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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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에서 일어나자, 갑자기 아찔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어렴풋이나마 짚이는 게 있긴 했다. 이것저것 다 털어내고 나니 딱 하나만 손에 잡혔다. 그건 바로 살생부(殺生簿)다.


보통 살생부라 함은 개인의 원한을 담은 이름들이다. 조완선의 [집행관들]에서 작성된 살생부는 개인적이라기보다는 민족주의에 반하는 사람이나 비리와 부패의 정도가 심한 사람들이다. 일명 사회적 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악랄한 지도층 인사들을 묶어 그들이 행한대로 도로 돌려주는 명단이다. 


살생부를 만든 것은 허감독이지만 큰 경계를 정하고 판을 짠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반민족특별법부터 시작한 사회적 악행의 주인공들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참 일정하게도 있더라....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옳지 못한 짓을 하면서 사리사욕을 채우는 그들을 생각하니 마치 내가 집행관인 것처럼 몸이 부르르 떨렸다. 



법을 집행하는 집행관은 말 그대로 법을 행하면 된다. 법이란 벌할 사람은 벌하고 상 받을 사람에게 상을 주는 기준이다. 작금의 시대에 그 기준이 투명하고 올바르다고 당당하게 손들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아주 잘 탄 소설이다. 


그래서 매우 재미있었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진행 중인 수사 보고서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실감 났다. 책을 덮으면서 리뷰를 신나게 남겨 볼 작정으로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하루 동안 머뭇거리게 하는 속보를 만났다.



https://imnews.imbc.com/news/2021/society/article/6088948_34873.html



'임을 위한 행진곡' 백기완 선생 영면…향년 89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오랜 투병 끝에 향년 89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백 소장은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 생활을 하던 가운데 오늘 오전 영면했습니다. [황해도...


imnews.imbc.com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집행관들]에 등장하는 큰 어른, 송 교수는 집행관들의 수장인 심판관으로 등장한다. 마지막까지 기개를 지킨 송 교수를 백기완 선생님과 함께 보냈다. 


마누법전은 송 교수가 집행관들을 조직했던 모티브가 되었다. 백기완 선생님도 그랬을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두 분을 묶어줄 공통점은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라는 생각이다. 아직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지만 어쩌면 백기완 선생님을 모델로 송 교수를 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보았다. 



집행관들은 교수, 군인, 기자, 변호사, 학자, 시민운동가 등으로 이루어졌다. 정보에 깊이 접근할 수 있으며 사회 파급력에 있어서도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구성원이다. 이들은 이 사회에서 있을법한, 쉽게 말해서 청와대 청원을 올려도 백 번을 올렸음직한 사연의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이들이 집행관이 되기로 결심한 것도 그 내밀한 아픔 때문이었다. 


아픈 기억은 본인 또는 가족의 사연이 되어 집행관이 되도록 했다. 송교수는 개인적인 아픔 뿐만 아니라 사회적 모순과 문제점까지 개선하고 해결하려고 했기에 심판관이 되었다.



집행관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훌륭한 실행력을 갖추기는 했지만 문 검사장과 북극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문검사장이 악랄한 수하 검사(진짜 현실에 있을 것 같은 검사)들에게 비밀스럽게 지시하는 장면에서 '반드시 내게 먼저 보고하라'고 지시한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설마 문 검사장이...?'라고 생각했다.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문 검사장 뿐만이 아니었다. 북극성은 또 어떻고! 



소설이지만 소설같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을 보는 것 같아 오히려 생생했다.


장편이지만 장편같지 않았다. 앞에만 살짝 읽으려고 했는데 자리를 뜨지 못하고 끝까지 읽었다.


https://blog.naver.com/cau9910/222245499909


* 사전서평단으로 참여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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