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착한 미술사 - 그동안 몰랐던 서양미술사의 숨겨진 이야기 20가지
허나영 지음 / 타인의사유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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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의 인트로에 시대 배경, 사건 설명


그리스 신전 장식품을 대영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이유는 영국의 엘긴 경이 터키 주재 영국공사에 있을 때, 당시 아테네를 점령하고 있던 터키의 허가를 받아 헐값에 구입, 1816년 영국 정부에 팔았기 때문이다. ​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기둥만 남아있다. 그 안을 채웠던 많은 장식품들은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가야 볼 수가 있다. 신전의 지붕을 장식하던 박공과 프리즈에 새겨져 있던 역동적이고 사실적인 조각들은 대영박물관의 엘긴 마블(Elgin Mables) 관에 전시되어 있다. 


당시 터키는 무슨 생각으로 그리스 신전 장식품을 영국에 팔았는지가 궁금해진다. 영국 입장에서는 엘긴(Elgin) 경에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다. 덕분에 인류는 그리스 조각 수준을 지금도 감상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리스로서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들의 문화재를 영국까지 가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데아'에 가까운 완벽한 형태를 만들고 싶었던 고대인


이데아론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모든 사물에는 그 사물의 원형을 이루는 '실체'가 있고, 그것을 '이데아'가 있다고 보았다. 어떤 사물의 본질에 가장 합치되는 상태를 하며. 철학적 의미로 'The idea or The ideal '로 이상적인 세계를 뜻한다. 


이상적인 인간을 그리는 고대인들의 사상은 철학자 플라톤의 '이데아(IDEA)' 사상과 연결된다. 플라톤은 이 세상이 '이데아'라는 완벽한 세상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보았다. '이데아'는 플라톤 철학의 중심 개념으로 모든 존재의 인식의 근거가 되는 항구적이며 초월적 실제를 뜻한다.


이데아에 모든 것의 근원이 있는데, 인간은 원래 이를 알고 있었으나, 태어나는 순간 잊는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아름다움 역시 이데아에 존재하는 신적이고 이성적인 아름다움의 복제일 뿐이었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이데아에 가까운 완벽한 형태를 만들고자 했다.


신상은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녀야 했고, 이상적인 형태로 표현되어야만 했다. 이런 고대 그리스의 조각 전통은 로마로 이어졌다가, 훗날 이탈리아 르네상스 때 되살아났으며, 현대에는 고전적인 아름다움의 대명사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남성의 신체를 아름답게 생각하고 누드로 운동을 하기도 했고 이를 조각과 그림에도 남겼다. 고전기 남성 조각 중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은 <벱베데레의 아폴론>으로 현재 바티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당시 로마제국의 귀족들은 자신의 부와 문화적 소양을 과시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의 훌륭한 조각들을 복제하여 조상의 초상조각과 함께 저택과 정원에 전시했다. 



중세, 신을 위한 시대


어떤 시대보다 철저하게 유일신 하나님을 위한 기독교 예술이 빛나던 시기로, 모든 예술품은 종교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 왕과 귀족 역시 자신의 궁전이 아닌 교회를 위해 돈을 썼다. 이는 예술뿐 아니라 모든 생활 영역으로 이어졌는데, 이유는 언제든지 종교의 이름으로 심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교리를 위반하는 행위에는 가혹한 형벌이 뒤따랐고, 사회에서 소외당한 시대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맹이었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기독교 사상을 담은 조각과 회화를 만들었다. 따라서 중세의 조각과 회화는 기독교 교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교육적 수단이었다. 


초기 중세에서는 고대의 전통이 끊어지고, 다소 투박하고 단순한 성경의 이야기와 성직자들의 강령이 명확히 드러나는 회화로 조각이 만들어졌고, 이를 로마네스크 양식, 즉 로마적인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인상 깊었던 작품은 천국과 지옥이 어우러진 <쾌락의 동산>(1490~1510년 경, 패널에 유채)으로,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이며,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된 그림이다. 전형적인 제단화 형식으로 세폭화로 되어 있는데, 기괴한 형상들로 가득 차 있고, 어떠한 합리적인 해석도 되지 않는다. 종교적인 느낌보다는 설명 불가능한 초현실적인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는 평이다.


이 그림은 덮으면 투명한 구 속의 지구 그림이 보인다. 화려한 안쪽 그림과 다르게 바깥쪽 패널에는 푸른색이 도는 회색조로 표현되어 있다. 당시 중세인들이 알고 있던 평평한 땅과 구 형태의 하늘이다. 써넣은 글귀는 보스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창조'에도 관심을 가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르네상스, 천재들의 각축전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미켈란 젤로(1475~1564), 라파엘로(1483~1520) 그리고 도나텔로(1386~1466) 등 우리가 흔히 아는 작가가 많이 등장한 시대이다. 또 르네상스 문화가 꽃 폈던 이탈리아 피렌체나 베네치아의 모습은 장소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보인다. 아름다운 예술품이 가득한 15세기 전후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서양미술사의 큰 분기점이 되었다.


이탈리아반도의 몇몇 공화국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그 파급력은 전 유럽에 영향을 줄 정도 컸다. 르네상스의 어원이 '다시 Re 태어난다 maissance'는 부활의 뜻인 것처럼, 예술가들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회화와 조각을 되살리면서 대작들을 만들어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과거에는 없었던 중요한 사회적 기반이 등장했다. 이탈리아의 부유한 사업가들이었는데, 피렌체 메디치가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업가들이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동방과의 무역으로 부를 누리고 있었는데, 메디치가는 그런 상인들에게 필요한 자금을 담당하던 은행가였다. 


