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따라하기 오사카.교토 - 전2권 무작정 따라하기 여행 시리즈
홍유진 지음, 오원호 사진 / 길벗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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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번 오사카, 교토여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용도 충실했고요..
다만 단점을 꼽자면.. 책의 판형이 너무 크다는 겁니다. 여행책은 휴대하면서 보는 용도도 있는데, 타안내서에 비해 크다보니 가방에 휴대하기에 불편하고 무겁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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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제이컵을 위하여
윌리엄 랜데이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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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완료


정말 정신없이 읽었다는 표현이 딱 맞을만큼 몰입도와 긴장감이 최고인 소설을 만났다.


소설은 현직 고위검사의 14세아들이 살인협의로 기소되면서 본격적으로 출발된다.

일종의 법정스릴러의 형식을 갖는 데...

이 소설의 매력은 추리의 형식으로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보다는, 

14세의 소년이 살인혐의를 받게되며, 서서히 무너지는 과정, 그리고 공동체의 신뢰와 이기심등 여러가지 갈등들이 전개되는 것에 그 매력이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스릴러물이다. 아무리 주인공들의 심리와 갈등을 잘 묘사했다고 하더라도, 이 것으로 스릴러물의 독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데.. 엔딩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이 건 읽어봐야 한다.

마치 일본 서술추리물을 읽고 책의 앞장을 다시 펴는 느낌과 비견될 정도로,  다시 책의 여러군데를 뒤돌아 보게 만드는 데, 서술추리물들과는 또 그 격이 다름을 느끼게 할정도로 복선이 많은 곳에 깔려 있다.


정말 꽤 많은 분량의 책이 쉴틈을 주지않을 정도로 독자를 몰아치고 있다. 이 정도의 치밀한 책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매우 인상깊고, 또 나름 많은 생각을 하게해주는 책으로서 누구나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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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경제인의 종말
피터 드러커 지음, 이재규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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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도서정가제직전, 전자책 8-90%할인으로 무더기로 나왔을 때 2000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구매했던 책이다.

이러한 파격할인이 피터드러커라는 거장을 만날 수 있게 해준것이다.

사실 피터드러커라는 이름은 경상학부계열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익숙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니, 이 시대의 직장인, 조직에 포함된 사람으로서 경영이나 자기계발에 약간의 관심이라도 있었다면 한번을 들어봄직했을 이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그의 책을 직접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도 그중의 한명으로 평소에 피터드러커라는 거장의 책을 접하고 싶었고, 마침 저렴한 가격에 그의 사상의 원전이라는 이 책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그럼에도 상술했듯이 예상치못한 내용으로 나를 당황케 하기도 했다.

나를 당황케 한 것은, 이 책의 난이도가 아니라, 이 책에서 피터드러커가 서술하는 내용이다.

일단 책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저자의 서문에서 그는 이 책을 정치서적으로 규정하고 시작한다.

서문 첫줄 "이 책은 정치서적이다".. 그리고 스스로 객관적인 중립성이나 의도적인 공평성을 유지하지 않은 정치적 목적으로 쓴 글임을 천명하고 있다. (난 이부분이 너무 마음에 든다. 우리 지식인들 뻔히 보이는 당파성과 정치성을 어줍잖은 중립이나 보수라는 단어에 숨어서 중립과 공평이라는 가치마저 망쳐버리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서일까..) 

피터드러커에 입문하려, 그의 첫번째 저작을 접할 때 그 책이 "정치서적"이라 예상했을 리가 없지 않을까..

이렇게 시작하는 책은 정치, 역사, 사회, 철학, 경제를 자유롭게 드나드며, 이 책이 왜 그의 사상의 원전으로 불리는 지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을 읽을 때, 중요한 포인트는 2가지로 볼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장기간 이 책을 읽으며, 호흡을 유지하기 힘들었던 나로서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였다.


첫째, 이 책이 쓰여진 배경이다. 이 책의 초판일은 1939년이다. 즉 1차대전직후, 대공황으로 인해 전체주의가 서구세계를 위협하는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전체주의에 대한 분석과 내용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읽다보면 저자의 절박함까지 느껴진다. 문명자체가 위태로워지는 상황을 반드시 인지하고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둘째, '경제인'의 의미다. 이는 옮긴이의 해설에 나온다.


 "유사 이래 빈곤이 지배적이었던 사외에서는 자유와 평등의 실현이 처음으로 영적 영역에서 추구되었다. 빈곤한 현실 사회에서는 부의 평등이 실제로 불가능했으므로 국가와 종교이 지도자들은 내세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믿게 했고 또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다. 중세시대까지 그 약속은 허구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모델을 '영적 인간'으로 보았던 것이다.

