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4~1.19
책에 관심이 생긴 이후 독서의 폭을 넓히기 위해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이벤트, 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자리에도 참여했고 현재는 창비에서 기획한 책읽는당에 가입해 다양한 사람들과 책을 읽고 있다.
눈가리고 책읽는당은 책읽는당에 참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된 이벤트인데, 운이 좋게도 100명 안에 선발되어 저자, 제목이 모두 가려진 책을 받아 읽었다. 책의 단서는 `구두, 10 그리고 내성적인`의 3가지다. 구두는 첫 번째 단편소설의 제목, 10은 전체 소설의 수, 내성적인 역시 수록된 소설 중 하나인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소설집들이 그렇듯 이 책 역시 10편의 단편들을 관통하는 공통된 무언가가 있다. 소설들은 모두 한 인물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내가 지금까지 읽은 어떤 책들 보다 가장 상대방의 입장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간혹 두 인물이 번갈아가며 이야기 할 때가있지만, 전적으로 특정한 화자 입장의 이야기만 알 수 있다.) 모든 화자가 공통적으로, 물론 인간이 그런 존재지만, 자신이 보고싶은대로 보고 믿는대로 보는 경향이 심했다. 가사도우미 면접을 보러 온 여자를 자신의 자리를 꿰차려 한다고 생각하여 미워하거나 불륜커플, 젊은 아가씨를 꼬시는 불량한 남자를 보고 아내와 딸을 떠올려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그들에게 분노하는 모습, 남편의 직장동료가 내뱉은 달콤한 말(당신은 드라마나 보는 다른 여자들과 다르다든지, 어떻게 그렇게 어려운 책을 밑줄도 없이 읽었냐든지)에 현혹되어 갑자기 지적인 여성을 흉내내기 시작하는 모습 등이 그렇다. 물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나`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왠지 그들이 큰 오해를,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한마디 변명도 하지 못하고 `나`에 의해 이리저리 편집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알고싶다.
또한 공통적으로 `우월감`이라는 감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구두`에서 `나`가 면접을 보러 온 여자를 대상으로 느낀, 자신만이 공유할 수 있는 남편과의 시간을 통한 우월감. `팜비치`에서 자신을 늘씬한 아내에 비해 늙고 뚱뚱하다고 생각해 위축되어 있었지만 호텔 앞 연주회에서 언젠가 읽은 책 속 인물인 한스가 되어 문제를 해결한 뒤 `나`가 느낀 상대적 우월감. `틀니`에서 항상 존경스럽기만 했던 남편이 틀니를 뺀 모습을 본 뒤로 전혀 남편을 존경하지 않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주고 싶은 이상한 마음까지 생긴 `나`의 우월감.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에서 어느 순간 작가님과의 관계의 열쇠를 자신이 쥐고 있다고 느끼고 그녀를 당혹스럽게 만들어 결국엔 관계를 멀어지게 한, 어쩌면 종이칼로 무서운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를 우월감. 우월감이라는 단어가 적절한 선택인지, 모든 이야기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감정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 떠오르는 공통된 감정은 우월감이다. 이 감정도 어쩌면 위에서 말한 자기가 보고싶은대로 보고 믿는대로 보는 성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어떻게 느끼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이미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자신이 믿는대로 만든 세계에 자기 스스로 갇혀버리기 때문에 실제 관계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마음대로 상하관계, 우월함과 열등함을 평가한다.
이것을 마냥 잘못됐다고 할 수 없다. 어쩌면 모든 인간에게서 보편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내가 보고자 하는 대로 보고 믿는 대로 본다. 나에게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번 걸러 받아들인다. 나의 신념과 맞지 않으면 거부하거나 왜곡한다.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도 내 마음대로 `내가 쟤보단 낫지` 라든지 `참 존경스럽다`는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 그 판단은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될 것이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왜곡된 나의 판단으로 인해 내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책을 읽으면서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느낌이 비슷하다. 그래서 아마도 이 책을 쓴 작가는 비교적 젊은 작가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또, 문장이 이해하기 쉽고 빠르게 읽혔다. 원래 글을 좀 빨리 읽는 편이긴 하지만 재밌기도 하고 괜히 어렵게 꼰 문장이 없어서 편하게 읽었다.
보통 책을 읽은 뒤, 마지막에 부록처럼 달린 평론을 읽고 해석의 방향을 잡곤 하는데 이 소설은 어떠한 정보도 주어진 것이 없어 정말 내 마음대로 소설을 해석하고 이해했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생각해보면 고등학생 때, 한창 수능공부에 열심일 때는 문학을 정해진 방향으로 해석하고 그걸 점수매긴다는 것이 정말 싫었다. 문학은 다양한 해석이 나와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는데 수능이 뭐라고 그것을 막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수능이 끝난 뒤 나는 누군가 정해놓은, 정답처럼 보이는 것을 따라 소설을 읽었다. 아이러니하다. 이제부터라도 그 습관을 고치려 노력해야겠다.
25일이면 이 책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누가 쓴 어떤 제목의 소설일지 궁금하다. 내가 아는 작가라면 반가울 것이고 내가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작가여도 반가울 것이다. 글을 아주 재밌게 읽어서 다음부터는 자발적으로 찾아서 읽게 될 것 같다. 내가 얼마나 의미있는 책들을 놓치고 있는지 깨닫길 바라기에 전자보다는 후자이길 바란다.
p.111
그녀는 자신의 기분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혹은 그녀의 기분이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거나.
p.189
사람들은 간혹 자신을 이러저러한 사람이라고 설명하는데, 그건 아주 어리석은 짓이 분명하다.
p.205
여자를 만나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내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래도 되었기 때문에 어떤 짓들을 저질렀다는 사실이다.
p.207
누군가는 내가 너무 쉽게 과거의 불행을 잊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인생에서 더 낫거나 덜한 것이 있을까. 그때 원했던 것과 지금 원하는 것, 그때 충족되지 못했던 것과 지금 충족되지 못한 것이 있을 뿐이다.
+)최정화 <지극히 내성적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