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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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없는 상태가 죄악에 빠진 상태보다도 더욱 무서운 타락이라는 주장을 수긍했다.

30쪽

어느 종교단체의 교리다. 정말로 그럴까 싶어 다시 읽고 태그를 붙였다. 고통이 없는 상태가 가능할까라는 질문보다 먼저 어떻게 했길래 고통을 없앨 수 있었을까라는 물음표가 먼저 생긴다. 바로 그 '어떻게'를 타락으로 보는 것이 이 단체의 원칙이었다. 또한 고통의 숭고함을 기리기 위해 1단계부터 12단계까지 나누어 고급으로 갈수록 높은 직급과 명예를 주는 것 같았다. 고급이란 더한 고통을 말하는 것이며 정보라는 이를 '고문당한 것 같은'으로 표현했다.

이 소설은 정말 딱 고통에 대해서 쓴 것이다. 인간이 고통을 어떻게 갈구하는지 또는 회피하는지. 그래서 제약회사 대표가 딸을 학대하는 장면까지 끼워 넣었으리라. 스릴러와 함께 SF 요소까지 들어가 있어 약간의 혼란이 있기는 하지만 취향이 맞는다면 풀 빠져들어 읽을 수 있겠다.

건방지게 나한테 성별 이분법 들이대지 마라.

306쪽

나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아하! 남자 또는 여자로 가르지 말라는 뜻이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성별을 서너 가지로 구분한다고 들었다. 남과 여 중간의 어느 성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성으로 말이다.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 그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지만 낯설다고 무조건 반대할 입장도 아니라 그냥 그런 나라가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

여기 문맥 어디에도 그런 뉘앙스는 없지만 정보라는 이걸 단순히 문화의 차이로 내보인 것 같지는 않다. SF적 요소를 살리려고 여기저기 심어 놓은 디딤돌처럼 보였다. 그리고 몇 쪽 뒤에서 디딤돌인 것을 확신했다.

내 아내의 체세포로 만든 정자하고, 내 난자하고 수정시켜서 만들었어.

319쪽

동성 커플이 임신을 했다. 냉동정자를 활용한 것이 아니라 오직 과학의 힘으로. 여자도 정자를 생산할 수 있는 과학이 정보라의 소설에 등장했다. 글쎄.. 과학을 잘 모른다 치더라도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주장하는 게 무리라는 것쯤은 안다. 현대 과학에서 못 하는 게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가능한 것이 뭔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가 알고 모르는 것을 구분하는 건 이게 꿈인지 생신지 뺨을 꼬집어 느끼는 고통이다. 정보라는 그 고통을 주제로 우리에게 색다른 소설을 내보였고. 읽고 나서 내 느낌은 앞으로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것이 더 많아지리라는 것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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