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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서 내 소리가 제일 커! 우리 아기 오감발달 팝업 사운드북
샘 태플린 지음, 크레이그 셔틀우드 그림, 송지혜 옮김, 앤서니 마크스 / 어스본코리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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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본코리아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제품을 제공받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희 아이는 현재 8개월로, 6개월 무렵 처음 어스본 사운드북을 접한 이후 지금까지 정말 잘 보고 있어요. 그런데 팝업북은 아직 접해본 적이 없어서 이번 신간 <동물원에서 내 소리가 제일 커!>는 더욱 기대되었답니다.

책을 펼치자 크고 알록달록한 그림과 함께 독특한 동물 소리들이 나와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집중하더라고요. 그리고 마지막 장, 대망의 팝업!
코끼리가 “뿌우우~” 하고 등장하자 눈썹을 꿈틀거리며 깜짝 놀라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요.
입체적인 부분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걸 보니 무척 신기한가 봐요.

<동물원에서 내 소리가 제일 커!>는 단순하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 흥미로운 사운드, 그리고 아이의 오감을 자극하는 팝업 요소까지 더해져 아기 책육아 입문이나 사운드북 입문용으로 정말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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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2~2016.03.25

책으로도 영화로도 참 유명한 은교. 남들 다 읽을 때 안읽고 이제서야 읽었다. 나에게 은교는 영화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영화를 본건 아니지만 워낙 말이 많았기 때문에, 대강 들은 영화 이야기로 책 내용을 예상하고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을 때도 영화 속 인물을 자연스럽게 대입했다. 좋은건지 나쁜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크게 독서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책은 초반까지는 이해하기 쉬웠다. 은교를 사이에 두고 사제지간인 서지우와 이적요가 서로 질투하는 사랑 싸움처럼 보였다. 질투심 뿐만 아니라 열등감도 발견할 수 있었다. 서지우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스승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며 그에게 계속해서 멍청이 취급 당한다는 사실에, 이적요는 서지우의 젊고 건강한 육체 뿐 아니라 그의 젊음 자체에서 열등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어 갈수록 점점 복잡해지고 너무 추상적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야기는 단순한 애정의 문제가 아닌 더 깊은 내면의 문제까지 나를 끌고 갔다. 이적요는 은교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의 욕망을 옥죄어 살아왔다. 자신을 이성적으로 다스렸고 그것이 당연하다 여겼다. 하지만 은교를 만나고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본능이 이끄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감각으로부터 영혼으로 전이되는 사랑도 은교를 통해 처음 경험한다. 그에게 은교란 젊음에의 이끌림이고 욕망이고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보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죽음의 문턱에 서있는 관을 닮은 노인에 불과해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한다. 반면 젊은 서지우는 달랐다. 서지우가 은교에게 키스하고 가슴을 만지는 장면, 심지어는 정사장면까지 목격하면서 그는 점점 미쳐간다. 

눈이 내리고, 그리고 또 바람이 부는가. 소나무숲 그늘이 성에가 낀 창유리를 더듬고 있다.
관능적이다.
p.13

˝별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누가 자네에게 가르쳐주었는지 모르지만, 별은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추한 것도 아니고, 그냥 별일 뿐이네. 사랑하는 자에게 별은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배고픈 자에게 별은 쌀로 보일 수도 있지 않겠나.˝
p.30

모르는 것은 아냐. 왜 이렇게 문장을 쓰면 쓸수록 네가 더 멀어지는가.
너를 사랑한다고, 사랑했다고 차마 말할 수 없는 근원을, 정말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너와 나 사이 그 가파른 시간의 단층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단 말인가. 별빛처럼 단번에 네 눈, 머리, 가슴에 나의 열일곱 시절을 박아넣어, 너의 온 정신을 적실 길이 있다면 좋으련만.
p.109


서지우는 자신의 이름으로 이적요의 글을 발표함으로써 자신의 이름 뿐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까지 빼앗겼다. 작가로서 인터뷰를 할 때도 온전히 자신만의 대답을 할 수 없다. 글을  계속 쓰고는 있지만 선생님의 글을 따라갈 수가 없다. 형편없기 그지없다. 얼마나 참담하고 무력한 기분일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그는 은교를 향한 스승의 욕망을 발견하고 나서 자기 자신을 그에게 빼앗긴 것처럼 은교마저 빼앗길까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일부러 스승의 평판을 지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그에게 모욕을 주기도 한다. 대놓고 은교는 겨우 여고생에 불과하다며 면박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자신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스승님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사실에 괴로워 하기도 한다.

