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 일기 - 시간 죽이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2
송승언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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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그저 게으르고 아무 생각이 없을 뿐이다. 뭔가를 깊게 사랑하지 못하는 성정은 덕후 되기에 있어 큰 걸림돌이다.(P.11) 프롤로그의 작가의 말에 나랑 비슷한 사람이라고 속을 뻔했다. 작가는 덕후가 맞다. 작가가 몰두했던 취미들이 내가 모르는 것들이라 읽는 내내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런 상태였다.(특히 게임…) 예전에 좋아했던 드라마나 영화 또는 책을 다시 보다가 내가 이런 걸 좋아했다는 사실에 자기혐오에 빠지고 그때의 나는 왜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던 걸까 고민에 빠졌던 사람이라면 공감할 이야기가 상당 부분 있다. 웹소설과 장르소설 얘기는 속이 시원하기도 했고. 그렇지만 작가가 다루는 내용을 모르는 이라면 재밌게 볼 에세이는 아닌 거 같다.

_P.113
참으로 오랜만에 드래곤볼 시리즈를 다시 보면서 내내 들었던 의문은 원작은 물론이요, 「드래곤볼 GT」까지 오면서도 여성은 그토록 초사이어인에서 배제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_P.181
맨날 여자랑 동물만 죽이지 말고 다른 것도 좀 많이 죽여라!
_P.205
세상을 나누는 데엔 여러 가지 기준이 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본 사람과 안 본 사람, 「클레멘타인」을 본 사람과 안 본 사람, 그리고 「자전차왕 엄복동」을 본 사람과 안 본 사람. 나는 셋 모두 본 사람들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_P.242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꽤 오래전부터 웹소설이든 장르문학이든 뭔가를 읽는 이들이 순수문학 또한 읽었다는 거다. 한때 이 점을 간과했던 고리타분한 어르신들이 장르문학을 무시하는 발언을 한 일도 실제로 있고(최근엔 거의 없는 듯), 장르문학 하는 분들은 또 무시당하던 것에 대한 한이 있으니까 과거의 순수문학 망령들을 향한 멸시를 늘어놓는 일도 있었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요즘 세상은 장르가 어찌 됐든 뭐라도 읽는 소수의 사람과 1년에 책 네다섯 권도 읽을까 말까한 다수의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서로 싸우지들 마시고 독자를 늘리는 고민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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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친화력 을유세계문학전집 12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장희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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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는 청년기에 맺어지지 못하고 각자의 배우자가 사망하고 에두아르트의 구애로 결혼한다. 에두아르트는 절친한 사이인 대위를 집으로 초대하고 샤를로테는 조카인 오틸리에가 학교에 적응을 못 하자 집으로 돌아오게 한다.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는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고 대위와 샤를로테 또한 그러하지만, 샤를로테는 가정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에두아르트는 오틸리에와 맺어지고 싶어 한다. 샤를로테가 임신했음을 밝혀도 여전히 그는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오틸리에와 자신의 관계만 생각하고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군대에 지원한다. 『선택적 친화력』을 읽으면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인간이란 변덕스럽고 믿을 수 없는 존재다. 그런 존재가 결혼을 결정하는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나는 선택의 이유가 사랑이라면 그게 영원할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서 법적으로 묶이는 관계인 만큼 신의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간통법도 폐지된 지금 사랑에 빠진 게 죄가 아니라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나는 죄라고 생각한다. 결혼이란 제도는 선악과 도덕을 가늠하는 절대 기준인가? 이러한 의문 제기와 저항과 관대함의 계보에 있어서 괴테는 플로베르와 톨스토이 그리고 쇼펜하우어의 선배였다.(P.421) 해설에 나오는 이 문장은 나도 동의하는 바지만 이런 의문을 가진 자라면 비혼으로 남는 것이 타인을 위해 좋지 않을까.

_P.121
“제대로 된 결혼은 원래부터 미움의 대상이 되지요. 일반적으로 결혼이라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좀 지나친 표현을 쓰는 걸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만, 뭔가 어리석은 데가 있는 법입니다. 아주 섬세한 관계를 망쳐버리니까요. 혹 어느 한쪽에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기껏해야 둔탁한 안정감 때문이지요. 모든 게 다 그렇고 그런 게 되는 겁니다. 사람들은 서로 결합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로써 이제 각자 자기의 길을 가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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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만화경
김유정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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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P.82
그들이 향하는 지구는 결코 낙원이 아니다. 개척 착취자들의 본사가 있고 브로커로부터 보호할 대책도 없이 행성 간 입양아를 내보내는 곳이다. 오염되고 파괴되어 인간이 살 수 있는 구역도 제한된 지 오래고 무엇보다 떠돌이인 그들을 반겨 주리란 보장도 없었다. 이곳보다 더 진절머리 나고 악몽처럼 표독스러운 삶이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갈 수 밖에 없다. 그들이 시작된 자리에 보란 듯 당당하게 존재하고 싶었다. 힘닿는 한 있고 싶은 곳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럴 힘이 되어 줄 서로를 위해 그들은 만나야 했던 것이다.
『우주 시대는 미신을 사랑한다』

