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기술 - 바로 써먹는 논리학 사용법
코디정 지음 / 이소노미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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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알려주는 경험의 기술, 그리고 생각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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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억압하는 세계 - 차별, 폭력, 불평등의 흔적들 오퍼스(OPUS) 총서 8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강경희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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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리뷰+ 최종 리뷰 통합 버전입니다.

#협찬 손 잡고...

중간 리뷰입니다.

서론: 페미니즘과 국제 개발

서론의 내용은 일부 먼저 소개했지만~
그래도 그 내용을 살짝만 짚고 간다면..
이렇습니다.

우선 저자인 누스바움은..
페미니즘 관점에서 국제 개발의
구조적 불평등에 대해 비판합니다.
(이전 올린 게시물을 참고해주세요.)

저자는 특히 중심 사례로 인도의
빈곤 여성들의 삶에 주목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얽힌 실타래 매듭의 시작점에 어쩌면
가장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 인류가 겪어온 문제들을
여전히 쭈욱 이어 온 문화여서 랄까요...??)

---

1장: 보편 가치 옹호

디테일이 엄청 많지만
단순하게 이해하자면..
제목과 같은 내용입니다.

보편 가치를 옹호하며,
공적 개입의 정당성을 논증합니다.

최근 레이 달리오의 신간,
<빅 사이클>을 읽으면서..
레이 달리오에 대해 사이드로
나름의 정보들을 찾아봤습니다.

그래서 '원칙'에 대한
생각도 보다 깊게 해봤는데..
(나중에 책도 사서 읽어볼 계획입니다.)

페미니즘에서도 '원칙'이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함께 들었습니다.

절대다수가 합의할 수 있는 원칙들이
국가 같은 큰 범위에서 본다면 조금씩
늘어왔겠지만 여전히 그것의 합의에
한 걸음도 다가서지 못한 집단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이 부분은 우리 인류가 쭉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과거에도 노력하는 이들이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거라고 생각되기에..
기왕이면 희망을 품어봅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남성으로서 나름의
노력할 수 있는 것들을 실천하면서요.

예를 들어, 제가 속한 집단에서..
여성에게 '목적'이 아닌 '수단'을
강요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생각해 보는 식이죠.

회사마다 다를테지만
제가 속한 회사만 놓고 본다면..

중요한 업무는 대체로 남성이 담당합니다.
(거의 모든 팀장급이 남성입니다..)

이건 분야에 따르는
특성일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어느 기업의
'최초의 여성 사장' '최초의 여성 회장'
등의 말이 나오는 것 자체는 이상하다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당연하지 않기에
더 강조를 하는 거잖아요.

이런 것들을 포함하여..
여러 차이에 대한 민감성을
높여가는 것도 하나의 과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하면 독이 될테니.. 적절하게요.)

---

2장: 적응적 선호와 여성의 선택지

제가 지금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저에게 주어진 환경 덕분입니다.
(따지고 보면 운 덕분이죠..)

제가 인도에 사는 가난한 부부의
딸로 태어났다면.... 다른 종류의
고민을 하고 다른 선택을 하며
살고 있을 확률이 높겠죠??

환경 결정론을 완전히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가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저는 평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너무 일반화 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기준에서 볼 때
보다 큰 힘을 지닌 쪽이..
(경제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군사적으로든, 다른 여러 요인들에서..)

보다 더 책임감을 발휘해야만..
문제 해결에 한 걸음 더 빠르게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또한 철학이 지닌 책임 중 하나일테죠.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제가 되었건 우리 인류가
힘을 합쳐야만 하는 시기를
반드시 거치게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일어날 일은 일어나니까요.

저는 기왕이면 그때 우리가..
손을 잡고 있길 바랍니다.

---

최종 리뷰

잠재역량 접근법...

개념이 조금 어렵나요? ;;
제가 생각해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게 얼마나 강력한 생각인지
느껴지실 거예요.

(제가 평소엔 단정적인 표현을
잘 안 쓰는데... 이번만은 예외로.. ㅎㅎ..)

저는 그랬거든요.


---

이 개념을 아주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사람이 가진 잠재력을
실제로 펼칠 수 있어야 진짜 잘 사는 거다."

이 말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시죠?

그런데 그 '당연함'조차 누군가에겐
'허락되지 않은 특권'일 수 있어요.


---

예를 들어볼게요.

'학교에 갈 수 있는 자격'이 있는데도
실제로는 못 가는 아이의 예입니다.

법으로는 "모든 아이는 학교에 갈 수 있다"고
되어 있어요.

