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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9~2016.1.16
이 책은 알라딘에서 신간이 뭐가 있나 하고 살펴보던 중 발견했다. 개인주의자 선언.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평소에 나를 개인주의자라고 말하고 다니곤 했는데 왠지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뭔가 위엄이 느껴지는 제목을 한 책 속에서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의 모습까지 엿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개인주의가 무엇인지, 그것을 넘어 합리적 개인주의란 개념까지 알게 되었다.
나는 세상 어떤 것보다 나를 중요시 한다. 그렇다고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전혀 싫다. 나 때문에 남이 피해를 보거나 내가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끔찍하다. 그냥 남의 일에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그래서 나를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인주의자인 나와, 또다른 개인주의자인 문유석 판사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그는 합리적 개인주의를 지향한다. 개인주의자로 살되 이 세상을 혼자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를 배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P.37 합리적 개인주의는 공동체에 대한 배려, 사회적 연대와 공존한다. 자신의 자유를 존중받으려면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톨레랑스, 즉 차이에 대한 용인, 소수자 보호, 다양성의 존중은 보다 많은 개인들이 주눅들지 않고 행복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그리고 책의 뒷부분은 대부분 합리적 개인주의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이야기다. 문유석 판사 개인의 이야기보다는 전세계의 이슈를 다룬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슈를 그의 시선으로 해석 했으니 그의 이야기라고 해야하려나? 어쨌든 시시콜콜한 이야기보다는 시사적이고 무거운 이야기가 많다. 내가 모르고 지나친 세상일에 대해 전해 듣고 많이 생각하게 됐다. 특히나 뒷부분에서 북유럽을 한국사회의 모델로 삼을 수 있겠는가에 대한 그의 의견을 읽으면서는 자연스럽게 내가 평소 북유럽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동경, 유토피아 같은 그곳의 이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또 그 생각은 몇개월전 읽은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의 내용을 떠올리게 했다.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유토피아같아 보이는 곳도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이긴 마찬가지다. 마냥 행복하기만 한 곳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맞아 떨어지는 여행지에서나 있을 법 하다.

P.19 누구는 세상으로부터 전면적인 인정, 사랑, 존경을 받고 싶어하고 누구는 세상에 전면적으로 헌신하고 싶어하지만 누군가는 광장 속에서는 살기 힘든 체질이기도 하다. 그걸 죽어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레고에는 여러 모양의 조각들이 있는 거다. 

나는 광장 속에서는 살기 힘든 체질이다. 물론 나도 인정, 사랑, 존경을 받고 싶다. 세상에 약간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내 일순위의 목표는 아니다. 난 그냥 내가 좋아하고 그들도 나를 좋아하는 소수의 사람들과만 깊은 관계를 맺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종업원, 바리스타 등 손님을 접대하는 서비스직은 괴롭다)을 하며 나 혼자 먹고 살 만큼만 벌어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다. 레고 조각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조그만 조각이래도 좋다. 그냥 그게 나다.

요즘 방학이라서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과 거의 연락을 끊고 지내고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 귀찮다. 카톡, 전화, 문자 다 귀찮다.
둘째, 내 하루를 보고하고 검사받는 느낌이다. 그리고 비교한다. 친구와 연락을 하다 보면 오늘은 뭘 했는지 내일은 뭘 할 건지에 대한 얘기가 빠질 수 없다. 솔직히 별다른 일 안한다. 그냥 토익 공부하고 책읽고 쉰다. 방학이니까. 길고도 험한 학기를 끝내고 얻은 자유시간인데 억지로 감당도 못할만큼의 일을 벌이고 싶지는 않다. 그저 따뜻한 코코아 한잔 타서 책을 읽는게 소원이라면 소원이었다. 그런데 내 일과를 말하고 그들의 일과도 자연스럽게 듣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자꾸 비교하게 된다. 누구는 유럽여행을 간다더라, 누구는 열심히 알바하고 있다더라, 누구는 무슨 자격증을 준비중이라더라. 신경쓰고 싶지 않은데 신경이 쓰인다. 마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같다. 굳이 내가 왜 남을 통해서 자극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내 자존감만 갉아먹힐 뿐이다. 
친구들이 뭐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분명 싫어하겠지. 그치만 어쩔 수 없다. 내가 그들과 연락하는게 싫다. 책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난다.

