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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러시아 할머니의 미제 진공청소기 ㅣ NFF (New Face of Fiction)
메이어 샬레브 지음, 정영문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이 긴 제목의 책은 시공사문학의 NFF시리즈의 신작인 이스라엘 작가 메이어 샬레브의 자전소설이다. 메이어 샬레브 작가의 책은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이스라엘 최고의 이야기꾼이라고 왜 불리는지 이 책을 읽고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그의 입담과 문장에 여러 번 놀랐는데 그의 발표작들도 찾아 읽을 생각이다.
처음에 미제 진공청소기를 소재로 했다는 것이 의아했다. 과연 진공청소기라는 소재로 이야기가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작가는 이 청소기 하나를 통해서 굉장히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역시나 그가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일 것이다.
외할머니 댁이라는 우리의 정서와 다른 부분들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동양의 정서에서 느껴지는 고향과 가족의 따듯한 이야기가 이 책에서 충분히 전해졌다.
처음 시작은 이랬다. 중요한 행사의 연설로 초청받은 작가에게 남동생의 어린 두 딸이 그의 발톱에 붉은색 칠을 하고 마는데 설마 누가 보겠어? 했지만 모두들 그와 그들의 가족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유쾌한 사건을 시작으로 작가의 토니아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을 한다. 미제청소기는 예샤야후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선물로 사주게 되는데 팔레스타인에서는 그 누구도 본 적이 없고 나타나 적도 없던 물건이었다. 마치 우리에게도 처음 미국문화가 들어왔을 때 받았던 그 신선한 충격과 영문으로 써진 옷이라면 다 미국의 좋은 메이커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착각처럼.
청소기에 대한 작가의 묘사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작가는 마치 의인화를 하여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을 진공청소기를 바라보았고 진공청소기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것이 본 것은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들과 작업복들과 튼튼한 손들이었다. 한순간 진공청소기는 뒤로 물러나 부드럽고 기분 좋은 천포장으로 돌아가 마분지 상자에 들어가 봉해져 미국의 아름다운 여자 아래 있고 싶었다.
즉 미제 청소기라는 이 물건은 미국의 물질적 타락된 문화에서 온 것으로서 유태인 농부들의 흙과 먼지와는 아주 비교되는 것이었다. 더욱이 가장 흥미로운 것은 할머니가 가지고 있는 더러움의 공포증이었다. 청소기가 빨아들인 먼지가 청소기 안에 들어간 것을 보고 할머니는 이렇게 반문한다.
먼지가 청소기 안에 있다면, 더럽다고 말이다. 집 전체를 청소했는데 청소기까지 청소를 해야한다고 묻는 할머니의 물음. 똑같은 먼지를 두 번 청소한다는 할머니의 의견에 웃음이 터졌다. 결국 이 사건으로 할머니의 청소기는 40년간 창고에 갇히고 만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진공청소기가 자신이 하게 될 여행과 모험,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운명의 반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라고. 보통 진공청소기의 삶은 단조롭게 지나간다. 그러나 할머니의 진공청소기는 바다와 대륙과 파도와 산과 도로와 철로를, 그리고 곡물의 그루터기와 초록색 들판을 가로지르는 아주 긴 여행을 했다. 그러나 죄를 저지르고 무기징역을 받았다고.
진공청소기 하나를 통해, 이 자전적 소설에서 작가는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했다. 하나의 사물을 통해 우리는 때론 과거의 모든 것을 다 기억하게 된다. 그 사물을 사용했던 사람과 그 사람의 행동, 말, 그리고 향기. 모든 것을 말이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진공청소기 하나를 말하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가족 전체의 이야기를 따듯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소설 속에서 작가의 표현들 중 마음에 드는 문장들도 많았다.
청소기를 통해 나타나는 먼지와 관련된 문장들이었다.
나는 우리 집 안의 먼지 대부분이, 다시 말해 약 75퍼센트가 거주자와 애완동물의 죽은 피부 세포와 머리칼과 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어렸을 때 나는 아침의 햇살 속에서 먼지 티끌들이 멋진 춤을 추는 것을 바라보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내 어린 시절의 가장 매혹적인 장면들 중 하나로, 내게는 그 반짝이는 것들을 바라보는 것이 하루를 시작하는 유쾌한 방식이었다.
하나의 사물을 통해 얻게 되는 깨달음, 그리고 감상. 작은 부분까지도 작가는 놓치지않고 세밀히 표현해내고 있었다. 여러번 읽으면 더 다양하고 매력적인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내게 놀라운 작가의 발견이었음과 동시에, 자전적 소설로서 가족의 따듯한 이야기를 유쾌하면서도 독특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다. 다양한 에피소드들과 작가가 위트가 더해져 매력적인 작품이 탄생했다. 곁에 두고 오랫동안 읽고 싶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