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소비는 없다 - 내일을 바꾸는 똑똑한 선택은 있다
최원형 지음 / 블랙피쉬 / 2026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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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우리의 과소비는 당연하지 않습니다

생태, 에너지, 기후변화 같은 문제를
(이하 편의상 ‘환경’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다루는 책을 읽다 보면 저는 매번...
여러모로 반성을 하게 됩니다.

“내가 지구 환경에
이렇게나 많은 피해를 주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환경 문제는 다른 사회 문제들에 비해
결과가 아주 천천히, 그리고 멀리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꾸준히 관심을 유지하기가
유독 어려운 분야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관심이 큰 소수는 아주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다수는 굉장히 소극적으로 머무르게 됩니다.

어쩌면 이 구조 자체가 환경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기본값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인간은 흔히 ‘인지적 구두쇠’라고 불립니다.
한 번 편해진 방식이 생기면,
그 습관을 바꾸는 일을 몹시
어려워한다는 뜻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특성에 사회적 정당성이 붙으면,
그게 바로 ‘유행’이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조금 단순화한 설명일 수도 있지만,
저는 꽤 설득력 있는 구조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 유행을 경계하는 편입니다.
특히 한국 사회는 유행에 유독 민감한 문화라고
느끼기에 조금 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 없이 유행을 따른다는 건,
요즘 자주 말하는 ‘생각의 외주화’,
혹은 ‘사유의 외주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 유행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의미가 마음에 들면
저 역시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더 나아가 알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면—
“그냥 좋으니까 좋은 거야.”
“다들 쓰잖아.” “요즘 유행이야.”

이런 말들로 설명되는 소비는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 기준에서는
그게 바로 ‘과소비’이기 때문입니다.

---

사실 저는 예전엔
‘남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예를 들어 10만 원의 여윳돈이 생기면,
맛있는 걸 먹기보다는 뭔가 소유할 수
있는 걸 먼저 떠올렸습니다.

맛있는 음식의 기쁨은 잠깐이지만,
무언가를 소유하면 그 기쁨은 오래
갈 거라고 막연히 믿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 성향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저의 태도를 돌아보게 된 건,
‘과소비’에 대한 문제의식이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

자본주의가 인류를 더 풍요롭게 만들었고,
저 역시 그 수혜자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 ‘풍요로움’의
이면에 있는 문제를 조금씩 직시하기
시작한 단계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랫동안 주류였던 경제학보다
뒤늦게 등장한 행동경제학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존재인지,
그리고 그 비합리성이 어떻게 구조화
되는지를 정직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한 번 누적된 거대한 흐름은 바꾸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집단 지성’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집단 지성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더 현명한 개인들이 모일수록 더 잘
작동할거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 ‘현명함’은 저절로
자라나지 않습니다.

학습을 통해서 만들어질테죠..

그래서 저는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난 윤석열 정부의 행보 중
가장 심각했다고 느낀 사건 중 하나는
후쿠시마 핵 오염수 해양 방류(투기)
문제였습니다.

우리 정부가 사실상 동조했다는 점에서,
저는 이것이 인류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많이 잊혔지만, 그래서 오히려
이제라도 다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류의 이유는
‘일본의 이익’ 말고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

환경은 거대한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집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과소비를 다시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관점으로 소비할 것인지 생각하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저는 우리가 이번에도 결국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어렵겠지만..
어려움과 불가능은 동의어가 아니니까..)

환경 문제 개선에 있어서..
적정한 소비, 그리고 적절한 교육.

이 두 가지가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끝!!

#착한소비는없다
#최원형 지음

#블랙피쉬
@블랙피쉬

#블랙피쉬
착한 소비는 없다.
내일을 바꾸는 똑똑한 선택이 있을 뿐..

#북스타그램 #바닿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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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필리아바닿늘
#바닿늘교육



아래에서부터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新(신) 삼국지, 우리는 어디를 따를 것인가?

