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들
하재영 지음 / 창비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참 오랜 시간을 들여서 책을 읽는 경우가 있다. 이번 경우가 그랬다. 이 책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리저리 치이는 시간들이 많았던 시기였기에 아쉽게도 이 책이 매번 뒤로 밀려났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모든 일들을 해결 한 뒤에 다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읽었던 부분을 떠올리며 남은 부분들을 천천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빨리 읽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다. 문장들이 무척이나 리드미컬했고, 빠르게 읽혔기 때문이다. 조금은 생소한 이름인 하재영 작가의 <달팽이들>이 그러했다.


<달팽이들>에 수록된 8편의 단편들은 모두 현대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다. 제일 먼저 수록된 <같이 밥 먹을래요?>같은 단편은 그 소재에 있어서부터 현대적이다. 같이 밥을 먹어주는 일을 하는 사람. 80년대 90년대 소설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소재다. 뿐만 아니다. 8편의 단편을 하나로 이루는 하재영 작가의 문장은 말 그대로 단문이면서 스피드 있고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해 나가는 현대적 감각이 있다. 그래서인지 늘어지는 부분도 없이 빠르게 읽힌다. 하지만 중간중간 이것은 이러하다, 하는 식의 정의 내리는 문장들이 몇 보이기도 했다. 보여주기 보다는 말해주는 식이었다. 문장에 대해서는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하재영 작가가 마냥 현대적이지만은 또 않다. <씽크로나이즈드>에서는 열쇠수리공이, <타인들의 타인ㅡ17세>에서는 과거 무용을 전공했지만 이제는 먹기만 하는 십대의 아이가, <타인들의 타인ㅡ18세>에서는 학교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무리들의 대한 이야기, 그리고 친구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가장 먼 길>에서는 우리 문학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방을 구하는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그 안에 든 내용들은 다르지만 말이다. <달팽이들>은 현대적 감성과 과거, 우리들에게 향수를 일으키는 감성이 똬리를 틀듯 복잡하게 엮여 있다. 그래서 조금은 신파적이고 구세대 적인데? 하는 생각이 들 때면 현대적 감성이 등장하고, 너무 현대적인데? 하면 구세대 적, 조금은 식상해진 신파적인 감성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부자연스럽지 않다. 너무도 적절히 배치되어 있기에 이야기들이 힘을 얻어 자연스럽게 이끌어지는 듯하다.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작가를, 더욱이나 신인이나 가까운 신진작가들을 만나기란 무척이나 힘들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런 작가를 만났다. 바로 하재영 작가였다. 처음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이끌렸고, 수록된 작품들을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면서는 굳히기에 들어갔다. 발랄한 면이 있어 무척이나 좋았다. 마침 그 무렵 한 문장 한 문장 공을 들여 문장을 미학의 수준으로 이끌어내는 문학 텍스트를 몇 읽었다. 필요한 자료였기에 읽었던 텍스트들이었다. 그런데 읽으면서 조금은 힘이 들었다. 한 문장 한 문장에 의미를 부여하여 읽어나가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달팽이들>을 읽을 때에는 힘이 들지 않았다. 좋지 않은 의미로 들릴 수도 있지만, 좋은 의미다. 한 문장씩 한 문장씩 집중을 요하기보다는 전체를 보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들이 너무도 좋았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이것은 이것이다, 하고 정의내리는 문장도 어느 부분에서는 좋게 작용한 점이 있다. 대부분 그런 식으로 정의 내리는 문장과 부분들은 텍스트에서 튀기 마련인데, <달팽이들>에 실린 단편들에서는 그런 점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문장이 가볍다는 말도 있었다. 부정할 수는 없는 말이다. 빠르게 읽힌다는 말이 어떻게 보면 가볍게 보여진다는 말도 되니 말이다. 앞에서 말한 부정적인 면이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야기들이 좀 더 와 닿는 면이 있었다. 묵직했다면, 문장들이 무거운 분위기로 흘러갔다면 지금의 이런 감정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전혀 다른 감정들로 이 <달팽이들>을 접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것대로 좋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이 감정도 나쁘지 않은 나에게는 이런 점들이 더 좋게 느껴진다. 신진작가인 하재영 작가. 앞으로의 작품들이 기대되는 한편, 이미 출간된 <스캔들>이라는 장편소설도 기대된다. 빠른 시일 내에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제목부터 남다른 <스캔들>에서는 어떠한 현대적 감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 된다. 거기서도 이번 <달팽이들>에 수록된 것만큼이나 현대적 감성과 예전 감성들이 뒤얽힌,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가 드러났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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