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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가 사랑한 철학자들 - 예술은 어떻게 과학과 철학의 힘이 되는가
김종성 지음 / 비제이퍼블릭 / 2023년 2월
평점 :
#협찬 아는 만큼 보인다. 《아테네 학당》 벽화..
라파엘로를 아시나요?
저는 솔직히 자세히 몰랐습니다.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자세히 알 기회가 없었습니다.
(용기가 없었달까요.... ㅎㅎ..)
그런데 이번에 알아볼 기회가
생겨서 도전해봤습니다!
일단 저지르는 거죠..
수습은.. 그 다음!! ㅋㅋㅋ
읽으면서 중간 중간 수학 쪽으로
... 깊게 들어가서 당황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 발 스-윽 집어넣었다는 것에
만족을 하려고 합니다. ㅋㅋㅋㅋ
아우구스티누스 에서 아퀴나스로
넘어가는 흐름의 배경 이야기를
한 번쯤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습니다.
(제가 아직 준비가 덜 되서.. ;;;)
이 책은 기본적으로..
라파엘로가 그린 벽화, 『아테네 학당』 에
등장하는 인물들(철학자)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한 명씩 확대해서 그 속에 담긴
의미들을 설명하고 해석합니다.
요런 예술 작품 설명 방식은
매번 볼 때마다 흥미롭습니다.
그냥 볼 때랑 맥락을 알고 볼 때는
확실히 그림이 달라 보입니다.ㅎㅎ
어떤 방식의 리뷰를 할까 고민하다가..
기왕이면 제가 흥미로웠던 부분 위주로
소개해야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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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로 쓰인 발췌 내용은 스크롤을
내려면 보실 수 있습니다.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라파엘로가사랑한철학자들
#김종성 지음
#비제이퍼블릭
#북스타그램 #바닿늘
@woojoos_story 모집,
@비제이퍼블릭 출판사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 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비슷한 주제의 글은..
#바닿늘예술
#바닿늘철학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서, 주관적인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아래에서부터는 해당 책의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요약, 수정 하였음을
참조 바랍니다.
라파엘로의 시선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위대한 작품들을 말하고자 할 때, 라파엘로의 작품을 빼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파엘로 산치오는 매우 어린 나이에 교황의 부름을 받아 바티칸 궁전의 밋밋한 벽을 놀라운 그림들로 채웠고, 그 유산들은 다행히 지금까지 남아있다. 『아테네 학당』은 라파엘로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벽화 중 하나이자,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루게 될 그림이기도 하다.
『아테네 학당』에는 고대 그리스의 지성을 대표하는 인물 대부분이 모여있다. 그런데 사실 바티칸 궁전에 이들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아이러니한 일이며, 지난 역사를 고려해 보았을 때, 특히 교황의 궁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려져 있다는 것은 매우 놀랍다. 1231년 가톨릭 교황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누군가가 읽거나 가르치면, 그를 파문하는 것에 찬성할 정도로 아리스토텔레스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대한 신학자로 칭송받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교회와 아리스토텔레스를 화해시키는 데 성공한 이후, 가톨릭교회는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이교도적 의심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바티칸 궁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려지는 것을 허용했다. 어찌 보면 토마스 아퀴나스 덕분에 『아테네 학당』이 그려질 수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으니, 우리는 라파엘로와 동등하게 토마스 아퀴나스에게도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아테네 학당』 속 인물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얽혀 있다.
물론 『아테네 학당』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평가를 받는다. 조형미와 원근감, 그리고 인물들의 전체적 균형이 보는 이에게 감탄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파엘로의 천재성은 그저 그림을 잘 그리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그림의 가장 재밌는 점은 라파엘로의 시선으로 각 인물의 핵심 사상을 요약한 알레고리적 장치(*은유적으로 의미를 전하는 표현 양식)들을 보고, 그들 각각이 누구이며 어떤 빛나는 업적을 이루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더욱 위대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그러나 미술책과 휴대폰의 작은 화면으로 라파엘로가 묘사한 특징들을 찾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모든 것을 휴대기기로 보는 데 익숙한 우리 세대에게 일어나는 사소한 불행이다.
