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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어 사전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16년 4월
평점 :
사전은 순서대로 낱말을 모은 뒤 각각의 발음, 의미, 용법을 해설한 책을 일컫지만 나탈리아 긴츠부르그는 <가족어 사전>이라는 제목에서 ‘사전’을 가족이 쓰는 말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 같다.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오며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2차대전이 끝난 후까지가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다. 아버지는 가정의 규율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하고,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을 아버지가 못하게 하니 속상해한다. 가족들끼리 소설책을 읽고 이야기하고, 시를 짓는 등 여느 가정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이어지는데 소설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사회의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전반부에서 아버지와 오빠가 파시즘에 반대하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후반부로 가면 2차대전이 심화되어 가족은 수용소로 끌려가고, 가족 중 누구는 파시즘에 희생이 된다. 전쟁으로 궁핍한 상황도 묘사가 된다.
가족의 말에 유머가 흐르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삶을 긍정하는 자세야말로 이 가족의 말, 가족어 사전이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슬퍼하던 어머니는 빨간색 옷을 사서 입는다. 빨간 옷을 입고 빈소를 지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웃기는데 어머니는 그 이유를 외할머니가 빨간 색을 좋아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떠니? 우리 어머니는 검은색 옷을 정말 싫어하셨지. 어머니도 이렇게 예쁜 빨간색 옷을 입은 나를 보면 아주 좋아하실 거야.” p237
출판사에서 일했던 나탈리아 긴츠부르그는 체사레 카베세와의 일화를 비롯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그중에서도 2차대전이 끝난 후 젊은 시인들이 출판사로 시를 보낸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데, 출판사로 온 많은 시들은 가혹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으로 다들 비슷해 보였다고 한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이 끝난 후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시인이라고, 정치가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자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제 다들 각자 다시 자기 일을 어깨에 지고 가야 했고 그 일의 무게와 일상의 피로와 고독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무게와 피로, 고독만이 똑같이 고독 속에서 절망하고 궁핍하게 사는 이웃의 삶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P239. 희망, 의지, 좌절, 인내, 망각은 가혹한 현실에 처한 사람들의 언어(현실의 고통을 드러내는 시를 씀, 시를 쓰지 않음, 시를 쓸 수 없음)에서 드러난다.
<가족어 사전>의 매력이 무엇이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인간이 혹독한 시간을 통과해야만 했지만 삶을 긍정하고 있다는 것. 당대 사회와 일반인들의 삶과 지식인들의 삶을 현미경처럼 보여준다는 것. 나에서 우리로 확장되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