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 페란테의 나쁜 사랑 3부작 중 제2권.


'타임'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된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작품이다. 어떤 미디어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서면으로만 인터뷰를 한다는 작가. 작품만으로도 깊은 메시지를 무겁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출중한 작가인 것 같다. 나폴리 4부작 시리즈로 유명한 엘레나 페란테의 작품을 처음 읽는 거라 설레고 궁금한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그런 마음이 아니었어도 충분히 단숨에 읽을 수 있을만한 굉장한 흡입력이 있는 책이었다.


섬세하지만 거칠게 버려진 여자 '올가'의 심리와 상황을 표현하는 문체는 나까지 그 상황으로 데려가버려서 내가 다 정신없을 정도였다. 예상치 못하게 버려진 사랑, 버려진 사람 올가. 그리고 그 이후의 심리적, 물리적 상황들을 거침없이 그려내는 글 속에서 나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슬펐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이겨내려는 올가가 너무나도 장해서 마음속으로 많이 응원했던 것 같다.

 

 

 

여자는 흔하디흔한 성욕을 대단한 호의로 오해한다.

남자들의 성욕을 사랑하고 지나치게 현혹된 나머지

사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하고만 관계를 가지고 싶어 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성욕에 이름을 붙인다. 나만의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내 사랑'이라고 부른다.

p.139-140

우리가, 특히 여자들이 착각하는 남자의 호의와 관심. 그것에 사랑이라 이름을 붙이고 많은 시간과 감정을 허비하며 관계를 이어나가려 노력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의 나체는 성욕이라는 점을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이 나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을 앎으로써 성욕은 언젠가 끝이 나고 그 대상은 나만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려진 사랑이 포함된 엘레나 페란테의 나쁜 사랑 3부작은 모두 다른 인물과 다른 스토리로 전개되지만 세 가지 이야기 모두 여성의 정체성을 찾아 흘러가는 전개라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한다. 남자에 의해서 여성의 매력이 측정되거나 정의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고유한 매력과 마땅히 사랑받아야만 하는 점들을 소유한다. 그러나 그것을 타인을 통해 찾아내려고 할 때 소유권을 빼앗길 수 있다. 소중한 나의 고유의 매력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가지고 살아갈 권리가 있다.

올가는 결국 그 같은 건물의 음악가와 평온하고 조용한 사랑을 나누기 시작한다. 그는 욕망보다는 섬세한 관심을 꾸준히 표현했다. 필요한 것을 선물하고 조심스럽게 위로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점과 이성 간의 관계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나에 대한 소유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마리오가 있었기에 평범하고 좋은 여자의 권위를 지킬 수 있었던 올가는 진짜 자신에 대한 소유권을 빼앗긴 상태로 보인다. 이별이 좋은 것은 절대 아니지만 이별의 경험이 올가에게 나쁘기만 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별을 겪음으로써 나의 얼굴, 나의 몸, 나의 인생 전체의 소유권을 되찾아 올 수 있었다고 본다.

이제 올가는 정말 깊은 허망감과 허탈감의 심연을 마주했고 그것을 극복했다. 그리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목매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굉장히 긍정적이다. 그리고 이것을 이끌어간 엘레나 페란테의 대담하고 솔직한 문체들은 우리를 빠른 이야기 속으로 끌고갔지만, 긴 여운과 생각할 점들을 남긴다. 나쁜 사랑 3부작 모두 읽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든다. 사랑은 때로는 헌신과 집착을 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주가 되는 사랑은 위험하다. 그리고 욕망과 사랑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모두 자신의 고유성을 제대로 알고 건강한 사랑을 하면 좋겠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생각할거리가 많은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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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8일 - 생각할수록 애련한 조성기 오디세이 1
조성기 지음 / 한길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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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의 죽음과 맞닿아 있는 8, 그리고 그 8일을 둘러싼 몇몇 인물들의 생애를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어느 책이든 작가의 말이나 옮긴이의 말에 관심을 가지고 보는 편인데 작가는 이 8일을 죽음 직전, 생애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사람들이 교통사고를 당해도 죽기까지 그 몇 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전생이 스쳐 지나간다는데 8일 동안 사도세자는 어떤 생각 들을 했을까 하는 그의 말을 통해 한 생각이다.

