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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장례식
조현선 지음 / 북로망스 / 2026년 1월
평점 :
#협찬 하고 싶은 말이 남았다는 건....
결국 했어야 하는 말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저에게
그런 시기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밤마다
이불 속에서 저주하던 시기..
(한동안은 몰래 일기를...
쓰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장면들이 떠오르지만..
가장 크게 떠오르는 장면은...
아버지의 살의를 느낀 어느 새벽..
공포를 가득 집어먹은 채로,
20~30m 쯤 떨어진 아랫집으로
뛰어가서 간절히 도움을 요청했던 장면..
급하게 뛰어 올라와서..
말려 주신 덕분에 큰 일 없이
넘어갔다고 당시에는 생각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당시에 유독~
오바를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폭력으로 간 경우가
매우 드물기도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건..
폭력에 대해 깊은 혐오를 남긴
사건이었다는 점 입니다.
당시에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직 술을 드시지 않은 낮 시간에
하는 잔소리가 고작이었습니다.
술을 드셨을 때 주로
폭력성이 드러났기에..
술이 미웠습니다.
어렸을 땐 누가 묻기도 전에..
"나는 커서 술은 절대 안 마실거야."
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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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는 지금 술을 마십니다.
물론 만취를 늘 경계하며 마시고..
그런 일이 실제로 거의 없기도 합니다.
안 마시는 게 제일 좋을테지만..
그래도 마시는 이유는..
무언가가 자꾸만
잊고 싶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요즘 <어린 왕자>를 틈이 날 때마다
다시 보고 듣고 있는데요..
어린 왕자가 술꾼이 있는 별에
짧게 방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대로 타이핑해서 옮겨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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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마시는 건데?" 어린 왕자가 그에게 물었다.
"잊어버리려고." 술꾼이 대답했다.
"뭘 잊어버리려고?" 이미 그가 불쌍해진 어린 왕자가 물었다.
"부끄러운 걸 잊어버리려고." 술꾼이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뭐가 부끄러운데?" 그를 도와주고 싶어서 어린 왕자는 캐물었다.
"술 마시는 게 부끄럽지!" 술꾼은 말을 마치고는 입을 다물었다.
어린 왕자는 당황한 채 가버렸다.
'어른들은 정말이지, 너무, 너무 이상해.' 여행 중에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p. 67~68 《어린 왕자》(살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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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적정한 삶'을 추구합니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사는 삶..
이게 제가 지금 지니고 있는..
'잠정적 결론으로서의 적정한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문학의 매력을
점점 더 많이 느끼고 있는데요...
오늘 한 번 더 느꼈습니다.
무엇이든 용서할 수 있고,
무엇이든 사랑할 수 있고,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고,
무엇이든 구원할 수 있는...
문학의 매력을.
직접 읽어보시길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디테일은 아래에 첨부하겠습니다.)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끝!!
#나의완벽한장례식
#조현선 지음
#책추천 #소설추천
#한국소설 #베스트셀러
#책스타그램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문학은 사랑입니다.
#북스타그램 #바닿늘
비슷한 주제의 글은..
#바닿늘소설
아래에서부터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야간 아르바이트를 여러 번 해봤지만 이번 일은 좀 무서웠다. 어쩌면 이번 일자리가 하필 종합병원 매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p. 9
'그렇다는 건 지금 시간이.'
나희의 눈이 무심결에 매점 벽에 걸린 벽시계를 향했다. 시침은 숫자 2를 가리키고 있었다. 미끄러지듯 시선이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그녀는 숨을 꿀꺽 삼켰다.
시계 아래 흰 벽 앞에 환자복을 입은 할머니 한 명이 기척도 없이 나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산소 호흡기를 끼고 눈이 벌건 노인이었다. (…)
온몸이 관에 뚫리고 결박된 모습으로 노인은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뻐끔거렸다. 나희는 카운터 뒤에 몸을 오그린 채 앉아 있었다. 한기가 돌면서 소름이 돋았다. 노인은 앞으로 발을 옮기려 했지만 다음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 그녀는 얼굴이 벌게진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새벽 두 시 노인을 본지 벌써 일주일째였다. p. 15~16
미수가 입을 열었다.
