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마, 소슬지
원도 지음 / 한끼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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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죽지 마, 죽긴 왜 죽어…

죽음에 대해 나름..(?)
자주 생각하는 편입니다.

이건 '죽고 싶다는 생각'
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고..

'잘 죽고 싶다는 생각'
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믿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될 거 같습니다.

살면서 여러 크고 작은 일들을 겪다 보니,
약간은 무뎌질 수도 있는 거 같아요.

벌어서 먹고 살기도 바쁜데..
'잘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한편으로..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 역시..
이렇게 생각했던 기간이 길었습니다.
그래서 앞만 보고 달렸..
(아니 사실은 걸었..)습니다.

그런데 몇 차례인가
호되게 자빠져 보니까..
(몸이 자빠지면 필연적으로..
마음까지 자빠지는 거 같아요..)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그동간 나의 소중한..
외양간을 너무 방치했구나."

저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라는 속담을 결코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소를 잃었으니..
'오히려' 외양간을 '반드시' 고쳐야죠.

소를 키울 게 아니라면
리모델링을 해도 되고...
(저는 기왕이면 서재로 만들고.. 싶..
그래서 출판계가 좋아하는 '프로적독러'
'빛과 소금 독자'가....될..ㅎㅎ..)

제가 산골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생각이 조금 더 자유로운 걸 수도 있는데요..

솔직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독사에 물려서 죽을 뻔한 경험은..
그저 운이 나빠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살아났으니 결국은 운이 또 좋았죠..)

그런데 어느 정도는
제 선택에 의해 바뀐 측면도..
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골이 우물이었다면..
적어도 우물 밖으로는
나온 거 같아요.

제가 본 우물 밖의 세상은..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 같았어요.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상황은 저마다 다를테지만
다수에 반드시 섞일 필요는..
없는 거 같아요.

두쫀쿠 안 먹고도..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솔직히 궁금하긴 하지만..
두쫀쿠 보다 저는 맥주 한 캔이 더 좋습니다.
심지어 더 싸... 고.. ㅎㅎㅎ...

저는 살아야 할 이유를 최소 한 개 이상
품고 있는 사람만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사소한지 거창한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소한 게 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내일 아침, 고향에서 받아올 예정인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오곡밥(사실은 잡곡밥)이..

저는 당장 떠오릅니다.

---

이 소설의 제목에는
모순이 들어 있습니다.

이미 죽은 소슬지에게..
죽지 말라는 제목이니까요.

하지만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죠..

저는 모든 픽션은 그 속에..
논픽션을 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작가의 경험에 의한 생각이 담길테니..)

제가 느끼기에 이 책은..
이미 죽은 채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소슬지들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죽지 말라고,
살 이유를 찾으라고...

생각보다 찾아 보면 많다고...

그리고 죽을 땐 죽더라도
이왕이면 좋게 죽으라고...
(좋은 기억을 품고 떠나라고..)

제가 생각하는 좋은 죽음은..
후회를 이승에 덜 남기는 죽음입니다.

나중에 바뀔 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좋은 죽음'은..
무엇인지 저에게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면 저도 참고하겠습니다.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끝!!

#죽지마소슬지
#원도 지음

#오팬하우스
@오팬하우스

#한끼
@한끼

#경찰관속으로 #추천도서
#독서 #소설 #책스타그램

죽기 전에
빛과 소금이 될테야..ㅎㅎ

#북스타그램 #바닿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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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닿늘소설



