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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과 아름다운 우주 ㅣ 승산의 대칭 시리즈 5
리언 레더먼.크리스토퍼 힐 지음, 안기연 옮김 / 승산 / 2012년 1월
평점 :
일반인에게는 좋은 책이다. 그러나 과학도에게는 항상 갈증이 날 수 밖에 없다. 그냥 현재 대칭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 물리학의 영역을 넓혀나가는지에 대한 트렌드에 대한 설명이 많지만, 그래도 읽다보면 그래도 좋은 책임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뇌터의 정리를 끊임없이 언급하면서도, 라그랑지안 등 해석역학을 통해 뇌터의 정리가 어떻게 이해되는지에 대한 수식이 전혀 없어, 깊이가 없다.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라, 이 사람은 수식을 가지고 어떤 접근을 해나가면서 세상을 이해하는지 엿보고 싶었는데, 이책도 좋은 책이긴 하나, 요즘 좋은 책들에서 언급한 내용이 여기서도 언급되고! 자주 다른 책들과 중복되는 내용이 많아, 어느 정도 과학을 하는 사람에게는 좀 지루한 면도 있다.
본인은 대칭이 세상을 이해하는 참된 법칙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철사를 휘어, 원으로 만들어 무한한 회전대칭을 만들기 위해서는, 희생되는 감춰진 진실들이 너무 많은 법이다. 둥그렇게 휘어진 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희생되어온 뭔가를 찾듯이, 본인은 빛의 속도도 그와 마찬가지로과 여긴다.
어차피 이 책을 사는 사람들은 과학을 좋아하는 부류이기 때문에, 본인의 연구논문-2를 남겨둔다. 아마, 과학을 좋아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열정이 깊은 과학도라면, 대칭과 아름다운 우주라는 책을 사서 본 것보다, 본인의 이 연구논문하나의 읽고나서 더욱더 많은 것을 얻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본인의 이 연구논문이 참이라면, 세상의 패러다임이 바뀔만큼 놀라운 연구이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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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 그리고 빛의 본질과 빛의 매질에 대하여...!!
[박상준 연구 논문-2] 시간과 공간 그리고 빛의 본질에 관하여..
하나의 파동이 나르는 에너지의 양은 파동의 진폭(Amplitude)의 크기의 제곱에 비례한다. 이것은 빛이라는 전자기파도 예외는 아니다. 전자기파의 에너지도 당연히 진폭의 크기의 제곱에 비례한다. 따라서, 전자기파의 일종인 빛의 에너지도 진폭의 크기의 제곱에 비례한다. 고전역학의 파동방정식에 따르면 그렇다. 그런데 양자역학이 크게 대두하고 나서는 빛을 광량자라 부르며, 빛의 에너지를 나타낼 때는 E=nhv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n: 빛 알갱이(광량자)의 수. h:플랑크 상수. v:진동수 ) 그런데 과연 빛의 본질을 광량자로 표현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인가?! 빛을 쪼여서 금속판으로부터 전자들을 튀어 나오게 할 수 있다. 이것이 광전효과이다. 그런데, 빛을 파동으로 생각하던 시절에, 금속판에 진동수가 적은 빛(파장이 긴 빛)을 아무리 강하게 비추어도 금속에서 전자가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때, 아인슈타인이 빛을 입자로 간주하고 광량자설로써 금속에서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을 설명했다. 즉, 아인슈타인이 광전효과를 빛을 입자로 다룸으로써 완벽히 설명해 내었다고, 그에게 노벨상이 수상된 것이다. 그런데, 과연 아인슈타인의 주장이 올바른가?! 빛은 힘을 나르는 입자인 보손입자라 전자와 같은 페르미온 입자처럼 파울리의 배타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보손입자인 빛은 얼마든지 같은 에너지 상태를 중첩하여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빛의 알갱이들이 동일 시간, 동일 장소에 많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레이저와 같은 것이다. 레이저로 빨간색을 띄는 빛을 아무리 강하게 금속판에 비추어봤자, 전자가 튀어나오지 않는다면, 전자가 금속판에서 튀어나오는 원인이 에너지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분명, 빛은 파동적 성격을 가지면서, 많은 빛들이 중첩되어 마치 하나의 알갱이(입자)처럼 동일시간, 동일 장소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런 명백한 물리적 현상을 무시하고, 금속판에 빛들이 도달할 때는, 파동적 성격은 나타나지 않고, 빛들은 알갱이(입자)처럼 행동한다는 아인슈타인의 광량자설이 과연 쉽게 납득이 가는가? 이것은 광전효과를 억지로 설명하려는 억지스러움이 있는 논리처럼 보이지 않는가?! 만약, 광전효과를 설명한 아인슈타인의 광량자설의 억지스러움이 거슬린다면, 당연히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자들은 여기서 멈칫하며 잠시 의문을 품거나, 곰곰이 연구를 해 볼 여지가 있다. 그 중에 한 사람에 본인도 속해있다.
전자기파의 에너지는 진폭의 제곱에 비례한다. 즉, 빛들이 중첩되어 에너지가 보강 간섭된 상태의 파동(빛)은 하나의 입자처럼 여겨도 된다. 즉, 전자가 금속판에서 튀어나오는 까닭이 에너지의 문제라면, 수많은 빛이 동일시간에 금속판의 동일 장소를 맞추었다면, 여러 개의 파동을 중첩하여 하나의 입자처럼 행동하는 파동의 진폭에 대해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에너지는 파동의 진폭의 제곱에 비례하고, 이 빛들의 묶음인 파동은 마치 하나의 입자처럼 동일시간에 동일장소를 두드릴 것이다. 즉, 전자가 튀어나오는 광전효과가 오직 에너지만의 문제라면, 전자는 튀어 나와야 하는 것이다. [[전자의 운동에너지= 빛의 에너지- 일함수(전자를 속박하는 힘) ]] 그런데, 튀어 나오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빛을 비추어 금속판의 전자가 튀어 나오는 것은 에너지만의 문제가 아니라, 더욱 더 깊숙이 감추진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가벼이 넘겨서는 안 된다.
이런 의문을 제기하면, 아인슈타인의 광량자설을 확고하게 믿고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빛이 금속판을 때릴 때는 빛이 입자처럼 행동해, 하나의 빛 입자가 전자하나를 때릴 뿐이야! 따라서, 그걸 믿으라고! 알았어? 의심하지 말라고!! 이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이 광전효과를 설명한 빛의 입자설인 광량자설인데, 이걸 부정하면 되는가! 하고 말이다.
좋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빛이 입자처럼, 한 번에 하나씩 전자를 때린다고 가정하자. 한마디로 말해, 전자의 운동에너지=hv(진동수 v인 빛입자 하나의 에너지) - W(전자를 속박하는 에너지))라고 놓자. 빛입자의 진동수가 4 이상이면 금속판에서 빛이 튀어나온다고 가정하자! 전자를 속박하는 에너지를 3.5라고 가정하자. 플랑크 상수 h=1로 가정하자.
진동수 4인 빛입자가 금속판에 부딪혔다. 그러면,
1*4-3.5=0.5 이다. 즉, 전자의 운동에너지가 0.5로 플러스다. 즉, 전자가 금속판에서 튀어나와 공기 중으로 날아간다. 물론, 진동수 1인 빛입자가 금속판에 부딪히면,
1*1-3.5=-2.5 이다. 즉, 전자의 운동에너지는 -2.5로 마이너스다. 한마디로 전자를 금속판의 양성자들이 속박하는 힘이 크다는 것이다. 이렇게, 진동수가 1인 빛입자가 아무리 많이 금속판에 부딪히더라도 금속판에서는 전자가 튀어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광량자설이다. 이런 식으로 광전효과를 설명했다고 한다. 빛은 보손입자로 중첩이 가능한데도 빛이 금속판과 부딪힐 때는 빛 입자가 한 번에 한 개씩 금속판의 전자와 부딪힌다는 것이다. 좀 찜찜하지 않은가? 이리되면 어떤 모순이나 의구심이 생기지는 않을까?
어떤 진동수를 가진 빛의 기본입자가 E=hv로 표현되고, 이 빛의 기본입자와 진동수는 같고 진폭이 큰 빛은 아인슈타인의 광량자설을 만족시키자면, 빛의 기본입자가 여러 개 모여(n개라 치자) 만들어진 것(E=nhv)이라고 간주할 수 밖에 없다. 즉, 진동수는 같고 진폭이 2배인 빛의 기본입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빛의 모든 광량자(빛의 기본입자)는 E=hv라는 구속 때문에, 모든 광량자(빛의 기본입자)의 진폭은 모두 동일하다. 진폭이 다른 것은, 어떤 광량자(빛의 기본입자)들이 뭉쳐서 만들어졌을 뿐이다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리되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빛이 파장이며 입자이듯! 물질도 입자이며 파동이다. 즉, 빛의 기본입자(광량자)는 모두 동일한 진폭을 가지고 단지 진동수만 틀리다면, 물질의 기본입자 또한 진동수만 틀리고 진폭은 동일해야 한다고 확장할 수 도 있다. 물질도 파동이기 때문에, 물질을 물질파로 다룬다면, 빛과 마찬가지의 논리가 적용되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물질파의 파장=플랑크상수/(질량*속도)에서, 질량은 입자의 기본입자(전자 등)의 질량만 영향을 줄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은 아마도 실험결과와 크게 어긋날 것이다.
