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혼란한 시기에 대륙에서 피난 온 사람들의 안식처이자 혁명 지사들의 은거지가 되었고, 베트남 혁명의 아버지 호찌민도 1930년대 홍콩을 기반으로 활동했다. 홍콩은 20세기 아시아 인민의 피난처이자 공산당을 피해 고향을 떠난 실향민의 도시이다
작가가 우산혁명 이전에 그들을 만나서 "넌 홍콩인이야, 홍콩 차이니스야 아니면 차이니스야?" 라고 물으면 홍콩인은 난감해 했다고 한다. 1997년 7월 1일 중국으로 반환된 뒤, 많은 홍콩 사람들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미디어의 영향을 받아 '차이니스'로 인식하는 홍콩인이 늘어났다고 한다. 그럼에도 2019년 조사에서 홍콩의 젊은 세대 중 자신의 정체성을 차이니스'라고 답한 경우는 3퍼센트에 불과하다.
중국의 전통을 이어온 홍콩
중화문명의 문화유산이 불타고 버려지던 문화혁명기에 뜻있는 몇 사람이 서적과 유물을 홍콩으로 옮겼다. 그리하여 공자와 관우와 바다의 여신 천후 그리고 풍수지리 사상이 홍콩에 뿌리를 내렸다. 중국의 경극이 노동극으로 전락하자 홍콩은 전승했고, 춘절, 단오, 청명절, 칠석, 중추절, 중양절 같은 중화 5천 년의 전통이 홍콩에서 명맥을 이어왔다.
1997년 7월 1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됐다 중국은 2047년 7월 1일까지 홍콩인이 홍콩을 통치하는 항인치항, 영국이 홍콩에 만들어 놓은 체제를 유지하는 일국양제, 중국이 홍콩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고도자치, 이상의 세 원칙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홍콩을 떠난 이들도, 남은 이들도 이 약속을 믿지 않았다.
1989년 4월 베이징 천안문광장 학살 이듬해 1990년에만 약 6만 2천 명이 이민을 떠났다. 당시 인구의 1%가 1년 만에 홍콩을 떠났다. 1994년까지 해마다 비슷한 사람의 수가 홍콩을 탈출했고, 그 추세는 중국에 반환 이후 잠잠해졌다. 이민 열풍은 2014년 우산혁명의 실패와 2020년 국가보안법 통과 이후에 다시 급증하는 추세다. 돈 있는 사람은 미국과 캐나다로, 호주로, 없는 사람은 가까운 타이완으로 떠났다. 홍콩에 남은 사람도 좋아서 남은 것은 아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일뿐이다.
사라지는 사람들
홍콩은 중국에서 구할 수 없는 책들을 구할 수 있다. 중국은 사소한 이유로 불온서적 딱지를 붙여 유통을 전면 금지한다. 그 탓에 중국 권력의 내부에 관한 책들은 홍콩에서 유통되고, 구매자는 중국인이다. 홍콩 MTR 코즈웨이베이 역의 '코즈웨이베이서점'은 1994년 개업했다. 출판사도 겸하는 이 서점은 중국이 싫어할 만한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회사이다.
2015년 10월부터 이 서점을 둘러싸고 연쇄 실종 사건이 발생한다.<시진핑의 여섯 여인>이라는 책을 출판하다 먼저 사장 루이보가 실종되고, 사흘 후에 대주주 꽈이만호가 실종되고 서점 창립자 람윙케이가, 서점 직원 찡지핑이, 마지막으로 주주 레이보가 사라졌다. 이들은 출입국 기록도 없이 별안간 중국 CCTV에 등장해서 납치당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중국의 사상 교육에 동화된 사람처럼 행세하다 홍콩에 돌아온 코즈웨이베이 서점 창립자 람윙케이는 용기를 내어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에 납치당했다는 것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