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루인 수사의 고백 캐드펠 수사 시리즈 1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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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눈이 오면서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의 누수 현상이 악화되고 보수 공사가 시작된다. 지붕에서 보수 공사 중 할루인 수사의 낙상 사고가 생기고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고해성사를 한다. 영구적인 신체장애가 생겼지만 다행히 의식을 회복하고 불편한 몸으로 속죄의 고행을 시작한 할루인 수사를 캐드펠 수사가 돕는다. 고행에서의 우연한 만남들은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걸 보여주듯 그들은 진실을 향해 간다. ‘예나... 선정이 딸이에요.’ 같은 전개에 아침 드라마를 보는 거 같았는데 한 인간의 진실한 내면은 소름이 돋았다. ”말 사이사이의 침묵도 내게는 단순한 침묵으로 들리지 않았다네.“(P.109) 이것이 캐드펠 수사의 비범한 능력이다.

_P.43
”제 사랑과 아이, 둘 다요...... 그녀의 모친이 제게 전갈을 보내왔지요. 죽어서 매장했노라고. 열병, 그들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열병으로 죽었다고...... 아, 이렇게 끔찍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저의 죄는 극악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제가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하느님만이 아실 겁니다!“
_P.105
”치유되길 바란다고? 편안하고 완벽하게? 자네, 하느님께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군. 내게는 더 많은 것을 바라고 말이야.“
_P.241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알아본 터였다. 봉해졌던 궤짝이 열리고 그 속에서 비밀이 튀어나올 참이었으니, 이제 누구도 그 뚜껑을 닫지 못할 것이었다.
_P.258
진실이 튀어나왔다. 가감 없이. 그녀 자신이 그것을 밝힌 참이었다. 이제 부인은 가만히 앉아 자신이 토해낸 진실을 바라보았다. 더는 그때와 같은 강렬함으로 느낄 수 없는 그 갈망과 분노를, 마치 다른 여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듯 다시금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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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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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망자의 고백』을 읽을 때도 생각했지만 자신의 죄에 무게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범죄자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사형 집행이 멈춘 지 오래고 현재 사형수들의 악행으로 교도관들은 고통받고 있다. 나는 호계동 안양교도소가 있는 곳에서 자랐는데 범죄자를 가두는 곳이었기에 내가 그들을 대면할 일은 없었지만 이후 근무했던 한림대학교성심병원에서 안양교도소에 복역 중인 수감자들이 입원할 때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입원 기간을 늘리기 위해 체온계를 먹기도 했고 원인 미상의 복통 그러니까 꾀병인 경우도 있었다. 저자는 사형 집행을 반대하는 입장으로 이 소설을 쓴 거 같은데 나는 교화라는 건 이상적인 말일뿐이라 생각하며 사형 집행을 찬성하는 입장이다.

_P.84
”개전의 정이란 걸 정말 남이 판단할 수 있을까요? 죄를 범한 인간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지를 겉으로 봐서 알 수 있는 겁니까?“
_P.169
”저는 사형수의 원죄를 밝히는 일을 맡았어요. 한 인간의 목숨을 구하는 일을요. 그런데 만약 진범을 찾아내면 결국 다른 인간을 사형대로 보낸다는 거 아닙니까?“
_P.195
모두 인간이 한 짓이다. 유아 둘에게 저지른 잔학한 범행도, 이를 범한 자에 대한 처형도. 죄와 벌은 모든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인간이 한 짓에 대해서는 인간 스스로가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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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턴 숲의 은둔자 캐드펠 수사 시리즈 14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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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K 유튜브에서 정세랑 작가가 추천했던 캐드펠 수사 시리즈 눈을 강조한 표지도 인상적이고 좋은 후기를 많이 봐서 이번 서포터즈에 지원했고 운 좋게 참여할 수 있었다. 11-21부 가운데 3권을 읽을 수 있는 서평단이라 앞부분을 읽지 않아도 괜찮을지 걱정했는데 쓸데없었다. 14권 『에이턴 숲의 은둔자』에서는 전쟁 중에도 평화롭던 영지에서 두 건의 살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너무 매력적인데 다들 정이 있달까. 캐드펠 수사도 장관 휴도 유연성이 돋보이는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사고는 치지만)귀여운 리처드가 감금된 곳에서 벗어나 수도원으로 돌아갈 때 추격전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책을 다 읽으니 결국 살해된 자들은 각자의 탐욕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서 그걸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의 결말은 나오지 않지만 예상할 수는 있다.