빛이 전자기파의 집합인지, 광량자라는 에너지알갱이의 집합인지는 어느 누구도 아직까지는 알지 못한다. 즉, 빛(전자기파)의 본질에 대해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양자역학은 아무도 확실히 알 수가 없다고 한다.
[[ 네이버나 구글 등에서 "번개가 치면 엄청난 천둥이 들린다. 왜 그럴까?" 또는 "시공간의 변화가 천둥번개를 부른다." 라고 검색을 해보면, 본인의 연구논문이 뜰 것이다. 우선은 그것부터 읽어야 본인이 지금부터 전개하는 식에 대한 이해를 약간이라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11&dirId=1114&docId=750355&qb=7Iuc6rO16rCE7J2YIOuzgO2ZlOqwgCDsspzrkaU=&enc=utf8§ion=kin&rank=2&search_sort=0&spq=0&pid=gHhj1U5Y7v4ssbeNs0Rssc--406712&sid=T5YY3mwYlk8AAGHeAkk]]
빛은 시공간의 거리가 0 이다. 또한 빛은 전류(전하)가 없이 단지 전기장과 자기장으로 이뤄졌다.


평평한 시공간에서 빛의 시공간의 거리 ds=0 이다. 그리고, 빛의 전류=0 이다. 즉, 빛은,


이와 같은 특성이 있다. 3식과 4식을 정리하면,

이와 같은 식이 나온다. 시간거리라는 것이 자기장이라는 물리량과 관계가 있는 물리량임을 알 수 있다. 시간거리는 자기장의 회전(컬)에 비례하기 때문에, 자기장이 한 바퀴 돌면서 나오는 량이 시간거리(dt)과 관계있다. 빛은 자기장과 전기장의 회전하는 형태로 진행하기 때문에, 자기장의 한 바퀴 회전은, 빛의 파장과 주파수에 대한 정보를 찾는데 열쇠가 될 것이다. 즉, 자기장의 회전과 비례하는 시간거리는 과연 무슨 의미일까? 한 바퀴 회전하면 나타나는 거리라?? 설마, 시간거리가 빛의 파장과 진동수에 대한 정보를 숨기고 있었던 말인가!?
물론, 공간거리(dx)라는 것도 전기장이라는 물리량과 관계가 있는 물리량임을 알 수 있다. 이제 빛과 시간 그리고 공간이 대등한 물리량임을 알았다. 진공 중에서 빛의 속도는 아무리 빠른 우주선을 타고 측정을 해도 빛의 속도는 일정하게 관측이 된다. 따라서,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물리법칙은 항상 "빛의 속도는 불변하다."라는 불변성으로부터 자연에 존재하는 대칭성을 찾아왔다. 그런데, 빛의 속도의 불변성을 유지하기 위해 감춰지는 물리법칙이나 물리량이 있음을 역으로 생각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시간이나 공간이 단순히 어떤 물리량을 측정하는데 기반이 되는 매개변수가 아니라, 빛의 속도나 에너지와 같은 물리량임을 파악한 이 순간부터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깊은 새로운 성찰이 시도되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빛의 속도는 다음의 식에서 처럼, "빛의 속도= 공간거리/ 시간거리" 로 표현된다.

우리가 관측하는 빛의 속도는 분명 일정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관측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하여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킬려면, 관측 불가능한 영역을 탐험할 수 있는 "상상의 탐사장비"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위의 식을 보라. 물리량인 시간거리 dt와 물리량인 공간거리 dx를 보라. 이 물리량에 자유를 주고, 이제 관측 불가능한 영역에 발을 들여 넣어 보자.
빛의 속도가 불변이 아니라, 변한다는 가정을 하면, c의 값은 dx와 dt에 따라 멋대로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결국, dt와 dx의 값에 따라 멋대로 변하는 c의 값이, 현실에서는 보정되어 불변인 속도로 관측된다는 것이다. 즉, 어쩌면, 인간의 눈에는 전혀 관측되지도 않는 시간거리-공간거리로 표현되는 영역이 현실로 관측되는 빛의 속도 불변인 현실보다 더욱 더 깊은 진리를 감추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인간은 아직까지도 시간이 뭔지, 공간이 뭔지를 알지를 못한다. 이제 본인과 함께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 보자.
세로축은 시간거리인 dt 이고, 가로축은 공간거리인 dx라고 두자. 시간거리는 자기장이라는 자기력과 관련되어 있고, 공간거리는 전기장이라는 전기력과 관련되어 있다. 즉, 시간거리와 공간거리는 에너지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설마?! 시간거리와 공간거리를 곱한 면적이 에너지와 관련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지 않는가?
dt=1, dx=1 이라고 하면,
빛의 속도 c = 공간거리/ 시간거리 =1/1 =1 이 된다. 시간거리-공간거리에서 빛의 진동수는 dx/dt로 c와 동일하다고 간주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간거리는 자기장의 회전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시간거리 단위는 회전량과도 관련이 되어 있다. 즉, 시간거리 dt는, 한번 자기장이 회전(진동)하는데 걸리는 거리를 나타내거나, 한번 자기장을 회전시키는 근원이 되는 물리량일 수 있는 것이다. 즉, 빛이라는 것이 시간과 공간을 엮어 시공거리가 제로인 시간-공간-시공의 기하학형태를 만들어 낼 때, dt는 빛의 파장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그 외에도 더 얼마나 많은 정보를 담고 있을지는 알 수가 없으나, 분명, 시간거리 dt는 빛의 파장에 대한 정보를 만들어 내고 있다.
즉, dt=1 이고, dx=10이라면, 빛은 거리 1일때 한번 회전(진동)하면서 공간거리 10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dx=10이므로, 둘레가 1인 실패를 10번 감아야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c=dx/dt 이므로, 0=cdt-dx이다. 즉, dt=1, dx=10이라면, 0=c*1-10 이 되어, c가 10이 되는 것이다. 이 c의 역할이 시간거리를 몇 번 감아 공간거리에 도달시키느냐의 역할이다. 이것은 c의 역할이 진동수와 같은 성격도 가진다는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면, dt=1인 시간거리를 쭉 늘려, 공간거리 dx=10에 맞추는 역할을 빛이 한다고 생각해봄직도 하다.
자! 시간거리와 공간거리가 에너지와 깊은 관련이 있는 물리량임을 알아냈으니, 시간거리와 공간거리를 곱한 면적을 에너지에 비례하는 에너지량이라고 치자.
에너지= 비례상수*(시간거리*공간거리)
여기서, 비례상수는 논의의 편의상, 플랑크 상수 h라고 하자.
즉, h*1*1=1h . 에너지 =1h 이다. dt=1, dx=1의 시간-공간 상자에 들어가는 빛은 진동수=dx/dt=1 이며, c=1이다.

그림 5) . dt(세로축 시간거리)=1, dx(가로축 공간거리) =1, 에너지=h*1*1=1h
dt=1, dx=4 라고 하면,
c=4/1= 4 , 진동수=4 가 된다. 이것의 에너지는 h * 시간거리(1)*공간거리(4)=4h 이다. 여기서 앞으로의 논의의 편의성을 의해 비례상수를 h(플랑크 상수)로 놓았다는 것을 우선은 기억해 두자.
뭔가 그럴싸한 것 같지 않은가! 설마, 빛의 본질은 시간과 공간의 기하학적 형태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림 6) . dt(세로축 시간거리)=1, dx(가로축 공간거리) =4, 에너지=h*1*4=4h

그림 7) 빛의속도가 변하는 시간거리-공간거리 모델에서 dt=2, dx=2
dt=2, dx=2라면, c= 2/2 =1, 진동수=1 이 된다. 이것은 에너지는 h*2*2=4h 이다. 그림6와 그림7를 비교해 보면, 에너지는 둘 다 4h 이다.
[h* 시간거리 1 * 공간거리 4=4h] 와 [h* 시간거리 2 * 공간거리 2 =4] 로써 둘 다 에너지는 같다. 그런데, 뭔가 서로 모양이 틀리지 않은가? 에너지가 같아도 시간과 공간과 관련된 기하학적 형태가 다른 것 같지 않나!
