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한쪽 눈을 뜨다 문학동네 청소년 7
은이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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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은 자신의 과거를 추억하며 읽을 수 있고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어

특별히 가리지않고 읽는 편이다.

어릴 때의 순수함, 그리고 가족이나 친구, 혹은 자신의 대한 고민, 꿈을 향한 도전 등 성장기에 겪는

아픔들은 아름답게 느껴진다.

팀 보울러 작가의 소설처럼 순수함을 내비치는 소설도 있지만 은희경 작가의[새의 선물] 처럼

전위적인 책들도 있다. 최근 [손톱이 자라날 때] 소설을 읽고 파격적인 스토리와 공포감마저 자아내는

주인공들의 모습 속에서 성장소설의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누구나 자라나는 손톱의

날카로움은 타인을 위협하고 상처를 입히는 도구였다.

[괴물, 한 쪽 눈을 뜨다]는 제목에서 보여주듯 성장기 소년들의 내면에서 자라는 괴물의 모습을

세 명의 인물들 통해 그려냈다. 양쪽이 아닌 한쪽 눈이라는 것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다른 성장소설과의 차별성을 느낀 것은 집단따돌림의 대상인 영섭이 읽는 [사바나에 사는 동물들]

이란 책에서 였다. 마치 정글과도 같은 약육강식의 세계, 먹이피라미드의 관계를 책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상대방을 물어뜯는 아이들 속에서 담임은 자신이 가장 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아이들을 대했다.

영섭은 껑충 큰 키, 꾸부정한 어깨,느리고 어눌한 행동으로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영섭은 교실 속

아이들을 하이에나, 악어, 코끼리 등으로 비유하였고 자신이 숨고 싶을 때 변할 동물들을 생각하며

책에서 그 동물을 찾고 변신하기위해 동물들의 모습을 기억하려 했다. 황라사마귀가 되고 싶다고 하고,

자신을 기린이라 말하고, 고기는 먹지않고 풀과 과일만 먹는 평화를 좋아하는 사자라고 말한다.

세번째 인물, 이 반의 반장인 태준은 담임에게 영섭을 지켜달라는 말을 듣지만 영섭을 바라보며

오히려 속으로는 자신도 영섭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었다. 태준은 완벽히 이기적인 사람이 될 뻔뻔함도

정의로운 사람이 될 용기도 갖지 못했다. 하루하루 자신의 몸을 지키며 살아가기도 버거워했다. 

영섭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당당히 말도 못하고 오히려 야한 동영상을 보는 자신의 약점을 노출시키는

바람에 놀림거리가 되고 감추었던 자신의 욕망을 영섭을 통해 표출하기도 한다.  

작가는 세 명의 인물들 외에도 반 아이들의 행동을 통해 다양한 태도를 보여주었고 각기 다른 아이들의

부모의 모습 속에서 잘못된 교육을 꼬집기도 하였다.

이 소설에서 주된 사건과 내용은 집단따돌림과 성적호기심에 있다. 영섭과 태준은 자신 안에 있는 괴물,

절대 밖으로 드러낼 수 없는 속마음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될 까 두려워한다.

영섭, 태준, 담임의 모습과 아이들의 모습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맞다. 이것보다 더한 경우도 발생하는

요즘이지만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부분이 많았다.

이 책에서 정의란 존재하지않았다. 태준, 영섭, 담임 모두 한쪽으로만 치우친 극한 인물, 가해자였다.

그들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 변하지않았다. 영섭을 향한 따돌림은 다른 양상으로 계속 발전했고

태준에게 짐승은 태준 곁에 계속 있었다. 그리고 영섭은 가시두더지가 된다. 가시가 되어 자신을 괴롭힌

정진에게 달려들고 자신보다 약한 아이의 물건을 뺏기까지 한다.

작가는 초원이라 숨을 곳이 없는 사바나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안에 희망이란 존재하지않았고

한쪽 눈을 뜬 괴물은 아이들과 계속 공존하고 있었다.

영섭을 도와주려고 하지만 오히려 반 아이들에게 과한 폭력을 휘두르는 담임, 공부를 하면서도 야한 동영상을

보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는 태준, 괴롭힘을 당하다 오히려 가시두더지가 되어버린 영섭.

괴물로 변해가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보통의 아이들처럼 보이기를 원하는 부모의 욕망.

따돌림을 당하는 영섭과 그런 아이들을 통제하는 담임,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찾지못하고 오히려 결론에

도달해서 태준에게서 자라난 짐승은 영섭에게 달려들어 물어뜯고 교실에 내동댕이친다.

