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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밍거스 - 소리와 분노 ㅣ 현대 예술의 거장
진 샌토로 지음, 황덕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9월
평점 :
찰스 밍거스의 부인과 며느리는 밍거스의 유해를 갠지스강에 뿌렸다. 갠지스강으로 가는 길. 델리. 발코니가 있는 한 호텔에 그들은 묵었는데, 힌두교 믿음 때문이었다.
“육신의 재는 건물 안에 있으면 안 된다는 힌두교 장례식의 풍습 때문에 브라만 가계 출신의 조디는 적절한 방법을 두고 고민했다. 육신의 재가 건물 안에 있으면 고인의 영혼도 함께 그 안에 갇히게 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찾은 곳이 발코니였다.” p33
국어사전에선 발코니를 ‘건축물의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완충 공간으로 전망이나 휴식 등을 목적으로 설치한다.’라고 정의한다. 평전의 이 대목이 무척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는데 발코니는 건물에 속해있으면서 건물의 외부인 곳이기 때문이다. 찰스 밍거스는 미국 사회에 속한 미국인이면서도 흑인이자 혼혈인이었기에 미국 사회의 외부인이었고, 자신은 약자라면서 약자의 분노를 노래로 표출했지만, 자기중심적인데다 폭력적이었으니 또 다른 약자에게는 강자였다. 자신이 음반 판매 수익을 받지 못했을 땐 백인 중심 음반산업이 자신을 억압하고 차별한다고 분노했지만 정작 자신이 음반사를 차렸을 때는 동료 흑인 연주자한테 음반 판매 수익을 주지 않았다. (한 때 같이 음악을 했던 맥스 로치는 찰스 밍거스와 절연을 했고 밍거스가 죽을 때까지 만나지 않았다...)
부인과 며느리는 힌두교 믿음으로 발코니를 찾았겠지만 찰스 밍거스의 삶은, 건물에 속했으면서도 건물의 외부인 발코니. 내부냐, 외부냐 무어라 정의하기 힘든 그것과 같았으니 부인과 며느리가 찰스 밍거스의 유해를 안치하러 발코니가 있는 호텔을 찾아 헤매는 장면이 그의 삶을 압축하는 것처럼 상징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내가 찰스 밍거스의 삶을 영화로 만든다면 저 대목을 꼭 등장시킬 것이다.
평전에 이런 문장이 자주 등장한다. ‘밍거스는 다시 한번 시대정신을 느꼈다.’ 진 샌토로의 목소리인데 그는 찰스 밍거스의 음악과 그의 삶이 시대정신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찰스 밍거스가 활동하던 당시 백인중심주의, 청교도주의, 결혼지상주의가 미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가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재즈곡을 만들고, 기존의 음악을 답습하지 않는 새로운 재즈곡을 만들려고 고민하고, 술과 마약에 빠져들고, 수많은 백인 여성들과 성생활을 즐기고, 장광설과 허풍을 늘어놓던 것은 자유를 향한 열망, 주류 사회에 대한 도전, 경직된 사회에 대한 반항을 의미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진 샌토로는 찰스 밍거스의 삶을 서술하며 그가 직접적으로는 만난 적이 없는 예술가들의 삶과 사회적 사건을 교차시킨다. 그 예술가들이 잭 케루악, 오손 웰스처럼 경직된 미국 사회에 도전하는 이들이었고 사회적 사건은 흑인 인권 운동에 대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교차적인 서술방식은 의미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7장의 마지막 문장 ‘밍거스는 수척해졌다. 그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는 잭 캐루악이 쓴 <길 위에서>의 유명한 문장. ‘모든 혼란과 헛소리를 뒤로하고 우리에게 유일하게 고귀한 행위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즉, 움직이는 것. 우리는 움직였다.’ (이만식, 민음사, p253) 을 변주한 것이라 봐야 한다. 찰스 밍거스는 잭 케루악, 오손 웰스와 같은 류의 인간이었고 이런 아웃사이더에게 도전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알고 있던 이야기는 더 깊게 알게 되어 좋았고 몰랐던 이야기는 새로 알게 되어 좋았다. 평전을 읽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앨범을 설명하는 대목에선 책 읽는 것을 멈추고 음악을 들었다. 그 바람에 독서는 더뎠지만 거대한 벽 앞에서 찰스 밍거스가 느꼈던 감정과, 벽을 무너뜨리려 움직였던 그의 모습이 마음에 전해졌다. 발코니 같은 인간이자 위대한 음악가인 찰스 밍거스의 삶이 무척 흥미로웠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3/1023/pimg_771732127405687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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