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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세 번째, 미국에 가다 ㅣ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E. M. 델라필드 지음, 박아람 옮김 / 이터널북스 / 2025년 6월
평점 :
#협찬 자전적 이야기의 힘
저는 평소에 대부분의 이야기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전적 특성을 어느 정도는 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만화나 동화 같은 장르도 마찬가지예요.
작가의 삶의 흔적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작품 안에 스며들 수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그 흔적은 때로는 상징적인 메시지로,
때로는 현실과 허구가 뒤섞인 방식으로 드러나죠.
(구체적인 장르 구분은 제가 잘 모르지만요. 😊)
이야기의 깊이는 작품마다 다르지만,
자전적 이야기만이 줄 수 있는 몰입감과 진정성은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자전적’의 사전적 의미는
“자서전의 성질을 띠고 있는 것.”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예를 하나 들자면,
한강 작가님의 소설들을 떠올릴 수 있겠죠.
그의 작품을 관심 있게 읽어본 사람이라면,
어떤 자전적 경험이 역사와 만나는 지점이 있다는 걸 느끼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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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인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내는 일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경험을
소설이라는 형식에 투영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 안에 녹아든 감정과 체험은,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곤 하죠.
저는 예전에는 논픽션을 더 선호했습니다.
픽션은 ‘가짜’ 이야기라고 여긴 측면이 컸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픽션에는 픽션만의 힘이 있다는 걸,
특히 자전적 요소가 짙은 소설을 읽으며 깨닫고 있습니다.
상상과 경험이 섞인 이야기일지라도,
그 안에서 우리는 아주 깊고 강렬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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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책도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100년 전 한 영국 여인의 삶을 따라가며,
저는 여러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고민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
그리고 변화라는 것이 얼마나 더딘 속도로,
얼마나 많은 저항을 뚫고 일어나는지를 느꼈습니다.
누군가는 지금의 여성 지위가 예전에 비해 많이 높아졌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단순히 보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변화가 있었던 건 맞지만, 그 과정에 비해 성과가 크다고 보기는…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국가마다 차이는 있겠죠.
영국이나 미국은 워낙 일찍부터 변화의 흐름을 겪어온 나라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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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았는데,
쓰고 지우다 보니 벌써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네요.
이번 시리즈는 총 네 권이고,
발췌한 인상 깊은 내용들도 함께 공유드릴 예정입니다.
다음 글도 기대해 주세요. 😊
끝!!
#어느영국여인의일기세번째미국에가다
#EM델라필드 지음
#박아람 옮김
#이터널북스
자전적 이야기,
자전적 리뷰... ?! ;;;
#북스타그램 #바닿늘
비슷한 주제의 글은..
#바닿늘소설
@woojoos_story 모집
@eternalbooks.seoul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 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서, 주관적인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아래에서부터는 해당 책의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최소한으로) 수정 되었습니다.
10월 1일
어제 집에 돌아오고부터 미국에 갈 수 없을 것 같고 가더라도 살아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으며 어쨌든 내가 없으면 집이 엉망진창이 될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이 불길한 생각을 남편에게 살짝 털어놓자 그는 이렇게 반박한다. (a) 이제 와서 여행을 취소하면 많은 돈이 낭비된다. (b) 길을 건널 때 어느 쪽을 봐야 하는지 잊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다. (c) 모르긴 해도 요리사와 플로렌스가 집안을 잘 관리할 거다. p. 47
10월9일
이제 내 객실이 너무도 익숙해졌다. 험한 날씨 탓에 이 안에 계속 누워 지냈기 때문이다. 과연 살아서 영국은 고사하고 미국이나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10월 11일
극심한 고통의 상태에서 차츰 빠져나오는 중이다. 로즈가 준 새 멀미약이 지금 나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어쨌든 나는 살아 있다.
그저 똑바로 누운 채 책을 읽거나 잠이라도 자기를 바라지만 둘 다 불가능하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시라도 떠올려 보지만 슬픔을 더하는 '슬픔의 절정은 행복했던 일들을 떠올리는 것', '세월은 계속 흘러가리' 같은 우울한 구절만 번갈아 떠오른다. 로버트와 아이들 사진을 꺼내 보지만 이 역시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울음이 터지면서 대체 왜 떠나왔을까 하는 후회만 들 뿐이다. 내가 죽어서 바다에 수장되거나, 내가 없는 탓에 로빈이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고 비키는 위험한 병에 걸리며 로버트는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상상을 여러 번 하고서야 저녁이 온다. 끝이 없을 것 같은 하루가 우울하게 저물자 다시 뱃멀미가 시작된다.
10월 12일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갑판에 앉아 점심으로 사과를 베어 먹고 있다. 어쩌면 살아서 미국을 불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나와 비슷한 여정을 소화했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떠올리며 무한한 존경을 느낀다.(…)
차 마실 시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하다가 이 배의 모든 시계가 내 시계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갑판 승무원은 매일 밤 한 시간씩 느려진다고 한다.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잠시 잊은 척하지만 사실은 무척 놀라고 있다. 로버트가 있다면 왜 그런지 설명해 줄 텐데.
