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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닿을 수 없는 너의 세상일지라도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팩토리나인 / 2023년 3월
평점 :

<3일간의 행복>의 감성을 좋아한다. 예전 미아키 스가루의 <3일간의 행복>를 읽고 작가의 감성을 마음에 들어했었다. 하지만 독서 편식 때문에 잔잔한 도서들은 많이 읽지 않았었는데 오랜만에 차분해지는 도서를 읽어보려고 선택해 봤다.
팩토리나인에서 출간한 미아키 스가루의 신간 도서 <비록, 닿을 수 없는 너의 세상일지라도>에서는 어떤 감성을 불러일으켜줄지 기대하며 읽어본다.
이 여름이 끝나면, 나 네 앞에서 사라질 거니까.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이 거짓말에 어울려주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
부모다운 부모 노릇도 해주지도 않고 의억에만 의존하며 살던 부모님의 이혼. 열다섯 살때의 일이다.
아무런 즐거움 없이 완벽한 잿빛의 나날로 살아온 아마가이 치히로는 19살이 될 때까지도 추억하나 없었다.
추억도 기억하고 싶은 것도 없는 인생이라면 어릴 적 불행했던 기억을 잊어야겠다는 생각에 치히로는 레테를 사용하기로 다짐한다.
레테.
모든 기억을 지우는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을 하는 필수 기억, 지식에 대한 기억은 보존되는 치료제(?)이다.
4개월 만에 자금을 모으고 클리닉에서 카운슬링을 받은 뒤 레테를 처방받는다. 어릴 적 부모님이 복용하던 모습을 받던지라 어렵지 않았다. 레테를 복용한 뒤 기억이 지워지기를 기다렸지만 시간이 지나도 기억이 지워지질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약봉지를 본 순간 레테가 아닌 다른 약을 받은 것을 알게 된다. 가공의 청춘 시절을 제공하는 그린그린. 치히로가 복용한 약이었다. 그린그린을 지우는 레테와 함께 두 개의 레테를 다시 받지만 치히로는 고민 끝에 기억을 지우는 것을 그만두기로 한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린그린으로 심어진 가상의 소꼽친구 나쓰나기 도카. 치히로에겐 궁극의 이상형이었다. 치히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가공의 인물이니 당연했다.
의억 속 등장인물은 실재의 인물이 아니다. 현실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실제 인물을 활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치히로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도카와의 추억을 떠올리던 어느 날 우연히 그녀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실재하지도 않는 도카를 사랑하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그린그린의 레테를 복용하기로 결심한다.
이른 아침, 술에 젖어 힘겹게 집으로 돌아온 치히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현관문을 돌린 순간, 옆집의 이웃이 나오면서 상대방과 눈이 마주친다.
도카였다. 심지어 자신을 치히로라 부르는 그녀였다.
치히로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실재할 수 없는 도카가 왜 치히로의 앞에 나타난 것일까?

·····하지만 있잖아, 인생에는 이따금 그런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거야.
행복하기만 한 인생이 그리 흔하지 않듯이, 불행하기만 한 인생도 그리 흔한 게 아냐.
도카는 도카의 행복을 조금만 더 믿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 타인이 만든 가공의 이야기라니,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p.21
공포를 극복하고 '레테'를 복용할 것인가, 의억과 타협할 것인가. 두 선택지 사이에서 나는 오랫동안 흔들렸다. 의억을 지우지 않는한, 나는 언제까지나 실재하지 않은 소꼽친구와의 추억에 사로잡혀 있겠지.
p.31
실재하는 인간이 실재하지 않는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도 허무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인간이 실재하는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도 똑같이 허무하다. 실재하지 않는 인간이 실재하지 않는 인간을 사랑하게 된다. 이것은 그야말로 완벽한 허무다. 사랑이란 실재하는 인간끼리 하는 것이다.
p.67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소꼽친구가 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몸에 닿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 얼굴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잘 알고 있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잘 알고 있다. 그 손이 얼마나 따스한지 잘 알고 있다. 여름의 마법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p.69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소꼽친구가 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몸에 닿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를 가까이 느낀다. 그를 사랑스럽다 여긴다. 그에게 구원받고 있다.
p.237
과거의 기억 하나하나를 끄집어내서 거기에 '그'의 존재를 집어넣고, 추억 속에서 울고 있는 나란 인간 하나하나를 구원해나갔다.
그때, '그'와 만났더라면,
그때, '그'가 도와줬더라면,
그때, '그'가 안아주었더라면,
지금쯤 나는 어떤 인생을 보내고 있었을까.
그런 공상은 나에게 유일한 피난처였다.
p.250
시작된 순간 끝나는 사랑과 시작되기 직전에 끝나는 사랑, 어느 쪽이 더 비극일까? 아니 무의미한 질문일 것이다. 각각의 비극은 각각의 최악일 뿐 거기서 서열을 나눌 수는 없는 법이다.
p.373
치히로의 이야기 끝에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떠한 결말이 다가올지 기대되며 두근거리던 부분의 시작이었다.
두 사람의 아련하고 씁쓸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두근거림을 경험하고 싶고 첫사랑에 관한 추억을 떠올리고 싶다면 고고고~!!
※ 본 포스팅은 북카페 책과 콩나무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