 

이 책은 사도세자의 생애만을 다루고 있지 않기에 특별하다. 사도세자의 부인이었던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읽고 받은 충격으로 이 작품이 탄생했다고 한다. 사도세자의 이야기와 더불어 혜경궁 홍씨 본인의 생애와 사도세자를 옆에서 지켜보는 부인으로서의 시점이 꽤 자세하게 묘사되어있다. 물론 소설적 요소도 많겠지만 작가가 한중록과 조선왕조실록, 그리고 그 사건을 목격한 신하들의 기록과 연구서들을 참고하여서 그런지 생생함이 더해진다. 가난한 선비의 딸로 평범하게 자라오다가,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궁으로 들어오기까지. 그리고 광기 어린 병을 앓는 사도세자를 보필하다가 뒤주에서의 죽음이라는 기괴한 상황을 지켜보기까지. 혜경궁 홍씨의 시점은 생각지도 못한 시각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흔들지 마라.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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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는 이미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말과 글의 영향력은 지금까지 정치 사상계에 미치고 있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아렌트의 사상은 시대를 뛰어넘는 핵심 개념들을 포함하고 이는 적실성을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부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글쓴이 번스타인은 아렌트의 사상이 21세기 우리에게 도대체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 그 접점을 책 전반에 걸쳐 알리고 있다. 그리고 이 접점을 통해 우리는 아렌트가 강조해왔던 사유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 책의 주제는 아렌트의 사상이 21세기 현 정치 쟁점들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그 적실성에 대한 고찰이라고 볼 수 있겠다. 번스타인은 9가지 파트를 통해 이를 설명하고 있다


나는 난민과 전체주의 개념이 인상적이었고 진리, 정치 그리고 거짓말이라는 6번째 파트 내용이 가장 와닿았다.

 

6번째 파트는 우리가 정치적 쟁점들에 대해 무관심한 동안, 즉 무사유 하는 동안 정치에서는 거짓말이 사실적 진리를 어떻게 삼켜왔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삶의 거친 현실 속에서 도피하려는 욕망이 있고 이러한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을 이용하여 전체주의 지도자는 거짓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조직적인 거짓말은 그것이 거짓임이 분명함에도 이를 믿고 싶어 하고 따르고 싶어 하는 충성스러운 추종자들에 의해 큰 위험성을 지닌다.


사실이 사실로서 살아남기 어려운 것은 사실은 사람들이 듣고 싶지 않은 정보를 포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를 부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거짓말은 어떤 강력한 유혹이 될 수 있다. 이미지 메이커들은 이를 이용하여 청중들이 원하는 말로 거짓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럼 사실은 어떻게 되는가? 이 이미지 메이커들은 사실적 진리를 그저 또 하나의 다른 의견처럼 치부해버리는 일에 능숙하다. 이들의 횡포에 의해 언론은 사실과 거짓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졌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의 취임식에 참여한 군중이 역사상 최대 규모라고 주장하는 글을 올렸다. 이는 명백하고 뻔뻔한 거짓말이었음에도 이를 충성스럽게 믿는 추정자들이 존재했다.


다양한 거짓과 진실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이 사실적 진리인지 분별하는 것에 지쳐있다. 그리고 분별에 실패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구분에 대한 의지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아렌트가 경고하는 바이다사실은 약하지만, 사실적 진리가 가진 끈질긴 힘이 있다


우리는 현장에 있거나 당사자가 아닌 이상 언론에 의한 정보를 접할 수밖에 없다. 언론은 사실과 거짓을 분명히 포함하고 있다. 언론을 수용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것을 사실로 채택할 것인지는 개인의 자유이지만 조직적 고의적 거짓말의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사실적 진리에 대한 끈질긴 추구를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때로는 달콤한 거짓보다 씁쓸한 사실을 채택할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아렌트의 여러 지적은 놀랍게도 현재 우리가 접하는 여러 사회적 이슈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 연결점을 발견할 수 있으며 문제를 문제로 볼 수 있는 사유의 힘이 생겼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핑계로 나 자신을 무사유의 존재로 방치하면 안 되겠다는 어떤 결심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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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섬 : 나의 투쟁 4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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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섬은 특별하지 않다. 흥미진진한 추리소설도 아니고 사회학적으로 의미가 깊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작가가 모든것을 세세하게 기록해 낸 유년시절의 글을 통해 읽는 모두가 본인의 유년시절을 회고할 수 있게 만들기에 그렇다. 

칼 오베가 학교를 처음 다니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하면서,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계절이 바뀌어 나감을 느끼면서 기록해낸 모든 글들이 나의 어린시절과 맞닿아 있었고 바삐 흘러가는 이 시간 속에서 내 어린 시절 섬에 잠깐 여행다녀온 이 시간은 굉장히 소중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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