 16세기 경 이런 영적 인간의 질서가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붕괴되자, 자유와 평등은 지적 영역에서 그 실천 장소를 찾게 되었다. 마린 류터의 가르침에 따라 성경 말씀을 해석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인간의 모델이 영적 인간에서 '지적 인간 '으로 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최상의 예이다. 그리고 지적 영역에서도 자유와 평등의 실현이 불가능해지게 되자, 18세기 경 자유와 평등은 그 실현 장소를 사회 영역에서 찾으려고 했다. 사회 영역에서 인간의 모델은 처음에 '정치적 인간'이 되고, 그 다음에는 '경제인'이 된다. 그렇게 되자 자유와 평등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 사회가 바로 '경제인 사회"이다. 경제인의 개념이 처음으로 학문적 용어로 등장한 것은 아담 스미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사용한 호모 오코노미쿠스라는 용어이다. 경제인은 매우 현명하며, 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에게 최대의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는 행동만을 하기 원할 뿐 아니라 그 방법도 항상 알고 있다고 간주된다."


 그러나, 인간을 경제적 동물로 보며, 경제적 활동을 인간 존재의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보던 자본주의나 사회주의가 개인의 경제적 자유가 평등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것이 증명되자, 경제인과 경제인의 개념은 무너질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로 파시즘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 것을 배경으로 명확히 인식하고 본다면 더 많은 것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묘하게도 우리의 정치상황과도 유사성을 보이니, 이 부분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가 겪는 역류의 상황은 경제인과 그 개념의 혼란에서 기인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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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보는 고대사 - 민족과 국가의 경계 너머 한반도 고대사 이야기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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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는 보통 아프리카계 미국인, 프랑스계 미국인등의 ~계 ~국인의 표현에 익숙하다. 그러나 그 뒤의 국적에 한국인이라는 단어가 들어오면 갑자기 그 낯설음에 당황스러워하기도 한다.

박노자 교수는 바로 그 드물다는 ~계 한국인 중 더 드문 러시아계 한국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보다 더 우리를 잘아는, 그렇지만 이방인일 수 밖에 없는 그의 시선에 많은 기대를 하고, 그는 지금까지 지식인으로서 우리의 그것에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박노자 교수가 보는 우리 고대사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까지 우리는 민족과 국가의 틀으로 역사를 보아왔고 그렇게 배워왔다. 그러나, 놀라웁게도 소위 말하는 민족 그리고 민족국가의 개념은 그리 오랜 역사가 되지 않았다. 그 단어조차 근대일본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민족"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그렇게 한과 설움마저 서린 단어가 되었을까..

 이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도입되었던 근대가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잔인했던 가의 반증이 아닐까. 더군다나 유럽과는 달리 민족이라는 개념에 유난히도 혈통이라는 요소가 가미된 동아시아에서 민족이라는 단어는 유럽의 그것보다도 훨씬 폐쇄적일 수 밖에 없었고, 서구와 일본의 침략앞에 그 존재마저 부정당하게 되어 버린 위기 속에서 우리 민족과 국가는 더더욱 불가촉의 이상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민족과 국가의 시각으로 보고 해석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고대사가 지금의 민족과 국가의 시각으로 제대로 해석될 수 있을까..

 당시 삼국과 그 이전의 국가들이 민족이라는 공동체적 관념이 있었을지, 그리고, 왜라는 국가에 대해 지금과 같이 적대적인 시각을 가졌었을지.. 우리는 역사를 읽으면서 가끔 당혹스러워 지기도 한다. 삼국간의 관계, 그리고, 왜와 중국과의 관계에서 의아함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이 시대의 시각으로 고대를 해석하기에 벌어지는 현상들이었던 것이다.


 박노자 교수는 이 책에서 민족은 혈통이 아닌 역사적 과정의 산물로서 영구불변의 개념이 아니라 주장하며,  역사쓰기란 현재적 선택의 문제라 주장한다.

 따라서 민족의 시각이 아닌, 수많은 이질적인 요소들을 내포한 흐름으로 고대를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의 오늘 조차도 새롭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방된 시각을 가져야만 이 사회의 대립과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역사를 읽는 것도 단순히 재미있어서가 아닌, 또 하나의 우리와 미래를 위함이 아닌가 말이다.


 이와같이 이 책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눈으로 역사를 볼 것임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새롭게 알게 된 역사적 사실과, 민족과 국가, 그리고 국경선의 틀에 얽매이지 않은 역사서술은 새로운 재미를 주고 있다. 

추천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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