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라, 비둘기
김도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흔히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대표적으로 선이냐 악이냐, 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선이냐 악이냐 하는 것은 가장 편하고, 또 가장 쉽게 나눌 수 있는, 이분법적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누어지면 그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예를 들어 선이더라도 어느 선이 더 선하냐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는다. 악도 마찬가지다. 어느 악이 더 악하냐고 따지지 않는다. 이렇듯 우리들은 가장 쉽게 이분법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고, 인물들을 평가하는 잣대로 삼고 있다. 그런데 조금은 특별한 경우가 있다. 너무도 극명하게 드러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악인가? 선인가? 하는 인물들이 있다. <꺼져라, 비둘기>가 나에게 그랬다.


인물들은 분명히 선과 악으로 나누어진다. 김도언 작가도 그렇게 말할 정도였다. 선과 악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인물들을 쓰고 싶다고 말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악인으로 그려지기에는 인물들의 행동이 너무 궁상맞고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다. 선인도 마찬가지다. 악인들의 행동을 보며 저항하지 않고, 그저 고민하고 생각하는 정도의 선으로만 그쳐있다. 이러한 점들이 나에게는 새롭게 다가왔다. 겉으로만 보면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진 인물들이지만, 내밀하게 파고 들어가면 그렇지만은 않은 인물들. 그런 인물들이 엮어가는 이야기는 뭐랄까. 여타의 소설들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이산은 씨름 선수였지만, 사고로 인해 운동을 그만두고 새엄마의 가게인 비둘기 해장국집 일을 돕고 있다. 그의 아버지인 순구도 거대한 체구로 인해 씨름선수였지만 매번 지기만 하는 씨름선수였고, 그의 처가 죽자, 곧바로 이산에게 새엄마를 들인다. 새엄마가 가게를 열어 끌어들이는 남자손님들에게 멸시를 당하면서도 가만히 있는 남자다. 그리고 새엄마는 전형적인 악인으로 칭해진다. 재혼이긴 해도 버젓이 남편이 있는데 다른 남자와 모텔을 드나들고, 이산에게 약을 먹이고, 일손인 실래를 쥐 잡듯 잡는 등의 행동을 통해서 말이다. 이 가족을 중심으로 전반부가 이어지는데, 여기까지만 봐도 대체적으로 많이 등장하는 이분법적인 시각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 인물들에 한 가지 더 뻗어나가 시인인 영만과, 실래의 사랑이야기까지 이야기가 뻗어나가고, 그 과정에서도 새엄마와 마을에서 악의 축을 담당하는 남자 인물들, 그리고 비둘기의 이야기가 촘촘하게 짜여 있다. 마치 호호 할머니가 비둘기들을 잡기 위해 뜨는 뜨개질처럼 이야기들도 그렇게 짜여 있다. 겉으로만 보면 정말 말 그대로 선과 악으로 대립되는 인물들이 각각의 축을 담당하고 나서는데, 텍스트를 읽다보면 특히 악인들이 너무도 악인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이산에게 약을 먹이고, 외간남자와 모텔을 드나드는 새엄마의 캐릭터조차도 말이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봤지만, 아직도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그런 것일까.


소설 텍스트를 읽어나가면서, 이야기가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분위기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오히려 이 <꺼져라, 비둘기>라는 내용에 더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야기가 너무 역동성을 가지고 굽이치듯 펼쳐졌다면, 이야기를 따라가느라, 서사를 따라가느라 인물들의 생각과 인식들, 가치관 등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만약 그랬더라면 이 <꺼져라, 비둘기>에 대해서 보다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고, 인물들이 왜 이렇게 보이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것을 만약 계산을 해 넣었다면, 김도언 작가가 정말 대단하도 생각된다. 소설을 쓰다보면 사소한 이야깃거리보다도 큰 서사나 이야기에 중점을 두기 마련인데, 이런 것들을 의도했다고 하면, 독자들이 말 그대로 이야기에 빠져들게, 인물들에 빠져들게 만든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마지막 결말부분이 조금은 황당한 감도 없지 않아 있다. 그리고 이야기가 너무 급마무리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인물들이 자신들의 고민과 싸우면 읽는 입장에서 조금은 버겁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법도 했다. 이야기가 완전히 잘 여물어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앞에서 말 한 것처럼 소설의 이야기를 극대화 시킨 것은 아니었나 싶다. 여백이 있으면서도 잘 짜인 소설을 만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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