"지금 내 말 이상하게 듣지는 말고, 그냥 묻는 거니까…… 혹시 뭐가 나오니?"
"네, 네?"
"밤에 혹시 여기나 바깥에 뭐 이상한 거 나오냐구."
어리둥절해진 나희가 대답하지 못하자 미수가 재차 물었다
"귀신 같은 거 말이야."
차마 꺼내지 못하던 말이 사장의 입에서 나오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눈초리에 미수는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아니, 그게."
"사장님 알고 계셨던 거예요?"
"그게 말이다."
"호, 혹시 사장님도 보시는 거예요?"
"그건 아니지만." (…)
"그냥 좀 이상한 남자랑 할머니였어요."
나희는 예상치 않게 지난 일주일 동안 밤에 본 두 사람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이미수는 심각한 얼굴로 가만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환자복을 입은 할머니와 겨울 패딩을 입은 남자.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반대로 돌아보면 사라져 있는 두 사람. 분명히 현실의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나희의 앞에 있을 때만큼은 이곳에 존재하는 자들이었다. p. 19~21
아직 엄마가 살아 있을 적이었다. 나희는 업마와 손을 잡고 시장에 다녀오다가 골목 어귀에 앉아 있는 어떤 아저씨를 봤던 것을 기억했다. 아마 아홉 살쯤이었을까. 어렸던 나희는 엄마의 손을 잡아 끌면서 손가락으로 그 아저씨를 가리켰다.
"엄마, 저 아저씨 바닥에 이상하게 앉아 있어."
어린아이의 눈에도 확실히 그 남자의 자세가 이상했다. 그는 고개를 기묘한 각도로 꺾은 채 담벼락에 기대 있었다. 보통이라면 하지 않을 자세였다. (…) 엄마는 아저씨 쪽을 한번 봤다가 나희 쪽을 내려다보았다. 엄마의 표정이 이상했다. (…)
"여전히 보이는구나."
엄마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희는 이미 말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이상한 것들을 보았다. 친구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돌아오는 것은 따돌림이라 어린 나이에도 나희는 그런 말을 잘 하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에게는 솔직히 말했지만 그럴 때면 아빠가 어두운 얼굴이 되었다. 엄마는 비교적 평온했다.
"나희야 땅을 봐야지."
엄마가 타이르듯 말했다. 항상 엄마가 가르쳐 준 대로 나희는 이상한 사람들을 보면 땅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면 그 사이에 그들은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난 뒤 며칠 뒤에는 엄마가 다시 그들을 찾아갔다는 건 기억했다. 나희가 궁금해서 쳐다보면 엄마는 항상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나희도 좋은 일 해야 해.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건 항상 좋은 일이란다."
"그럼 그 사람들은 힘든 거예요?"
"응. 그 사람들은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어서 우리 눈에 보이는 거거든. 그걸 해결해 주면 가벼운 걸음으로 가야 할 곳에 간단다."
하지만 나이를 더 먹어서 어른이 되기 전에는 그들을 정면으로 보지 말라고 엄마가 이야기했다. 나희는 어린 나이에도 엄마의 말을 꼭 지키려고 애썼다. 덕분에 초등학교 시절 동네 친구들은 나희를 언제나 '바닥만 보는 아이'로 기억했다. 열세 살때 엄마가 암으로 죽은 뒤에는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 이후로는 이상한 것들이 아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그것을 몹시 다행으로 여겼다. 나희는 이제 그런 걸 보지 않으니까 엄마처럼 시름시름 앓다가 이르게 떠나지 않아도 될 거라며 안도했다. 나희도 여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스물이 갓 넘은 지금, 그들은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p. 58~60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결혼할 당시 아버지는 멀쩡한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의 꼬드김에 퇴직금으로 사업을 하겠다고 나왔고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미수의 집은 내리막길로 굴러 떨어졌다. 빚이 생기고 가장이 자포자기 상태가 되자 전업주부였던 어머니는 어린아이들을 집에 두고 돈을 벌러 나가야 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는 가족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 이미 미수는 아버지에게 대들면서 동생과 어머니를 보호하려고 했다. 미수는 아버지에게 맞은 다음 날 어머니에게 울면서 졸랐다.