다른 위치에 있는 세명의 인물을 통해 시각을 달리한 설정과 사바나의 동물들로 비유한 것은 독특한 발상이었지만

그 안에서 이상적인 방법이란 존재하지않았다. 누군가 변하거나 혹은 그들과 다른 성격을 가진 또다른 인물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책을 다 읽은 후 괴물을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해야할 지,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씁슬한 감정은 계속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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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인이다 - 시인 김규동의 자전적 에세이
김규동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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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인이다. 자신이 시인임을 시인할 수 있는 그의 삶은 아름다웠다.

난 그의 삶을 통해 시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시인은 과연 무엇일까.

그의 책을 읽으며 과거 서정주, 박인환, 이상, 김수영 시인들이 몹시 그리워졌다.

시의 감성이 메말라가고 점점 시집을 보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요즘의 현실에서

그의 자선 에세이는 그 고귀함을 더욱  빛내고 있었다.

 

그는 말한다.

글을 썼다기보다 글이  걸어나왔다고.

1925년 함경북도 출생인 그는 분단의 슬픔과 비극을 몸소 겪은 시인이었다.

일제시대와 6.25전쟁부터 시작해서 분단의 과정, 그리고 쿠데타로 얼룩진

과거의 역사 속에서 그는 살았다. 그의 책을 통해 어두운 시대를 겪은 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정말 가치있는 시간이 되었다.

놀랍게도 김일성대학 출생인 그는 학교에서 마르크스나 레닌주의를 공부하다

진정 문학을 공부하고 싶고 시인으로서 살고 싶어 월남을 하였다. 자신의 가족을 두고온 채.

그는 미처 몰랐다. 영영 볼 수 없는 고향이 되고 이산가족이 될 것이라고..

서울에서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던 그는 돈을 더 받고 출판사에서 보다 여유로운 생활을 하게되지만

결국 그만두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시인은 가난과 궁핍을 훈장처럼 달고 다녀도 문제지만, 돈이 너무 많아도 문제라고.

그는 뼛 속 깊숙이 영혼까지도 시인인 사람이었다.

 

삶을 떠난 시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처럼,

그의 삶은 시였다.

 

그의 기억은 유년시절부터 시작해서 월남해서 서울로 오기까지

서울에서 시인으로 살기까지 자신의 추억들을 마치 자식을 무릎에 앉혀놓고 이야기하듯

딱딱한 문체가 아니라 부드러운 목소리로 덤덤히 들려주고 있었다.

그의 자서전을 통해 잘 알지 못했던 시인들의 사적인 이야기,

시인 이상, 천상병, 이용악, 박인환, 김수영 그리고 영화감독 신상옥씨까지..그들의 이야기도

마치 눈에 그려지듯 추억으로 다가왔다.

너무나 쉽게 시를 썼던 아이같았던 천상병 시인,  어려운 시를 썼던 박인환 시인,

그리고 대한민국 대표시인 김수영. 고뇌하면 번뇌하였던 그, 그에게 시는 마치 숙명이었다고 한다.

모두 다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한국 시문학의 전성기를 살아온 김규동 시인, 계속 그가 들려주는 시를 듣고 싶고 보고 싶다.

오래도록 그가 우리곁에 머물러주기를 바라는 것도 욕심이 될까.

 

잊을 수 없던 그의 시를 읊어본다.

 

<아, 통일>

 

이 손

더러우면

그 아침

못 맞으리

 

내 넋

흐리우면

그 하늘

쳐다 못 보리

반백년 고행길 걸은

형제의 마디 굵은 손

잡지 못하리

이 손 더러우면

 

내 넋 흐리우면

아, 그것은

영원한 죽음.

 

별처럼 아름답던 윤동주 시인처럼 깨끗한 그의 감성이

느껴져 더욱 좋았던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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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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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통해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고
어떤 이야기이든 모두 소중한 재산이 되었다. 오랜만에 좋은 인문학 서적을 발견해서 기쁘다. 

라캉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정신분석학에서 중요한 인물인 라캉의 이 말이 나에게도 인상적으로 와닿았다.

이 책은 세가지로 분류가 되어있다.
첫번째는 나 자신의 삶과 내면과 관련된 것, 두번째는 나와 타자와의 관계와 관련된 것,
마지막 세번째는 나와 타자를 둘러싸고 있는 구조, 환경과 관련된 것들이다.

니체는 인간을 가로막는 담벼락에 대해 말했다. 외적으로 또는 내면적으로 우리는 보이는
또 보이지않는 담벼락들이 많다. 철학적으로 접근한다면 추상적인 것들 모두가 그러하다.
자유로운 것 같지만, 갇혀있는 현실 이것은 모두가 느끼는 것들이다.
다만 그것을 얼마나 인식하고 사느냐, 아니면 인식하지못하고 사는가에 따라 삶에 대해
느끼는 답답함이 다 다르겠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은 예전에 읽어보았지만 보다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 인생을 다시 한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이 말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또 미래에도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페르소나. 사람은 누구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고 마치 연극배우처럼 다른 얼굴들이 많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연기해야할 배역이 있다고.
그 배역에 따르면 우리는 거지가 될 수도 있고, 왕이 될 수도 있고, 사형수가 될 수도 있고,
절름발이가 될 수도 있다고..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 모든 것이 단 한번 뿐이라는
사실이겠지. 가면을 쓰고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비극인 것 같다.