나는 그 무렵, 분명히 연애를 하고 있었고, 내게 연애란, 세계를 줄이고 줄여서 단 한 사람, 은교에게 집어넣은 뒤, 다시 그것을 우주에 이르기까지, 신에게 이르기까지 확장시키는 경이로운 과정이었다. 그런 게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다면, 나의 사랑은 보통명사가 아니라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고유명사였다.
p.202~203


하지만 그들은 은교를 사랑해 다투고 질투하고 분노한 것이 아니라 서로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런 비극에 다다랐다. 책에서도 은교는 둘이 서로를 너무 사랑해 오히려 자신이 소외감을 느낄 정도였다고 표현한다. 이적요는 진심으로 서지우를 아들처럼 아꼈고 때론 안타깝게 여기기도 했다. 서지우가 죽고 난 뒤 이적요는 스스로를 집이라는 무덤에 가두고 매일 술로 지새우며 죽음의 마차를 재촉하는 모습을 보인다. 분명 죄책감이었을 것이다. 특히 서지우가 죽기 전 그의 코란도를 타러 갈때 자신도 모르게 뛰쳐나가 서지우를 부르는 장면에서 그가 서지우를 사랑했음을 확실히 알았다. 서지우 역시 그를 아버지처럼 극진히 모셨다. 그는 스승의 자신을 향한 사랑을 은교에게 빼았겼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죽기 전 스승이 차를 일부러 고장냈다는 사실을 알고 아주 슬프게 울었다는 대목에서 사랑하는 스승에게 버려진 그의 감정이 여실히 느껴졌다.

은교. 아, 한은교. 불멸의 내 `젊은 신부`이고 내 영원한 `처녀`이며, 생애의 마지막에 홀연히 나타나 애처롭게 발밑을 밝혀주었던, 나의 등롱 같은 누이여.
p.399




많은 사람들이 은교를 `야한 소설` 혹은 `야한 영화`로만 알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읽는 걸 보고 한 아이는 대놓고 야한 것 읽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은교는 야한 소설이 아니다. 그렇게만 치부해 버리기엔 이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너무도 많다. 난 이 책을 읽고 젊음, 늙는다는 것, 욕망, 사랑, 죽음에 대해 아주 깊게 생각해봤다. 늙은이의 욕망을 천박하다고 여긴 나 자신이 오히려 천박한 사람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고 진정한 사랑의 형태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봤다. 죽음이라는 것이 끝없이 두렵고 무서워지기도 했고 생의 끝에 맞이해야만 하는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정답은 없으니 지금도 그저 끊임없이 생각할 뿐이다. 나는 분명 이 책의 메시지를 백퍼센트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머릿속이 뒤죽박죽이고 적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은교, 욕망, 당나귀, 노인, 죽음, 사랑과 같은 수많은 단어들이 머릿속을 마구 헤집고 다닌다. 절대 정리가 되지 않을 것 같다. 나중에 은교를 떠올렸을 때도 머릿속이 혼란스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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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1~2016.03.21

본격적으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니까 책 한 권을 읽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것저것 할 일도 많고 학교 왔다갔다 하는 데만 해도 온몸의 진이 다 빠져버려서 쉬느라 바쁘다. 이번 책 <상실의 시대>는 길이도 길고 읽는 도중에 과제까지 겹쳐서 더 오래 걸리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책`이라 칭하는 이 책. 나는 이제야 읽었다. 하지만 충분히 재밌었음에도 인생책이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한 이야기랄까? 책에서 나오코인가 레이코가 이 세상 사람들 모두 비정상이며 소수만이 그 사실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나에겐 이 책 속의 인물들이 그렇게 느껴졌다. 책 속 인물들 모두 비정상같았다. 기즈키도 나오코도 레이코도, 화자인 와타나베 역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기준에서 정상이라고 칭할 수 있는 인물은 절대 없다. 그렇지만 모두 비정상적이라 인상적이다. 이상한 인물들은 나를 계속 생각하게 했다. 그들이 왜 이런 생각을 하고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서.