만약, 4h 이상의 빛 입자(광량자)를 쬐이면, 금속판에서 전자가 튀어나온다면, dt=1, dx=4인 그림 6)과 dt=2, dx=2인 그림 7) 빛입자(광량자)는 둘 다 에너지가 4h이므로, 금속판에서 전자가 튀어나와야 한다. 그러나, 에너지=4h, 진동수=4인 그림 6)의 빛에서는 금속판에서 전자가 튀어 나왔으나, 에너지는=4h임에도 불구하고, 진동수=1인 그림 7)인 빛에서는 금속판에서 전자가 튀어 나오지 않는다.
그림 6)의 빛과 그림7)의 빛은 시간-공간거리에서 기하학적 형태가 분명하게 차이가 난다. 물론 진동수도 4와 1로서 틀리다. 설마! 금속판에서 전자가 튀어나오는 근본원인이 빛의 시간-공간의 기하학적 구조와는 관계가 없는 것일까?! 이제 본인과 함께 이것을 논의해나가자.
광전효과를 빛의 입자설인 광량자설로 해석해 낸 아인슈타인의 논리에는 큰 에너지를 가진 빛입자(광량자)를 맞으면, 전자가 나오고, 작은 에너지를 가진 빛입자(광량자)를 맞으면, 전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는 논리였다. 그런 논리로 인해, 빛의 파동적 성격과 빛이 보손입자라는 성격을 모조리 무시해 버린 것이다. 실질적으로 빛은 입자처럼 행동하지 않고, 파동처럼 행동한다. 레이저를 쏘아 수많은 빛을 중첩시켜 하나의 입자처럼 동일시간, 동일 장소를 두드릴 수 있는 것이다. 빛을 중첩시키면 진폭이 커다래진다. 물론, 진동수는 그대로다. 옅은 빨간 빛이 더욱 더 짙은 빨간 빛을 띈다. 그렇지만, 이 짙은 빨간 빛은 정말로 하나의 입자와 같다. 왜냐하면, 빛은 파동이며 힘을 전달하는 보손입자이기 때문이다. 즉, 진폭이 큰 진한 빨간 빛 입자와 진동수가 큰 옅은 파란 빛 입자의 에너지는 같을 수가 있다. 아니, 오히려 진폭이 큰 빨간 빛 입자가 옅은 파란 빛 입자보다 에너지가 클 수가 있다. 따라서, 에너지적 관점에서만 따지면, 빨간 빛 입자도 금속판을 두드려서 전자를 튀어나오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튀어나오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아인슈타인이 주장하는 광량자설을 마지 못해 받아들이고, 그에게 노벨상을 수여한 것이다. 진폭이 큰 진한 빨간 빛 입자는 수많은 옅은 빨간 빛 입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고, 빛을 입자라고 생각하면, 동일시간에 동일장소의 금속판의 전자를 2개의 광량자가 두드릴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빨간 빛 입자들이 두드려도 전자는 금속판에서 튀어나오지 않는다는 논리다. 한마디로 실험적으로 관측되고 있는 빛의 보강간섭효과 및 빛의 파동적 성격을 깡그리 무시해 버린 논리다. 이러한 억지스럼움이 있음에도 아인슈타인의 광량자설이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이유는, 광전효과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어느 누구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아래 그림에서 좌측의 녹색 그림은 빛의 속도의 불변성을 버려 버리고, 세로축을 시간거리과 가로축을 공간거리로 나타냈다. 우측의 빨간색 그림은 빛의 속도는 불변한다고 가정 하에 그린 그림으로, 가로축은 거리, 세로축은 진폭(amplitude)를 나타낸다. 시간거리-공간거리 그림에서 세로축은 시간거리(dt), 가로축은 공간거리(dx)라는 것과 구별하자. 광속이 변한다는 가정 하에서 그린 그림과 광속불변이라는 가정 하에서 그린 그림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광속이 변한다는 가정하에 c=dx/dt 로 광속을 표현하면, 광속도 c=dx/dt는 밑의 그림의 좌측에서 처럼, c는 다양하다. 그러나, 광속이 불변이라고 현실을 고려하면, 빛의 진동수와 진폭에 무관하게 빛은 일정거리만큼을 일정시간에 이동하는 모습이다. 빛은 진동수와 진폭과 무관하게 현실에서 1초에 30만km를 이동한다. 논의를 간단히하기 위해, 빛은 진폭과 주파수에 무관하게 일정거리만큼 이동한다고 가정하자. 밑의 그림 우측에서 일정거리를 4라고 놓았다. 세로축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좌측의 세로축과 달리 우축의 세로축은 진폭을 가리킨다.

광속이 변하는 시간거리-공간거리에서는 그림 g)에서 dt=1, dx=5일때 c=dx/dt=5, 진동수=5, 에너지 h*시간거리*공간거리=h*1*5=5h 이었다. 이것을 광속불변인 진폭-거리 그림에서는, 진폭=1, 거리=4 인 사각형 안에 진동수=5인 빛을 그려 넣어야 한다. 그러면, 에너지는 E=hv=h*5=5h이다. 에너지 측면에서 보면, 광속이 변하는 시간거리-공간거리 그림이나, 광속이 불변인 진폭-거리 그림이나 같다.
광속이 변하는 시간거리 -공간거리에서는 그림 d)에서 dt=2, dx=2일 때, c=dx/dt=2/2=1, 진동수=2/2=1, E=h*2*2=4h 이다. 그림 d)는 그림 e)를 시간거리 2배, 공간거리 2배로 늘려놓은 그림과 같다. 진동수는 같으면서, 에너지가 4배가 되는 꼴이다. 광속불변인 현실에서 관측되는 전자기파에서 이런 형태는 진동수는 그대로 둔 채, 진폭만 2배로 키우면 된다.
즉, 현실에서 관측되는 광속불변인 진폭-거리 그림c)에서는 진폭=2, 거리=4 인 사각형 안에, 진동수=1인 빛을 그려 넣어야 한다. 그래야만, 에너지 측면에서 같아지기 때문이다. 전자기파의 에너지는 진폭의 제곱에 비례한다. 즉, 현실에서 관측되는 진동수가 같은 빛의 진폭이 2배가 되면, 에너지는 2*2=4배가 된다. 왜? 갑자기 진폭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밖에 없었냐면, E=hv라 측면에서 에너지를 고려하면, dt=2, dx=2일 때, 진동수=1이므로, E=h*1이 되어, 에너지가 시간거리-공간거리 그림d)와 진폭-거리 그림 c)에서 틀리게 된다. 즉, 에너지를 같게 하려면, 진폭을 2배 크게 그려줘야 양측이 에너지 면에서 같아진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광량자설에 의하면, 광량자(빛입자 한 개)의 에너지는 E=hv로만 표현되어야 한다. 즉, 진동수가 1이면, 광량자(빛입자 한 개)의 에너지=h*1=h 인 것이다. 에너지 1h인 광량자 4개가 모인 빛입자들이, 진동수가 1이며, 에너지=1h+1h+1h+1h=4h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진폭=1, 진동수=1인 광량자를 입자처럼 생각해, 절대로 서로 위상을 일치시킬 수 없다고 하면, 물론 에너지는 E=4h가 된다. 그러나, 절대로 진폭=1,진동수=1인 b) 그림과 같은 빛과 닮은 꼴인 진폭=2, 진동수=1인 c) 그림의 빛(광량자)은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인슈타인의 광량자설로 광전효과를 설명해도 된단 말인가!
과연 이것이 타당한가?! 여기서 아인슈타인의 광량자설의 모순이 발견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진폭=1, 진동수=1인 에너지=1h인 광량자(빛입자) 2개를 입자로 간주해, 위상을 고려치 않고 아무렇게나 더하면, 어떻게 될까?
진폭과 진동수가 같은 빛을, 위상(phase)를 맞추지 않고 더하면, 에너지는 E=nhv식을 적용할 수 있다. 즉, 에너지가 1h+1h=2h이다. 물론, 광량자 2개를 더한 빛의 파동형태도 가지각색일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진폭=2, 주파수=1인 c) 그림의 빛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광전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빛을 입자로 간주한 광량자설에 의하면, 진동수는 동일한데, 진폭만 커진 빛에 대해서는 설명이 곤란한 면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빛을 파동으로 다루면, 진동수는 같으면서도 진폭이 2배가 되는 닮은꼴의 빛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그러나, 빛의 세기도 4배로 증가해서, 동일시간에 금속판의 동일장소를 두드릴 수 있게되어, 금속판에서 전자가 튀어나와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즉, 빛을 입자로 다루든, 파동으로 다루든 광전효과를 설명하려면 적지 않은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빛은 우리가 아직 찾아내지 못한, 아니 관측할 수 없기 때문에 접근조차도 하지 못한 영역에서 더욱 더 놀라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림 b)처럼, 진폭=1, 진동수=1인 빛에서, 단지 진폭만 2배로 커지게 만든 c)그림의 빛은
에너지세기는 어떻게 변할까? 진폭=1, 진동수=1인 빛보다 에너지세기가 4배 커지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폭만 2배로 변했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진폭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진폭이 2배 커지면, 에너지는 2*2=4배 커진다.