"엄마, 이혼해서 우리랑 살자. 셋이 살자.
"안 돼. 미수야, 그래도 아버지가 있어야 하는 거야."
"왜? 난 없어도 돼. 엄마도 아빠가 없는 게 더 좋지 않아?"
"아버지도 곧 정신 차릴 거란다.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어머니는 돌아앉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폭력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만 했다. 어머니는 그래도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돈을 벌어와 남편에게 주었고 삼시세끼 식사를 준비했으며 며칠에 한 번씩 맞았다. 중학교에 막 들어간 후 어머니는 미수에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어오라고 요구했다. 이제 너도 컸으니 장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강요. 미수는 열일곱에 모두 버리고 집을 나왔다.
어머니도 힘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이제 50이 넘어 이미수는 그때의 어머니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미수의 어린 시절 어머니는 따뜻하고 활기찬 사람이었지만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에는 완전히 달라졌다. 고등학생 때쯤에는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 미수는 어머니도 그럴 수 있었겠다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p. 249~250
"오래전 엄마하고 같이 찍은 거야."
"어머님하고 닮았어요, 사장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어머님은 지금 어디 사세요?"
나희의 순진한 물음에 미수는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셨어. 10년 전에."
나희는 잘못 물었나 싶어서 목을 움츠렸다. 하지만 미수는 별 상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엄마랑 사이가 안 좋았거든. 가출한 뒤에 아예 한 번도 본 적 없어. 남동생한테는 나중에 연락 오긴 했었어. 엄마 죽은 뒤에. 평생 나한테 연락하려고 애썼다고는 하더라. 근데 뭐, 내가 사느라 바빴으니까."
"그랬구나."
나희는 이미수의 어머니가 살아 있었다면 대략 몇 살이나 되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미수는 현재 50이 넘었고, 어머니는 최소한 일흔에서 여든 넘어까지도 가능한 연령대였을 것이다. 그녀는 어렴풋이 어떤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p. 254~255
그녀가 결혼하던 당시는 지금과 세상이 많이 달랐다. 그녀는 1969년에 남편 이훈석과 결혼하여 아이를 둘 낳았다. 아주 예쁜 딸과 연년생 아들이었다. 시부모님은 첫 딸을 기뻐하지 않았지만 곧이어 세상에 나온 작은 아들 덕분에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남편 이훈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조연자는 딸이 더 예뻤다. 처음으로 그녀가 세상에 내놓은 아이는 마치 그녀의 분신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첫째 딸을 세상에 없이 귀애하며 사랑했다. 딸은 자랄수록 더 영특했고 사랑이 넘쳤다. 남편은 그런 조연자의 딸 사랑을 유별나다고 하면서도 딱히 탓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예쁜 옷을 보면 직접 사다주고 곰 인형이나 솜사탕 선물도 자주 해주었다. 젊은 부부와 꼬물거리는 두 아이는 그림처럼 살았다. 아마 그대로 살았다면 모두가 끝까지 행복했으리라. 하지만 불행은 늘 느닷없이 찾아온다. p. 259
이훈석은 여태까지 한 번도 실패를 겪은 적 없어서 이런 상 황을 견딜 능력이 없었다. 그는 술을 마시며 화풀이를 시작했다. 가장 만만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처음에는 아내 조연자를 때렸다. 그 다음에는 자식들이었다. 술을 진탕 마신 뒤 가족들을 때리고 아내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조연자는 식당으로 일을 나갔고 아이들은 차마 이훈석 곁에 둘 수 없어 유치원에 보냈다. 없는 돈에 지금 애새끼들 호강시키는 거나며 남편이 비웃었다. 하지만 그런 아빠 곁에 아이들만 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아이들도 변한 가정의 분위기를 재빨리 눈치챘다. 집에 아빠만 있을 때는 숨죽여 방 구석에서 떨고 있다가, 엄마가 오면 뛰어나가 치맛자락에 매달렸다. 하지만 그때쯤 이미 조연자 역시 지독하게 지쳐 있었다. 남편의 술주정과 폭력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견뎌내는 데만도 모든 힘을 다 썼다. 결국 아이들이 맞아도 막아주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스스로도 쓰러지도록 학대 당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가정이 지옥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쉽고 빠른 수순이었다. 조연자는 남편의 폭력과 생계의 위협 사이에서 구석으로 몰렸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자마자 그녀는 아르바이트라도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종용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행동이 남편과 비슷하게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알았더라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일단 살아내야 했으니까.