하지만 어떤 여자아이는
너무 멀리 살아서 못 가고,
집안일을 해야 해서 시간이 없고,
어른들이 "여자는 공부 안 해도 돼"라고 말하죠.

그럼 과연 이 아이는
'학교에 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걸까요?

누스바움은 이렇게 묻습니다:

"실제로 그 능력을 펼칠 수 없으면,
그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법과 제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진짜 삶의 가능성이 보장돼야 하죠.

---

여기서 누스바움의 철학은
점점 더 날카로워집니다.

전통, 종교, 가족 같은 민감한 영역까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거든요.

왜냐하면 억압은 종종
'사적인 것'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지곤 하니까요.

---

"그건 우리 문화야."
"전통이 그래."
"종교가 그렇게 가르쳐."

이런 말들, 어디서 한 번쯤
들어보셨을 거예요.

이에 누스바움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사람을 아프게 하는 전통은
존중이 아니라 변화의 대상이에요."

문화든 종교든
인간의 존엄보다 앞설 수는 없다는 겁니다.

---

가족도 마찬가지예요.

흔히 "가족 일에 국가는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고 하죠.
하지만 현실을 보면, 그 안에서도
차별과 폭력이 일어나고 있어요.

아버지가 딸의 교육을 막고,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쓰고,
여성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들.

누스바움은 말합니다.

"가정 안의 억압도 공적 문제입니다."
국가는 보호자로서 책임을 져야 해요.

---

여기서 중요한 전환이 일어납니다.

"돈이 많다고, 국가가 잘 사는 건 아니다."
"진짜 발전은 사람 한 명 한 명이
사람답게 사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GDP 대신 '역량'이라는
개념이 중심에 놓여야 합니다.

이 역량에는
생존, 건강, 교육, 표현의 자유,
사랑, 놀이, 타인과의 관계,
자기결정권 같은 것들이 포함돼요.

이 모든 게 단순히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에요.

---

여기까지 보면, 누스바움의 철학은
단지 사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철학은 고통받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가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게 아니에요.

어쩌면 말할 수 없는,
말하지 못하게 된 이유가 있는 걸지도요.

누스바움은 그 침묵 속에서
가장 깊은 고통을 듣고,
사람다운 삶의 가능성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

저는 여러 책을 읽어 오며..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불편한 것들을
그냥 당연하게 넘기지 않게 되었고,

"어쩔 수 없지"라는 말보단
"다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조금 더 자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건 아마, 누스바움이 말하는
'생각하는 삶'의 시작이 아닐까요?

---

"우리에게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이런 믿음으로 철학은,
세상을 조금씩 바꾸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최재천 교수님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에서 들었던
내용을 인용하여 변환하여 마친다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세 축은 종교, 과학, 철학이다."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O. 윌슨 교수님이 이런 말을
했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두 축은 종교와 과학이다.")

축은 역시.. 두 개 보단..
세 개가 안정적이죠?? ㅎㅎ..

마무리가 어색하지만;;
그래도 그냥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끝!!

#여성을억압하는세계
#마사누스바움 지음
#강경희 옮김

#우주서평단
#우주클럽

#북스타그램 #바닿늘

비슷한 주제의 글은..

#페미니스트바닿늘

#세창출판사
@세창출판사 도서지원 ,
@woojoos _story 진행으로
#우주클럽_철학방 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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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억압하는 세계 - 차별, 폭력, 불평등의 흔적들 오퍼스(OPUS) 총서 8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강경희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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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공통의 위기가 왔을 때.. 남녀가 함께 손을 잡고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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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힐리스트로 사는 법 - 삶이 무겁고 힘든 사람에게 니체의 니힐리즘이 전하는 지혜
문성훈 지음 / 이소노미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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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8. 1. 작성 글.

#협찬 니힐리즘과 아모르 파티

1.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를
들어보셨나요??

노래 제목이나..
가사로 들어 본 분도 계실테죠??
(거기서 처음 들어본 사람..?!!
바로.. 접니다. ㅋㅋㅋㅋㅋ)

어떤 단어든, 그 어원을 찾아보면..
조금 더 뜻이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모르 파티는 라틴어에서 온 단어인데..
아모르(사랑) + 파티(운명) 의 합성어 입니다.

한자로는 '운명애' 라고 번역되고..
한글로 풀어서 쓰면 '운명에 대한 사랑'
쯤으로 보통은 해석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종종 제 글에서..

'끌어당김의 법칙'과
'자기 충족적 예언'을..
구분하곤 했었는데요..
(종종 까칠하게 구분했지만..
이제는 부드러워지려고 합니다.)

둘의 차이를 다시 지금
비교해서 적는다면..

