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과는 다르다. 조금 다르고 조금 더 음습한 무언가가 있었다.
서윤병원, 서씨 일가에게서 느껴지는 그 그늘, 그 어둡고 끈적거리는 무언가가 가슴속에서 불쑥 고개를 쳐드는 느낌.
처음 보았을 때에도 제 어미처럼 가냘픈 몸을 하고는 의사표시는 커녕 다른 사람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던 어린아이였는데.
그 표정이, 그 모습이, 몸짓 하나하나가 이상할 정도로 가학심을 불러일으켰다.
p.62
서애희는 늘 그런 사람이었다. 자기 편할 대로 떠들어대고 자시 필요할 때만 사람을 장기 말처럼 부리려 들면서 서윤병원을 손에 넣는 것 말고는 다른 낙도, 관심도 없는 것 같은 사람.
바퀴벌레 한 마리 제 손으로는 못 죽이는 그 결벽증만 아니었으면, 어쩌면 준현이 재욱을 죽이기 전에 그녀가 해치우고도 남았을 거다.
p.82
이미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얽히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 그래왔든 안개처럼 희미한 인연으로 남고 싶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다시 안 볼, 딱 그만큼이 좋다. 그뿐이었다.
p.84
뜨겁지만 시원한 느낌. 고통스러울 만큼 더 사랑스러운 마음. 달콤쌉싸름한 이 연심.
언제나 나현을 취하고 또 취하게 하여, 가슴 안에서 온전히 납득할 수밖에 없는 비밀.(···)
이런 감정은 아마도, 평생 말할 수 없을 테지.
p.126~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