작가는 솔직함과 정직함에 대한 인문학적 정신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 정신은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생각하게 한다고. 솔직하게 말했던 아이가
바로 우리가 곁에 두고 싶은 인문학자라고. 신선한 접근방법이었고 그의 말처럼
세상을 솔직하게 볼 수있게 만들어주는 인문학자 혹은 철학자가 어느 시대나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습관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습관을 설명하는 현대 뇌과학의 방식이다.
인간에게는 세가지의 뇌로 구성이 되어 있다고 한다. 오래된 뇌, 중간 뇌, 새로운 뇌가 그것인데
오래된 뇌가 행동을 담당하고 중간 뇌가 정서를 담당하고 새로운 뇌가 합리적인 사유를 담당한다고 한다.
그리고 습관에는 의지적 운동을 본능적 운동으로 변형하는 것이라고 한다.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다양한 서적을 통해 그리고 실생활의 사례를 통해, 철학자의 말들을
인용하면서 인문학적 접근성을 나타내고 있어 더욱 만족스러웠던 책이었다.
자신의 생각, 행동, 습관 그리고 내면 등을 인문학적으로, 철학적으로 파헤칠 수 있다니 얼마나 흥미로운
학문인지, 앞으로도 다양한 인문학적 서적들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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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와 비밀의 부채
리사 시 지음, 양선아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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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설화와 비밀의 부채는 지극히 여성을 위한 책이다.

여자의 처절한 운명과 삶이 아름답게 그려지기보다는 아프게 그려진 소설이다.

어쩌면 지금 이시대를 살아가고있는 여자들에게는 공감을 얻기 어렵겠지만

과거에 있었던 사실이고, 그시대를 살았던 여자들의 슬픈 이야기이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여자의 일생>이나 <주홍글씨>, <안나까레니나> 작품도 함께 떠올렸고

전체적인 느낌은 펄벅 작가의 작품과 같은 느낌이 나기도 한다.

작품 속에서 많은 인물들이 죽을 때의 비극이 느껴지는 것은 위화 작가의 작품,

<인생>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 리사 시는 놀랍게도 중국작가가 아니다. LA에서 자란 그녀가 중국 여인들의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룰 수 있었는지 놀랍다. 출판사의 평대로 그녀는

‘21세기의 펄 벅’이라고 할 정도로 동양적인 정서와 중국 근현대 여성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생생하게 구현해 내었다.

 

<설화와 비밀의 부채>는 어릴 때부터 사랑을 갈망했던 소녀 나리와,

몰락한 가문의 비극적 운명을 걸어가는 설화의 우정과 사랑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먼저 나리의 성장과정을 보면 그녀는 철저히 관습된 전통과 문화에 따라 교육되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이 결국 설화의 삶조차 바꾸어놓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만다.

 

나리가 배웠던 교육은 이러하다.

여자는 미덕은 절대적인 순종이다.

산불이 산을 태우지않으면 땅이 비옥해지지않듯

딸자식이 시집가지않으면 딸은 쓸모가 없다.

복종하고 복종하고 복종해라. 그런 다음 네가 원하는 것을 하라.

 

중국여성들에게 전족은 여자의 인생에서 큰 기쁨이었다. 행복한 아들을 낳는 일을 쉽게 해주었고

어떤 결혼을 하느냐는 발 크기에 달려있었다.

설화와 나리에게 닥친 이러한 고통은 반드시 해야할 일이었고 선택권이란 없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여자의 운명은 어떤 신분의 남자와 결혼하느냐에 달려있었고

남자의 삶에 순종하면 살았기에 자유란 없었으며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만 하는 삶이었다.

기구할 수 밖에 없던 이 운명은 얼마나 잔혹한 일이었는가.

 

<설화와 비밀의 부채> 여자들이 보기에 결코 기쁜 소설이 아니다.

물론 남자독자들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이 작품을 영화로 옮겼을 때, 당시 여성의 삶에 대한 비판적 의식은 전달할 수 있겠지만

감동보다는 오히려 아픔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나리는 설화와 라오통을 맺으면 만나게 된다. 라오통은 원래 비슷한 가문끼리 맺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지만

여기에는 설화의 운명을 나리를 통해 바꾸고자하는 계략이 숨겨져 있었다.

나리와 설화는 라오통의 인연을 토대로 서로 부채에 적은 누슈를 통해 연락을 주고 받고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기도 하며 우정을 쌓아간다.

