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방과 창조 - 서울대 김세직 교수의 새로운 한국 경제학 강의
김세직 지음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1년 7월
평점 :
경제학,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소비량을 늘리면 늘릴수록 새로 추가적으로 소비된 재화나 서비스로부터 얻어지는 추가적인 효용(경제학, 한계효용)은 계속 감소한다는 법칙을 말한다. 계속되면 그 재화의 소비 증가를 통해서는 더 이상 만족도를 증가시킬 수 없는 점에 다다를 수 있고, 이 경우를 소비의 물림점(satiation point)이라고 부른다.
영국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인간의 행복을 측정하는 단위로 처음 도입한 용어이다. 경제학자들이 '측정될 수 있는 행복'인 효용을 현대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발전시켜나감에 다라 경제학은 인간의 행복에 관한 과학으로 발전되어 왔다. 경제학이 행복을 증대시키기 위한 구체적 방법, 즉 제도나 정책을 연구하게 됨에 따라 경제학은 유토피아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 되었다.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느끼는 소비로부터 행복, 즉 효용은 소비수준이 높을수록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소비는 소득이 높아야 높아지기 때문에 소득수준이 사람들의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해왔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소득의 증가 또한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제학 이론들이 등장했다.
한국경제 장기성장률 '5년 1% 하락의 법칙'
실용적으로 재정의된 현대적인 의미에서 유토피아의 핵심은 그 나라에 사는 국민들에게 소득의 빠른 증가를 제공할 수 있느냐에 있다. 달리 말하면, 소득이 빨리 증가하는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느냐에 있다. 국가가 국민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할 실력이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국민소득 증대 능력을 보면 된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측정하기 위해 '경제성장률'을 이용한다.
경제성장률은 한 나라 전체의 소득 혹은 생산을 나타내는 GDP가 얼마나 빨리 증가하는지를 나타내는데, 연간 단위로 측정한다. 경제성장률이 높을수록 1인당 GDP가 빨리 늘어난다. 유토피아에 가까운 나라를 만들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은 '경제성장능력'이다.
연간 단위로 측정하는 경제성장률은 한 나라 경제의 진짜 경제성장능력을 정확히 나타내지 않는다. 그래서 단기적 변동요인을 제거한 성장률을 구한 것이 '장기성장률'인데, 한 경제에 좋은 일자리, 즉 소득이 빠르게 증가하는 일자리가 얼마나 많을지를 결정한다.
제로성장 또는 마이너스 성장
그런데 한국의 장기성장률은 1990년대초 이후 5년마다 1% 포인트씩 규칙적으로 하락해왔다. '5년 1% 하락의 법칙'은 좋은 일자리 고갈 현상을 만들었다. 어느 역대 정부도 이를 저지하거나 극복할 경제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동안 난무했던 경제성장 선거공약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 결과 많은 청년들이 정규직 일자리를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
한국경제는 이제 제로성장 또는 마이너스 성장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만약 장기성장률 0%대의 제로성장시대 진입은 좋은 일자리 창출 능력의 급격한 하락을 의미한다. 한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어 일자리 부족과 청년실업 증가 등 많은 경제적 어려움이 전임 정부에서부터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한국경제는 다른 나라와 달리 제조업 근로자의 비중감소가 노동생산성이 낮은 음식업 및 도소매업 근로자의 비중 증가를 수반해왔다. 이미 지난 30년간 많은 근로자들이 소득이 낮은 일자리로 지속적으로 이동해왔다.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면서 어쩔 수 없이 음식 및 도소매업 부문으로 이동한 것이다.
저자는 30년간 지속되어온 '5년 1% 하락의 법칙'을 멈추게 할 사람은 국민, 이 책을 읽는 독자라고 말한다. 30년 동안 이를 방치한 정부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법칙이 가져다줄 심대한 고통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같이 방법을 찾자고 한다.
