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스포 포함!! 

 

 


내 안에 수많은 내가 있다. ‘나’이면서도 ‘나’가 아닌 자. 가끔은 내 자신도 내가 어떤 사람일지 모를 때가 있다. 하루 동안에도 무수히 많고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지는데, 그 사건들에 대해 반응하는 내 자신이 꽤나 여러 가지다. 어떨 때에는 울기도 하고, 또 어떨 때에는 웃기도 하며, 또 어떨 때에는 화를 나거나 고함을 지르기도 하는 나 자신. 가끔은 내가 그랬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때도 있다. 이렇듯 내 안에는 무수히 많은 나 자신이 있고, 나는 그런 또 다른 나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의아하게, 또는 신기하게 느낄 때가 있다. 마찬가지로 기억이란 것도 그렇다. 너무나 왜곡되기 쉬운 ‘기억’. 그런 기억을 과연 내가 모르는 나 자신이 왜곡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그렇게 나 자신도 알지 못하고 의아한 나 자신으로 인해, 나는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도 그런 인물이 나온다. 결국은 ‘나’인 타자. 텍셀이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대체 텍셀이라는 인물이 왜 우리의 주인공인 앙귀스트를 괴롭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너무도 억지스러운 이유를 들 때에는 말이 되지 않다고 여겼으며, 이상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점점 뒤로 갈수록, 이상하게 말이 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텍셀이 늘어놓는 궤변에 휘말린 것만 같았다. 비행기 연착이 된 상황에서 공항 한쪽에 앉아 책을 읽으려고 하던 우리의 주인공에게 다가와 느닷없이 말을 걸고, 궤변을 늘어놓는 이 간단한 상황에서, 나는 텍셀에 대응하기도 하고, 휘둘리기도 하면서 점점 더 빠져들게 되었다.


뒤에 역자가 이런 말을 했다. 황당함→역겨움→섬뜩함→충격. 나도 이와 비슷했다. 또 다시 역자가 말했듯이 일종의 철학 꽁트인 이 <적의 화장법>을 읽으면서, ‘텍셀’이라는 인물 때문에 내 감정이 수시로 바뀌었다. 이렇듯 이상하면서도 매력적인 인물을 여태까지 본적이 없었다. 결국은 또 다른 나였던 텍셀은, 계속해서 앙귀스트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말을 하며, 그를 자극한다. 하지만 그는 앙귀스트에게만 보이는 존재였고, 다른 사람은 텍셀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 텍셀이 앙귀스트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나는 텍셀이 앙귀스트 자신이 몰랐던 또 다른 ‘자신’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들 안에는 또 다른 우리가 살고 있어서 가끔씩 불리한 상황에 이르면 그때그때 맞는 자신을 꺼내든다. 그리고는 그랬던 기억을 망각한 채 살아간다. 타인처럼 느껴지던 인물도 결국, 자신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적’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고 강간까지 한 인물이 결국은 자신이라는 상황을, 나라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나라면 인정할 수 없었을 것 같았다. 내 안에 또 다른 자신을, 그리고 그런 자신이 행한 일들을 말이다.


이 <적의 화장법>에서는 말 그대로, ‘적’인 텍셀이 매혹적인 구술로 우리들의 주인공을 끌어당긴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지 않았던, 엉뚱하게만 생각하던 독자들도 같이 끌어당긴다. 그러면서 자신의 말에 동조하게 만들고,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네?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적이라고 느끼게 하고, 자신을 죽여 달라는 허무맹랑한 부탁을 하지만, 그것도 결국 또 다른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그러면서 너희들 안에는 얼마나 다른, 또 얼마나 많은 너희들이 있냐, 라고 질문을 던진다. 이 인물에게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까.


텍스트의 절반은 대화로 서사가 이루어진다. 초반에는 텍셀의 황당무계한 궤변과 우리들의 주인공인 앙귀스트의 발언들로 이루어지고, 중반부에서는 두 사람과 연결된 ‘아내’의 이야기가, 후반부에는 두 사람의 진실이 드러난다. 그러면서 읽는 사람의 기분도 같이 변형되어 간다. 조금씩 진실이 파헤쳐지면서 경악 감으로 말이다. 읽는 내내,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또 다른 나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모두들 나였는데, 때로 그 ‘나’에게 모멸감이나 실망감을 느끼던 나. 내가 잘못한 것을 인정하기 싫어 다른 나를 깎아내렸던 나. 아니, 그런데 원래의 ‘나’라는 존재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것조차도 수많은 나 자신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말이다. 적 또한 나 자신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제는 언제 드러날 줄 모를 ‘적’인 나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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