부채에 누슈를 기록하는 것은 실재로 존재했던 것이라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어릴 때부터 사랑을 갈망하던 나리는 설화가 자신이 아는 다른 세 여인과 의자매를 맺었다고 오해를 하게되고

결국 그 둘의 관계는 나리에 의해 단절이 된다. 이후 설화의 죽음을 앞두고 설화에게 찾아간 나리는 그 모든 일들이

자신의 오해로 빚어진 것을 알게되고 속죄의 눈물을 흘린다. 또한 관습되어진 교육으로 인해 자신이 내뱉은 말들이

설화에게 아픔이 되었다는 것도 알게된다.

같은 해, 같은 날 태어난 설화와 나리, 결혼을 하면서 상반된 삶을 살았던 이들의 기구한 운명.

결코 씻을 수 없는 나리의 속죄.

책을 덮은 후에도 아픔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소설이었다.

영화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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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이 자라날 때 문학동네 청소년 4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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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은 누구에게나 있고 모든 사람이 다 자라는 것이다.

보다 더 여자를 상징하고 있고 손톱이 자란나는 것은 예민함과 까탈스러움,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방미진 작가의 소설은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청소년 문학에서 보기 드문

미스터리 호러를 접목시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였다.

손톱을 세워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기 어려울 것 같은 작품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섬뜩한 묘사와 더불어 책을 다 읽은 후 가지는 불편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청소년기에 가지는 생각과 행동들을 철저히 파헤쳐 그들의 심리를 난절하게

보여주는 것 또한 독자들이 놀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마치 붉은 곰팡이가 피어나 집 전체를 뒤덮어버리듯

결코 거부할 수 없이 독자들의 가슴 속에 지울 수 없는 곰팡이가 될 것이다.

 

하얀 벽, 난 네가 되고, 붉은 곰팡이, 손톱이 자라날 때, 고누다

이 다섯 단편 중에서 작가가 공통적인 소재를 삼고 있는 것은 외로움이다.

이 외로움은 서정성과 감수성을 가진 단순한 외로움이기 보다는 처절함과

잔혹성이 가미된 외로움이다. 그 외로움은 자신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전염시켜 자신의 외로움을 전이시키고 있다.

 

자신보다 잘난 능력을 가진 반 친구에 대한 질투, 부모님에 대한 불만, 따돌림,

가난, 외로움, 이 속에서 피어나는 증오심과 불안적 심리가 탁월하게 나타난 작품이며

묘사 하나하나가 공포를 느낄 정도로 섬세하고 섬뜩하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다섯 작품 모두 인상적이었다.

 

방미진 작가의 소설 속에서 나타나는 인물들은 모두 빛과 어둠, 양면성을 가진

인간의 본성에 대비했을 때 철저히 어둠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들키지않게

자신의 마음 속에서 손톱을 세우고 미움의 대상에게 달려든다. 고누다의 경우를 제외하고

실체적인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을 뿐 그들은 충분히 상대를 죽이고 있다.

 

하얀 벽이 되어 존재가 사라지기도 하고, 부러움의 대상인 상대가 되려고 자신을 닮게

만듦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사라지게 만들기도 한다. 따돌림의 대상이 결국 자신에게

똑같이 되돌아오기도 하고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하나의 인물을 복제하여 둘이 되게

만들지만 자신마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자아가 완성되지않은 청소년기때 가장 큰 문제로 다가오는 것은 친구의 문제이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쉴 새 없이 고민을 한다.

자신보다 잘난 것은 용서하지 못하고 하얀벽의 조민희처럼 친구의 매력을 단점으로

만들어 버려 놀리기도 하고 겉으로는 친구인 척하며 사실은 친구를 비방하는 쪽지의

주인공인 희진이처럼 되기도 한다.

자신보다 약한 친구에게서 돈을 빼앗고 얼굴을 할퀴기도 하고 때론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자신과 비교되는 자매 혹은 형제가 혹은 부모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이 추악함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걸어가고 있고 이 선을 넘기도 한다.

 

인물들의 이러한 생각 속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희망과 아름다움은 과연 무엇일까.

절벽의 낭떠지로 떨어지는 그들의 돌파구가 과연 있기나할까.

자신마저 하얀벽이 되고,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리고, 몸에서 피어난 붉은 곰팡이가 사라지지

않은 채 곰팡이처럼 살 수 밖에 없는 이들.

약해보이기 싫어 기른 자신의 손톱이 결국 부러져 피가 뚝뚝흐르고 가족이 모두 가짜가 되버린 현실에 놓이고  

자신마저 가짜가 되 버린 그들.

 

그들이 가진 극한 외로움에 동정 혹은 구원의 손을 뻗기도 전에 그들은 닿을 수 없는

존재 자체가 되고 만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일까.

 

아름다움으로 꾸며진 성장소설을 거부하고 성장과정을 거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잔혹한 동화처럼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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