한국은 인적자원이 경제성장의 주 엔진
오랫동안 경제학자들은 경제성장의 핵심은 기계 증가 즉 자본 축적에 있다고 생각했다. 1956년 MIT 대학 로버트 솔로우 교수가 「경제성장이론에의 기여」을 발표했다. 자본 축적에만으로는 지속적 경제성장이 불가능하다고 밝힌 논문은 새로운 성장의 원동력으로 '기술 진보'를 제시했다. '솔로우 성장이론'이라고 불리며, 이 논문은 '신고전파 성장이론'이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한국의 그동안의 지속적 경제성장은 자본축적이나 기술진보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1980년대 시카고대 노버트 루카스 교수는 경이적인 한국경제성장에 주목했고, '내생적 성장이론'이라는 새로운 경제성장이론이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걸쳐 탄생한다.
루카스 교수와 새로운 성장이론가들이 밝힌 한국 고도성장의 비밀은 '인적자본'이었다. '인적자본(human capital)'이란 근로자나 기업가에 체화된 지식이나 기술을 의미한다. 루카스 교수는 사람(근로자나 기업가)의 머릿속에 내재된 지식이나 기술을 인적자본이라고 부르고, 이러한 인적자본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임을 이론적으로 증명했다.
인적자본의 증가는 자본의 한계생산체감을 막아주기 때문에 자본도 같이 빠르게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즉 인적자본 축적은 물적자본의 동시 축적을 통해 경제성장을 견인한다. 루카스 교수의 '내생적 성장이론'은 어떤 나라든 '정책을 통해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라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이론으로, 정부가 인적자본 수익율을 증가시키는 정부정책이 성장을 촉진함을 이론적으로 밝혔다.
한국의 성장촉진정책의 핵심은 인적자본 축적 인센티브를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인데, 고도성장기의 한국은 강력한 인적자본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조세/보조금정책을 취했음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한마디로 낮은 인적자본 세금과 높은 인적자본 보조금이 한국 성장황금시대의 감춰진 비법이었다.
현대 경제성장이론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1960년대의 고도성장은 군사정부 이전에 이루어진 교육개혁과 인적자본 축적의 결과라고 보며, 시간집약형 교육시스템을 만들었으며, 보편교육으로 누구나 용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개방되어 있었다.
위기의 한국 자본주의를 구하려면
1990년대 이후 지속적 하락 현상은 경제성장이 물적자본 축적에만 주로 의존하는 경우 벌어지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인적자본 축적에 투자하는 돈은 세계 1위이나 결과는 허무하다. 주입식으로 '창의성'을 기르겠다는 발상으로 창조형 인적자본이 아닌 모방형 인적자본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내생적 성장이론을 이끈 루카스 교수의 제자이자 201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로머 뉴욕대 교수는 그동안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재화가 출현하여 생산되는 것을 기술진보로 정의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능력, 즉 창조형 인적자본을 축적한 사람이 많아야 기술과 성장이 빨라진다. 결국은 창조형 인재양성이 핵심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를 만들기 위한 국가적 혁신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정부에 문제를 강력히 제기하고 해결책을 요구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재차 해결을 하고자 부딪힐 때 가능성이 생긴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그동안에 정부가 실시한 수많은 경제정책은 도대체 누구의 말을 듣고 실시한 것일까?라는 것이다. 경제학자가 이렇게 말을 할 정도면 그동안 정부는 경제학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동안 실시된 여러 경제정책들을 보면서 도대체 경제학자들은 뭘 하고 있나?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쓸모없는 지식과 그 지식을 검증하는 대학입시를 위해 아이들은 여전히 코로나19 시국에도 학원을 빠질 수 없다. 교육현장에서 보는 세금 낭비를 보다 못해 여러 해 건의해도 바뀌지 않고 있다.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교육시스템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저자는 창조형 자본주의 체제 구축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끝까지 강조한다. 국민이 똑똑해도 정책을 결정하는 정부가 무능하면 변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한국은 청년들이 떠나는 나라가 된지 꽤 되었다.
다음은 에필로그 마지막에 적은 저자의 질문이다.
과연 독자들은, 대한민국은, 어떠한 선택을 한 것인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