한마디로 말해서, 진폭=1, 진동수=1인 광량자를 2개를 위상을 일치시키고 더해야만, 그림 b)의 빛과 닮은 꼴인 그림 c)의 빛, 즉, 진폭=2, 진동수=1인 전자기파가 만들어진다.
즉, 진폭이 2배가 되었으니, 에너지는 어떻게 될까? 에너지는 진폭의 제곱에 비례한다. 즉, 에너지는 2*2=4배가 된다. 에너지=1h인 광량자 2개만 더했을 뿐인데, 빛의 파동적 성격에 의해 에너지가 2배가 아니라, 4배가 된다는 것이다. 빛을 입자로 간주한 아인슈타인의 광량자설에 의하면, E=nhv이다. 즉, 그림 b)처럼, 에너지가 1h인 광량자(빛입자 한 개)를 n=4개를 더해야만 E=4h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그림 b)의 빛과 닮은 꼴인 진폭=2, 진동수=1인 그림 c)의 빛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즉, 진폭=1, 진동수=1인 그림 b)의 빛(광량자)를 더해, 그림 b)와 닮은 꼴인 진폭=2, 진동수=1인 그림 c)의 빛을 만들어 내려면,
에너지가 1h인, 진폭=1, 진동수=1인 그림 b)의 광량자 2개를 더해서 에너지가 4h인 빛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위상을 일치시켜서 말이다.
진동수=1, 진폭=1인 E=1h인 빛(전자기파)의 위상을 일치시켜 4개 더하면, 실질적으로는 어떻게 되겠는가?
진폭은 4배만큼 커진다. 그러면, 에너지는 진폭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4*4=16배만큼 커지게 된다. 진동수=1, 진폭=1인 그림 b)의 빛(광량자)과 닮은 꼴의 빛, 그림 c)의 빛을 만들기 위해 진동수=1, 진폭=1인 광량자 4개의 위상을 일치시키면 에너지는 4h가 아니라, 16h가 되고, 위상을 일치시키지 않으면, 에너지의 세기는 4h가 되지만, 빛의 모양이 제멋대로가 된다.
광전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빛을 입자로 간주한 아인슈타인의 광량자설에는 이와 같은 모순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광전효과를 빛의 입자설로 설명한, 아인슈타인의 광량자설은 이렇게 에너지 측면에서 빛의 파동설과 입자설에서 모순을 만들어 낸다. 위상을 일치시키느냐 마느냐의 문제에 따라, 위상을 일치시키지 않은 빛의 진폭은 엉망진창이지만, 위상을 일치시킨 빛의 진폭은 광량자의 개수에 따라 진폭이 증가한다. 또한 위상을 일치시키지 않은 빛은 E=nhv처럼, 입자처럼 에너지의 세기를 구하기 위해 광량자의 개수를 더하기만 하면 되지만, 위상을 일치시킨 빛은 그렇지가 않다. 설마, 에너지 보존 법칙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아니면, 위상이 일치될 때는 우리가 모르는 에너지를 추가해주는 메카니즘이 있다는 것일까! 아무튼 에너지보존 법칙을 깨지 않으려면, 빛에는 우리가 모르는 뭔가의 메커니즘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광량자설을 조금 수정하여, 입자를 완벽하게 일치시켜 더할 수 있다고 치자. 진폭=1, 진동수=1인 그림 b)의 빛(광량자)를 2개를 위상을 일치시켜 더하면, 그림처럼, 진폭=2, 진동수=1 그림 c)의 빛이 완벽하게 만들어진다. 그런데, 진폭만 2배로 커지면, 에너지는 4배가 된다. 광량자설에 의하면, 에너지 E=nhv다. 즉, 에너지는 2배가 되어야 하는데, 4배가 되었다.
아무리 보안을 해도 광량자설이 좀 이상하지 않나? 그렇다면, 그림 c)의 빛이 광량자(빛의 기본입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림 c)도 광량자처럼 쪼갤 수 없는 빛의 기본입자로 존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즉, 그림c)의 빛도 여러 개의 빛의 기본입자(광량자)가 모여만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진폭=2, 진동수=1인 그림c)의 빛도 광량자처럼 하나의 빛입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폭=2, 진동수=1인 그림c)의 빛도 에너지가 4h이므로, 금속판의 전자를 튀어나오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않다면, 금속판의 전자를 튀어나오게 하는 진정한 이유는, 에너지 측면이 아니라, 우리가 관측할 수 없어서 아직까지 밝혀내지 못한 빛의 또 다른 본질에 있지는 않을까!
이렇게 되면, 광전효과를 설명하기 위해서 도입된 아인슈타인의 광량자설은 옳지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광량자설은 빛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광량자설은 틀렸다고 할 수 있다. 즉, dt=2, dx=2, E=h*2*2=4h인 시간거리-공간거리 모델이 빛의 참된 특성을 더욱 더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dt=2, dx=2인 빛을 시간거리-공간거리 모델에서 보면, 정사각형 모양이다. 에너지는 4h이지만, 모양이 정사각형이다. 그런데, 그림 f)에서처럼, 시간거리-공간모델에서 dt=1, dx=4, E=h*1*4=4h인 그림 a)의 광량자(빛)의 에너지도 4h였다.

본인이 만든 빛의 시간거리-공간거리모델에 의하면, 진폭=2, 진동수=1인 빛은 정사각형이다. 진폭=1, 진동수=4인 빛은 직사각형이다. 두 개의 빛은 에너지는 같다. 그런데 빛의 시간거리-공간거리 모델에서 정사각형 빛을 금속판에 쬐여주면 전자가 튀어나오지 않고, 직사각형 빛을 쬐여주면 튀어나온다. 물론, 빛의 속도가 불변이다라는 현실에서는, 빛의 시간-공간의 기하학적 구조를 전혀 알 수가 없다. 단지 관측되는 것은, 진동수와 진폭 그리고 에너지일 뿐이다. 즉, 빛의 속도가 불변이라는 현실에서 관측되는 물리량인 진동수, 진폭, 에너지의 측면으로써는 결코 광전효과를 설명할 수 없고, 빛의 진정한 모습을 파악할 수 없다.
지금까지 본인과 함께 논의해왔듯, 아인슈타인의 광량자설에는 모순이 있다. 위상을 일치 시킨 빛은 광량자가 여러개 더해진 것이든, 아니면 그 자체로 하나의 광량자일지도 모르든! 동일시간에 동일장소의 금속판을 두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빛의 속도가 불변한다고 관측되는 현실의 관측에만 초점을 맞추면, 진폭=2, 진동수=1인 빛과 진폭=1, 진동수=4인 빛의 에너지는 같다. 따라서, 큰 에너지의 빛입자가 동일시간에 동일장소를 두드리기 때문에, 금속판의 전자가 튀어나온다는 아인슈타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진폭=2, 진동수=1인 빛도 에너지가4h이므로, 진폭=1, 진동수=1인 광량자와 같이, 금속판의 전자를 튀어나오게 해야 한다. 그런데, 튀어나오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2가지 가정을 한 것이다. 첫 번째 가정은 빛은 입자다. 따라서, 빛들은 동일시간에 동일장소를 두드릴 수 없다. 즉, 빛 한 개의 입자만이 동일시간에 동일장소를 두드린다. 즉, 동일시간에 동일장소를 두드리는 것은 빛 한 개, 즉 광량자이다. 한마디로 질량을 가진 입자의 파울리의 배타원리에 따른 설명이다.
두 번째 가정은 금속판의 전자를 튀어나오게 하려면, 적은 에너지를 가진 광량자가 아무리 엄청나게 금속판을 두드려봤자, 전자를 구속하는 구속력보다 적은 에너지를 가진 광량자들은 전자를 튀어나오게 할 수 없다. 에너지의 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에너지의 질이 중요할 뿐이다. 어른 한명(어른 광량자)이 4h의 힘을 낸다고 가정하자. 어린이 한명(어린이 광량자)이 1h의 힘을 낸다고 가정하자. 어린이들이 수백, 수천이 모여, 돌을 던져봤자, 50미터 떨어진 절벽 저편 언덕으로 돌을 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되었나! 빛은 동일시간에 동일장소를 두드릴 수 있다. 빛의 파동적 성격을 부정하면 모순이 생겨버리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동일시간에 동일장소를 두드릴 수 있다보니, 드물겠지만, 어른 같은 어린이의 존재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키가 큰 어른과 달리, 옆으로 뚱뚱한 어린이의 힘이 어른과 맞먹는다. 그 뚱뚱한 어린이의 질량이 어른과 같고, 힘도 4h다. 그런데 힘이 똑같은데, 어른은 되고, 왜 어린이는 안되는가! 그렇다면, 에너지 말고도 뭔가 다른 요건이 있단 말인가!
