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영화가 풍자적이다. 이 영화에 인상적인 장면이 많은데 특히 이병헌이 윤수일의 ˝아파트˝를 부르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노래를 부르는 이병헌 뒤로 이병헌의 과거가 플래시 백으로 드러난다. 윤수일의 ˝아파트˝ 가사가 사실은 쓸쓸하다는 걸 생각하자 이병헌의 노래에 고난에 찬 삶의 비애가 배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클로즈업된 이병헌의 얼굴을 비추는 빛, 이병헌 주위에서 행복에 겨워 춤을 추는 주민들의 그림자. 그들을 둘러싸는, 윤수일의 ˝아파트˝ 가사는 오묘하다.

영화에서 ‘아름답다‘고 말하는 장면은 유일하다. 집을 지켜 기뻐하고, 식량을 찾아 기쁨에 겹더라도 그 누구도 아름답다는 말을 하지 않지만 도망을 친 박보영은 예수를 그린 스테인드 글라스에 햇빛이 통과하는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탄성을 발한다. 뒤이어 등장한 세 명의 낯선 이들은 박보영을 발견하자 배척하지 않고 밥과 잠자리를 내민다. 아름답다는 탄성, 어쩌면 고백은 낯선 이의 환대 장면까지 이어지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감독이었다면 거짓이 진실로 호도되고, 주민들이 이병헌을 더 굳건히 받드는 것으로 만들었을 것 같은데 엄태화 감독은 그렇지 않았다. 감독이 이기적인 인간 뒤에 환대하는 인간을 보여준 것은 감독이 인간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인 듯 하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나는 너무 비관적인가.

정말 잘 만든 영화이다. 한 번 더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격정과 신비 을유세계문학전집 128
르네 샤르 지음, 심재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르네 샤르의 <유년>. 이 시에서 공간과 시간의 대비가 재밌다. 표면적으로 시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재앙과 가혹한 시련으로 부터 멀리 떨어진 곳' , '새들의 볼모인 샘' , '제 상처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태양 빛을 신뢰하는 바위(즉, 상처를 가진 바위)'. 등 이 고통의 장소들을 이겨내는 건 유년이라는 시간, 곧 희망의 시간이다. '어린양들의 산들바람이 다시 새 삶을 불러온다'는 시구처럼 새로운 시간은 고통의 장소를 바꾼다는 것이다. '재앙과 가혹한 시련으로 부터 멀리 떨어진 곳'. 멀기 때문에 도래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테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탕 크게 하려다 배신을 당한 남자가 자기 몫을 되찾아 가려는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가 꿈인지 환각인지 그 남자가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호하다. 꽉 막힌 긴 통로, 사람 없는 광활한 공간, 증폭되는 피사체와 소리, 규칙적으로 배열된 건물과 인테리어는 초현실적이며 강박적이다. 존 부어맨이 스릴을 만드는 방식이 기가 막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수입] J. J. Johnson's Jazz Quintets
J.J. Johnson & Kai Winding 연주 / Savoy / 1992년 7월
평점 :
품절


<J. J. Johnson's Jazz Quintets> 리듬 세션이 합주를 하고 뒤이어 관악기가 주제를 제시한 뒤 즉흥연주를 하고 다시 리듬 세션이 합주를 하고, 리듬 세션이 즉흥 연주를 하는 비밥의 특징이 연주에서 두드러진다. 요즘 퓨전재즈와 락재즈를 듣던 중이었는데 오랜만에 비밥을 들으니 예스러운 정취가 느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들짐승들의 투표를 기다리며 대산세계문학총서 174
아마두 쿠루마 지음, 이규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마두 쿠루마의 <들짐승들의 투표를 기다리며>는 제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아프리카 각 나라가 독립을 하며 탄생한 독재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독재자의 악행, 대중기만, 대중지배, 폭력, 비합리성, 탐욕, 개인숭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독재자에게 지배받는 백성들의 목소리는 소설 마지막 챕터에 등장한다. 국민들이 독재자에게 저항하다가 다시 그리워하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한데 그만큼 국민들한테는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고, 공포와 주술과 빵으로 국민을 다루는 독재자의 지배는 강력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챕터마다 화자가 독재자의 삶을 읊고, 악사가 있고, 마지막엔 속담이 후렴구처럼 등장한다. 흡사 1인극 연극무대를 보는 것 같은 구성이 인상적이었는데 독재자들의 지배방식이란 곧 정교한 연극이기 때문이다. 독재자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세심하게 연출하고 치밀하게 구축하여 자신을 포장하고 백성들이 자신을 찬미하도록 한다. 히틀러, 무솔리니,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차우셰스쿠, 뒤발리에. 여지 없었다. 독재자들의 대중 지배 기술은 <들짐승들의 투표를 기다리며>에서도 똑같이 등장한다. 아마두 쿠루마는 독재자의 본성을 말하기 위해서 1인극 연극무대처럼 소설을 구성했으리라.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폭력이 등장한다. 아프리카를 착취하는 제국 열강의 폭력, 제국에서 독립한 아프리카 신생국 독재자의 정교한 폭력, 독재자에게 저항하는 백성의 처절한 폭력, 그런 백성에게 가해지는 무자비한 폭력. 반복되는 폭력은 시처럼 리듬을 주었는데 이때의 리듬은 슬프고 무거운 것이었다. 폭력은 멈출 것인가. 반복될 것인가. 책을 덮은 뒤에도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두 쿠루마는 독재자들이 국민을 움직이는 메커니즘을 꿰뚫고 있다. 지배하는 자의 욕망과 지배받는 자의 두려움을 읽고 있다. 그 통찰이 놀랍다. 너무나 좋은 작품을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