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웃다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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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바쁜 오월이기에, 아무래도 진지하게 읽을 책보다는 조금은 쉽게 재미나게 읽을 책을 선택하려고 했었다. 그러다 일본 소설을 읽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문득 책장에서 정한아 작가가 눈에 들어왔다. 물론 이 작가가 단순히 재미나고 쉽게 쓴다는 말은 아니다. 언젠가 이 책에서 몇 편의 단편을 무슨 일로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스피드 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었고, 주제의식도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당장에 이 책을 빼들어 읽었다. 책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각각의 분위기가 있으면서도, 또 일괄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물론 이야기가 다르지만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얘기는 어떻게 보면 좋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소설이 다 거기서 거기 같다는 말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나를 위해 웃다>에서는 오히려 플러스적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일괄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는 바로 스피드 있게 읽힌다는 점이었고, 그만큼 이야기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읽힌다는 말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표제작인 <나를 위해 웃다>에서는 계속해서 키가 자라는 엄마가 나온다. 엄마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인데, 읽으면서 조금은 참담함을 느꼈다. 소설은 내가 읽었을 때에는 경쾌하게 전개되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새침 떼면서 말하는 것 같은 이야기들이, 안을 들여다보면 너무도 어두운 면들이 숨어들어 있어 보면서 불편함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더욱 더 그런 점이 부각되어 나에게 다가왔던 듯싶다. 엄마를 성폭행한 남자 중학생들이 누군가에 아들이 되고, 또 누군가에 남편이 되고, 또 누군가의 아빠가 된다는 말을 보면서, 뭔지 모를 분노와 슬픔이 느껴졌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안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마테의 맛>에서는 강도들에게 죽음을 당한 동생의 유골로 목걸이를 만든, 여자가 등장한다. 이야기가 참 단순하면서도 읽는 내내 여운을 남겼던 작품이었다. <의자>도 마찬가지였다. 전부인의 아이를 맡아 키우게 되는 여자가 있고, 주변에서 여자에게 그런 애는 애물단지라며 친척들에게 맡기라는 말을 한다. 그런 말에 여자는 아이를 보내게 되지만, 다시 아이를 데리고 오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점들이 뭐랄까,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나를 위해 웃다>에서는 다양한 공간과 인물들이 나온다. 어느 소설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나에게는 유독 이 <나를 위해 웃다>에서 나오는 장치적인 것들이 새삼 좋게 느껴졌다. ‘키부츠’라는 공간이 나오는 <첼로 농장>과, 아르헨티나가 등장하는 <마테의 맛>, 할머니를 사랑해서 할머니가 혼수품으로 의자를 만들어준 남자, 매춘부 일을 하는 여자 <아프리카> 등등. 다양한 공간과 다양한 사연들을 가진 인물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데, 앞에서 말했듯이 각각의 분위기를 가지면서도 일관된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점이 신선하면서도 놀라웠다. 그리고 이야기들이 하나 같이 완벽하게 짜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것도 모든 소설들이 그렇지만 말이다. 이야기들이 이렇게 짜야 있으면서도 읽는데 막히지 않고 물처럼 읽힌다는 점은 정한아 작가가 엄청난 내공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된다.


<나를 위해 웃다>를 읽으면서, 우리 사회 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소설 안으로 들어와 어떠한 작용을 일으키는지 똑똑히 알게 되었다. 물론 사회 이면이라지만, 이미 드러날 대로 다 들어나 이제는 너무도 비일비재해진 일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일들이 소설 안으로 들어와 이야기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한 인물의 성격을 이루게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는 점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들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소설은 결국 우리들의 삶을 반영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렇듯 소설에서도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인물들의 성격이 변하고, 다른 인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데,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현실은 또 어떠한가,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소설이 가진 힘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소설이라고 다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설은 또 하나의 세계이고, 세계라면 어디든지 갈등과 현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그것들을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소설이라면,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우리들을 어떻게 제어하느냐가 현실이 아닐까 싶다. 정한아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었는데, 좋았다. 그냥 좋은게 아니라 매우 좋았다. 다음 만남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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