"이곳은 위험하니, 어린이는 입장불가입니다. 어른만 입장하세요! 야! 너는 어린이니까 저리가라. 얼라(어린이)는 가라!!"
그렇다. 금속판을 두드려 전자를 튀어나오게 하는 원인이 동일시간에 동일장소를 두드리는 에너지라면, 진폭과 진동수가 다르다 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에너지는 스칼라양이다. 오직, 힘만이 중요한 것이다. 빛이 못생겼든 잘생겼든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금속판을 두드려 전자를 튀어나오게 하는 원인이 오직 동일시간에 동일장소를 두드리는 에너지의 문제라면, 금속판의 전자를 두드리는 빛이 여러 개의 빛의 덩어리인지 한 개의 빛의 덩어리인지에 관계없이, 동일시간에 동일장소를 얼마만큼의 에너지로 두드리냐가 중요할 뿐이다.
그러나! 어떠한가! 진폭=2, 진동수=1인 빛이 동일시간에 동일장소를 에너지 4h로 두드리면, 금속판의 전자는 튀어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진폭=1, 진동수=4인 빛이 동일시간에 동일장소를 에너지 4h로 두드리니 빛이 튀어나왔다.
즉, 금속판의 전자를 튀어나오게 하는 근본원인은 동일시간에 동일장소를 두드리는 에너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근본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빛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모르는 또 다른 야누스적 모습이 감춰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본인은 시간거리-공간거리로 나타나는 빛의 기하학적 형태라는 것이다. 빛의 속도를 변한다고 가정한 후, 본인이 만든 시간거리-공간거리 모델에서는 dt=2, dx=2 (빛의 속도 불변인 현실로 나타내보면, 진폭=2, 진동수=1)인 정사각형 모습의 빛과 dt=1, dx=4 (진폭=1, 진동수=4)인 직사각형 모습의 빛은 에너지는 같다. 그러나, 빛의 형태가 완전히 다른다. 하나는 정사각형, 하나는 직사각형!!
즉, 빛이 만들어내는 시간과 공간의 기하학적 모양에 따라, 금속판의 전자가 튀어나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도배장판을 하려고할 때, 좁고 긴 통로에 장판을 깔려면, 장판의 면적뿐만 아니라, 가져온 장판의 모양도 중요한 것이다. 빛의 본질이 시간-공간의 기하학적 모양과 면적에 있다면, 금속판에서 전자를 튀어나오게 하는 광전효과도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설명가능하다.
본인의 주장이 아인슈타인의 광량자설보다 더욱 더 논리적이고, 자연의 숨겨진 본질에 접근했다고 생각이 되지 않는가?!
본인이 주장하는 시간거리-공간거리로 빛의 본질을 설명하는 모델에서는 에너지 보존 법칙도 빛의 위상에 관한 문제도 온전히 설명이 된다. 진폭=1, 진동수=1인 빛 2개가 위상을 맞춰 더해지면, 진폭=2, 진동수=1인 빛이 된다. 즉, 에너지가 1h인 빛 2개를 더했더니 에너지가 4h인 빛이 되었으니, 에너지 보존 법칙을 만족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본인이 만든 빛의 시간거리-공간거리 모델에 의하면, 1h인 빛 2개의 위상을 맞춰주면, 덧셈효과가 아니라 곱셈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즉, 1h인 빛 2개의 위상을 맞춰준다는 것은, 시간거리를 2배 늘리고, 공간거리를 2배 늘리는 놀라운 메커니즘이 작동된다는 것이다.
시간거리(dt=1), 공간거리(dx=1)인 진폭=1, 진동수=1로 나타나는 빛 2개의 위상을 일치시켜준다는 것은, 시간거리(dt=2),공간거리(dx=2)인 빛의 기하학적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즉, 4h만큼의 에너지가 참여하여, 진폭=2, 진동수=1인 빛을 만든다는 것이다. 뭔가를 곱하는 것과 더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즉, 에너지를 곱하는 것과 더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우리는 지금까지, 에너지는 더하는 것으로만 알아왔다. 즉, 진폭=1, 진동수=1인 에너지 1h인 빛을 더하면, 그냥 덧셈법칙처럼 더하면 되었다.
그러나, 가끔, 우리가 알고 있던 것에서 위배되는 현상이 발견되곤 한다. 그때는 또 억지스럽게 알고 있던 것을 기반으로 해서 짜맞추는 시도를 하곤 한다.
이렇게 여러 개의 빛의 위상을 맞춰주면, 각각의 빛의 에너지를 더해서는 에너지 보존 법칙이 어긋난다. 그렇다. 에너지 보존 법칙은 덧셈으로만 설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에너지는 곱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껏, 자연의 무한한 신비에 비하면 정말로 하찮은 장비로 측정되는 물리량에 의존해 온 것이다. 인간이 지닌 장비는 빛의 에너지와 진동수 그리고 파장 등만 측정했을 뿐이다. 그라하여 인간은 덧셈법칙에만 의존해왔던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은 곱셈법칙과 그보다 더욱 더 신비한 다른 법칙은 쉽게 인간에게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레이저를 발사하지 않는다. 만약 그러했다면, 지구에 사는 인간들과 동식물들은 모조리 통구이가 되었을 테니까! 그러나, 분명, 인간이 밝혀낸 약간의 자연의 물리법칙만 조작을 해도, 레이저는 만들어진다. 과연, 얼마나 무궁무진한 진리를 자연은 숨겨두고 있는 것일까!
즉, 인간은 에너지보존법칙하면 에너지를 1+1=2다. 2+2+4다라는 방법으로 에너지를 다루는 현상만 관측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아는 것이 뭔가? 인간은 자연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하고 있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설마, 우주를 만들고 생명을 만들고, 생각을 만든 위대한 진리(자연)가 인간도 알고 있는 덧셈만 할 줄 아는가!
인간이 아는 곱셈! 어쩌면 인간이 알고 있는 모든 함수(로그함수, 적분함수, 미분함수 등)를 우습게 알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빛과 시간 그리고 공간에 대한 놀라운 감춰진 진리를 하나 알게 된 것인지도 모른 것이다. 빛과 빛의 위상을 맞추어주면, 더 이상 에너지를 더하는 방식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곱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아인슈타인의 광량자설이 옳지 않다고 가정 하에 E=nhv에서 대해서 좀 더 살펴보자.
진동수가 1인 광량자(빛의 기본입자 1개)의 에너지 측면에서 조금 더 살펴보자. 만약, 진동수가 1인 광량자의 에너지가 4h라면 어떻게 될까? 어차피, 광량자설에 모순이 있다면, 이러한 관점도 다시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즉, 진동수=1, 진폭=2인 광량자(빛의 기본입자 1개)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단지, 탄력이 나쁜 용수철을 늘리거나 줄일 때처럼, 엄청난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타나기 어려울지도 모르는 것이다. 즉, dt=2, dx=2, 진동수=1, 에너지=4h인 광량자(빛 입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광량자설이 옳지가 않다면, 이와 같은 측면뿐만 아니라, 플랑크 상수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빛의 속도를 변한다고 놓고, 감추어진 물리법칙을 찾아내려는 시도를 해서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이끌어냈듯,
E=nhv에서 진동수 1이면서 4h가 되도록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조합이 하나 더 있지 않은가?!
E=4*h*1=4h=1h+1h+1h+1h
또는 E=4*h*1= (4h)*1
바로 h(플랑크상수)에 변화를 주는 방법이다. 감춰진 물리법칙을 찾기 위해서는, 역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택해보자는 것이다. 관측되는 것을 기준으로해서는 감춰진 진리를 찾아낼 수 없는 것이다.
플랑크 상수가 4h로 4배가 된다면, dt=2, dx=2, 주파수=1, 에너지=4h에 대해서, 에너지 측면에서는 맞추어진다.