한 살 차이라도 첫 아이라고 딸에게 더 모질게 대했다. 아들은 한 살이 어려도 둘째라서 차마 가혹하게 대할 수가 없었다. 딸은 이미 초등학생 때 제발 이혼하라고 애원하며 조연자에게 매달렸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이혼이라니. 평생 고지식한 집안에서 자라 전업주부로 산 조연자에게 생각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남편이 뭐라고 하든 최대한 따르는 게 도리였다. 조연자는 회초리를 들며 버릇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딸을 야단쳤다. 결국 딸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 어느 날 가출해서 영영 사라져 버렸다. 남편은 욕설을 퍼부으며 실종 신고를 하려는 조연자를 막았다. 배 곯고 고생한 뒤에 돌아와도 받아주지 않을 거라면서. 하지만 결국 구렁텅이로 떨어진 건 이훈석과 식구들이었다.
아마도 그때 어린 딸의 말을 조금이라도 귀담아들었다면 후회할 일이 적어졌을 것이다. 남편의 장례식장에 앉아서 조연자는 멀거니 생각했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 그녀는 마음이 지나치게 가벼워서 놀랐다. 아마 그녀 자신도 모르게 너무 오래도록 바라온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딸을 생각하면 괴로웠다. 진작 갈라섰다면 딸을 잃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딸과 대화해 보려고 뒤늦게 노력했지만 도통 연락은 닿지 않았다. 그 뒤로도 수십 년간, 마치 그 시절을 끝없이 반성하라는 것처럼. 조연자는 딸의 부재를 형벌로 끌어안고 살았다. p. 266~268
"아빠. 만약에 엄마가 지금 나타난다면 나한테 뭐라고 말할 것 같아?"
"응?" 아빠는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얼굴로 나희를 바라보았다. (…)
아빠는 어처구니없어 하면서도 순순히 대답했다. (…)
"네 엄마는 안 나타날걸. 너한테 할 말 없어서."
"에엥, 그게 뭐야." (…)
"진짜로, 아빠. 나 정말 궁금해서 그래." (…)
"정말이야 엄마는 아빠한테 너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했어. 그리고 아빠가 자부하는데, 엄마가 말한 걸 다 지켰거든. 멀리서 나와 너를 바라보면서 자랑스러워는 하겠지만 우리 앞에 나타나진 않을 거야."
노을에 비치는 아빠의 주름진 얼굴에는 눈부신 감정이 빛났다. 열심히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우리 셋 모두 최선을 다했잖니. 원래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남은 말이 있는 거란다."
납득되어서 나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 남았다는 건 결국 했어야 하는 말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 할머니는 최선을 다하지 못해 이미수에게 전할 말이 남은 것일 테다. 그 사정을 아는 것은 이미수뿐이었다. p. 270~271
"사실 엄마가 아버지랑 이혼했으면 훨씬 행복했을 텐데 그러지는 않았어."
나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희의 부모님은 정말 사이가 좋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부들도 세상에 많다는 걸 알았다.
"나도 남동생도 아버지한테 정말 많이 맞았어. 난 이혼하라고 엄마한테 소리를 질러댔지만 엄마는 항상 그럴 수 없다고 했었지. 우리를 아버지 없는 자식들로 만들 수 없다면서 말이야."
미수는 쓰게 웃었다.
"지금 생각해도 웃겨. 왜 우리 핑계를 댔을까. 그냥 본인이 이혼할 용기가 없었던 거면서. 중학생 되니까 나한테 아버지한테 줄 돈 벌어오라고 혼내기까지 했었거든. 남동생 대학 등록금도 내가 벌어놔야 한다면서."
