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얼굴이 예쁘잖아."
재이가 콧등에 삼지창 모양의 주름을 만들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한마디에 소영은 갈피를 잡지 못해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던 마음이 멈췄다.
"캡틴은 아직 꼬맹이네."
재이가 손짓으로 키높이의자를 부탁했다. 소영이 의자를 놓고 재이를 번쩍 들어 앉혔다. 몸을 떼려는 순간, 작은 손이 그녀의 등허리를 꼭 껴안았다.
"미안해, 또 그렇게 됐어,"
p.76
"그런 말 믿지 마. 그리고 누구에게도 하면 안 돼. 우린 누구 때문이 아니라, 자기 선택이 옳다는 걸 믿고 버티는 거니까."
p.77~78
"재이의 생과 사는 마치 이음새가 있는 동그라미였다. 이음새 구간을 지날 때 죽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했다.
그런가 하면 소영의 인생은 재이라는 동그라미를 훌라후프처럼 허리에 두른 직선이었다.
세상이 박살 났다 재조립되는 동안 그녀 홀로 머나먼 어딘가를 향해 뚜벅뚜벅 늙어갔다."
p.81
"쌤이 나 잊은 줄 알았어."
"미안해, 캡틴. 내가 더 일찍 찾았어야 했어. 이 세상의 주인은 송재이니까 어디서든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착각했어."
소영은 몰랐다. 이야기 속 모든 주인공은 결핍과 역경이 있다는 걸. 그걸 버티고 돌파하는 게 성장이란 걸.
왜 그랬을까. 어쩜 그리 안일했을까, 자책했다.
p.111
"나도 잘은 모르지만······ 시절마다 인연은 달라진대. 그래도 가족은 인연이 다했다고 갈라서진 않아. 적어도 책임감이 있는 사람들은 버텨내지.
캡틴네 부모님은 그런 사람들이야. 지금은 인연이 멀어졌지만 살다 보면 다시 붙는 날이 올 거야. 가족이란 게 원래 그래."
p.142
왜였을까. 그냥 농담으로 받아들이면 싱거울 법한 말이었는데 재이는 콧물부터 쏟아지고 눈물이 뒤따랐다.
세상에는 우리 둘밖에 없다는 걸 왜 이제야 깨닫게 된 건지 몰랐다.
p.143
소녀에서 어른의 세계로 반 발짝 더 넘어간 재이는 알에서 부화한 잠자리처럼 납작하게 붙어 한 장인 줄 알았던 날개를 둘로 펼쳤다.
그러고는 어떻게 자신이 하늘을 날 수 있게 된 건지 몰라 당황하는 중이었다.
"정, 소 ,영."
재이는 노트를 덮고 정소영, 이라 발음해보았다. 입술이 한번도 닿지 않고 혀로만 발음할 수 있는 세 음절이었다.
p.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