세 나라가 있습니다. 우연히 그 세 나라 과거사를 들여다보다 재미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한때 세 나라는 모두 같은 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현재 세 나라는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석유 채굴 기술이 날로 발전하면서 새로운 유전을 계속 발견해 석유가 일상 에너지의 대명사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는 세계 경제가 순풍을 타며 꾸준히 성장 가도를 달리던 때였습니다. 에너지 소비 역시 꾸준히 상승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오일 쇼크가 두 번 찾아옵니다. 4차 중동 전쟁과 이란 혁명으로 기름값이 큰 폭으로 올랐어요. 당시 주요 국가들 주가가 폭락할 정도로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았습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을 찾기 시작했고, 평화적 이용이라는 교묘한 수사로 원자력발전이 슬그머니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세 나라는 독일, 덴마크, 일본입니다. 대표 탈핵 국가로 알려진 독일은 1969년부터 실용 핵발전을 시작해 한때 전체 전력의 30퍼센트를 핵발전이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 초 독일 연방 정부는 프라이부르크 가까이에 있는 비일 wyhl 지역에 스무 번째 핵발전소를 건설하려 합니다. 비일 지역 사람들은 주변 숲을 망가뜨리면서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데에 반대했습니다. 숲을 지키려 핵발전소 건설 반대 운동을 하다 시민들은 환경 문제 전반에, 특히 핵문제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독일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그 와중에 1986년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독일은 체르노빌 낙진의 피해 국가이기도 했고요. 시민들의 반핵 운동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2011년에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사고가 또 일어났습니다. 사고 수습이 안 되는 모습을 전 세계가 지켜봤지요. 독일 정부는 단계적으로 핵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했고, 2023년 4월 15일 마지막 남은 3기 핵발전소 가동을 마침내 종료했습니다.
오일 쇼크 당시 덴마크는 전체 에너지 공급량 가운데 수입하는 석유가 88퍼센트를 차지했습니다. 당시 전 세계 주요 에너지원은 석유였습니다. 석유는 석탄처럼 태우고 나서 재를 치울 필요가 없고, 탄광 광부들의 파업에서도 자유롭다는 이점이 있었거든요. 송유관만 깔면 그 이후에는 사람의 노동력이 별로 필요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석유 의존도가 높았기에 유가가 상승하자 새로운 에너지원이 필요해졌고, 그때 핵발전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1976년 덴마크 정부는 향후 20년 동안 에너지 소비가 50퍼센트가량 증가하리라는 예측을 토대로 핵발전소 15기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이때 덴마크 공과대학 닐스 마이어 물리학 교수를 비롯한 과학자와 시민들은 함께 머리 맞대고 <대체 에너지 정책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10년간 정부와 시민들 사이에 지난한 싸움이 이어졌고, 핵발전소 계획을 접는 걸로 결론이 났습니다.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덴마크는 핵발전소를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1966년에 핵발전 상업 운전을 시작하며 매우 공격적으로 핵발전소를 건설했습니다. 당시 일본 시민 사회는 조용했습니다. 정부의 친핵 정책에 처음으로 반대 목소리가 나왔던 건 세계 최초로 고속 증식로 몬주에서 냉각제 유출 사고가 있었던 1995년이었습니다. 일본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핵과 악연이 있는 나라입니다. 1945년 8월 6일과 9일,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리틀 보이little boy라는 이름이 붙은 우라늄 폭탄과 팻맨fat man이라는 플루토늄 폭탄이 투하됐고, 그 후유증은 대를 이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은 핵을 들여왔고, 2011년에는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 사고 최고 등급인 7등급 사고가 터졌습니다.

세 나라 이야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덴마크 사례입니다. 물론 독일도 이제 핵발전소를 더 이상 가동하지 않지만 가동했'던' 핵발전소는 그대로 있지요. 향후에 폐로 과정에 굉장한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덴마크는 시민 사회 반발로 시작도 하지 않고 핵발전을 깨끗이 접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들여다보다가 그룬트비Grundtvig라는 인물을 발견했습니다. 그룬트비는 19세기를 살았던 덴마크의 종교인이자 시인, 교육자입니다. 틀에 박힌 교육이 아니라 일하는 국민을 위한 교육을 역설했고 그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자유 학교가 덴마크 곳곳에 세워졌습니다. 선생과 학생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평등하게 다양한 토론을 하면서 생각을 키워 가는 폴케호이스콜레가 대표 사례입니다. 100년 이상 이어진 이런 교육 환경이 핵발전소가 아예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정부가 향후 20년 동안 50퍼센트가량 에너지가 증가하리라 예측했을 때 시민들은 왜 그토록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지 의문을 던졌고, 핵발전소로 생산하려는 전기를 풍차로 해결하자고 했습니다. 그 유명한 풍차 프로젝트입니다.

