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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인이다 - 시인 김규동의 자전적 에세이
김규동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3월
평점 :
나는 시인이다. 자신이 시인임을 시인할 수 있는 그의 삶은 아름다웠다.
난 그의 삶을 통해 시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시인은 과연 무엇일까.
그의 책을 읽으며 과거 서정주, 박인환, 이상, 김수영 시인들이 몹시 그리워졌다.
시의 감성이 메말라가고 점점 시집을 보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요즘의 현실에서
그의 자선 에세이는 그 고귀함을 더욱 빛내고 있었다.
그는 말한다.
글을 썼다기보다 글이 걸어나왔다고.
1925년 함경북도 출생인 그는 분단의 슬픔과 비극을 몸소 겪은 시인이었다.
일제시대와 6.25전쟁부터 시작해서 분단의 과정, 그리고 쿠데타로 얼룩진
과거의 역사 속에서 그는 살았다. 그의 책을 통해 어두운 시대를 겪은 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정말 가치있는 시간이 되었다.
놀랍게도 김일성대학 출생인 그는 학교에서 마르크스나 레닌주의를 공부하다
진정 문학을 공부하고 싶고 시인으로서 살고 싶어 월남을 하였다. 자신의 가족을 두고온 채.
그는 미처 몰랐다. 영영 볼 수 없는 고향이 되고 이산가족이 될 것이라고..
서울에서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던 그는 돈을 더 받고 출판사에서 보다 여유로운 생활을 하게되지만
결국 그만두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시인은 가난과 궁핍을 훈장처럼 달고 다녀도 문제지만, 돈이 너무 많아도 문제라고.
그는 뼛 속 깊숙이 영혼까지도 시인인 사람이었다.
삶을 떠난 시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처럼,
그의 삶은 시였다.
그의 기억은 유년시절부터 시작해서 월남해서 서울로 오기까지
서울에서 시인으로 살기까지 자신의 추억들을 마치 자식을 무릎에 앉혀놓고 이야기하듯
딱딱한 문체가 아니라 부드러운 목소리로 덤덤히 들려주고 있었다.
그의 자서전을 통해 잘 알지 못했던 시인들의 사적인 이야기,
시인 이상, 천상병, 이용악, 박인환, 김수영 그리고 영화감독 신상옥씨까지..그들의 이야기도
마치 눈에 그려지듯 추억으로 다가왔다.
너무나 쉽게 시를 썼던 아이같았던 천상병 시인, 어려운 시를 썼던 박인환 시인,
그리고 대한민국 대표시인 김수영. 고뇌하면 번뇌하였던 그, 그에게 시는 마치 숙명이었다고 한다.
모두 다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한국 시문학의 전성기를 살아온 김규동 시인, 계속 그가 들려주는 시를 듣고 싶고 보고 싶다.
오래도록 그가 우리곁에 머물러주기를 바라는 것도 욕심이 될까.
잊을 수 없던 그의 시를 읊어본다.
<아, 통일>
이 손
더러우면
그 아침
못 맞으리
내 넋
흐리우면
그 하늘
쳐다 못 보리
반백년 고행길 걸은
형제의 마디 굵은 손
잡지 못하리
이 손 더러우면
내 넋 흐리우면
아, 그것은
영원한 죽음.
별처럼 아름답던 윤동주 시인처럼 깨끗한 그의 감성이
느껴져 더욱 좋았던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