P.57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똥개들이 짖어대도 기차는 간다.

나는 무난한 친구, 다정한 친구라는 평판을 잃고  남 신경쓰지 않고 내 마음대로 나를 계발할 방학의 자유와 행복을 얻는다.
 
문유석 판사의 글은 처음 읽어보는데 부드러워보이는 말 속에 세상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 담겨있다. 재치도 넘쳤다. 책을 읽으며 크게 웃기도 했다. 동생한테도 너무 웃기지 않냐며 읽어줬는데 반응이 없었다. 나만 웃겼던 건 아니겠지.
이 책을 통해 나는 본인의 자유 뿐 아니라 그것을 위해 타인의 자유까지 헤아리는 합리적 개인주의를 배웠다. 나의 자유를 위해, 나 뿐만 아니라 타인의 자유마저 앗아가는 것들을 유심히 지켜봐야겠다. 

+) 그 외 기억하고 싶은 구절
P.22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거꾸로 개인의 행복의 잣대가 되어버리는 순간, 집단이라는 커다란 리바이어던은 바다괴물로 돌아가 개인을 삼킨다.

P.57 내성적이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이들도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고민해야 한다. 내성적인 이들도 외향적인 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적절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행복을 느끼는 체질인 것이다.

P.115 개인의 성공과 실패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구조 문제를 언급하면 `환경 탓이나 하는 투덜이`로 간주한다. 사회는 어쩔 수 없으니 개인이 변해야 한다는 자기계발 논리의 폐해다.

P.136 법관들도 말에 대해 주의하고 반성하기 위해 전문가의 강의를 듣는다. 그때 배운 것이 있다. 데이의 `세 황금문`이다.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P.201 그림자를 강조하기 위해 빛을 애써 지울 필요도 없고, 빛을 강조하기 위해 그림자를 외면할 필요도 없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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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4~2016.1.9

모두가 평등한 세상의 가능성. 그 희망을 이야기하는 책.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솔직히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것들은 제쳐두고서 여성의 권리만을 외치는, 여성 우월주의적 집단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고나서야 알았다. 페미니스트는 여성만을 위해서가 아닌, 성별을 초월한 모든 인간의 평등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과거는 물론 현재도 여성은 사회의 약자이기 때문에 여성의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기위해 힘쓸뿐, 남성의 권리를 빼앗아 여성에게 몰아주자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작가는 사소해보이는 문제일지라도 그것은 결국 강간 등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 그저 웃고 넘기지 말라고 전한다. 그것들은 내리막길에 놓인 도미노처럼 하나가 넘어가면 그 다음 것도 순차적으로 넘어간다. 사소한 문제를 용인하게 되는 순간 결국 심각한 문제까지 발생하기 쉽다.
나를 가르치려 드는 남자에게 나의 발언권, 신뢰성을 인정받지 못한 경우는 수두룩하다.(특히나, 현재까지는 나와 가장 가까운 남자인 아빠와의 대화에서 대부분 그랬다)그들이 의식적으로 그런 것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지만, 어쨌든 그들은 나를 의심했고 심지어 내가 옳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도 사과한 적이 없다. 그때도 물론 기분이 불쾌했지만 지금와 생각해보니 내가 왜 화내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기분이 나쁘다.
그런 남자들이 나를 의심해도 나는 나를 의심하지 말아야겠다. 내가 나를 의심하면 나는 더 작아지고 내 스스로 나의 권리를 포기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럼 결국 뫼비우스의 띠처럼 가르침과 침묵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
이제 나는 자신있게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이 책과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들을 더 읽고 그 내용을 계속해서 곱씹어 나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행동까지 변화시켜 좁게는 나의 세상부터 바꾸어 나가고 싶다. 나하나 변한다 해서 모두가 달라질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고 싶지는 않다. 이 땅에 살아갈 후손을 위해서라는 거창한 이유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당장 내가 살아갈 세상인데 아무런 시도도 해보지 않고 이대로 멈춰있을 순 없다.

p.15
남자들은 자꾸 나를, 그리고 다른 여자들을 가르치려 든다.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든 모르든. 어떤 남자들은 그렇다.