풍요로움이 언제나 선일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나라, 핵발전을 아예 시작도 하지 않은 덴마크. 숲의 소중함을 알고 이웃 나라를 보며 핵의 위험성을 배운 나라, 핵발전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독일. 핵의 상흔이 여전한데도 교훈을 얻지 못한 나라, 세계 최대 핵 사고를 여전히 수습도 못하고 있는 일본. 지금 우리는 어느 길을 따라가고 있을까요? p. 197~201






이 책을 처음 출간했을 당시 '그럼 아무것도 소비하지 말라는 이야기냐', '소비하는 나는 나쁜 사람이라는 거냐'며 반농담 조로 반응을 보인 지인이 몇 있었어요. 금융업에 종사하는 어떤 이는 "어, 안 되는데. 소비가 위축되면 큰일인데"라고 해서 조금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현재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아니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 소비라는 페달을 쉼 없이 밟아야 한다는 건가요? 이런 반문이 내 안에서 불쑥 올라왔던 기억도 납니다. 제가 제기한 문제의식은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소비마저 부정하자는 게 아닙니다. 풍요의 함정에 빠져 내 욕망을 부추기는 소비 대신 연민, 사회적 유대를 바탕에 둔 소비를 해보자는 취지입니다. p. 6

'굉장한 경험'을 하러 그토록 힘든 훈련 과정을 거치고 비싼 비용을 치르며 불편한 우주복을 착용한 채 우주로 가아만 할까요? 그 굉장한 경험을 위해 짧은 시간에 어마어마한 탄소 배출을 하고 우주에 오염 물질을 배출해야만 할까요? 남쪽에서 여름을 나기 위해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먼 거리를 날아온 새들을 만나는 거야말로 '굉장한 경험' 아닌가요? 우리 공동체의 삶을 보다 충만하게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요? 대체 이런 우주여행이 우리 공동체에 어떤 '쓸모'가 있으며 우리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어떤 도움이 될까요? 우리의 삶이 보다 충만하려면 사회 구조와 문화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p. 17~19

곰곰 생각해 보면 소비자는 일시적인 편리함을 누리고 이익은 해당 기업이 가져가는데 온라인 쇼핑의 폐해는 공동체 전체가 세대들 이어가며 받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불현듯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간절한 필요인지 만들어진 필요인지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이미 소비는 한계를 넘어섰으니까요. 한 가지 더, 새벽 배송에 가려진 고된 노동도 있지요. 왜 꼭 물건이 총알이나 로켓의 속도로 와야 할까요? 새벽 배송 때문에 누군가는 밤 잠을 못 자고 물류 창고에서 물건을 포장해야 하고 또 누군가는 밤길을 달려 우리 집 닫힌 현관문 앞을 다녀갑니다. 산타는 일 년에 한 번으로 족하지 않을까요? p. 39

요즘 청소년들도 비틀즈를 알고 폴 매카트니도 알더군요. 그런데 '고기 없는 월요일'을 아냐고 물으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폴 매카트니는 비틀즈 멤버로 활동하던 1972년부터 채식을 했다고 합니다. 최근 그는 환경 운동가, 동물권리 활동가, 채식주의자로 더 알려져 있는데요. 폴이 2009년 12월 코페하겐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개막에 앞서 '고기 없는 월요일'을 세계인에게 제안했습니다. 고기 없는 월요일은 말 그대로 월요일에는 식단에 고기를 빼자. 그러니까 일주일에 하루는 육식을 멈추자는 뜻입니다. (…)
전 세계 35개국이 '고기 없는 월요일'에 참여하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2010년부터 함께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도 많이 알려지진 않은 것 같아요. p. 44~45

독일은 유리병뿐만 아니라 페트병과 캔에도 보증금 제도를 적용하고 있어요. 바로 보증금이라는 뜻의 판트Pfand입니다. 판트는 재활용을 장려하고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고안된 보증금 반환 제도입니다. (…)
전 세계에서 독일이 가장 높은 재활용률을 자랑하는 건 바로 이런 판트 같은 제도 덕분입니다. 판트 병의 98퍼센트 이상이 반환되거든요. p. 73~74


독일은 천연자원 빈국입니다. 그래서 폐기물을 매우 중요한 자원으로 여깁니다. 이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독일과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천연자원이 부족해 광물 자원의 90퍼센트, 에너지의 95퍼센트 이상을 수입하기 때문입니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한 해 원자재 수입액은 약 3,083억 달러입니다. 하루에 1.2조 원 이상을 수입하는 셈입니다. 이렇게 비싸게 수입된 자원은 소비된 뒤 폐기물로서 매립되거나 소각되며, 그 양이 연간 2,278만 톤에 이릅니다.
환경부와 한국폐기물협회는 이처럼 자원 낭비로 발생하는 문제를 알리고 해결하고자 9월 6일을 '자원순환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9와 6은 거꾸로 해도 모양이 같아 순환을 의미합니다. p. 78~79

