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자본주의자 -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고 완전한 삶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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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베리 따기

블랙베리를 따는 일의 의미는 그 열매가 몸에 좋고 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딴 블랙베리의 양이 얼마나 초라한지 몸소 경험하는 데 있다. 블랙베리를 따고 있으면 주변 풀이 스스로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극도로 긴장된다. 날아다니는 벌레, 기어 다니는 벌레, 뱀, 토끼, 별게 다 튀어나온다. 그럴 때마다 심장이 쿵 떨어져 괴성을 지르며 블랙베리 바구니를 집어던지고 달아나곤 했다. 몇 번 그렇게 흙 묻은 블랙베리를 주워 모은 다음부터는 이제는 소리를 지르고 달아나더라도 바구니는 꼭 끌어안는다(P31).

무언가를 하게 되는 삶

아무것도 안 하다 보면 무언가 하게 된다. 그냥 누워 있으려고 했는데 빵도 굽고 콩만 넣은 된장도 만들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애들이랑 시시한 장난도 치고 농담을 하고, 식물 공부도 한다. 봄에는 땅에 나가 쐐기풀도 따고, 블랙베리의 세순도 따 먹으며 너무나도 풀답고 새순 다운 그 맛에 감탄한다.

여름에는 대충 심어둔 호박이나 깻잎, 방울토마토도 먹고, 가을이 되면 라벤더, 로즈메리 같은 허브를 따서 말리거나 얼려둔다. 대신 계획도 없고, 목적도 없고, 잘하려는 생각은 더더욱 없다. 하다가 싫증 나면 대번에 그만둔다. 그러니 어떤 날은 침대에 꼼짝 않고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기도 한다. 대신 깨어있는 시간에는 멀쩡한 정신으로 산다.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의지를 다졌던 예정보다 더 하는 일이 많아졌다(P57).

이 세상에 선이 늘어나는 이유

저자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20세기 영국 문학의 최고의 소설로 선정한 <미들 마치>를 소개하면서 인용을 한다. 본명 메리 앤 에반스, 필명 조지 앨리엇이 쓴 책으로, 주인공 도로시아는 거대한 포기를 하고 시시한 선택을 한다. 남들이 보기에 그렇다는 표현을 한 것으로 보인다. 900쪽에 걸쳐 전개된 장대한 줄거리의 결말이어서 허탈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수많은 비평가들도 결말에 실망을 표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 조지 엘리엇은 이 허탈함이야말로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진실된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이 세상에 선이 늘어나는 것은 역사에 남지 않을 사소한 많은 행동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더 나쁜 세상에서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은 이유의 절반쯤은, 드러나지 않는 삶을 충실하게 살다가 지금은 아무도 찾이 않는 무덤에서 잠든 이들 덕분이다.

미들 마치, 조지 엘리엇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와 불교 이론

마음의 평화, 삶의 의미, 인생의 행복... 이런 걸 얻는 데에 방해가 되는 건 외부 환경의 열악함이 아니라 나 자신의 욕망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사고 체계가 에피쿠로스의 괘락주의와 불교 이론이다. '원하는 무언가를 얻는데 실패하면 불행하다. 애초에 원하는 게 없으면 실패하고 말고 할 게 없다.'는 것이다.

개인이 지속적으로 평화로우려면 욕망을 줄여야 한다.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하면 실망하고 차책하고 남들에게 챙피함을 느끼게 된다. 내가 한 행동에 대해 내가 실망하고 내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온전히 나로 인해 생기는 감정인데, 이성과 감정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으면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남에게 기대는 용기

인간은 혼자일 때 타인의 문제는커녕 자신의 문제도 시원하게 해결할 만한 능력이 없다. 그래서 남에게 자연히 기대며 살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나 혼자 힘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기대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그렇게 불완전한 남을 받아들이고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면서 남에게 기대는 용기를 얻게 된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나 자신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모든 것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온다는 뜻이다. 내가 나 스스로를 평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지옥'이라고 사르트르는 설명한다. 타인이 나를 괴롭혀서가 아리나 내가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다.

소로는 인간을 거부한 것이 아니다. 자연에 대한 사랑은 그에게 중요했던 삶의 방식이었을 뿐이다. 나 자신을 잃는다는 것도 결국 내가 있는 관계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완벽한 존재가 되려고 하지 않고, 나의 모자란 점을 채워주는 사람들을 발견하며 사는 삶이다. 소로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핵심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우리는 길을 잃고 나서야, 즉 이 세상을 포기하고 나면, 바로 그때부터 우리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있는 그 자리를 깨닫게 되면 드디어 우리가 맺고 있는 무한한 관계가 보이는 것이다.

소로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불교 최초의 경전 <숫타니파타>

스피노자, 철학과 삶의 통합

스피노자는 1600년대 네덜란드에 정착한 유태계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고, 천재로 인정받으면서 유태교 종교 지도자 랍비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집안이 기울면서 상인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자기 생각을 말하기 시작한 스피노자는 책 한 권을 출판하기도 전에 유태교로부터 출교를 당한다.

그의 죄는 친구 두어 명에게 종교나 성경은 신이 직접 만들고 쓴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만들어 냈다고 이야기 한 것이다. 출교 선고가 내려졌더라도 반성의 뜻을 표하면 종결되었을 텐데 그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명 대학 초빙도 거절하고, 부호가 남기 막대한 재산도 거절했다고 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작고 초라한 방에서 매일 광학용 렌즈를 깎으면서 외롭게 독신으로 살다 40대 초반에 폐병으로 죽는다. 생전에 출판한 단 한 권의 책은 전 유럽에서 이단으로 비난받아 실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의 유작 <에티카>는 100년이 지나서야 괴테에 의해 그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스피노자의 철학의 핵심 개념은 '실체'와 '양태'이다. '실체'는 변하지 않는 것이고, '양태'는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자연이나 거대 우주처럼 영속하는 하나의 원리로서 신은 실체다. 그리고 인간은 영속하지 않으니 양태다. 인간은 물질과 정신의 조화 가운데서 신, 혹은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내면의 이성을 써야 한다.

그것이 자유다. 신에 대한 사랑은 가능하지만, 신에 복종할 수 없는 까닭이라고 했다. 신에 대한 사랑은 자연에 대한 탐구였다. 스피노자는 개인의 마음 안에 있는 이성의 힘을 믿었다. 따라서 철학 만으로 우리가 자유를 누릴 수 없다. 매 순간 내 마음의 힘으로 나의 자유를 선택하고 쟁취해야 한다.

시골에서 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

어떤 사람의 인생이 성공인지 실패인지, 후회할 만한 인생인지 아닌지 누구도 정의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지만 알 수 없는 존재이다. 타인은 그래서 소중하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나를 채워주는지, 어떤 사람과 함께 하면 행복한지, 나를 아는 정도만큼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하는 것들에 민감해지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어디에서 살든 나에 대한 탐구는 할 수 있다. 꼭 숲속에 가지 않아도 된다.

단순한 삶이든 복잡한 삶이든 선택자는 나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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