10월 14일
드디어 미국에 도착했다. 저녁 7시쯤 자유의 여신상이 눈부시게 빛을 발하며 나를 맞아 준다. 항구로 들어서는 길은 놀랍도록 아름답고 고층 건물들도 듣던 대로 인상적이며 휠씬 더 장식적이다.
상갑판에서 풍경을 보며 감탄하고 있는데 낯선 젊은 여자 둘이 갑자기 나타나더니(혹시 바다에서 올라왔나? 비너스처럼?) 카메라를 든 청년과 함께 다가와 미국과 미국 여성, 현대 미국 소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려달라고 한다. 청년은 내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한다. 어쩐지 영화배우가 된 것 갈지만 안타깝게도 내 꼴은 이런 환상에 어울리지 않는다. (…)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환대 인사와 초대 전화를 다섯 통이나 받는다.(…)
이 모든 상황과 16층 객실에서 보이는 전망에 놀라며 감탄하지만 여전히 아이들 사진만 보면 마음이 몹시 흔들린다. p. 52~56
10월 31일
아침에 피트가 찾아와 우리는 함께 거리를 걸어간다. 사실 자기는 작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의 솔직한 고백에 나 역시 동조하면서 우리는 부쩍 가까워진다.
백화점에 도착하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내 평생 그렇게 인상적이고 커다란 백화점은 본 적이 없다. 우리는 다양한 매장을 둘러본다. 현대적인 가구 매장에는 수많은 방이 마련돼 있고 방마다 완벽한 사각형 소파와 유리로 된 색색의 동물 모형, 칵테일 용 식기, 철제 의자 따위가 갖춰져 있다.
(…)
피트는 이 백화점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자기 친구이자 아름답고 유능한 여자를 빨리 소개하고 싶다고 한다. 그녀의 이름을 알려 주지만 자꾸 잊어버린다. 나중에는 연상 기억법을 짧게나마 연습해서 그녀의 웨이브 진 머리카락을 마르셀라라는 이름과 연관 지어 기억한다. 이름보다 성이 더 중요하지만 아무리 들어도 외워지지 않아서 부르지 않기로 한다. 명사들의 이름이 적힌 사진들로 도배하다시피 한 그녀의 사무실은 퍽 인상적이다. 그녀는 그중 몇몇 이름을 말하며 내게 아느냐고 묻는다. 나는 번번이 모른다고 대답하며 열등감에 휩싸인다.(…)
이윽고 나는 안내를 받아 다시 서점으로 들어간다. 초판본 코너와 아동 신간 코너를 둘러보고 싶지만 참을 수밖에. 마르셀라의 젊은 직원이 꽤 많은 사람이 기다린다고 일러 준 뒤 지난주에는 하비 앨런이 왔었다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이제 《앤서니 애드버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볼 게 틀림없다. 나는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글씨로 뭔가를 적어 놓은 작은 쪽지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척한다.
꽤 많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무려 400~500명에 이르고 주로 여성이지만 남자도 가끔 섞여 있다. 이 많은 사람이 둘러앉은 작은 연단 위의 탁자 앞에서 강연을 해야 한다. 차라리 탁자 밑으로 기어들어가 숨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당연히 그럴 수는 없다.
마르셀라가 사람들 앞에서 짧게 얘기한다. 그사이 나는 이 세상에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으며 어차피 이 사람들은 오늘이 지나고 나면 다시 볼 일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우스운 이야기를 들려주자 꽤 잘 통한다. 다른 이야기도 떠오르는데 재미있지 않을까 봐 걱정하며 들려주지만 이번에도 성공한다. 문득 내가 타고난 강연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고국에서는 왜 아무도 그런 얘기를 해주지 않았을까? (…)
박수갈채를 받으며 자리에 앉는다. 겸손하게 보이려 노력하고 있을 때 문인 친구 아서와 그의 친구 빌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둘 다 내 강연을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부터 몹시 초조해지면서 겸손해 보이기는커녕 바보처럼 보일 거라는 생각에 시달린다.
때마침 피트가 다시 나타나는데, 괜히 내 강연을 들은 척하는 것보다 내게는 휠씬 나은 것 같다. 그는 사려 깊게도 다른 매장을 둘러보다가 돌아와서는 내게 책 몇 권에 사인을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제안한다.
그 몇 권은 결국 수백 권이 된다. 한참 앉아서 사인을 하고 있으려니 내가 무척 중요한 사람이 된 기분이다. 여자들이 끊임없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건넨다. (…) 나는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인사하며 끊임없이 사인을 한다. 내가 J.P . 모건이고 이 책들이 모두 수표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덧없는 공상이 머리를 스친다. p. 8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