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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 알고 보면 가깝고, 가까울수록 즐거운 그림 속 철학 이야기
이진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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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면서 같이 놀자고 하는 책
저자 이진민은 그림을 보는 사람은 모두 철학자라고 말한다. 마음 편하게 그리고 즐겁게 미술을 대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독자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림을 도구 삼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들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게 도움을 준다. 가끔 툭툭 던지는 장난스러운 말투도 정겹다.
같은 그림을 보면서도 우리는 제각각 다른 느낌, 감정 그리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온갖 미사여구와 고상한 단어를 다 갖다 붙여서 그림을 평하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너도 그렇게 생각해야 해!"라고 강요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뭘 보든 뭘 들었든 감정과 느낌은 내 것이므로 내가 본 대로 들은 대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유명 미술관에 갔다고 긴장할 필요도 없고, 어깨에 힘주면서 고상한 척도 잘난 척도 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 공간에 머물면서 작품에 '왜'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그 시간을 즐기면 된다.
그림 앞에서 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생각
저자는 철학적 영감을 얻을 요량으로 이 그림을 곁에 둔 적이 있었다고 한다. 아담과 신의 손가락이 서로 만나는 부분이 크게 확대된 그림으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 일부분이다. 이 그림을 독서토론 멤버와 학습 멤버들이 있는 방에 올리고 질문을 했다.
"어느 쪽이 신이고, 어느 쪽이 인간인가?"
답을 할 때 자신들이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적어달라고 했다. 한동안 활발하게 톡방에서 대화가 오갔고, 서로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현지에서 설명을 들었으나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젤라또를 먹은 기억만 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직접 보고 왔기 때문에 안다고 말하면서 비교적 상세하게 적었다.
두 손을 찬찬히 살펴보면 왼쪽의 손은 부드럽게 힘이 빠져 손목이 여유롭게 꺽여 있다. 힘을 빼고 팔을 가볍게 들어 올린 느낌이 든다. 반면 오른쪽 손에는 상대의 손끝에 가닿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진다. 손목에도, 검지 끝에도 빳빳하게 힘이 들어가 있다. p17
ET의 유명한 한 장면이 생각나는 그림이기도 하다.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손끝과 상대 쪽으로 향하고자 하는 열의가 가득한 손끝! 어느 쪽이 인간이고, 어느 쪽이 신일까?
종교에 대하여
철학자 중에는 무신론자로 알려졌거나 무신론자라는 의혹을 받았던 이들이 많다. 소크라테스는 신을 믿지 않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기소당해 결국 독배를 마시고 죽는다. 홉스는 종교의 본질을 밝음이 아닌 어두움으로 설명한다. 고귀하고 긍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두려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공포' 같은 부정적인 말로 종교를 설명한 것이다. 게다가 종교와 미신의 차이에 대해 딱 두 단어 "publicly allowed(공공연히 인정된 것인가)"로 가뿐하게 답해버린다.
(중략)
볼테르는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신을 발명했을 것이라고 했다. p21~22
개인적으로는 소크라테스, 홉스, 볼테르의 생각에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다. 당시 종교는 한 사회가 가진 모든 도덕관념의 결합체이자 정치적으로 얽혀있어서 한 사회의 버팀목이기도 했다. 그래서 신에 대한 도전은 곧 한 사회에 도전장을 내민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정말 신을 믿었는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다. 신으로 상징되는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고, 그 시스템을 흔드는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여기에 더해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한 무신론 선언이 아니라, 수년 간 쌓아온 인간 이성과 도덕률에 대한 묵직한 도전이라고 본다.
메이슨 자(Mason Jar)
투명하게 속이 다 비치는 유리병을 좋아한다. '2. 투명한 유리병에서 인간의 품성을 찾다' 부분을 읽다가 혼자 피식 웃었다. '모 브랜드의 소스 병이 있었다....'로 시작되는 단락부터이다. 저자와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각종 포장재나 유리병 등에 붙은 테이프나 라벨을 떼어낼 때 쉽게 떼어지는 라벨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
나 또한 파스타 소스를 다 먹고 라벨을 떼어내다가 이 유리병의 진가를 발견했다. 메이슨 자(Mason Jar)의 디자인은 싫증이 나지 않는다. 입구가 커서 손을 넣어서 안까지 세척이 가능하며, 사이즈도 큰 편이어서 여러 용도로 사용이 된다. 가끔은 꽃병으로도 이용하기도 한다.
파울 클레
파울 클레는 좋아하는 화가 중 한 명이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20세기 초 독일에서 주로 활동했다. 초기 작품들은 흑백이나 단색으로 다소 기괴하고 환상적인 세기말적 풍자를 담은 소묘 작품이 많고, 아프리카 튀니지를 여행한 이후 색채에 대한 선명한 자각과 함께 작풍을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기사파, 뮌헨 신분리파, 청색 4인조, 바우하우스 등과 관계를 맺었으나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던 화가로 특정 미술 사조로 분류하기 어렵다. 급진적인 정치 성향을 가진 그는 나치가 정권을 잡자 유대인이 아니었음에도 유대인이라는 누명으로 바우하우스의 교수직을 박탈당했고, 100여 점 이상의 작품을 몰수 당했다.
다방면에 두루 조예가 깊었던 덕에 클레의 작품에는 음악과 문학, 철학이 고로 담겨 있다. 한 해에만 무려 500여 점의 작품을 쏟아냈으며, 평생 9,000점이 넘는 다작을 남긴 클레는 현대미술뿐만 아니라 20세기 지적 사회 전반에 크고 깊은 영향을 남겼다.
모자이크 문양의 패턴, 구상 미술과 추상 미술의 혼합 그리고 선명하고 다양한 색채를 구성적 장치로 사용한 화가로, 리듬이란 근원적인 중요한 요소였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적절한 색채를 적절한 곳에 배치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음 그림은 파울 클레의 <짐진 아이들>로 여러 표정과 행동이 보이는 그림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림이어서 재미있게 느껴지는 그림이다. 저자는 이 그림 안의 네모들이 그 캐리어와 신용카드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점이 산책을 떠나면 선이 되고, 선이 산책을 나가면 그림이 된다." 파울 클레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파울 클레
생각이 더 나은 나를 만든다
인간은 비어 있는 존재다. 어느 한 가지 모습으로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어떤 모양이든 될 수 있고, 만들 수 있고 또 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음먹기에 따라 좋은 방향으로도 안 좋은 방향으로도 만들어 갈 수 있는 존재이다. 말랑말랑한 '나'가 존재하면 우리의 삶은 한증 더 다양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금세기의 위대한 발견은 물리학이나 과학이 아니라 사람이 생각을 바꿀 때 그 사람 인생 전체가 바뀐다는 사실을 발견한 일"이라고 했다. 스스로 가둔 감옥 또는 지옥에서 스스로를 건져 올리는 방법은 단순하고 간단하다. '생각하는 일' 혹은 생각을 바꾸는 일'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천천히 생각하면서 읽은 책으로, 그림을 좋아하거나 생각하기를 좋아한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생각이 나를 구원하고
나를 더 좋은 '나'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때
나는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