이렇게 적을 수 있겠습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의 경우..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생각이
사람의 삶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경험을 가져온다는 신사상 영적 믿음' 입니다.
(출처: 위키백과, 디테일 생략..)

자기충족적 예언(자기실현적 예언)의 경우..
'사람의 믿음이 (긍정적인 방향이든, 부정적인 방향이든)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사회심리학적 현상의 한 예' 입니다.
(출처: 위키백과, 디테일 생략..)

단순화 시켜 본다면..
믿음과 현상의 차이..
입니다.

믿음이 가끔 현상이 되어
나타나기도 할테지만..

이건 명확한 '인과관계'라고
보기 어렵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반면, 현상의 경우..
인과관계가 보다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행동경제학을 떠올리면..
조금 더 이해가 쉽게 됩니다.

작은 넛지 하나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생각보다 많은 현상의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본능적으로 잘 이끌리곤 합니다.
(의식하지 않는다면 더요...)

'운명에 대한 사랑'은..
약간 '끌어당김의 법칙'에
더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마치 이런 거죠..

"운명을 사랑해!! 그럼 다 잘 될거야!!"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아모르 파티'는 이것 보단..

"인간은 운명 앞에서 별 수 없어.
받아들이고, 너만의 사랑(혹은 의미)을 찾아!"

흠...
조금은 억지스러울까요??

---

2. 니힐리즘..
'니힐리즘'을 들어보셨나요?

니힐리즘은 無(없을 무)를 의미하는
라틴어 nihil(니힐)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허무주의'로 번역되는데..

원래 뜻과 비교할 때
차이가 너무 커서 이 책에서도
'니힐리즘'으로 그냥 사용됩니다.

니힐리즘의 원래 뜻은..
"기존의 가치, 도덕, 의미를
전면 부정하는 철학적 관점"
에 더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출처: 네이버 AI 브리핑..)

범용적으로 사용된 맥락을 생각하면...
분명 원래 뜻에 더 납득이 됩니다.
'허무주의'는 너무 단순화 시킨 것 같아요.
(저만 그런건지 모르겠으나.. "허무하다."
라는 말이 뭔가 무력함을 상징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감정이 섞인 것 같아서.. ;;;;)

"신은 죽었다." 라는 니체의 말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말일테고요...

모태 무신론자였고..
딱히 종교에 대해 깊게 생각한 적도 없이
오랜 기간을 살아왔기에 어쩌면 더..
'니힐리즘'에 끌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느껴진
의식의 흐름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떤 의식의 흐름이 담겼는지..
첨부파일로 공유드립니다.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끝!!

#니힐리스트로사는법
#문성훈교수 지음

#이소노미아 출판사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바라보는 것이다."
#릴케 #두이노의비가

(오늘부터)
#니힐리스트

#아모르파티
#북스타그램 #바닿늘

비슷한 주제의 글은..

#바닿늘철학

#우주서평단
@woojoos_story 모집,
@이소노미아 도서 지원으로
#우주클럽_철학방 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아래에서부터는 해당 책의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최소한으로) 수정 되었습니다.



삶이 무겁고 힘든 사람,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프롤로그)
오늘날 많은 사람이 삶을 무겁게 느낀다. 세상이 얹어놓은 짐 때문에 중압감에 시달린다. 한국 사회만 해도 우리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들이 많다. 어렸을 때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이 있다. "열심히 공부해, 그래야 돈 벌고 출세하잖아!" 사람들은 돈이 많은지, 학벌이 좋은지, 사회적 지위가 높은지, 게다가 외모가 출중한지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등급화하고, 서열화한다. 따라서 누구나 더 많이 벌기 위해, 더 좋은 학벌을 위해,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위해, 더 출중한 외모를 위해 무한 경쟁에 몰두할 수밖에 없고, 반드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삶이 힘들다. 경쟁의 승자는 돈, 학벌, 지위, 외모를 과시하며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양 우월감에 빠져 살 테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패배감은 물론 열등감과 자책감에 시달린다. 이 때문에 삶을 버리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다. 그중에서도 2030 청년 세대의 자살 비율이 제일 높다.