p.60
여성해방운동은 남성의 힘과 권리를 침해하거나 빼앗으려는 의도를 가진 것처럼 묘사되곤 했다. 마치 한번에 한 성만 자유와 힘을 누릴 수 있는 암울한 제로섬 게임인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함께 자유인이 되거나 함께 노예가 될 수 있을 뿐이다.

p.98
평등결혼은 위협이다. 불평등에 대한 위협이다. 평등결혼은 평등을 소중히 여기고 평등으로 혜택을 입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다. 그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다.

p.107
그는 그녀를 시트처럼, 수의처럼, 장막처럼 덮었다. 그녀는 따로 존재가 없었다.

p.185
나는 피해자와 생존자에 대해서 말하려고 할 때마다 폭력을 저지른 자에게도 공감해보라는 주문을 받는 것이 이제 진저리가 난다.


+)이 책은 작가가 쓴 여러 에세이 중 같은 주제를 논한 것들을 묶어놓은 책이다보니 뜬금없는 부분이 종종 있었다.또한 영어로 된 글을 번역한 책이다보니 읽기 힘들었다. 평소 번역투가 싫어서 번역서는 읽어 버릇하지 않아서 더 그랬다. 몇 번이고 다시 읽은 문장이 많았고 다시 읽은 뒤에도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도 있었다. 아직 번역서를 읽을 내공이 아닌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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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7~2016.1.3
정말 잔인한 소설. 너무 잔인해 중간에 그만둘까 생각하기도 했다.
특히 인간이 개를 학대하는 장면이 읽기 힘들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내 무릎 위 또는 옆에서 잠들어 있는 여름이를 대입하게 됐다.
개들이 불쌍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 책을 읽은 후 무엇보다 또렷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살아있는 모든 것의 존귀함이다.
인간과 동물. 어떤것의 가치가 더 높고 낮다고 평가할 수 없다. 모두 살고싶어하는 생명일 뿐이다. 전염병이 돌자 자신이 기르던 반려견마저 전염병 소굴로 던져버리는 잔인함. 작가는 인간을 제대로 꿰뚫어 보았다. 자신의 생명을, 생존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수단화하는 잔인함.
하지만 그건 개도 마찬가지다. 개도 무엇보다도 살고 싶어한다. 개의 살아남고자 하는 욕구는 `링고`를 통해서 표현된다. 링고가 사람인 양 묘사된 링고의 생각과 내면은 독자로 하여금 링고도 너와 같은 생명인데 어떻게 이 생명을 가볍게 여길수 있겠냐고 자문하도록 한다. 실제로 읽는동안 링고가 그저 개로만 생각되지 않았다.
자신의 생명이 일순위인 인간이지만 지옥같은 상황에서 인간을 비롯한 생명을 구원할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일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소설 속 구원자는 재형이다.
그는 과거 아이디타로드에서 겪은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다. 그로 인해 화양으로 돌아와서 속죄하는 삶을 살아간다.
수의사로서 수많은 동물의 삶을 구하는 구원자, 뿐만 아니라 기준의 목숨을 살리고 윤주가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아주는 구원자.
속죄해야할 대상인 개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까지 구원의 손길을 뻗었다.
만약 내가 사는 곳에 빨간눈괴질이 번지면 나도 우리 여름이를 조용히 내다 버릴까? 절대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내가 적어도 나의 반려견에게만은 따뜻한 사람이라는 점에 안도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기르는 강아지가 아닌 다른 동물의 생명도 나의 생명과 동등하게 대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나도 인간인지라 나의 생명이 최우선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의식적으로라도 내가 아닌, 인간이 아닌 생명을 깔보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나에게서 소설 속 인물들의 잔인함을 보게 될까 봐 두렵다.

p.342
˝살아나갈 비결을 알려줄까. 단순하지만 틀림없는 비결인데. (중략) 결론부터 알려주면 살고싶어하면 돼. 물론 막연히 살고싶어해선 안되지. 친구이자 연인이고 가족이었던 개들을 늑대 먹이로 줘버리고라도 나는 살겠다고 몸부림쳐야 해. 사람은, 사람 목숨은 지상의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궁극의 가치니까. 개 따위는 세상에 쌔고 널렸으니까. 안그래?˝

p.449
˝누구한테 당연한 일이 누구한텐 목표가 되기도 해요.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깨달은 건데, 나는 후자로 태어났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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