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를 사랑한다는 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발단은 이러하다.
그와 함께 보낸 여자가 그에게 이런 말을 던진다.
`너를 파악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 너는 나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자기밖에 사랑할 수 없어.
너는 내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떤 것이든 전혀 존중하지 않았어.`
여기서 작가는 의문을 품게 된다.
누군가를 향한 관심, 호감, 그리고 사랑에 대해..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
만난 사람들 중에는 몇 달, 혹은 몇년, 혹은 몇십년 알고 지낸 사람들이 있다.
좋아한 사람도 있고, 사랑한 사람도 있고, 싫어한 사람도 있다.
만약 내가 몇 십년을 알고 지낸 친구가 있다고 한다면
난 과연 그에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여기에 의문을 갖고 끊임없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며 사유하게 만든다.
책의 시작은 뜻밖에도 전기작가에 대해서 말한다.
주인공은 서점에서 책을 훑어보다 `공감하다`라는 말에 눈길을 사로잡힌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큰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주인공은 전기작가에 관한 관심을 필두로 관심과 무관심에 대해 정의를 내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관심에 대하여
순수하게 숫자로만 따질 때 20세기의 마지막 10년에 지구의 인구가 놀랍게도
55억을 넘어선 상황에서 현재 숨을 쉬고 있는 모두에게 15분씩 관심을 기울인다면
무려 1711세기가 걸린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시간은
15분을 넘을 수 없다.
인간의 이해와 소통에 희망을 품었음직한 프로이틎차 말년에 인터뷰 자리에서
자신은 아무 불평할 것이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70년을 넘게 살았다. 먹을 것은 충분했다. 많은 것을 누렸다.
한두 번은 나를 거의 이해하는 인간을 만나기도 했다.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평생에 한두 명. 뇌리를 떠나지 않을 것 같은 빈약한 수이지만,
이 쓸쓸하기 짝이 없는 결산은 우리가 심정적으로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맺는 관계의 깊이를
의심해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주인공은 이사벨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고, 주인공은 이사벨에 대해 그녀의 전기를 들려준다.
가족관계나 그녀가 과거에 만났던 남자들에 대해..
이 책은 전기작가에 대한 플롯과 그가 만나게 된 이사벨의 플롯 두 개의 이중구조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기에 알랭 드 보통의 해박한 지식과 철학적 사유의 접근이 더해져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그가 파악한 이사벨에 대해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아침을 먹는데 10분, 점심을 가볍게 먹는데 20분, 저녁을 우적우적 먹는데 45분을 보냈다.
또 사과, 견과, 칩, 초콜릿 비스킷을 먹는데 매일 15분씩 소비했다.
따라서 그녀는 지금까지 인생의 약 1만 3685시간을 먹는데 보낸 셈이었다.
이렇게 그는 그녀에 대해 전기를 쓰기 시작하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어떤 사람이 어떤 것에 어떻게 반응할지 아는것. 이것이 충분히 잘 안다는 것의 완벽한 상징이 아닐까 하고,
물론 이런 말도 일리가 있지만
결국 인간이란 자신에 대해서도 명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내가 알고 그에대한 전기를 쓰고
사랑하면 사는 것 자체가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사벨은 그에게 말한다.
`사실 우리도 그만 만나야할 것 같아.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도 자신할 수가 없어. 나도 그 이상은 모르겠어`
사랑에 대해 환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보고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지극히 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의 3부작의 완결판이라고 말하지만 난 그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관심에서 부터 시작하니까..
하지만 삶의 사적인 영역까지는 침범할 수 없는 것.
내가 평생 누군가의 전기를 쓰는 전기작가라 할 지라도 보이지않는, 볼 수 없는 영역이란
반드시 존재할 테니까. 결국 우린 완벽히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