죽음은 삶의 반대편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p.49

˝고독을 좋아하는 인간이란 없는 법이야.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을 뿐이지.
그런 짓을 해봐야 실망할 뿐이거든.˝
p.93

제목을 상실의 시대로 정한 건 정말 이 출판사의 신의 한수라고 생각한다.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인데, 원제보단 상실의 시대란 제목이 더 마음을 움직인다. 그리고 내용이 궁금하게 한다. 실제로 문학사상사의 <상실의 시대>의 표지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서 민음사의 <노르웨이의 숲>을 구매하려다가 제목 때문에 이 책을 구매했다. 그만큼 제목이 마음에 든다. 실제로 책 속 와타나베는 사랑하는 사람을 계속해서 상실해간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주위 사람들도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고 또 다른 무엇인가를 서서히 상실해간다. 현실에서도 그렇다. 모두들 죽기 전까지 하나씩 상실해 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힘들어하고 방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에서 뭔가를 새롭게 배우고 털고 일어난다. 그것에서 얻은 교훈 덕에 다음에 찾아올 상실의 순간에는 괴롭지 않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똑같이 괴롭고 또 새로운 걸 배운다. 이것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내가 바라는 건 그저 내 마음대로 하는 거야. 완벽하게 내 마음대로 하는 것. 가령 지금 내가 자기에게 딸기 쇼트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하면 말이야, 그러면 자기는 모든 걸 집어치우고 그걸 사러 달려가는 거야. 그리고 헐레벌떡 돌아와서 `자, 미도리, 딸기 쇼트 케이크야` 하고 내밀겠지. 그러면 나는 `흥, 이런 건 이제 먹고 싶지 않아` 그러면서 그걸 창문으로 휙 내던지는 거야. 내가 바라는 건 그런 거란 말이야.˝
p.129

˝네가 너무 좋아, 미도리.˝
˝얼마만큼 좋아?˝
˝봄철의 곰만큼.˝
(중략)
˝봄철의 들판을 네가 혼자 거닐고 있으면 말이지, 저쪽에서 벨벳같이 털이 부드럽고 눈이 똘망똘망한 새끼곰이 다가오는 거야. 그리고 네게 이러는 거야. `안녕하세요, 아가씨. 나와 함께 뒹굴기 안 하겠어요?` 하고. 그래서 너와 새끼곰은 부둥켜안고 클로버가 무성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온종일 노는 거야. 그거 참 멋지지?˝
˝정말 멋져.˝
˝그만큼 네가 좋아.˝
p.355

˝우리는(정상인과 비정상적인 사람을 다 포함한 총칭이야) 불완전한 세계에 살고 있는 불완전한 인간들이야. 자로 길이를 재고, 각도기로 각도를 재서 은행 예금처럼 빡빡하게 살아갈 순 없어. 안 그래?˝
p.407


이 책은 참 섹스가 많이 나온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어떤 `공식적으로 출판된` 책보다 자세히, 자주 나온다. 하루키는 섹스에 대해 굉장히 개방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와타나베는 밤늦게 번화가로 나가 마음에 맞는 여자와 수차례 원나잇을 한다. 나오코를 사랑하고 있는 와중에도 말이다. 물론 나중에는 나오코와의 관계를 잊지 않기 위해 원나잇도, 미도리와의 잠자리도 하지 않지만. 거기까지는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와타나베와 레이코가 소박하게 나오코를 위한 즐거운 장례식을 하고 난 뒤에 한 섹스는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다. 정말 경악했다. 그때 그 둘이 한 섹스는 위로의 의미였을까? 지친 서로를 안아주고 품어주는 위로의 행위?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난 정말 모르겠다. 섹스가 단순이 쾌락적 행위가 아닌 서로 교감하는 행위임은 분명히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섹스는 그것보다 더 넓은 의미의 행위인 듯 하다. 어쨌든 내 입장에서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의미임은 분명하다.