핀란드 사람들에게는 '보통 사람들의 법칙'이라는 게 있어요.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평범하다는 생각이지요. 그리고 틀림과 다름의 의미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며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크게 관심이 없고 자기 인생을 살아요. 자신의 취미가 소중한 삶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때요? 핀란드는 잘 알려져 있듯이 복지 국가인데요. 이 복지에 드는 비용 은 많은 세금이 있어서 가능합니다. 부자들은 기꺼이 많은 세금을 내고요. 내 형편이 어렵다면 국가의 복지 혜택을 누리면 그뿐이에요. 제가 청소년 대상 강의를 다니다 보면 꿈 이 건물주, 돈 많은 백수라는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납니다. 노력하지 않고 편안히 살겠다는 발상인데요. 우리나라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핀란드에서는 노동을 하지 않고 벌어들인 소득에 어마어마한 세금이 부과됩니다.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환경을 생각하고, 남이 가진 게 부러운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취미를 즐기며 인생을 행복하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그런 삶의 철학을 우리라고 꿈꾸지 못할 이유가 있나요. p. 147


세계는 자유무역의 시대가 끝나고 각자도생의 시대로 접 어드는 듯합니다. 208년 이후 세계 경제는 링거를 꽃은 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부채 위에 연명하고 있어요. 더 이 상의 경제 성장을 계속 추동할 여력이 없어지는 틈바구니에 서 등장한 인공지능 기술이 또다시 인류의 미래를 분홍빛으로 바꿔 주길 기대하는 걸까요? 과연 인공지능이 열어 보일 전혀 다른 세상에서 우리는 행복할까요? 기후 문제가 돌이 킬 수 없는 비가역 상태인 티핑 포인트에 근접했거나 이미 넘어섰을지도 모른다는 묵시록적인 전망이 과학자들 사이에서 나온 지 꽤 됩니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성장의 도그마를 찾기에 급급한 우리 인류는 이제 기술과 지혜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필요해 보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절실한 것은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의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 절체절명의 문명사적 위기를 어떻게 지혜롭게 헤쳐 나갈 것인 가가 아닌지요. 161~162


쓰레기로 가득 찬 채 해안가로 떠밀려 온 고래 이야기는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닙니다. 새로운 뉴스가 아니기에 무시해도 될 뉴스도 아닙니다. 어쩌다 뭍에 사는 우리가 바다에 사는 생명들의 목줄까지 쥐고 흔들게 됐을까요? 어느 생명이든 귀하지 않은 생명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적어도 우리 삶이 어떤 식으로 주변 생명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돌고래 집은 푸른 바다여야 하고 고래 뱃속은 쓰레기장이 돼서는 안 됩니다. 여타 생명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겠습니다.
거창 한 슬로건이 필요한 건 아니에요. 내 일상에서 이뤄지는 소비 하나하나가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를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삶, 이게 뭍에서 바다를 생각하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242~243


우리는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곳을 여행하면서 다 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즐기며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행에도 명암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비행기든 크루즈든 운항하는 동안에는 에너지를 소비하고 오염 물질과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이동하는 순간부터 환경에 반하는 일은 시작되고, 관광지 주민들은 소음과 쓰레기 등으로 몸살을 앓습니다. 부탄이나 베네치아의 관광서는 이렇게 충돌하는 가치의 균형을 적절히 맞추려는 노력으로 보입니다. 여행지의 문화와 환경 파괴 문제를 해결하려면 부탄처럼 해당 나라 정부나 지방 자치 단체도 대안을 모색해야겠지만 여행자 또한 현지 상황을 배려하며 여행할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p. 258

바다에 사는 고래나 상어처럼 몸집이 거대한 해양 동물들이 화물선에 부딪혀 목숨을 잃는 해양 로드킬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육지에 사는 우리가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대왕고래, 긴수염 고래, 혹등고래, 향유고래 등 멸종 위기 고래가 사망에 이르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화물선 충돌을 꼽고 있어요. 전 세계 선박 항로와 고래 서식 활동 경로가 92퍼센트 정도 겹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거든요. 현재 해양보호구역은 전체 바다 면적의 1.2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충돌 위험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해양보호구역을 3퍼센트로 확대해야 한다고 연구진은 주장하고 있어요. 해양보호구역 확대는 그린피스를 비롯한 여러 환경 단체가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 선박 가운데 선박 충돌로부터 고래를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갖추고 있는 선박은 고작 7퍼센트에 그치고 있어요. 당장 보호구역을 확대할 수 없다면 고래 보호를 위한 대책이라도 각 선박이 갖추면 좋겠습니다. 아니, 의무 조항으로 넣어야 할 것 같지 않나요? 선박의 속도를 줄이는 것도 해양 로드킬을 낮출 수 있는 방법입니다. 바다의 주인은 누 구일까, 하는 질문과 함께 그 많은 화물 가운데 정말 꼭 필요한 물건은 얼마나 될지도 궁금해집니다. 고래 목숨을 앗아 가면서까지 실어 날라야만 하는 가치 있는 물건의 기준은 또 무엇일지도 궁금해집니다. 280~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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