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 - 저항의 문장가 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의 정수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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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영원한 삶...

길 영(永): 1. 길다, 2. 시간이 오래다
멀 원(遠): 1. 멀다, 2. 심오하다, 깊다

영원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습니다.
어떤 상태가 끝없이 이어짐,
또는 시간을 초월해 변하지 않음.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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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어렸을 때의 시간은 참 느리게 흘렀습니다.

"도대체 내년이 오긴 오는 건가?"
싶을 만큼, 하루하루가 길게 느껴졌지요.

영원히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으로만 남을 것 같던 시절.

그렇게나 길었던 그 시간 속에서
보냈던 기억들은 이상하리만치 희미합니다.
뇌를 다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조심스레 고백하자면...
(이건 비밀이니까, 살짝 가까이 오세요. ㅎㅎ)

저는 사실 '뽀로로'였습니다.
노는 게 제일 좋았던.... ^^;;;

그런데 현실이 뽀로로를
그대로 두게 하진 않죠.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자식을
'뽀로로'로 남겨두지 않습니다.
제가 어릴 땐 그나마 덜했죠.
시골에서 자란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달랐습니다.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집에서 끼니를 걱정한 적은 없었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많이 놀았습니다.

다만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활동적인 편은 아니어서,
주로 온라인에서 놀았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더 열심히 놀았던 것 같습니다.

그 무렵, 광통신망이 가정으로
보급되기 시작했거든요.

이제는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그 전에는 인터넷을 전화선에 꽂아서 썼습니다.
전화비가 사용량에 따라 올라갔고,
집 전화는 늘 통화 중이었죠.
(요즘은 집에 전화기 자체가 거의 없지만,
그땐 다들 한 대씩 있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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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광통신이 깔리고 나서는
거의 인터넷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주로 온라인 게임을 했고요.

그럼에도 학교는 잘 다녔습니다.
'이 선만은 넘지 말자'는
마지노선 같은 게 있었거든요.

그 선을 넘는 순간,
'학생'이라는 합법적 백수의 탈을
스스로 벗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때는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당연히 학교는 가야 하는 줄 알았어요.
(가서 공부를 안 하더라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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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그 시절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그때는 원 없이 놀아도 시간이 느리게
흘렀던 반면..

지금은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땐 영원히 학생일 것 같았지만,

이젠 가끔
"이 속도로 가면 금방 세상 떠나겠구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삶이 오히려
'영원'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라면,
지금은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

나이 40에 이런 말을 하면
조금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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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가끔
엄청난 신대륙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 신대륙은
'바닿늘 유니버스' 안에서만 존재하는,
완전히 가상의 세계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의 흥분은 진짜입니다.

그런 경험을 할 때면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가끔은 정말 '영원히 살고 싶다'는 충동도
느낍니다.

윌리엄 해즐릿,
정말 좋습니다. 😊

여러분도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이쯤에서 줄일게요.

끝!

#영원히살것같은느낌에관하여
#윌리엄해즐릿 에세이집

#아티초크
#우주서평단

여지껏 윌리엄 해즐릿을
모르고 살아왔다니.. 맙소사...

영원히 살고 싶은...
#북스타그램 #바닿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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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닿늘글쓰기

★ 북스타그램_우주 모집,
아티초크 출판사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아래에서부터는 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집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해즐릿에게 급진성은 변화의 속도보다는 비판의 깊이와 원칙에 대한 헌신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까지도 해즐릿이 읽히는 이유는 그의 사상이 단순한 정치적 라벨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p. 13

이 선집에는 모든 면에서 해즐릿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여덟 편의 에세이가 들어 있다. 그의 문장은 가식적이지 않고, 근육처럼 단단하면서도 때로는 쓸쓸한 정조가 감돈다. 해즐릿은 독자를 기쁘게 하려고 글을 쓰지 않고, 독자를 흔들고 깨우기 위해서 쓴다.
해즐릿의 글은 오래된 철학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을 정면으로 꿰뚫는 거울이다. p. 15

1830년 9월 18일, 런던 소호에서 생을 마감한 해즐릿은 세인트 앤 교회 묘지에 묻혔다.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해즐릿은 진리와 자유와 인간애의 지지 않는 옹호자로 살다 죽었다. '의심하는 자는 그의 글을 읽으라.'
p. 23

영원할 것처럼 사랑하고, 영원할 것처럼 꿈꾼다
옮긴이의 말(공진호) 에서 발췌


진부한 비평가는 취향이나 사고에 대해 판단할 때도 옷차림이나 유행을 따질 때처럼 행동한다. 그 기준은 언제나 그가 교류하는 소수의 집단 사이에서 통용되는 분위기다. 그에게 지금 유행하는 생각을 포기하라고 설득하는 건, 마치 옷의 앞뒤를 돌려 입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
진부한 비평가에게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헛된 일이다. 그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논리가 강할수록, 그는 오히려 우리를 고집불통이라고 여긴다. 그의 근거 없는 가정들을 드러내려는 어떤 시도도, 그에게는 혼란스러운 상상력의 발작처럼 보일 뿐이다. p. 28~29