솔직히 아직까지 `상실`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느껴본 적은 없다. 물론 사람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시간이든 내가 상실한 것들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크게 충격을 받거나 괴로운 적은 없다. 그저 당연스레 지나가는 것이라 여겼다. 언젠간 나도 상실의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는 순간이 오겠지. 끝이 없을 것처럼 괴로워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빠져나오는 경험도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문득이 책이 떠오를 것 같다. 그리고 그땐 와타나베를, 그리고 그 외 인물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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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3~2016.1.31
책 제목처럼 단순하게 제목에 끌렸다. 항상 새로운 책이 뭐가 나왔나 기웃기웃거리는데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나 뿐이 아니겠지만 사는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복잡한 쪽에 가깝다. 그래서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좀 단순하게 살고 싶어서.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에 바로 비치 희망 신청을 했고 첫번째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어떤 내용을 다루는지 전혀 모른 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내용이 많이 당황스러웠다. 이건 단순한 정도가 아니라 무의 정도의 삶이었다. 저자는 자신을 미니멀리스트, 즉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위해 줄이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P.53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스트는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물건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 소중한지를 알고 그 외의 물건을 과감히 줄이는 사람이다.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소중한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미니멀리즘에 정답은 없다.

삶의 이런저런 고민을 내려놓고 나에게만 집중하며 현재를 살도록 조언하는 자기계발서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보다는 깊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소중한 물건만을 제외한 모든 물건을 버리고 그것을 통해 현재를 살고, 나와 내 주변 사람에 집중하고, 행복을 얻을수 있다는 이야기. 초반엔 미니멀리즘의 정의, 물건을 버리는 법에 대해 설명하고 미니멀리스트가 됨으로써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말해준다.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미니멀리스트가 된것 뿐인데 이렇고 저런 좋은 일들만 벌어졌어요 라는 비약적인 말로 들려서 처음에는 거부감이 든게 사실이다. 하지만 참고 읽다보니 분명히 설득력 있었다. 특히나 감사일기라든지 인간은 언제나 현재를 살 수 밖에 없다는 부분에서는 완전히 설득됐다. 진지하게 감사일기를 써보는 것까지 긍정적으로 고려중이다.

P.250
내일도, 다음 주도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일이 와도 `지금`이다. 1년 후도 다가오겠지만 그 역시 현재다. 모든 것은 지금이다.

이렇게 써놓으니 쉬워보이지만 소중한 물건을 제외하고 버리는 첫번째 단계가 가장 어렵다. 구정 이후로 이사할 예정이라 이 책을 읽음과 동시에 집을 정리했는데 버린다는 것 자체가 아까웠다. 제대로 써본 적 없는 물건이 구석에 있기도 했고 갖고싶어서 샀지만 마땅히 쓸 방법을 몰라 방치해둔 물건도 많았다. 분명 전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고 없어도 상관없다. 그런데 왜이렇게아까운 마음이 드는지.. 결국 큰맘먹고 버렸지만 정말 힘들었다. 결심도 그렇지만 하나하나 분리수거해 버리는 과정은 정말 끔찍헀다. 그날따라 어찌나 추운지 버리다 손발이 다 얼어버릴 뻔 했다. 그래도 버리고나니 분명 속이 후련하다. 이제서야 내가 진짜 필요한 물건, 아끼는 물건이 뭔지 조금이나마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물건이 줄었다. 전에는 모든게 뒤죽박죽 섞여있어서 물건의 위치, 내가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실제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또 버릴 물건이 생길 것 같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고싶어서 흉내내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필요한 물건만 가지는 삶의 방식이 확실히 좋아보인다. 작가가 말한 미니멀리스트가 됨으로써 얻은 것들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하지도, 믿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느정도는 분명 타당한 말이다. 속는 셈치고 조금이나마 따라해보려 한다. 마침 이사가 잡혀있기에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분명 불가능했을거다. 이런것도 우연의 일치겠지만은.

