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한국어판 발매 20주년 기념판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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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살고 계신가요?

제 삶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세 단계 변화를 거친 것 같습니다.

일단 무사히 성인이 되었고,
그 다음 (운 좋게)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마지막으로는 꿈을 찾았습니다.
(꿈에 대해서는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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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냥, 오랫동안..
되는 대로 살았습니다.

막 살았다는 건 아니지만..
목적이 불분명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부 DNA를 물려받은 덕분인지)
그럭저럭 성실함으로 모든 과정들을
통과해 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공허함이 느껴졌습니다.
(더 정확한 표현은 누적되어 어느덧
너무 커져버린 공허함이었을테죠..)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되지만..
그때는 그 공허함의 이유를 몰랐습니다.

저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늘 불안했습니다.
미래가 너무 불확실했거든요.

그런데 '아닌 척' 하며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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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무렵에
몸의 이상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무너진 건강은..
점점 더 무너져 갔습니다.

신체는 점점 망가지는데
당장 일을 그만둘 수는 없고..

결국 허리 디스크 시술을 받고,
3개월 동안 좋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나빠져서
수술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의 고통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디스크 수술 전날..
똑바로 서 있지도 못하고,
앉아 있어도 통증이 오고..
누워 있어도 통증이 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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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조금씩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전에는 강연 듣기를 좋아했고..
강연에서 추천한 책을 몇 권 사서
읽은 수준이 고작이었는데..

책을 읽으며 그런 공허함이
많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아, 참고로.. 그 전에도 무언가에 늘
빠져있긴 했습니다. 게임이 되었건,
물생활이 되었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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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꼭 책을 읽어서였다기보단..

의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면서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이 책의 역할도 무척 컸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저의 인생 책입니다. ☺️

이번에 한국어판 발매 20주년을
기념하여 리커버가 나왔습니다.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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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미뤄뒀던..
저의 꿈은 기여하는 겁니다.

사회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만한 능력이 아직 없지만~
계속 하다 보면 뭔가 성과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안 생기면 어쩔 수 없고요...)

목표는 되도록 크게 잡는 편이
성장에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200% 목표로 출발해서 150%에
도달한다면.. 성공은 아니지만 ~
성장에는 도움이 된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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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빅터 프랭클은
어느 강연에선가 크래빙 이론에
대해 언급합니다.

크래빙 이론은,
비행기 조종 시 바람의 영향을 고려해
실제 목표 지점보다 더 높은 곳을 목표로
비행해야 원하는 착륙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원리를 의미합니다.
(출처: 네이버 AI 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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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오늘도
의미를 찾아 나아가려 합니다.

조금은 무모할지라도,
조금은 불완전할지라도,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제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앞으로도 붙들고 싶은 삶의 태도입니다.

책 내용을 첨부로 공유하며..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끝!

#죽음의수용소에서
#빅터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

의미 있는 삶을 위해..
#북스타그램 #바닿늘

비슷한 주제의 글은..

#바닿늘심리학
#바닿늘자기계발



아래에서부터는 해당 책의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최소한으로) 수정 되었습니다.



추천의 글(고든 W. 올포트)
저술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프랭크 박사는 크고 작은 고통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가끔 이렇게 묻는다.
"그런데 왜 자살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물으면 어떤 사람은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재능이 아까워서라고 한다. (…) 환자들의 이런 대답에서 프랭클 박사는 정신과 치료에 중요하게 적용될 수 있는 어떤 지침들을 발견하곤 한다. 조각난 삶의 가느다란 실오라기를 엮어 하나의 확고한 형태를 갖춘 의미와 책임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프랭클 박사가 독창적으로 고안한 '실존적 분석', 즉 로고테라피의 목표이자 과제이다. p. 16


치열한 생존 경쟁의 각축장
수용소 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수용소 생활에 대해 그릇된 생각, 즉 감상이나 연민을 갖기 쉽다. 그러나 밖에 있던 사람들은 당시 수감자 사이에서 벌어진 생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일용할 양식과 목숨 자체를 위한 투쟁이었고,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친구를 구하려는 피비린내 나는 투쟁이었다.(…)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몇 년 동안 끌려다니다 보면, 결국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마련이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
이었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잔혹한 폭력을 일삼고 도둑질을 하는 건 물론, 심지어 친구까지 팔아넘겼다. 운이 아주 좋아서였든 아니면 기적이었든 살아 돌아온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p. 27~29