즉, 플랑크 상수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변한 플랑크 상수를 H로 표현한다면, 새로운 플랑크 상수 H=4h가 되는 것이다. 플랑크상수도 변할 수가 있다면, 광량자설에도 약간의 손질을 하면서 광량자설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전자와 모든 성질이 같고 단지 질량만 틀린 경입자인 기본입자들이 있다. 바로 뮤온과 타우다. 뮤온은 전자 질량의 206.8배, 타우는 전자질량의 3491배 정도이다. 물론, 전자의 수명은 안정되어 있지만, 뮤온이나 타우의 수명은 엄청 짧다. 질량이 클수록 엄청 짧다. 그러나, 뮤온이나 타우는 기본입자이다. 즉, 자연에서는 수명이 너무 짧아 거의 관측되지 않지만, 존재하는 기본입자들이 있듯! 빛도 진동수는 같지만 진폭이 큰 광량자(빛입자 한개짜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dt=2, dx=2인 빛입자가 dt=1, dx=1인 빛입자 4개를 뭉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의 빛 입자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광속이 변한다고 가정했을 때와 광속은 불변이다고 여기는 현실을 비교하며 분석해보자. 그러기 위해서, 광속불변인 현실에서, 빛은 진동수와 진폭과 무관하게 일정시간이 지나면, 일정거리=4만큼 이동한다고 가정하자. 논의를 간단하게 하기 위해, 빛은 진동수와 무관하게 1초에 30만km를 간다고 가정하지 않았다. 빛의 속도가 불변으로 관측되는 현실에서 일정거리만큼 빛이 진행했을 시에 빛의 진동수를 살펴보면, 수많은 진동수를 가진 빛들이 관측될 것이다. 현실에서 빛의 속도는 불변이니, 빛의 진동수와 무관하게 빛이 일정거리만큼 진행하면, 모든 빛은 똑같은 시간을 소모했다고 우리는 여긴다. 즉, 우리는 빛의 참된 모습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자! 그림 e) 에서, 빛의 속도를 변한다고 놓고, 시간거리-공간거리 모델에서 dt=1, dx=1 일때 c=dx/dt=1/1 이었다. 한마디로 광속도 c는 시간입자와 공간입자의 농간에 따라 멋대로 변하는 량이었다. 우리는 빛의 기하학적 시간-공간 구조를 전혀 관측해낼 수 없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논의해온 빛의 기하학적 시간-공간구조는 현실의 진폭-거리모델로 보정해주어야 한다.
이젠 현실로 돌아가 c는 불변인 상태로 나타내보자. c는 무조건 일정하다. 그림 b에서 보이듯, 현실적으로 관측되는 빛의 모양은 일정시간에 일정거리를 진행하는 b와 같다. 진동수가 1이고, 빛의 속도는 불변이다.
광전효과를 이제부터 곰곰이 생각해보자. 금속판에서 전자를 튀어나오게 하려면, 4의 진동수 이상의 빛이 쬐어져야 전자가 튀어나온다고 가정하자. 즉, 한 개의 광량자의 에너지는
E=hv이므로, 진동수 1인 빛의 에너지는
===>E=h*1=h
이다. 따라서, 진동수 4이상이 되는 빛의 에너지 E=h*4=4h 보다 작으므로, 진동수 1인 b)그림의 형태는 아무리 금속박에 두드려도 금속박에서 전자는 튀어나오지 않는다. 잠시, 시간거리-공간거리로 나타낸 e)의 그림을 보자. 이미 언급했듯이, 시간거리*공간거리의 면적은 에너지에 비례한다고 가정했다. 비례상수를 서로 비교하기 쉽게 h라 놓자. 즉, 시간거리-공간거리 그림에서
===>E=h*시간거리*공간거리=h*1*1=h
이다. 즉, 빛의 속도를 변한다고 생각하고 시간과 공간을 실체적인 물리량으로 보고 고찰한 시간거리-공간거리 방식에서 구한 E(에너지)와 빛의 속도가 불변한다고 가정하고 E=hv라는 식으로 구한 광량자의 에너지가 같다. 자! 다시 논의를 진행해 가자!

빛의 속도가 변한다고 가정한 빛의 시간-공간거리 모델과 현실적으로 빛의 속도가 불변이라고 가정한 진폭-거리 모델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기에, 본인이 약간 자주 빛의 본질을 파악하는 두 가지 방식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빛의 시간-공간거리 모델은, 본인이 연구해온 결과이고, 빛의 진폭-거리 모델은 빛의 속도가 불변일 때 관측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모델이다.
시간거리 dt=1, 공간거리 dx=4 일 때, 그림 f)에서 c=dx/dt=4 이다. E=h*1*4=4h 이다. 빛의 시간과 공간의 기하학적 형태를 어느 누구도 관측하지 못했고, 또한 그런 것이 있는지도 생각도 못해봤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빛의 진폭-거리 모델로 변환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우리가 알고 있는 식을 사용해 빛의 진동수, 파장, 에너지에 관한 정보를 얻어내 관측 자료와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f)의 빛의 시간-공간 모델을 그림 a)의 진폭-거리 모델로 나타내면 진폭=1, 진동수=4인 빛이다. 둘 다 동일한 에너지에 대한 정보를 준다. h*dt*dx=4h와 E=hv=h*4=4h.
그러나, 시간-공간 모델은 빛의 시간-공간의 기하학적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전혀 알 수 없었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신비가 빛에 시간-공간거리 모델에 의해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빛의 속도가 불변일 때의 모델과 빛의 속도가 변한다고 가정한 본인의 시간-공간거리 모델과 어는 것이 더욱 더 정확히 빛의 성질,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고 여겨지는가!
그림 f)에서처럼 시간거리-공간거리에서 빛의 속도(c)를 고찰하면, dx/dt=c로써 c값은 dt와 dx값에 따라 멋대로 변할 수 있다. 현실에서 관측되는 빛의 속도는 불변이므로, 관측 불가능한 영역의 감춰진 물리법칙을 찾기 위해 빛의 속도는 변한다라고 측면에서 고찰한 방식을 변환하여, 빛의 속도는 불변하는 형태로 다시 원상복귀 시키는 작업을 하면서 지금까지 시간과 공간 그리고 빛의 본질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해온 것이다.

이제 본인이 질문을 하나 하겠다. 위의 그림에서, 금속판을 향해 여러 가지 빛이 내려 쬐이고 있다.
본인이 지금까지 연구해온 빛의 시간-공간 모델을 가지고 빛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즉, 현실에서는 전혀 관측할 수 없는 빛의 시간-공간거리의 기하학적 모형을 드러내놓고 그려놓은 것이다. 빛의 시공간거리는 제로이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빛의 시간-공간의 기하학적 형태는 아무것도 없는 무(시공제로)속에 감춰져 있는 것이다. 본인은 현실에서 빛의 속도가 불변일 때, 관측되는 진폭, 주파수로 빛의 성질을 표현하지 않고, 그 역으로 본인이 제안한 빛의 속도가 가변일 때의 빛의 시간-공간의 기하학적 모습으로 표현했다. 금속판의 전자는 양성자와 dt=1, dx=4,인 시공간 구조에 의해 붙잡혀 있다. 진동수는 4이고, 에너지는 4h인 직사각형의 시공간구조다. 이제 본인이 문제를 내겠다.
dt=1, dx=5인 빛, dt=2, dx=2인 빛, dt=1, dx=1인 빛, dt=1, dx=4인 빛이 금속판을 향해 내려쬐고 있다. 어떤 빛이 금속판에서 전자를 튀어나오게 할 수 있겠는가!
본인의 빛에 대한 시간-공간거리 모델을 보면, 쉽게 그 답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답은 dt=1, dx=5인 빛, dt=1, dx=4 인 빛이다. 그렇다. 빛의 본질은 빛의 시간-공간의 기하학적 구조에 감춰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 본질을 알아내기 위해 지금까지 빛의 속도의 불변성보다는 시간거리와 공간거리의 불변성의 측면에서 빛의 본질을 찾아온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빛보다 더욱 더 중요한 물리량이다. 한마디로 빛이 파동적 성격과 입자적 성격을 오락가락 취하는 것이 아니라, 빛의 시간-공간의 기하학적 구조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이 그러할 뿐이다.
따라서, 금속판에서 전자를 튀어나오게 하는 빛(전자기파)의 입자설인 아인슈타인의 광량자설은 자연의 물리법칙을 설명하기에는 부적합하다. 또한, 자연의 감춰진 물리법칙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에도 부적합하다. 빛의 본질은 파동도 입자도 아닌, 시간과 공간의 기하학적 형태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광자 하나의 에너지는 (시간거리*공간거리)의 면적에 비례한다. 비례상수를 써서 표현하면, 광자 하나의 에너지는
======> """"E= H*시간거리*공간거리""""
비례상수 H가 플랑크 상수가 될지는 실험을 통해 측정을 하면 될 것이다. 아쉽게도 본인에게는 연구시설 자체가 전무하므로, 본인의 연구논문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이것을 증명해 보길 바란다. 플랑크상수라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시간거리 dt에 최소단위가 있는지? 공간거리 dx에 최소단위가 있는지? 파악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평평한 시공간에서 빛의 시공계량(시공거리)는 아래와 같다.