더 큰 불행은, 우리 대다수가 『아테네 학당』 속 개별 인물들의 사상을 낱낱이 알고 있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기와 인지도의 측면에서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어쩌면 누군가에게 피타고라스는 이름만 들어도 두드러기가 날 것만 같은 존재이며, 유클리드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눈치 채주길 바라며 라파엘로가 새겨놓은 수많은 지적 장치들은 우리의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라파엘로의 의도를 눈치채고 『아테네 학당』에서 진정한 즐거움을 느끼려면 무엇을 알아야 할까? 아니, 이와 같은 질문을 하기 이전에 우리가 이런 즐거움을 굳이 느낄 필요가 있을까? 물론 이 질문에 대한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앎'이란 단순히 필요의 여부를 떠나, 우리에게 큰 기쁨을 왕왕 선사해 준다는 점이다. 그러나 인기 있는 놀이 기구엔 줄이 긴 법이다. 마찬가지로, '앎'이라는 즐거움을 얻으려면 약간의 시간을 들여 한 단계 더 깊게 파고들어가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p. 18~20
플라톤은 기원전 400년경의 인물로, 22살에 소크라테스를 만난 이후 철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는 '아카데메이아'라는 학교를 설립했고, 거의 모든 분야의 문제들을 다뤘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플라톤의 사상을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눈다.
플라톤 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는 다섯 가지이다. 첫째는 이상향으로서, 기나긴 역사 속에 등장한 최초의 형태에 속한다. 둘째는 이상 이론으로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보편자 문제를 다룬 선구적 시도로 평가된다. 셋째는 영혼 불멸을 지지하는 논증이고, 넷째는 우주론이며, 다섯째는 지각이 아닌 상기로 간주되는 지식 개념이다.
『서양철학사, 버트런드 러셀』
(…)
플라톤은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렇기에 수학(기하학)을 사랑했다. 그의 학교 아카데메이아에 간판으로 내세웠던 도발적인 문구는 이러한 플라톤의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 플라톤 -
p. 27~31
플라톤은 감각을 지성보다 열등하다고 여겼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의 세계가 불완전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며, 감각 경험을 통해서 원의 이데아를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개별적인 100개의 원들 중에서 더 나아 보이는 원을 가려내고, 이로부터 더 좋은 원, 나아가서 완벽한 원이 무엇인지에 관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데아는 사물과 독립된 것이 아니라, 사물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이데아가 현세에 존재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현세란 플라톤이 그렇게도 고귀하게 여긴 천상의 세계만큼이나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보편자 논쟁은 우리가 땅을 딛고 서 있는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관한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 그리고 이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다루는 분야가 있다. 바로 '신학'이다. p. 77
독자들은 『아테네 학당』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고대 그리스 철학의 두 거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플라톤이 가톨릭 신학에 흡수되었다면, 위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어디로 갔을까? 당연히 그의 철학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신플라톤주의에 조금 영향을 미치고 사라지기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너무나도 존재감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다시금 그 존재를 드러냈을까?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 철학으로 신학의 토대를 다진 날로부터 800년 후,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라 불리는 인물이 태어난다. 바로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신학에 적용하여 가톨릭 철학의 황금기를 연 인물이자,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가톨릭 사상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지혜로운 성자였다. p. 84~85
라파엘로의 선택
『아테네 학당』에서 지구를 들고 있는 사람은 흔히 프톨레마이오스로 알려셔 있다. 라파엘로가 아테네 학당을 그린 시기는 1509-1511년이고, 지동설이 학자들 사이에 널리 퍼진 시기는 1515년쯤이다. 따라서 라파엘로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 보인다. 하지만 만약 라파엘로가 코페르니쿠스를 알았다고 가정해 보면 어떨까? 물론 프톨레마이오스가 틀렸고 코페르니쿠스가 옳다는 사실을 알았다 해도, 라파엘로는 감히 거기에 코페르니쿠스를 그려 넣진 못했을 것이다. 바티칸의 궁전 벽에 코페르니쿠스를 그려 넣는 것은 명백한 신성모독이니 말이다. 대신 라파엘로는 재치를 발휘해 코페르니쿠스를 모델로 삼은 프톨레마이오스를 그렸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예 프톨레마이오스인지, 혹은 코페르니쿠스인지 알지 못하도록 뒤돌아선 모습을 그리는 편리한 방법을 사용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이 무엇이든 라파엘로가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덕분에, 우리는 지구를 든 사람이 천체물리학을 빛낸 수많은 인물 중 누구일지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 p. 14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