원칙이란 진실을 향한 열정이고, 어떤 신념에 대해 절대 흔들리지 않는 집착이다. 반면에 온화함은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는 인도주의에 불과하다. 온화한 사람은 종교든 정치든 어떤 대의를 위해 희생한 적이 없다. 그는 흐름을 거슬러 싸우는 게 뭔지조차 잘 모른다. 온화한 사람은 훌륭한 궁정 신하가 되고, 충성스러운 국민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자신의 편안함과 이익, 체면만 챙기면 되기 때문이다.(…)
온화한 사람은 권력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조국을 배신할 것이며,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결정에도 동조할 것이다. 단지 권력자의 그 따뜻한 미소 하나, 친근한 악수 한 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p. 44~45

종교는 사람을 진정으로 현명하고 선하게 만들 수 있고, 그런 척하게 만들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사람은 타인에게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하게 된다. 깊이 있는 사고를 하지 않는 이들에게 종교는 오히려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만약 전능한 존재가 자신을 지켜보며 판단한다고 믿으면서도, 그 믿음이 실제 삶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결국 자신이 누구이며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스스로를 속이기 시작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결점은 외면한 채, 자신이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믿으려 한다. 마치 자기가 자신의 결점을 무시하면 하나님도 그것을 보지 않으리라 기대하듯이. p. 55

인격을 파악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외모, 말투, 행동이 그것이다. 이 중 겉보기에 가장 피상적으로 보이는 첫 번째 방법, 즉 외모를 통한 판단이 오히려 가장 안전하고 가장 덜 속기 쉬운 수단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이 방법에 가장 흔히 의존한다.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는 인격을 판단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행동은 얼마든지 꾸며낼 수 있지만 사람의 얼굴은 속일 수 없다. (…)
첫인상이 가장 진실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우리는 첫인상을 그럴듯한 말이나 행동에 속아 잊어버렸다가, 결국 대가를 치르고서야 그 사실을 깨닫곤 한다. 한 사람의 얼굴은 오랜 세월이 만든 결과물이며, 그의 삶 전체가 표정에 새겨져 있다. 아니, 그것은 자연이 직접 찍어낸 흔적이며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p. 66~68


세상에는 완전히 쓸모없는 사람도 없고, 반대로 완벽한 사람도 없다. 누구에게나 약점이나 결점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가장 악한 사람들이라도 그들과 가까이 지내다 보면 혐오감이 줄어든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죄질이 가장 중한 범죄자들이 평범한 사람처럼 생겼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정말로 많은 면에서 평범한 사람들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p. 89~90

저녁을 굶는 것도 괴롭지만, 아침을 거르는 일은 그보다 더 쓰라리다. 아침의 그 한 끼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 하루를 견딜 힘이자, 세상의 풍파를 맞설 용기이며, 희망을 붙잡는 마지막 끈이다. 따뜻한 잠자리에서 깨어나는 순간, 어쩌면 가난 속에서도 꿀 수 있는 황금빛 꿈에서 막 빠져나온 그 순간, 먹을 아침이 없다는 말을 듣는 것은 감정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찌르는 냉정한 현실이다. 빈속은 마음까지 허기지게 하고, 그날 하루의 분위기 전체를 음울하게 물들인다. 가난은 꿈을 막지 않는다. 오히려 꿈은 더욱 선명해진다. 하지만 그 꿈에서 눈을 뜬 직후 식탁 위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은 그 꿈조차 사치였다는 듯 우리를 조용히 무너뜨린다. p. 102

우리는 활기찬 사람에게 마음이 열리고 고요한 고통보다는 찬란한 가능성에 더 오래 시선을 둔다. 이러한 선택은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감각의 반응이다. 이것은 탐욕이 아니라 인간적인 갈망의 한 형태이며, 그 갈망은 때로 우리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기도 한다. p. 123

청춘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른다. 영원할 것처럼 사랑하고, 영원할 것처럼 꿈꾼다. 이 믿음은 현실을 초월한 감각이며, 삶의 가장 순수한 불꽃이다. 그리고 그 불꽃은 내면의 태양처럼,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
삶의 시작은 마치 아름다운 여행을 떠나는 순간과 같다. 세상이 '나'를 위해 열려 있다.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 너머에 또 다른 풍경이 이어지리라 믿는다. 그 전망처럼 욕망은 끝이 없고 그걸 이룰 기회 또한 무궁무진할 것만 같다. 아직은 큰 장애물이 없고 지치지도 않았기에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다. p. 178

인간의 정신은 숭고하게 부풀 수 있지만, 동시에 비굴과 혐오와 편협함에 익숙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쇠하여 불평이 많아지는 자신을 깨닫고 놀라워한다. 청춘의 풋풋함이 언젠가 시든다는 사실이 자명한데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우리의 욕망과 기대는 두 세계를 모두 가졌다고 해도 만족하지 못할 만큼 크고 과도한 것이다. 그럼에도 생전의 불꽃은 꺼지지 않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다시 타오를 수 있다. 존재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유산이다. p.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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