_P.35
탐욕스러운 이들에게 땅은 어떤 행동이든 감행케하는 강력한 추진력이요. 아이들 같은 건 그 목적을 위해 어떻게 소모해도 좋은 존재이리라.
_P.135
"나는 종종 사람들이 살인을 하는 이유에 관해 생각한다네. 탐욕이 그중 하나지. 그리고 탐욕은 상속을 받고 싶어 안달을 내는 아들의 마음속에서 싹틀 수 있어. 증오 역시 살인을 하는 이유가 되는데, 학대받는 하인은 기회가 생길 경우 기꺼이 그런 감정을 품을 수 있지. 하지만 또 다른, 보다 기묘한 이유들도 있네. 단순한 도벽 때문에, 혹은 희생자가 나중에 아무 소리도 지껄이지 못하도록 뒷마무리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그런 짓을 벌이는 경우 말일세. 딱한 일이지, 휴, 정말 딱한 일이야.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 그렇게 때 이르게 다른 이의 죽음을 재촉하다니."
_P.295
"죽은 지 몇 시간쯤 지난 것 같습니다. 제가 다스리는 곳에서 또다시 사람이 죽다니...... 첫 번째 살인 사건도 아직 해결하지 못했는데! 대체 무슨 연유로 이 숲속에서 이런 흉악한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걸까요?"
_P.313
수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살인자와 살해당한 자가 나란히 누워 있었고, 정의는 이미 실현되었다.
하지만 그 살인자를 살해한 사람은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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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구정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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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 영웅이었어.
아빠를 미워하는 건 쉬웠는데 엄마를 미워하는 건 쉽지 않더라.
원망과 미움 옆에 여러 가지 감정들이 끈끈하게 달라붙어 있었어.
사랑, 기대, 슬픔, 죄책감, 외로움, 분노, 연민...
나는 지난 2년간 엄마를 마음껏 미워하면서 그것들을 열심히 들여다보았어.
(P.180)

딸 셋에 삼대독자 동생이 있는 집의 셋째 딸인 나. 언제나 갖고 싶은 게 많았지만 표현하지 못했다. 그렇게 쌓인 것들이 엄마의 말 한마디에 무너져 펑펑 울던 날이 여전히 생생하다. 나는 겉으로 다 드러내는 것 같지만 진짜 속마음은 꼭꼭 숨겨두는데 그걸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다 최진영 작가의 산문에서 발견한 문장이 많은 위로가 되었다. 이 만화의 딸에게 꼭 알려주고 싶다.

『내가 되는 꿈』에 쓴 ‘책가방론’이나 ‘지름길론’처럼 나만의 인생 이론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서른살론’이 있다. 요약하자면, 누구나 어릴 때 받은 상처가 있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것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심각한 트라우마가 아닌 이상 ‘그때 받은 상처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는 말은 딱 서른 살까지, 길게 잡아서 서른세 살 까지만 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 이후부터는 자기 인생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 자기 의지로 살아온 세월을 믿고 상처는 스스로 치유하고 감당하기. 어린이 최진영은 계속 서운해할 수 있다. 어린이 최진영의 마음을 풀어주는 건 이제 내 몫이다. 나에겐 어린이 최진영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_최진영, 『어떤 비밀』 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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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는 간소하게 화가 노석미 사계절 음식 에세이
노석미 지음 / 사계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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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는 음식을 직접 한 지 일 년 정도 지나니 모든 요리는 간소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자신이 만드는 요리의 재료를 직접 얻기도 하니까 책에 있는 요리들은 정말 많은 과정과 정성이 들어간 것이다. 그것을 귀여운 그림과 함께 보니 즐거웠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요리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그 부분만을 모아둔 유튜브 영상을 자주 보지만 그 요리를 위해서는 모종을 내고 심어서 기르고 거두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_P.28
“냉이가 뭔지 정확히 모르겠다고? 냄새를 맡아봐. 그럼 알게 돼.“
_P.88
그래서일까, 바질잎을 갈아서 페스토를 만들다 보면 어린 시절 이파리들을 뜯어다가 돌멩이로 빻아 음식을 만들던 소꿉놀이가 연상된다. 어떤 식물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리고 먹지도 못하면서 조막손으로 요리를 하고 친구와 함께 냠냠 먹는 시늉을 했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습고도 귀엽다(요즘 어린 소녀들은 장난감 회사에서 나오는 다양한 플라스틱 요리 도구와 재료로 소꿉놀이를 하는 것 같다).
_P.104
나의 밭 딸기는 사 먹는 딸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크기도 작고 못생겼다. 게다가 벌레들과 나눠 먹어야 한다. 하지만 그 맛이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새콤함과 신선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수확량이 얼마 되지 않아도 밭 한구석을 항상 딸기에게 분양한다.
_P.114
봄이 오면 나의 정원에 있는 두 그루의 복숭아나무에 복숭아꽃이 엄청나게 많이 피어 아름답다. 꽃들은 곧 주렁주렁 열매가 된다. 하지만 이 열매들이 붉게 또는 튼실하게 익기도 전에 벌레님들의 파티가 연일 벌어진다. 결국 나는 그들이 훼손한 부위를 잘라내고 남는 부위를 먹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거라도 먹을 테다, 하고 썩은 부위를 도려내고 뽀얀 부분으로만 복숭아조림을 만든다. 복숭아를 만지고 자르는 동안 손에 복숭아 향기가 배어든다. 아, 복숭아란 향기를 먹는 것인가 보다. 벌레님들, 너희들이 왜 좋아하는지, 파라다이스를 상징하는 과일이 왜 복숭아인지 충분히 알겠네요.
_P.114
오븐에 구운 토마토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중간에 햇볕을 만나게 해주어야 맛 좋은 드라이드 토마토가 된다. 생각할수록 이 ‘햇볕‘이라는 것은 강력한 조미료가 아닐 수 없다(고추도 태양초가 빛깔도 좋고 맛도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물론 그렇기에 더 비싸기도 하지만 이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당연하게 여겨진다). 내 몸도 조미료를 필요로 하여 햇볕 뜨거운 날 정원 한 귀퉁이에 멍하니 앉아 일광욕을 한다. 나의 몸도 햇볕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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