P.41
태어났을 때 우리는 누구나 미니멀리스트였다

토익 시험이 임박해 그것을 준비하면서 평소 책읽는 것만큼의 열정은 쏟아붓지 못한 책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설득력있는 미니멀리스트의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도무지 정리라고는 모르고 물건 욕심이 많은 동생한테 특히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만화책도 간신히 읽는 아이라 읽지는 않을테니 그저 내 소망이지만. 이사가는 날, 이 책 덕분에 쓸모없는 물건은 과감하게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만 해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충분히 있을 것 같다. 물론 감사일기까지 쓰는 내가 된다면 더 좋겠지만.

+)
P.41
나 자신의 가치는 갖고 있는 물건의 합계가 아니다. 물건으로 행복해지는 건 아주 잠깐 동안일 뿐이다.

P.69
우리는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면 금세 그 상황에 익숙해진다. 익숙해진 일은 점점 당연한 일이 되고, 당연한 일은 이내 싫증이 난다.


P.74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내면의 자극뿐이다. 차이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P.92
오랜 세월이 지나 인간 사회가 전반적으로 풍족해지면서 어느새 물건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즉,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내면의 깊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

P.93
물건의 가치가 자신과 동등해지고 심지어는 자신의 주인이 되어버리는 현상에 대해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물건은 당연히 내가 아니며 내 주인도 아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단지 도구일 뿐이다. 누군가의 시선을 위해 존재하는 물건이 아닌,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만 소유하는 것이 이런 현상을 막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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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4~1.19
책에 관심이 생긴 이후 독서의 폭을 넓히기 위해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이벤트, 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자리에도 참여했고 현재는 창비에서 기획한 책읽는당에 가입해 다양한 사람들과 책을 읽고 있다.
눈가리고 책읽는당은 책읽는당에 참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된 이벤트인데, 운이 좋게도 100명 안에 선발되어 저자, 제목이 모두 가려진 책을 받아 읽었다. 책의 단서는 `구두, 10 그리고 내성적인`의 3가지다. 구두는 첫 번째 단편소설의 제목, 10은 전체 소설의 수, 내성적인 역시 수록된 소설 중 하나인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소설집들이 그렇듯 이 책 역시 10편의 단편들을 관통하는 공통된 무언가가 있다. 소설들은 모두 한 인물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내가 지금까지 읽은 어떤 책들 보다 가장 상대방의 입장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간혹 두 인물이 번갈아가며 이야기 할 때가있지만, 전적으로 특정한 화자 입장의 이야기만 알 수 있다.) 모든 화자가 공통적으로, 물론 인간이 그런 존재지만, 자신이 보고싶은대로 보고 믿는대로 보는 경향이 심했다. 가사도우미 면접을 보러 온 여자를 자신의 자리를 꿰차려 한다고 생각하여 미워하거나 불륜커플, 젊은 아가씨를 꼬시는 불량한 남자를 보고 아내와 딸을 떠올려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그들에게 분노하는 모습, 남편의 직장동료가 내뱉은 달콤한 말(당신은 드라마나 보는 다른 여자들과 다르다든지, 어떻게 그렇게 어려운 책을 밑줄도 없이 읽었냐든지)에 현혹되어 갑자기 지적인 여성을 흉내내기 시작하는 모습 등이 그렇다. 물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나`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왠지 그들이 큰 오해를,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한마디 변명도 하지 못하고 `나`에 의해 이리저리 편집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알고싶다.