⟡ 우주 시대에 지구에서 태어났지만 다른 행성에서 만난 호림과 젠은 연인이 되고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십 년을 준비한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돌아가는 긴 시간 둘이 동시에 깨어 있어도 될 만큼의 물자가 없기에 여행은 곧 작별을 의미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이 변할까 걱정하지만 지구에 도착하고 다시 사랑에 빠지는 아주 로맨틱한 이야기다.

_P.127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정주은은 자신이 하나의 가전으로 변했다는 것을 알았다.
『만세, 엘리자베스』

⟡ 로봇청소기와 몸이 바뀌고도 출근을 걱정하는 K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구나 생각했다가 뒤통수 맞았다.

_P.269
“너희를 모두 내게 담아서 데려갈게. 그곳에서 다시 만나자.“
미래로.
『용의 만화경』

⟡ 인간을 사랑하는 김용 씨, 너무 다정한 용이잖아요. 김용 씨 이야기 더 보고 싶어요.

_P.340
‘아니야, 도련님의 정부 따위. 내가 얻고 싶은 건 도련님이 있는 자리였다. 자리 말이야. 이름 말이야. 별 볼 일 없는 인생 말고, 있는 힘을 다해 봤자 누굴 대신해 주다 가루처럼 소모되는 인생 말고.’
『소모품 마법사』

⟡ 사이렌 과몰입 다시 시작되다. 욕망이 있고 센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설렌다.

10편의 소설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니 너무 매력적인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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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아 비바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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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ua Viva는 단어 그대로를 직역하면 ‘살아 있는 물’로 번역되고, 일반적으로는 해파리를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의미에는 공통점이 있다. 뼈대가 없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물’은 뼈대 즉 특정한 형태를 강제하는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운 세계이며, 그 살아 있는 물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해파리는 그 세계와 가장 닮은 개체다.(편집자 주) 『아구아 비바』는 정해진 틀 없이 작가의 의식의 흐름대로 쓰여진 글로 보여진다. 한눈팔면 흐름을 놓치고 다시 읽어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의 글이 난해하다고 평가되는 이유를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을 읽으며 몸소 느꼈다. 그래서 읽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내가 이해한 부분만 정리하자면 그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림으로써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가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를 찾은 것처럼 어쩌면 우리에게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찾길 바란 것은 아닐까.

_P.17
미래를 맞이하는 유일한 방법은 오늘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미래가 되고, 모든 시간은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된다.
_P.55
거울이 등장하기 전, 인간은 호수에 비친 그림자 말고는 자기 얼굴을 알지 못했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모두가 자신이 가진 얼굴에 책임을 지게 된다. 지금 나는 내 얼굴을 볼 것이다. 맨얼굴. 세상에 내 얼굴과 똑같이 생긴 얼굴이 없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충격을 받는다.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다.
_P.138
당신에게 한 가지 비밀을 말해 주겠다 : 삶은 치명적인 것이다. 지금 다른 모든 걸 멈추고 당신에게 이걸 말해야겠다 : 죽음은 불가능이고 만질 수 없는 것이다. 죽음은 그저 미래이기에 어떤 사람들은 그걸 견디지 못해 자살한다.
_P.156
내가 당신에게 쓰고 있는 건 ‘이것‘이다. 그건 멈추지 않을 것이다 : 계속 될 것이다.

나를 보고 나를 사랑하라. 아니 : 당신은 당신 자신을 사랑한다.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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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의 시간 - 펜글씨로 만나는 세계문학 명문장 모음
유한빈(펜크래프트)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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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출판사에서 세문집을 출간하지만 나는 을유문화사의 세문집을 읽고 모으고 있다. 표지도 가장 예쁘고 휴대하기 좋은 판형에 양장본이고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하지 않는 다양한 나라의 고전을 번역하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래서 『필사의 시간』 서평단을 모집할 때 망설이지 않고 신청했다. 나와 너무 다른 필체의 유한빈 님의 글씨를 따라 쓰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었고 모든 페이지가 쫙 펼쳐지고 종이가 두껍지 않은데 펜 비침도 없어서 필사를 위해 만들어진 책이라는 게 느껴진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필사할 문장이 하나만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2~3문장을 더 제시했어도 좋았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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