우리나라 청년들은 삶을 시작하자마자 삶을 버리고 있다. 나는 이들에게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을 말하고 싶다.
니힐리즘이 청년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는 한국 사람 모두에게 니힐리즘을 말하고 싶다. 한국 사회에서 승자의 기쁨만 만끽하며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경쟁이 치열하면 아무리 승자라 해도 그 누군가에게는 패자이고, 경쟁이 치열하면 그만큼 서열화가 강화되어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사람은 점점 소수가 된다. 과연 이렇게 살아야 할까? 돈, 학벌, 지위, 외모가 과연 사람을 평가하고 등급화하고 서열화하는 절대적 가치일까? 더 나아가 이 세상에 인간의 삶을 평가할 절대적 가치라는 것 자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말하는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은 니체의 사상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히 니체의 사상을 소개한 책은 아니다. 내가 니힐리즘에 대한 니체의 통찰과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에 대한 그의 혜안을 수용하지만, 그의 사상 전체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나는 특히 주인과 노예, 귀족과 무리, 강자와 약자, 고귀한 자와 비천한 자를 나누는 그의 엘리트적 사고방식에 반대한다. (…)
나는 그런 세속적 가치들이 마치 신처럼 추앙되며 인간을 짓누르는 절대적 짐이 된 오늘날,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포하듯, 이런 가치들의 죽음을 선포하고 싶다.
나는 어려서부터 니힐리스트였다. 지금은 철학 교수지만, 많은 순간 니힐리스트로 살았다. 이 책에는 니힐리스트로 살아온 나의 경험과 니힐리스트 철학자로서의 내 생각이 담겨 있다. p. 18~21


니체와 니힐리즘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내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일종의 전율을 경험했다. 그것은 니힐리즘과의 만남이었다. (…)
니힐리즘이란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할 그 어떤 삶의 목적이나 가치도 존재하지 않고, 이 세계 역시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존재하며, 그저 무의미한 생성, 변화, 소멸만이 반복된다는 철학적 입장이다. 나는 이러한 니힐리즘을 통해 당시 나의 고민의 정체가 결국 니힐리즘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니힐리즘을 통해 나의 고민을 표현할 수 있는 철학적 언어를 알게 된 셈이다.

니체는 왜 니힐리즘을 주장했을까? 사실 니체가 니힐리즘을 주장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니체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가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면, 니힐리즘을 주장하진 않았을 것이다. (…)
그가 기독교인이었다면, 이 세계는 신이 창조한 것이며, 따라서 이 세계는 신의 섭리에 따라 운행하고, 인간은 신의 뜻에 따라 구원에 이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더구나 기독교에서 구원이란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과 행복을 보장하지 않던가! 그러나 니체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신의 죽음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니체의 「즐거운 학문」에는 신의 죽음을 선언하는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니체는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 들고 광장에 나타난 미친 사람의 입을 통해 신의 죽음을 선포한다.

나는 신을 찾는다. 나는 신을 찾는다. 신은 어디로 갔는가? 신이 사라졌나? 신이 아이처럼 길을 잃었나? 아니면 신이 숨기라고 했나? 나는 말한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 당신들은 신의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를 맡지 못하는가? 지금 이 교회들은 신의 무덤과 묘비가 아닌가? 나는 당신들 앞에서 신의 영혼을 기리는 진혼곡을 부른다.
ㅡ 니체, 「즐거운 학문」, 니체 전집 12, 책세상, 199-201쪽, <125. 광인> 축약

이렇게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포하지만, 니체가 단순히 기독교 신을 부정하거나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공포한 것은 아니다. 서구 문화에서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서구 문화에서는 중세까지만 해도 신은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최종 근거였다. 인간은 절대적이고 영원히 살아갈 때, 그 삶은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인간이 절대적 가치인 양 추구하는 것들은, 그것이 진리이든, 정의이든, 도덕이든, 결국에 가서는 신을 최종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많은 사람은 절대적이고 영원한 존재인 신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고, 신의 영향력 또한 사라졌다.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언한 것은, 신이 지배하던 중세 시대가 붕괴한 후 신의 존재가 점차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인간은 본능에 따라 사는 동물과 달리 삶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다. "어차피 죽을 것 왜 살지?" 인간은 이렇게 삶 자체를 문제 삼는다. 그렇기에 인간은 삶이 아무리 괴로워도, 이 괴로움에 의미가 있다면 이를 견딘다. 그러나 아무런 의미 없이 괴롭기만 하다면 인간은 차라리 삶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기독교 교회는 흔히 내세의 구원을 말하며,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도록 설교한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이 사는 의미이자 목적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삶의 의미와 가치, 그 방향까지 제시했던 바로 그 신이 죽었다는 선포는 삶 자체를 문제 삼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이제 인간은 삶의 의미, 가치, 방향 모두가 사라진 무(nihil)의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니힐리즘(nihilism)이다. (…)

