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대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성장해가는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학대’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가끔 텔레비전에서 방영해주는 프로그램에서 어린아이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학대를 가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비춰질 때가 있다. 그것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간에 ‘학대’라는 행위를 통해, 어린아이의 정서적, 육체적 안정이 깨진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워낙에 수많은 매체에서 그러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아이들의 모습을 비춰냈으며, 사람들의 공감대와 경악 등의 감정들을 드러내게 하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르타 뮐러의 <저지대>를 읽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어린아이에게 학대를 가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아이가 아이다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이미 시선이 삐뚫어져 버린 아이가 바라보는 세계는, 삐뚫어진 만큼 어긋나 보일 것이다. 깨진 렌즈로 바라보았을 때, 세상이 깨져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표제작인 <저지대>에서 그려내는 생활상 자체가 어두운 것일 수도 있지만, 훗날, 이 아이가 자라났을 때, 바라보는 세계가 과연 제대로 된 유년기를 거쳐 성장한 어른들의 시선일지, 의문이 들었다.


어릴 적, 내가 부모님에게 맞았던 기억은 몇 번 되지 않는다. 게다가 크나큰 잘못이 아닌, 말 그대로 이유 없이 체벌을 받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랬는데도 나는 매번 부모님께 혼이 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단 한 번도 부모님이 내게 이유 없이 체벌이나 폭력을 가하지 않으셨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폭력과는 그래도 조금은 거리가 먼 아이도 이 정도인데, 그런 폭력에 익숙해진 아이는 어떻게 될까. 아이, 유년기에 받은 폭력과 체벌 등을 <저지대>의 표제작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아이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저 어른들에게 이유없이 뺨을 맞고, 머리를 맞고 할 뿐이다. 그저 그럴 뿐 이야기는 계속해서 흘러간다. 우중충한 풍경묘사로, 할머니와 엄마, 아빠의 이야기로 이야기는 계속해서 흘러간다.


무엇 때문일까. 중편 분량인 <저지대>와 꽤 여러 편의 짧은 콩트 식의 이야기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식을 갖춘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왠지 모를 불안함과 불쾌함을 느꼈다. 몇 번을 같은 문장을 되짚어서 읽어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힘들다, 하고 느낀 적도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았다. 아무리 집중을 하고 읽어나가려 해도 중간에 툭툭 끊기는 흐름들이 계속해서 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이 책을 접하기 전부터, 호불호가 극렬하게 갈린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내가 너무 정형화된 형식만 읽다보니, 그런 것에만 길들어져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읽으면서 벅찼던 소설이다. 문장들이 시적이긴 하지만, 어딘지 걸리면서 이해가 되지 않고, 장면전환이나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도 모호하게만 받아들여졌다. 또한 여러 가지 이미지 들이 중첩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여러모로 모호하다는 생각이, <저지대>를 읽으면서 내가 가장 많이, 오랫동안 느꼈던 점이다.


시적인 문장이 가지는 힘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시’의 장르가 그러하듯, 함축성을 가진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이 <저지대>는 완벽하게 미(美)를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런 시적인 문장에 익숙하지 않는, 나를 포함한 일부의 독자들에게는 버겁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이 시적인 문장이 가지는 단점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에게는 특히나 그렇다. 구구절절까지는 아니더라도, 완벽하게 풀어내진 형식을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서, 함축성을 가지는 이야기들은 읽기에, 또 따라가기에 버겁기만 느껴진다.


<저지대>는 분명 그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표제작 <저지대>뿐만 아니라, 짧은 콩트 형식의 소설들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그것을 함축성, 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인 함축성. 그것이 특별하게 작용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와는 조금 맞지 않는, 너무 정형화된 나에게 너무도 벅차게만 느껴졌던 작품이다. 그렇지만 읽어 가면서 여러 가지 면에서 다양한 생각들을 해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 이후로 헤르타 뮐러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까지의, 작품들의 변천사를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시간을 가지고 차근차근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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