그리고, 지금까지 논의해온 것처럼, 관측되지는 않지만 어떤 무언가가 분명히 중요한 물리법칙을 내포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엮어 시공간 거리 제로를 만들고 있다. 이러함으로 인해 빛이라는 전자기파라는 전자기력이 나타난다. 위의 (3)식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4)식이 엮어, dt와 dx의 본질에 접근함으로 인해, (3)식에서도 많은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이 어떤 물리량을 측정하는데 측정의 변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물리량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예를 들어, A와 B가 달리기를 하는데, A와 B는 달리고, 시간은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몇초, 몇분을 세는 변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간도 몇 미티를 달렸냐는 변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A와 B가 달렸는데, 시간이 A와 B처럼 달리기의 주체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시간입자가 A를 잡고 다리를 움직이게 하고, 공간이란 입자가 A의 다리를 쭈욱 찢어버리듯 늘려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A나 B가 달렸다는 것이 시간과 공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달리기를 빛이라고 하면, 시간입자와 공간입자가 어떻게 빛의 발을 만들고, 어떻게 빛이 건너야 할 도로(다리)를 차곡차곡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빛의 본질이 시간과 공간의 기하학적 형태이듯, 빛의 매질도 시간과 공간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땅 깊은 곳에서 지진이 일어나면, 그 에너지(힘)이 땅을 매질 삼아 에너지를 전파하고, 땅을 가로로 세로로 흔들리게 함으로 인해 에너지의 본성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렇게 쉽게 관측되는 물질만 관측해도 힘을 힘을 전달하는 매질이 무엇인지 힘의 성질이 어떠한지 관찰할 수가 있다.
그러나, 빛의 매질은 아무도 지금까지 알 수가 없었다. 시간과 공간이 참된 물리량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시간과 공간이 대체 뭔지도 알 수가 없었다. 허수의 시간, 복소수의 시간과 공간으로 표현되는 파동방정식!! 그 어떤 곳에서도 시간과 공간이 대체 뭔지 논의할 건덕지도 없었다. 단지, 시간과 공간은 물리량을 재는 매개변수로써만 다뤄지는 추상적인 양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간입자! 공간입자!라는 말을 여러분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시간입자! 공간입자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당연히 입자면 에너지다.
시간도 에너지요. 공간도 에너지다. 시공이 질량에 의해 휜다면, 시간과 공간을 엮어 만들어진 빛이 질량에 의해 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실험에 의해 증명되었다. 빛은 시공간거리 제로의 질량이다. 즉, 질량제로의 입자도 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빛의 시공간은 시간과 공간을 엮어서 만들어진 힘이다. 시공간이 휘는데, 시공간을 만드는 재료인 시간과 공간이 어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즉, 시간과 공간도 변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빛(전자기파)는 시간과 공간을 재료로 해서, 그걸 매질로 해서 시공을 만들어 전파가 되고 있다. 즉, 빛의 매질은 존재한다. 빛의 매질은 에테르가 아니라, 바로, 시간과 공간이라는 재료이다.
마치, 누군가 고함을 치면, 공기입자가 진동을 하며, 소리 에너지를 전달하듯! 바다에 돌을 던지면, 물의 입자들이 에너지를 전달하듯! 빛이란 에너지도 시간과 공간이라는 입자를 통해 전달이 된다는 것이다. 시공간거리 제로이면서 질량제로인 빛이 입자이라면, 이 입자를 만들어 내는 재료인 시간과 공간도 당연히 입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입자, 공간입자의 성질이 무엇인지 지금까지 파악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간입자와 공간입자를 어떤 식으로 엮느냐에 따라 새로운 힘!도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물분자. 공기분자, 금속분자 등을 통해, 음파, 횡파, 지진파, 종파 등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가 만들어지듯! 시간입자와 공간입자를 엮었다가 풀었다가 엮었다가 풀었다가 하는 식으로 에너지를 전달하는 빛이라는 전자기파(전자기력)!은 분명히, 시간입자와 공간입자를 매질로 하며 빛의 에너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에너지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튼, 빛의 매질은 존재하고, 그 매질은 에테르와 같은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고 숨겨진 물리법칙인, 시간입자, 공간입자가 바로 전자기파(빛)의 매질인 것이다. 이 시간입자, 공간입자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아는 입자와는 달리, 진동하면서 단순히 에너지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무언가가 시간입자와 공간입자를 엮어 빛(전자기력, 전자기파)를 만들었듯! 시간과 공간을 엮는 방법에 따라, 중력도 약력도 강력도 그 외에 인위적으로 또 다른 새로운 힘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만약, 인간이 인위적으로 새로운 힘을 시간입자와 공간입자를 다루어 만들어 낸다면, 그것은 정말로 판타지같은 세상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힘을 창조해 낼 때마다, 과학은 마법과 같은 시대로 진입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힘이 시간과 공간을 어떤 방식으로 엮느냐에 따라, 그리고 시간입자와 공간입자를 어떤 식으로 다뤄 힘을 전달하느냐에 따라 힘의 종류가 틀리다면, 중력이나 전자기력, 약력, 강력을 통일하려는 발상이 지극히 비합리적인 발상이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을 시공간의 휨으로 다루고 나서, 지금까지 드러난 중력, 약력, 전자기력, 강력을 통합하려고 시도했다. 모든 힘은 통합되어 있다가 분기되었다고 가정하고, 다시 힘을 통합하려는 시도에서 우주의 기원을 찾으려는 접근방식은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잘못되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극도로 제한해 버리기 때문이다. 통합되었던 몇 가지 힘이 빅뱅같은 대폭발로 인해 압력과 온도가 낮아짐에 따라 분기되었다면, 인간이 결국 찾아낼 수 있는 힘도 존재했던 몇 가지 힘밖에 없다. 이것은 극도로 제한된 환경을 설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빛이라는 전자기력이 시간입자와 공간입자를 엮는 방식과 시간입자와 공간입자를 매체로써 에너지와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 전자기력이라는 힘이 정의된다면, 얼마든지, 시간입자와 공간입자를 다른 식으로 엮는 방식을 무한히 찾을 수 있고, 시간입자와 공간입자를 통해 에너지와 정보 등을 전달하는 방식 또한 여러 방면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의 견해로는, 중력도, 강력도, 약력도, 전자기력도 모조리 이와 같은 식으로 탄생된 것 같다. 즉, 지금까지 찾아낸 중력, 강력, 약력, 전자기력은 통합되어 있던 상태에서 분기된 것이 아니라, 각각 따로따로 시간과 공간을 엮는 방식과 그 힘을 시간과 공간입자를 통해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 탄생한 것이라는 것이다.