또한 공통적으로 `우월감`이라는 감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구두`에서 `나`가 면접을 보러 온 여자를 대상으로 느낀, 자신만이 공유할 수 있는 남편과의 시간을 통한 우월감. `팜비치`에서 자신을  늘씬한 아내에 비해 늙고 뚱뚱하다고 생각해 위축되어 있었지만 호텔 앞 연주회에서 언젠가 읽은 책 속 인물인 한스가 되어 문제를 해결한 뒤 `나`가 느낀 상대적 우월감. `틀니`에서 항상 존경스럽기만 했던 남편이 틀니를 뺀 모습을 본 뒤로 전혀 남편을 존경하지 않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주고 싶은 이상한 마음까지 생긴 `나`의 우월감.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에서 어느 순간 작가님과의 관계의 열쇠를 자신이 쥐고 있다고 느끼고 그녀를 당혹스럽게 만들어 결국엔 관계를 멀어지게 한, 어쩌면 종이칼로 무서운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를 우월감. 우월감이라는 단어가 적절한 선택인지, 모든 이야기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감정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 떠오르는 공통된 감정은 우월감이다. 이 감정도 어쩌면 위에서 말한 자기가 보고싶은대로 보고 믿는대로 보는 성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어떻게 느끼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이미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자신이 믿는대로 만든 세계에 자기 스스로 갇혀버리기 때문에 실제 관계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마음대로 상하관계, 우월함과 열등함을 평가한다.
이것을 마냥 잘못됐다고 할 수 없다. 어쩌면 모든 인간에게서 보편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내가 보고자 하는 대로 보고 믿는 대로 본다. 나에게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번 걸러 받아들인다. 나의 신념과 맞지 않으면 거부하거나 왜곡한다.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도 내 마음대로 `내가 쟤보단 낫지` 라든지 `참 존경스럽다`는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 그 판단은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될 것이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왜곡된 나의 판단으로 인해 내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책을 읽으면서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느낌이 비슷하다. 그래서 아마도 이 책을 쓴 작가는 비교적 젊은 작가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또, 문장이 이해하기 쉽고 빠르게 읽혔다. 원래 글을 좀 빨리 읽는 편이긴 하지만 재밌기도 하고 괜히 어렵게 꼰 문장이 없어서 편하게 읽었다.
보통 책을 읽은 뒤, 마지막에 부록처럼 달린 평론을 읽고 해석의 방향을 잡곤 하는데 이 소설은 어떠한 정보도 주어진 것이 없어 정말 내 마음대로 소설을 해석하고 이해했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생각해보면 고등학생 때, 한창 수능공부에 열심일 때는 문학을 정해진 방향으로 해석하고 그걸 점수매긴다는 것이 정말 싫었다. 문학은 다양한 해석이 나와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는데 수능이 뭐라고 그것을 막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수능이 끝난 뒤 나는 누군가 정해놓은, 정답처럼 보이는 것을 따라 소설을 읽었다. 아이러니하다. 이제부터라도 그 습관을 고치려 노력해야겠다. 
25일이면 이 책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누가 쓴 어떤 제목의 소설일지 궁금하다. 내가 아는 작가라면 반가울 것이고 내가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작가여도 반가울 것이다. 글을 아주 재밌게 읽어서 다음부터는 자발적으로 찾아서 읽게 될 것 같다. 내가 얼마나 의미있는 책들을 놓치고 있는지 깨닫길 바라기에 전자보다는 후자이길 바란다.

p.111
그녀는 자신의 기분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혹은 그녀의 기분이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거나.

p.189
사람들은 간혹 자신을 이러저러한 사람이라고 설명하는데, 그건 아주 어리석은 짓이 분명하다.

p.205
여자를 만나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내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래도 되었기 때문에 어떤 짓들을 저질렀다는 사실이다.

p.207
 누군가는 내가 너무 쉽게 과거의 불행을 잊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인생에서 더 낫거나 덜한 것이 있을까. 그때 원했던 것과 지금 원하는 것, 그때 충족되지 못했던 것과 지금 충족되지 못한 것이 있을 뿐이다.

+)최정화 <지극히 내성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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