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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평점 :
연년세세
소설/시/희곡, 황정은
순자 씨에게
첫 장을 넘기면 맨 첫 장에 '순자 씨에게'라고 쓰여있다. 황정은은 '작가의 말'에서 "사는 동안 순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자주 만났고, "순자가 왜 이렇게 많을까"라는 질문에서 이 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소설 네 편은 '1946년생 순자 씨' 이순일과 그의 두 딸 한영진 한세진의 이야기가 큰 줄기를 이루며 이어진다. 어머니와 자매의 지난 삶과 현재의 일상을 통해 지금, 여기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영화 '미나리'에도 '순자'가 등장한다. 1980년대 한인 가족의 미국 정착 분투기를 그린 영화로, '순자'는 딸 모니카 가족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한국에서 건너간 친정엄마의 이름이다. 장녀 한영진과 그녀의 가족을 돌보기 위해 위아래 층에서 함께 살면서 하루 종일 동동거리며 사는 이순일이자 순자인 그녀의 삶과 묘하게 겹쳐진다.
저자 황정은은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마더」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파씨의 입문』 『아무도 아닌』, 장편소설 『百의 그림자』 『야만적인 앨리스씨』 『계속해보겠습니다』, 연작소설 『디디의 우산』 『연년세세』 등을 썼다. 만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대산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젊은작가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네 가지 이야기
황정은 연작소설. 이 소설은 다음 네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파묘>
이순일이 차녀 한세진과 함께 철원군의 외조부의 묘를 없애는 이야기
<하고 싶은 말>
장녀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온 백화점 판매원 한영진의 이야기
<무명>
어릴 적 '순자'라고 불리던 이순일의 피란과 고난, 친구 순자와 얽힌 옛 이야기
<다가오는 것들>.
시나리오 작가인 한세진이 북페스티벌 참가를 위해 뉴욕을 방문하며 이순일의 이모 '윤부경'의 아들 노먼을 만나는 이야기
이순일이자 순자이기도 한 그녀의 가족
이순일은 변두리의 5층 단독빌라에서 남편 한중언, 차녀 한세인과 함께 산다. 빌라는 장녀 한영진의 시댁 건물이고, 한영진의 집안일을 돕기 위해 한 건물에서 살게 되었다. 남편은 아파트 경비로 일하고 있고, 장녀 한영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두 동생의 학비와 집안 대소사를 챙기느라 바쁘게 살았고 지금도 바쁘게 지낸다. 차녀 한세진은 조금 겉돌긴 해도 시나리오 작가 일을 하면서 가족의 대소사를 함께한다. 막내 한만수는 대학은 나왔으나 취업이 여의치 않아 지금은 뉴질랜드에서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꺼먼 것
'옛날에 고생 안 한 노인 있나. 요즘은 먹으면서나 고생하지. 옛날엔 먹지도 못하고 고생했다. 한세진은 흙이 몇 삽 더 구덩이 밖으로 나온 뒤 색이 다른 흙덩어리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소나무 아래에서 일어났다. 퍽퍽하게 부서지는 붉은 흙이 아니고 노랗고 거무스름하게 덩어리진 흙이었다. 검은 나뭇조각처럼 보이는 것들이 그 속에 섞여 있었다. 구덩이 밖에서 교대를 기다리던 파묘꾼과 김근일이 흙을 뒤져 뼈를 골라냈다. 이순일이 그 주변을 서성이다가 그들이 뒤지고 남긴 흙에 남긴 뼈가 없는지 다시 뒤졌다. 꺼먼 건 다 가져가. 김근일이 말했다. 아무튼 꺼먼 건 다 가져가.' (파묘 p31)
파묘는 삶과 죽음이 만나는 순간으로, 주검이라는 표현 대신 '꺼먼 것'은 흙이 아니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한영진이 품고 있는 오래된 질문
"왜 나를 당신의 밥상 앞에 붙들어 두었는가?" 한영진이 엄마 이순일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보지 못하고 세월이 흘렀다. 그녀는 밥상을 차려놓고 매일 밤 자신을 기다리는 엄마 이순일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없었다. 자신의 뒷바라지로 대학을 나와 자유롭게 살고 있는 동생 한세진과 한만수의 삶이 부러웠을 한영진의 질문이다.
삶은 계속된다
인물들과 스토리를 연결하기 위해 에너지를 써야한다. 그래서 흐름이 중간중간 끊긴다. 그 외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가 두 군데에서 언급되었는데 마음이 불편했다. 그때 우리가 꾼 끔은 무엇이었나? 그때와 별반 다름없이 지금도 정의를 말하는 사람은 차고 넘치는데 현실은 다르게 인식된다. 무엇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지 궁금하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지금 안녕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