내일이 온다고 달라질까? '못 잔 잠은 죽어서 잔다'는 말은 싹 다 거짓말이었다. 죽음은 그냥 죽음일 뿐, 살아 있을 때 못다 한 뭔가를 할 수 있는 여가 시간이 절대 아니었다. 멈추지 못한 생각은 내가 가장 불행했을 때를 일곱 번쯤 복기하고 나서야 겨우 끝났다. 물론 잠이 들어서가 아니라. 하주가 퇴근할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주의 이름은 반장의 말을 유추해 알게 되었다. 변하주라는 이름의 여자는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에어팟을 꼈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빼지 않았다. 무슨 노래를 듣고 있을까? 문득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나는 남에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었다. 사는 게 너무 버거웠으니까. 오늘뿐인 내 삶에서 남까지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돌이켜보면 스스로에게도 집중하지 못하며 살아왔다. 내가 무슨 꿈을 가지고 있었는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이 있는지, 팔자가 사납다는 핑계로 그냥 되는대로 산 건 아니었는지. 생전 처음 보는 여자의 뒤를 따라다니며 지난 삶을 반추하는 동안, 내 몸은 점점 불쾌할 정도로 투명해졌다. (…)
퇴근하고 잠들 때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하주에게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경찰관님."
함께 잠들지 못하는 나는, 그때부터 계속 쭈그려 앉은 채로 하주를 불렀다.
혹시 영원히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그래서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완전한 귀신으로 이승을 떠돌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을 부러 하진 않았다. 막연한… 아주 막연한 희망이었지만, 왠지 하주가 내 말을 들어줄 것만 같았다. 그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보기로 했다. 지금껏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아온 나에겐 실낱같은 희망이 곧 확신으로 보였으니까. 초라하게 흔들거리던 목소리에 점점 힘이 실렸다.
그렇게 하주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하주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결과, 지금 내 상태는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소위 '구천을 떠도는 한 많은 영혼'쯤으로 결론지어졌다. 그리고 하주가 이 황당무계한 결론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데까진 딱 3분이면 충분했다.
"돌겠네. 이게 뭔 일이래."
혼자 중얼거리던 하주는 그때부터 구마, 퇴마, 영혼 달래기, 저승 가는 법 등 다양한 단어를 조합해 유튜브와 네이버에 검색하며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썼다. 여러모로 체력이 넘치는 사람 같았다. 나와 동갑이라고 했다. 우리가 다른 어느 곳에서, 그러니까 내가 살아 있을 때 이승의 어딘가에서 만났다면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까? 나는 무릎을 감싸안은 자세로, 나 대신 내 승천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 하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걱정도 안 돼요?"
"뭘 더 걱정하겠어요. 이미 죽었는데. 제 몸도 직접 보셨잖아요."
"아, 그쵸. 돌아가신 건 맞긴 한데…."
내 이름이 붙은 수첩을 덮었다가 다시 펼쳐 몇 줄 안 되는 정보를 읽기만 반복하던 하주가 물었다.
"왜 저승을 못 가시는 걸까요?"
"글쎄요…."
"혹시 무슨 원한이라도 있어요?"
"원한까진 잘…."
내 태도에서 의지가 없다는 걸 느낀 건지, 하주는 더 캐묻지 않았다.
"근데 절 발견한 사람이 누구죠?"
"박미자 씨요. 슬지 씨가 살던 원룸 건물 주인이라고 하시던데요."
하주의 이야기를 듣고 웬 장면 하나가 곤두박질치듯 머릿속으로 굴러떨어졌다. 하주가 우리 집으로 출동 나오기 전, 현관문을 몇 번 두드리다 대답이 없자 마스터키로 허락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던 미자의 모습이었다. 미자는 참 무례한 사람이었다. (…)
그런 미자가 죽은 나를 제일 먼저 발견했다니, 이보다 더 최악일 수는 없었다. 미자는 소리를 지르며 7평짜리 원룸을 돌아다니다 화장실에서 나를 발견했다. 욕지거리를 내뱉은 미자는 한참 동안 내 몸을 내려다보다 경찰에 신고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면 어쩌려고 두 손 놓고 지켜만 보고 있었을까. 미자는 집 밖으로 나가려다 책상 위에 놓인 내 휴대전화를 발견하곤 냉큼 주머니에 넣었다.
"굿할 비용이라도 대야지. 진짜 재수 옴 붙었네!"
유품을 챙길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미자였기에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으리라. 나는 순간 하주에게 미자가 휴대전화를 훔쳐 갔다는 사실을 말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생전 처음 보는 귀신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 주는 하주는 알고 있을까? 세상엔 상상 이상의 악의를 아무렇지 않게 실행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p. 320~325




작가의 말

나는 생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다. 살아서 뭐 하나, 어차피 내 인생은 아무 일도 없이 흘러가다가 죽음으로 끝날 텐데. 끝없는 고통만 겪다 끝날 거라면 차라리 그 끝을 내가 앞당기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달고 살았다. 비판과 부정, 회의 같은, 보기만 해도 입이 텁텁해지는 단어들이 나의 수식어였다. '였다'라고 말하는 건, 지금의 나는 꽤 많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뻔하고 시시한 결말이지만. 무엇이 '툴툴이', '징징이'였던 나를 바꾸었나. 종교도,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도 아니었다.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순간에는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이 따랐지만, 모든 감정의 파도가 끝난 다음 고요히 복기해 보면 대부분 하잘것없는 감정 소모에 가까웠다. 경찰관으로, 과학수사요원으로 일하면서 숱한 죽음을 마주한 결과도 아니었다. 몸이 피곤해서 툴툴거릴 체력조차 없이 꾸역꾸역 살다 보니, 어느새 하나둘씩 제자리를 찾았을 뿐이다. 난파선이라 여졌던 인생의 배도 어쩌다 보니 제 항로를 찾아 적당한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우왕좌왕하면서도 항로를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는 나의 배를 보며 깨달았다. 이 모든 풍경은 내가 살아 있기에 볼 수 있다는 사실을. p. 35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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