말은 그렇게 해도 미수 역시 이제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삼사십 년 전 경제적 능력이 없었던 주부가 아이 둘을 데리고 이혼하면 어떻게 먹고 살아야 했을까. 그 시기 남편 없이 사는 여성은 치유할 수 없는 흠결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엄마는 가정 폭력이라는 말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남편이 때렸다고 하면 '다음에는 잔소리를 좀 더 부드럽게 하라'는 말을 충고라고 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열일곱 살의 이미수는 그걸 견디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의 판단으로 집을 떠나 서울로 상경했다. 나와 보니 닥치는 대로 일해서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다. 서울로, 그다음에는 일본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나 떠나고 나서 6년 정도 뒤에 아버지가 죽었어. 그 이후에 엄마는 시체 염을 하면서 벌어서 동생하고 둘이 먹고살았나 봐."
어머니가 죽고 나서야 남동생과 연락이 되었다. 지금으로부 터 10년 전이었다. 어머니의 사망 후 상속 절차 때문에 동생이 아닌 법원에서 연락이 왔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1년을 버텼대. 너무 고통스러워서 연명 치료를 중단하려고 했는데 나하고 연락이 전혀 안 되었던 거지. 산소호흡기 떼려면 가족 전체 동의가 필요한 데다가 첫째인 내가 없었으니까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었나 봐." (…)
"정말일까? 엄마는 나한테 미안했을까?"
"그러셨을 거예요."
나희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녀는 주머니에 담아두었던 쪽지들을 꺼냈다. 곱게 접은 백지들이었다.
"이거요. 매점에 밤마다 나왔던 할머니가 주신 거예요."
미수의 어머니가 1년 가까이 연명치료를 받다 사망했다는 말에 나희는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의료용 관에 결박된 듯한 할머니는 끝내 밤마다 나타나 미수에게 뭔가 전하고 싶어 했다.
"그 할머니, 산소호흡기랑 의료용 관 같은 걸 많이 매달고 있어요. 사장님을 볼 때마다 카운터로 다가오고 싶어 했구요."
미수는 말없이 쪽지를 만지작거렸다. 사실 짐작하고 있었다. 그전에는 어렴풋한 추측일 뿐이었지만, 서랍에서 이 쪽지 더미를 발견하는 순간 더 확실히 알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언제나 이런 방식으로 쪽지를 접어서 미수에게 주고는 했다.
"사실 이거, 우리 엄마가 쪽지 접던 방식이야."
미수는 조심스럽게 종이를 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백지였다.
"우리한테 미안한 일이 생길 때마다 이 안에 별사탕을 한 두 개 넣어서 쥐여주고는 했지. 너무 돈이 없어서 다른 간식은 사줄 수 없으니까 일하던 식당에서 얻은 입가심용 별사탕을 넣어준 거였어. 아무 말 없이 이걸 아침에 주고 가면 난 그 조그만 별사탕을 언제 먹을까 고민하다가 엄마 오기 직전에야 먹었어. 별사탕은 아무 향기도 없이 정말 설탕 덩어리잖아. 근데 그걸 먹으면 너무 행복했어. 그 시절엔 별사탕이 곧 행복이었다니까."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늙어 죽은 우리 엄마는 이제 별사탕도 줄 수 없게 된 거구나. p. 281~284
"엄마 나한테 미안해요? 그런 거예요?"
매점 안은 여전히 고요했다. 공기의 떨림조차 없는 공간 안에서 이미수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외따로 떨어진 시간 속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착각이겠지만, 아주 오래전 엄마의 살 냄새가 코끝에 맴도는 것 같았다. 유치원에 미수를 보내며 머리를 빗겨주던 엄마, 크리스마스 파티에 간신히 시간을 내어 찾아와 준 엄마. 미수는 쪽지를 만지작거렸다. 하니씩 원망하고 하나씩 미안해하기엔 너무 오래된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저 엄마를 보고 싶을 뿐이었다.
"나 괜찮아요. 이제 행복해요. 엄마도 행복하면 좋겠어요."
조용한 새벽 공기는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미수는 발치에 뭐가 톡 떨어진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허리를 숙여 그것을 집었다. 손톱보다 더 작고 연한 분홍색의 별사탕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별사탕이 미수의 발치로 쏟아져 내렸다. 밤하늘을 가득 채우는 은하수처럼 빛나는 사탕 물결이었다. 달콤한 향기가 콧속을 가득 채웠다. p. 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