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살리나의 음탕한 생애의 마지막 장면은 틀림없이 로마의 느낌에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이고, 타키투스의 가장 생생한 묘사를 통해 영원히 빛나고 있다.
메살리나는 실리우스에게 황궁과 그 내부를 물려주었고, 궁전의 정원에서 바쿠스의 흥청망청한 광신교 집단에 모든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저녁에 되기도 전에 허리케인이 오스티아에서 왔고, 환호하는 사람들은 겁에 질려 황급히 흩어졌으며, 클라우디우스가 자신의 치욕을 복수하기 위해 서둘러 로마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 정원에 전해졌다.
p.106_발레리아 메살리나
최소한 그녀는 위대한 황제의 대단히 훌륭하고 도움을 준 동반자이자, 로마 귀부인들이 볼 대 기꺼이 따를 수도 있는 여인의 유형이었다.
죽은 그녀의 시신이 궁전에서 화장용 장작더미로 옮겨지는 날에, 사람들은 그녀가 사실 돌아오기를 바랐다고 거듭 말할 수 있었다. 광대한 제국의 더 온당하고 화창한 삶은 그녀가 어느 정도 구축하는 데 기여한 유적이다.
p.205_플로티나
그녀의 가장 큰 잘못은 그녀 자신을 따라서 살았다는 점이다.
결혼 생활 초창기에 경솔하고, 아마 음란하기까지 했던 그녀는 황후가 되었을 때 냉정하게 안정을 찾은 듯하지만, 우리는 정국 운영에 그녀가 영향력을 발휘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그녀가 오직 남편을 뒤를 이을 건강한 아이들을 양육만 했다면, 그녀는 흔들리는 제국을 지탱하는 막중한 임무에 훌륭히 기여했을 것이다.
대신, 그녀는 제국에 살아남은 두 아이인 루킬라와 콤모두스를 바쳤고, 제국은 새로운 타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p.248_스토아학파의 아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