나는 사춘기 시절의 나의 고민이 바로 니힐리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니힐리즘은 나의 고민을 표현할 철학적 언어일 뿐 해결책은 아니었다. 나는 나의 고민이 니힐리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더 많은 고민을 갖게 되었다. 인간이 따라야 할 그 어떤 삶의 목적, 가치, 의미도 없다면, 이 세계가 그저 생성, 변화, 소멸이 반복되는 무가치한 세계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회도 도덕도 법도 정의도 다 필요 없는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까? 그리고 내가 지금껏 인간과 사회와 자연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다 허구일까? 나는 이 모든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나는 철학의 길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한때는 철학과 학생으로 지금은 철학 교수로 여전히 철학을 하며 산다. 그간 내가 무엇을 배웠고, 어떤 생각에 도달했든, 변함없는 사실은 이 모든 것이 결국 사람이 창조한 것일 뿐, 인간의 삶과 이 세계가 지금처럼 원래 그렇다는 것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p. 52~60

한도 끝도 없는 무한한 우주를 생각하면 티끌보다 작은 지구에서 티끌도 안되는 인간들이 서로 옥신각신하며 싸우고, 싸움이 커지면 폭력이 난무하고, 전쟁도 불사하고, 세계 대전까지 일어난다. 지금은 핵 전쟁으로 아예 인류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무한한 우주의 눈으로 보면 현미경으로 살펴보아도 찾을 수 없는 미미한 존재들이 이러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한마디로 우습지 않은가? 물론 우주가 제아무리 넓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의 사소한 이익이라도 이게 제일 중요한 게 인간이다. 그러나 우주의 눈으로 보면 우리에게 아무리 큰 문제라도 작아 보인다. 따라서 무한한 우주를 생각하면 그만큼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p. 81~82


아모르파티
니힐리스트에게 인생이란 아름다울까? 고통뿐일까? 니힐리스트는 어떻게 인생을 살까? 나에게 니힐리즘이란 말을 알려준 니체는 많은 글을 썼고, 많은 생각을 남겼다. 나는 니체 전집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니체의 사상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나의 마음속에 각인된 한마디 말이 있었다. 나는 이 말을 통해 니체적으로 사고하고, 니체적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니체의 저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라는 책 제목을 빌자면, 나는 이 말이 '니체적인, 너무나 니체적인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것은 '아모르 파티'다.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우리말로 '운명 애'로 번역된다. 말뜻만 보면 아모르 파티는 운명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이 운명이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 인생의 과정마저 정해져 있다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니체는 이 세상이 존재하는 데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고, 인간의 삶이 따라야 할 그 어떤 이유도 목적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인간에게 닥친 운명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운명에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긍정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삶의 이유와 목적을 스스로 창조하는 자기 창조적 삶을 살라고 말한다. 따라서 운명을 사랑하라는 것은, 이 세계와 삶의 무의미함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니힐리스트의 삶을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세계와 삶을 무의미하게 보는 니힐리스트에게 니체는 왜 자기 창조적 삶을 살라고 말할까? 니체는 쇼펜하우어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겐 누구나 삶의 의지, 즉 살려는 의지가 있다고 본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살지 않고, 죽으려는 사람도 있을까? 물론 사는 것이 고통스러운 사람도 있고, 그래서 삶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에게도 삶의 의지가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 사람은 삶의 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 삶의 의지를 실현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p. 96~98

어차피 죽을 것인데 왜 살지? 이런 질문에 아무런 답도 내릴 수 없다면, 인간이 아무리 삶의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삶의 이유나 목적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이 삶의 이유나 목적을 찾기 위해서는 죽음의 설교자들이 말하는 참된 세계나 천국이 필요하다. 그러나 반대로 이는 삶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참된 세계나 천국에 관한 이야기는 현재 인간의 삶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절하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삶의 주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설교자들에게 순종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이 살면서도 삶을 부정하는 자기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아모르 파티, 즉 이 세계와 삶의 허무함을 긍정하는 데서 시작한 자기 창조적 삶이다. 그러나 아모르 파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니힐리즘에서 출발한 자기 창조적 삶은 지금까지 사람들이 절대적 가치를 부여한 모든 것을 부정할 수밖에 없으며, 이 절대적 가치에 대한 복종이 주는 안도감을 거부하고, 영원한 세계의 유혹마저 떨쳐버릴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길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무한한 삶의 가능성을 해방하며, 자기 삶의 주인이 될 뿐만 아니라, 누구도 대신할 수도 누구와 비교될 수도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거듭난다. 이런 점에서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아모르 파티가 '인간의 위대함'이 발휘되는 공식이라고 말한다. p. 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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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힐리스트로 사는 법 - 삶이 무겁고 힘든 사람에게 니체의 니힐리즘이 전하는 지혜
문성훈 지음 / 이소노미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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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가치, 도덕, 의미를 전면 부정하는 철학적 관점, 니힐리즘! 니힐리스트로 산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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