나'가 태국에 돌아와선 열정이 없는 사랑을 하면서 당연시 여기는 걸 보면 전통은 한 인간의 사랑과 열정을 무겁게 억압한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전통을 벗어나기 힘들고, 전통을 합리화하며 억압을 받아들이고, 억압 속에서도 나름의 행복을 찾으려한다. 전통의 뿌리는 얼마나 단단한지 인간의 정신을 알게 모르게 얽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림은 가장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겠는가. 얽매였던 정신이 죽음의 순간에 비로소 해방이 되었으니 말이다.
소설이 흡사 영화 시나리오같았다. 짧은 장으로 이어지는 것도 그러하고 다른 소설적 장치보다는 여사와 '나'의 대화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이 그러하다. 이 소설은 영화로 여러 번 만들어졌다고 한다. 보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장면, 여사가 남긴 그림을 카메라가 클로즈업할 때 그건 관객의 마음에 오랫동안 남을 프레임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