이탈리아 상업이 발달할수록 메디치가의 경제력은 높아졌고, 피렌체를 중심으로 정치적 영향력도 강해졌다. 사업가들은 앞다투어 훌륭한 예술작품을 만들고자 했는데, 이는 예술작품을 통해서 자신들이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 였고, 이는 르네상스의 결과물이 되었다.


흑사병 창궐로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면서 천국의 열쇠 교회 후원권한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교회후원권한을 가지면 성당을 후원하는 대가로 조상의 영묘를 만들거나 기도실을 소유할 수 있다. 의무도 있었는데, 담당하는 사제에게 봉급을 제불하고 성당 내부의 기도실을 그림으로 장식해야 했다. 


메디치가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쥐었다. 메디치가는 코시모 데 메디치의 아들 로렌초가 둘째 아들을 교황 레오 10세, 조카를 교황 클레멘스 7세로 만들어 귀족이 되었다. 이 시기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석고상 '줄리앙'이 탄생한다. 미켈란젤로(1475~1564)가 만든 <줄리아노 데 메디치>(1520~1534년 경)로 이탈리아 피렌체 메디치 예배당 소장 작품이다. 줄리아노는 로렌츠의 아들이자 레오 10세의 동생인데 실제 줄리아노와 닮지 않았다고 한다. 


절대왕정의 미술, 바로크


왕가의 입맛에 맞는 드라마틱 한 회화, 조각, 건축, 음악 등의 문화로, 이는 르네상스의 절제되고 균형 있는 이성적인 예술과 대조되었기 때문에 이를 빗대어 포르투갈어 '찌르러진 진주'에서 이름을 따와 '바로크'로 불리게 되었다. 권력자의 취향에 잘 부합했던 작가는 루벤스(1577~1640)로 플랑드르 출신이지만, 극적인 사건이 눈앞에 벌어지는 듯한 그림으로 유럽 왕실의 사랑을 받았다.



로코코


대표적인 특징은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로, 바로크에 비해 더 감각적이다. 프랑스어 '조약돌'에서 나온 말로 바로크보다는 더 섬세하고 장식적인 예술을 칭하는 말이다. 바로크와 로코코 모두 가진 자를 위한 문화였고, 기득권자들의 것이었다. 


이러한 명칭들은 훗날 이전 시대의 스타일을 지칭하기 위해 폄하하는 논조로 만들어진 말이다. 당시 절대왕정을 이룬 왕가의 취향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가진 자들의 교만과 가식에 일침을 가하거나 민중의 취향에 맞는 미술이 유행하기도 했다.


계몽주의


한자어 그대로 무지와 몽매를 일깨우려는 사상이다, 영어와 프랑스어에서는 '빛'을 강조한다.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듯이 합리적 이성이라는 빛을 비춰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이성이라는 횃불을 든 지도자가 앞장서서 사람들을 가르치고자 했다. 계몽주의는 사상가들을 통해 글로 전달되었고, 이러한 생각이 점자 사회 저변에 넓어지면서 문학과 연극 그리고 시각예술로도 표현되었다.



모순된 사회를 그린 고야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가 처형되었고 프랑스는 왕이 없는 나라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에 있어서 큰 사건이었다. 당연히 받아들인 신분제를 악으로 규정하고 폐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 변방 국가인 스테인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고야는 80점의 판화를 모은 판화집 「변덕들」(1799)을 발간하였는데, 부패한 성직자, 방탕한 귀족들, 마녀, 악마 등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미신, 맹신의 문제, 어리석음 등에 대한 풍자적 내용을 담고 있다. 아래의 사진은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이다. 


고야 역시 계몽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잠자고 있는 남성 뒤로 올빼미와 박쥐가 날아들어 곧 닫칠 사건을 예시하는 듯하다. 그림의 글귀는 다음과 같다. 이성을 놓치지 말고 정신 차리고 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성을 가진 인간이 현실을 외면한 채 잠들어 버리면, 

악몽과도 같은 괴물들이 나와 

세상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밀레이 <오필리아>


#키키키린 은 셰익스피어의 「햄릿」 제4막 오필리아의 죽음을 시각화한 밀레이(1829~1896)의 작품을 모방한 광고 사진을 2016년 1월에 찍었다. 이 광고의 카피는 '죽을 때 만이라도 마음대로 하게 해줘'였고,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광고였다. 사진과 밀레이의 그림은 상당히 흡사하다. 이로부터 2년 뒤  2018년 9월 15일 향년 75세로 영면했다. 


밀레이(1829~1896)의 작품은 주인공만큼 주변의 식물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햄릿」에 묘사하고 있는 '시냇가를 비스듬히 가로지른 채 자라고 있는 버드나무 한 그루', '까마귀 꽃, 쐐기풀, 데이지'와 함께, 밀레이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여러 꽃을 함께 넣었다. 버드나무는 '버림받은 사랑', 쐐기풀은 '고통', 데이지는 '순수'를 상징한다. 


더하여 '허무한 사랑'을 뜻하는 팬지, '충절'의 제비꽃, '나를 잊지 말라'라는 메시지를 나타내는 수선화도 표현되어 있다. 이렇듯 꽃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이자 사랑하는 연인인 햄릿에 대한 미움과 사랑으로 인해, 결국은 죽음을 선택해버린 가련한 오필리아의 이야기를 보충한다. 



경험과 연결되었던 시간


이 책을 덮고 나니  세계를 여행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걸었던 거리가 기억났고, 그동안 미술관이나 책, 영상에서 보았던 그림들이 떠올랐다. 과거의 경험들과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이 책의 특징은 주류가 아닌 비주류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미술사 이야기가 실려있다. 덕분에 그 시대의 주류 사건과 더불어 그동안 몰랐던 미술사에 얽힌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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