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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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 #빨갱이 #좌익 #우익 #혁명 #통일 #반공 #연좌제 #부르주아 #혁명가 #사회주의자 #이데올로기 #남로당 #남부군 등의 단어가 등장하는 소설로, <빨치산의 딸> 출간 시 판매금지, 기소 등의 사건을 겪은 정지아 작가가 본인이 삶을 모티브로 삼아 32년 만에 소설이다. 


소설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장례식장을 지키는 딸의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딸이 모르고 있었던 아버지 모습 그리고 그가 그동안 인연을 맺고 있던 관계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보여준다. 저자는 아버지 빈소에 그동안 인연을 맺아왔던 사람들을 다수 등장시킨다. 그리고 아버지의 삶이 생각보다 괜찮았다는 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저자에 의하면 저자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관련된 일화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허구라고 한다. 저자의 고향 구례는 여순사건 때부터 빨치산이 소멸될 때까지 7년간 이념 대결의 각축장이었다. 여순사건의 정의는 1948년 10월 19일 전라남도 여수·순천 지역에서 일어난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의 반란과 여기에 호응한 좌익계열 시민들의 봉기가 유혈 진압된 사건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여순사건>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전라남도 동부 6개 군을 점거하였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정부는 대규모 진압군을 파견하여 일주일여 만에 전 지역을 수복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상당한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에서는 「국가보안법」 제정과 강력한 숙군 조치를 단행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48년 10월 19일부터 27일까지 이어졌던 여순사건은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를 남겼다. 피해에 관해서는 다양한 통계가 확인되며 대략 2,000~5,00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재산 피해는 약 100억 원, 가옥 소실은 2천 호 가량으로 집계되었다. 여순사건은 정부 차원에서 정치적 위기감을 갖게 했고, 결과적으로는 이승만 대통령의 철권통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여순사건 [Yeosu-Suncheon Rebellion, 麗順事件]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설 중간에 "원래 우리 동지들이 가면 통일 애국장으로 치르오. 그런데 고 동지는... 알겠지만 자수를 한 터라... 아버지는 1952년 위장 자수를 했다"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위장자수를 한 이유가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고 했고, 조직 재건이라는 말도 나온다. 부담스러운 단어들이다.


이 소설의 작품성은 차지해두고, 이 책을 추천하는 일부 사람들이 하는 말과 여기에 편승하는 마케팅에 불편한 감정이 든다. 홍보 기사도 많다. 어느 신문 인터뷰 질문에서는 "계속 빨치산의 딸이라는 족쇄를 채우는 남한 사회는 어떤 사회이고..."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기자는 인터뷰 도중 한국이 아니고 남한사회라는 표현을 썼다. 


성장판 발제독서모임 4분기 선정도서여서 읽은 책으로,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일었던 책은 아니다. 이 책의 솔직한 소감은 소설 장르지만, 불편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있다. 차라리 창작소설이었다면 좀 다르게 다가왔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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