인간의 정신적 자유
우리가 믿고 있는 이론, 즉 인간은 여러 조건과 환경적인 요인(생물적, 심리적, 사회적 성격으로 이루어진)이 만들어 낸 단순한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론이 정말로 사실일까? 인간은 이런 여러 요소가 우연히 만든 존재에 지나지 않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강제 수용소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수감자들이 보인 반응이 '인간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라는 이론을 입증할 수 있을까이다. 그런 환경에 직면한 인간에게는 자기 행동을 선택할 자유가 없단 말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도 해답을 내릴 수 있다. 수용소 생활의 경험으로 사람에게 자기 행동의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감각을 극복하고 초조함을 제압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해 주는, 그것도 종종 영웅적인 성격을 띤 사례가 충분히 있다.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도 인간은 정신적 독립과 영적 자유를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제 수용소에 있었던 우리는 막사를 지나가면서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어 주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은 아주 극소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다음과 같은 진리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
강제 수용소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게 되는 것이다.

수용소에서 남을 위해 희생한 사람 몇몇과 친해진 후,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이 말을 자주 머릿속에 떠올렸다. 수용소에서 그들이 했던 행동, 그들이 겪었던 시련과 죽음은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를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해 준다. 그들의 시련은 가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 낸 것은 순수한 내적 성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p. 125~128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기대를 갖기 위해 때때로 자기 마음을 밀어붙여야 할 때도 있지만, 가장 어려운 순간에 구원해 주는 건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일이 생각난다. 나는 찢어진 신발 때문에 발에 심한 종기가 생겨 눈물이 날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겪으며, 수용소에서 작업장까지 몇 킬로미터를 절뚝거리며 긴 행렬을 이루어 걸었다. 날은 추웠고,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사정없이 내리쳤다. 나는 비참한 생활에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먹게 될까? 만약 특별 배급으로 소시지가 나오면 빵과 바꿀까? 2주일 전에 상으로 받았던 담배 한 개비를 수프 한 그릇과 바꾸어 먹을까? (…)
매일같이 시시각각 그런 하찮은 일만 생각하도록 몰아가는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 다른 생각을 하기로 했다. 문득 불이 환히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 강단에 서 있는 나를 떠올렸다. 앞에서 청중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 내 강의를 경청했다. 나는 강제 수용소에서의 심리학을 강의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과학적인 관점에서 거리를 두고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방법을 통해 어느 정도 내가 처한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기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마치 과거에 일어났던 일처럼 관찰할 수 있었다. 나 자신과 내 문제는 내가 진행하는 흥미진진한 정신과학의 연구 대상이 됐다. p. 138~140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로고스(Logos)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로고테라피는 일부 학자들이 '빈 제3정신 의학파'라고도 부르는 이론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와 의미를 찾아 나가는 인간 의지에 초점을 맞춘다. 로고테라피 이론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인 동력으로 본다. 내가 로고테라피를 프로이트 학파가 중점을 두고 있는 쾌락의 원칙(혹은 쾌락을 찾고자 하는 의지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이나 아들러 학파에서 '우월하려는 욕구'로 부르는 권력에의 추구와 대비해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 173~175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
몇 년 전 프랑스에서 설문 조사를 했는데, 89퍼센트의 사람들이 인간에게는 살아야 할 의미를 주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그중 61퍼센트는 그것을 위해 기꺼이 목숨 내놓을 수 있는 '어떤 것'과 '어떤 사람'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 후 나는 빈에 있는 내 진료소에서 환자와 병원 직원을 대상으로 같은 종류의 설문을 했다. 그 결과 프랑스에서 수천 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했던 것과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불과 2퍼센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존스홉킨스 대학교 사회 과학자들이 48개 대학 7,948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또 다른 통계 조사를 시행했다. 이들이 작성한 예비 보고서는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2년 동안 진행된 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설문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학생 16퍼센트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대답했고, 78퍼센트는 첫 번째 목표가 '자기 삶의 목표와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했다. p. 176~177

여러분은 원칙에 어긋나는 예외적인 경우만 들었다고 나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위대한 것은 그것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실현하는 것도 힘들다. 스피노자의 《윤리학》 마지막 문장이다.

여러분은 우리가 굳이 '성자'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저 '훌륭한' 사람에 관해 얘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소수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소수의 반열에 합류하려는 도전 의지를 본다. 세상은 지금 아주 좋지 않은 상태에 있고, 우리 각자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더욱더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경계심을 갖자.
두 가지 측면에서의 경계심을.

아우슈비츠 이후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히로시마 이후 우리는
무엇이 위험한지 알게 됐다.
p. 260~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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