고로, 따로따로 탄생한 힘들이, 어느 순간 만나는 영역이 존재할 것이다. 연못에다, 어떤 아이가 돌을 던지고, 다른 아이가 또 다시 돌을 던졌다. 따로따로 던진 돌(힘)이 퍼져나가 서로 부딪히는 영역에서는 일대 혼란이 일어난다. 둥그렇게 퍼지던 원은 직선이 되고, 소용돌이치기도 하고, 진폭이 커지기도 한다. 이렇게 돌덩어리를 달리 던지기만해도 서로 자신의 영역을 달리다 힘이 부딪히면 여러 변화가 생기듯!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밝혀낸 힘과 양자역학에서 밝혀낸 힘이 만나면 새로운 변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예를 들어, 중력은 점입자를 기본으로 다른다. 양자역학도 점입자를 기본으로 다룬다. 상대성이론에서 다루는 중력은 시공간을 휘게 한다. 양자역학의 영역인 짧은 거리에서조차도 질량이 극도로 커지면 상대성이론의 효과가 생겨, 빛이라도 가둬버리고 다 빨아들인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는 거리가 극도로 짧아지면 질수록 에너지가 불확정해진다. 마치, 상대성 영역과 양자역학의 영역이 극도로 짧은 거리에서 극도로 커다란 질량에 의해 충돌하는 영역이 생기는 것이다. 이때는, 가둬버리고자하는 무한한 깊은 포텐셜 우물이 생기고, 그 우물에 갖힌 점입자가 마치 파동처럼 극도로 불확실한 에너지를 가지고 진동하는 끈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이것을 관측하거나 이것을 수학적으로 찾아냈다고 해서, 이것을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통합하는 근본이론이라고 간주해서는 안된다. 양자역학에서 다루는 핵력이나 강력이나 상대성이론에서 다루는 중력은 어떤 통합적인 힘에 의해 갈라진 것이 아니라, 모조리 따로따로 생겨난 힘일 뿐이다. 단지, 힘들이 만나는 공통영역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A와 B가 만나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지, C라는 힘이 폭발하거나 분기하면서 A와 B라는 힘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C라는 힘의 풍선 속에 핵력, 약력, 중력, 전자기력이 있었다면, 인간의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C라는 한계까지 일뿐이다. C={핵력, 약력, 중력, 전자기력}라는 것을 모조리 탐구하면,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더 이상 알아내야 할 것도 창조해내야 할 여지도 없다. 왜냐하면, C라는 것으로부터 모조리 분기하거나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너무나 비합리적이고 또한 제한적이며 아름답지가 않다. 자연법칙이 통합에서 시작되었다면, 불확정성도 상대성도 사실상 언젠가는 종말을 고하고 말 것이다. 시간입자와 공간입자를 엮는 방식과 시간입자와 공간입자를 통해 어떻게 힘을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 그 힘이 전자기력일수도! 강력일수도! 약력일수도! 중력일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본인은 논해왔다. 시간입자와 공간입자는 마법과 같은 입자다. 수많은 입자를 탄생시킬 수도 있고, 수많은 힘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 그 힘을 탄생시키고 유지시키는 근원은 아마....! 쓰레기처럼 널려 있는 시간입자들! 공간입자들! 여기서 생명도 만들어 질뿐이다. 인간이 아직 접촉조차도 못한 힘이 얼마나 많을지 아무도 모른다. 아니, 얼마나 많은 힘이 시시각각 누군가에 의해 창조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즉, 힘을 통합하려는 대통합이론! 표준이론! 초끈이론! 등은 현상을 분석하는 도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미래를 예측하고 물리법칙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접근방식이 너무나 제한적이다. 시간입자들...공간입자들.......... 무한하게 쓰레기처럼 널려 있는 이 마법의 입자들을 다뤄!! 중력을 탄생시키고! 전자기력을 탄생시키고! 약력을 탄생시키고! 강력을 탄생시키고! 끊임없이 임의의 힘을 탄생시키더라도, 물리법칙은 무너지지 않는다. 단지, 힘과 힘이 충돌하는 영역! 공유영역이 복잡하게 얽혀질 뿐!!! 시간! 공간! 빛!(시공제로, 질량제로인 입자)! 그리고 물질! 이 모든 것을 만드는 것은 시간입자! 공간입자!들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평평한 시공간!! 질량제로, 시공간제로인 아무것도 없는 무(제로)의 세상에서 시간입자와 공간입자를 가지고 빛이나 중력, 강력, 약력 등이 만들어 놓은 시간입자! 공간입자들의 건축물이 존재할지 누가 알겠는가! 인간이 힘을 써서, 찰흙으로 강아지를 만들어놓고 마를때가지 기다린 다음, 떠난 자리에는 찰흙으로 만든 강아지가 세월에 따라 부서져 내리듯!! 무의 시공에 질량제로인 빛이 만들어 내고 있고, 만들어 놓은 시간과 공간의 건축물도 남겨져 있을지 본인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빛에 대한 연구논문을 읽고 나서 문득 생각이 되지 않는가! 아무것도 없는 무의 시공에 본인은 힘을 써서 시간과 공간을 빚어내어 인간의 형태를 만들고자 한다. 여러분들은 어떤 힘을 사용하여 무의 시공에 어떤 인간들도 눈치챌 수 없게 시간과 공간의 구조물을 만들겠는가! 지금까지 본인과 함께 시간과 공간 그리고 빛에 대해 논해 왔으니, 빛이라는 전자기력의 힘을 사용해보자. 시공간 제로의 무의 공간에 반짝! 반짝일 때마다, 빛이 뭔가를 하고 있다. 0=cdt-dx 이며, c=dx/dt 이다. dt=1, dx=2을 가지고 빛은 감쪽같이 인간의 눈에는 아무것도 없는 무의 시공을 보여줘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 인간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무의 세계)를 바라보며 공허함만 느낄 뿐이다. 간혹, 반짝하고 빛나는 것을 보면, 빛이 반짝였나? 내가 뭘 잘못 봤나! 별것도 없네! 인간은 아무것도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보여지는 것은 텅텅 빈 무의 세계뿐이니!! 그러나 이 무의 세계는 엄청난 시간입자와 공간입자로 널러진 쓰레기장과 같다는 것이다. 0=c*1-2에서 c는 인간의 눈에 시공간거리=0인 무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공간거리(dx)을 압축해 시간거리(dt)와 맞춰준다. 끝점과 끝점을 맞춰 압축하다보면 나타나는 현상이 자연히 압축된 것이 휘어지게 되어 있다. 마치, dx가 활처럼 튀어나오는 것이다. 빛의 속도가 불변인 세상에서는 빛이 시간과 공간에 어떤 짓을 하는지 전혀 관측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인간은 대체 기억이 어떻게 보존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뇌에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시간입자와 공간입자가 만들어 내는, 시공제로인 무의 세상 속에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광속도 불변인 현상만이 드러나는 인간의 세상! 인간은 시공제로인 무의 세상에서, 시간을 휘고, 공간을 휘면서 빛이 무엇을 하는지 결코 알 수가 없었다. 빛이라는 힘만 아니라, 어떤 힘이라도 시간입자와 공간입자를 다루기 마련이다. 자, 아무것도 없는 무라고 여기는 시공 속에서 본인이 지금 인간의 형상을 빛을 이용하여 시간입자, 공간입자로 건축했다. 빛이라는 힘이 떠나도 이 건축물을 모래처럼 와르르 무너지지 않고, 시간입자와 공간입자가 지닌 본연의 에너지로 자신의 건축물을 지탱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눈에 띄는 몸에 일부분이 무너져 내린 유령! 귀신!

아무것도 없는 무의 시공! 평평한 시공에서조차도 이렇게 무수히 휘어진 시간과 공간들이 존재하고, 만들어지고 있다. 인간의 기억은 시간과 공간의 건축물로 무의 시공 속에 건축되어 있을 뿐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이 시공의 건축물이 허물어지는 순간까지, 인간의 기억은 보존될 것이다. 바로 뇌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무(시공제로)의 시공 속에서, 시간과 공간의 건축물로!! 따라서, 특정부위의 뇌가 다쳐 일부분의 기억이 사라지면 인간은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니라, 손상된 뇌의 기능을 잃어버린 것일 뿐이다. 오래된 기억을 처리하는 뇌의 부분이 다쳐 기능이 상실되면, 오래된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니라, 오래된 기억(시간과 공간의 건축물, 건축자료)를 처리하는 처리장치를 잃었을 뿐이다. 뇌 속에서 오래된 기억을 처리하는 뉴런이 새롭게 만들어지거나, 다쳐서 기능하지 않은 뇌의 기능이 다시 살아나면, 다시 오래된 기억(오래된 시간과 공간의 건축물)에 접근할 수 있을 뿐인 것이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시공! 그리고 빛! 물질!의 본질은 모조리 시간과 공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무(시공제로)는 시간입자들과 공간입자들로 가득 찬 쓰레기장과 같다. 이 쓰레기장을 정리하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힘!이다. 빛(전자기력)! 강력! 약력! 중력! 등..! 힘은 태초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시간입자와 공간입자들을 다루는 여러 방식에 불과할 뿐이다. 물질도! 힘도! 그리고 힘이 전달되는 매질도!! 모조리!! 쓰레기같이 널려있는 시간입자들과 공간입자들에서 비롯된 것 일뿐. 통일 된 힘이 분기된 것이 아니라, 힘도 시시각각 탄생할 뿐이다. 힘과 물질(질량)이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건축물이듯! 힘이라는 시간과 공간이 만든 도구가 만들어대는 건축물! 예를 들어, 질량제로, 시공제로인 빛 입자가 만드는 시간과 공간의 건축물에 의해, 에너지와 기억 등이 만들어진다면! 질량이 있는 시간과 공간의 건축물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시간과 공간에 기록된 정보에 따라 만들어지는 동물과 식물 등 모든 물질이 될 것이다. 즉, 인간의 기억! 영혼! 인간의 몸! 돌! 우주공간! 등 모든 것은 시간입자와 공간입자의 건축물(도구)인 것이다. 시간입자와 공간입자로써 도구를 만들면, 그것이 힘(보손입자)이고, 시간입자와 공간입자로 건축물을 만들면 그것이 물질(페르미온 입자)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우주는 시간입자와 공간입자로 가득 찬 쓰레기장에서 시간입자와 공간입자를 재료로 해서 만들어져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도구(힘)이 만들어지고 어떤 건축물(물질)이 만들어질지는 알 수가 없다. 만들어지면, 이미 만들어졌던 힘과 건축물이 서로 영향을 끼치면서 또 새로운 현상과 영역을 만들어내겠지! 인간이 도달하고자 하는 진리의 최종 종착지! 즉, 과학의 끝은 어쩌면, 힘과 물질을 창조해내는 마법의 시대로 가는 문을 여는 것일지도...
박상준 : 전 경문전문학교 교수 임용. 전 정보통신기업 비와삼시스템 대표. 한양대학교 전자공학 박사 수료(국내외논문 20여편.특허1 실용신안 1 저서 2편 등), 전 한양대학교 강사. 저서:::SF소설 "우주의 항문 화이트홀" 외 2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