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에겐 나름 이유가 있었을지 몰라도 다른 엄마들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물을 엎지른 자의 의도가 선의인지 악의인지 파악하고 두 번째 기회를 주는 일.
그런 수고는 내 자식에게만 가능한 것이었다.
p.63
선의였을 수도 있지만 과연. 보통의 사람들은 자기에게 이득이 되지 않은 일엔 별 관심이 없기에 누군가의 이유 없는 선의는 악의를 품은 경우가 많다.
최악은 따로 있다. 바로 선희와 악의가 구분되지 않는 부류다. 그런 인간들에게 결리면 인생이 복잡해진다.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지 않아도 상대의 존재를 뿌리째 흔드는 인간들.
그들은 악의를 선의로 가장하는 게 아니라 선의와 악의를 동시에 품고 있다. 그래서 매혹되는 면이 있기도 했다.
p.69
어디선가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새소리도 아니고, 말도 아니고, 노래도 아니면서 그 전부인 것 같기도 한 기묘한 소리.
그 소리를 듣자마자 또다시 잠이 쏟아졌다. 이 집에 처음 왔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p.106
영주는 놀라 주저앉았다. 꿈이 아니었다. 아니, 꿈보다 더 끔찍했다.
사진 속 선호 얼굴이 날카로운 칼로 난도질이 되어 있었다. 의심은 비로서 진실이 되었다.
내 엄마가 내 아들을 죽이려고 한다.
p.221
엄마의 머리가 닿은 무릎 위에서 익숙한 온기가 느껴졌다. 언젠가 느껴 본 적이 있었다.
어릴 때 나무 아래에서 낮잠을 자던 굼. 내내 혼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영주는 엄마의 무릎을 베고 있었다. 그때 엄마의 무릎은 봄볕처럼 포근했고 딸의 머리칼을 살살 쓰다듬는 손길은 한없이 따뜻했다.
꿈이 아니라 분명한 기억이었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
p.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