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길 - 대화의 해석학을 향하여
이승종.윤유석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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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길_완독리뷰 #인칭에대한사유

@woojoos_story 모집
@sechang_official 도서 지원으로
우주클럽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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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철학 #대륙철학 #대화의해석학

[미션 6 마지막] 6-1. 완독 리뷰

최근 얼마 동안 저는..
인칭에 대해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그동안 깊게는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지만, 지난 주 겸손공장 수요북클럽에서 북살롱 오티움 정혜승 대표님이 들려준 화제의 그..!!!!??? 한 강 작가님의 책, <소년이 온다> 책 설명을 듣고 인칭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그래서 직접 인터넷에도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2인칭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습니다. 교육 과정에서도 보통 1인칭과 3인칭에 대해 가르치지, 2인칭은 잘 다루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조금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그냥 나 너 그들 이런 식의 짧은 설명이 아니고.. 조금 더 깊은 내용을 알고 싶었다는 겁니다. ^^;;)

아니, 그런데 이게 머선일입니꽈..?? 읽고 있던 책 <철학의 길>에서도 2인칭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겁니다. 헐... 게다가 완전 와닿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좋았던 내용을 다시 발췌하자면 특히 이 부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제 인생에서 부모님이나 친구와 맺은 2인칭적 관계를 넘어서 세상을 2인칭으로 체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우리는 보통 책을 물건으로 취급하는데 제게 책은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스타게이트였습니다. 저는 책을 통해서 위대한 저자들의 영혼 속으로 빨려 들어가거나, 거꾸로 그들이 제 마음 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체험을 했습니다. 책 속에서 그들과 직대면하여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저도 한 번씩 이런 체험을 합니다.
지금처럼... ^^

저는 2인칭에 대해 더 알고싶어졌습니다. 그래서 평소, 문학 아우라를 풍기는 아는 분을 향하여 SOS를 쳤습니다. 설명을 해주셨는데 앗..?? 들어도 뭔가 아리까리하긴 하지만~~ 분명 힌트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힌트를 여유가 생기는 즉시 풀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그것에 대한 부분은 나중에 그(??) 책을 다룰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가능하다면요. ^^;;;)

완독 리뷰인만큼 책 전체에 대한 느낌을 편하게 적어보자면, 일단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분 부분 아주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아마 제가 이해하는 수준이 더 높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평가를 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에 대해, 그리고 이승종 교수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저에게 큰 행운입니다. 살다보면 한 번씩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하는 길목에서.. 망설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되도록 미래를 떠올립니다. 이 선택에 후회가 남을지 남지 않을지를 떠올리는 거죠.

이 책은 무리가 될 거라는 것을 알면서 도전한 책입니다. 부분 부분 오지 탐험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로 헤매면서 봤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중간 중간 아름다운 풍경 등을 많이 놓쳤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래도 일단 오지를 빠져나왔다는 것에 큰 뿌듯함을 느낍니다. 나중에 언젠간(빠르면 조만간이 될지도.. ^^;;) 다시 오지를 탐험하게 된다면 ~ 그때는 주변 아름다운 풍경을 지금보다 더 만끽할 수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

짧게 감상을 요약하자면..

철학의 미로에서 헤매다가
겨우 운 좋게 빠져나온 듯한
어리둥절한 느낌과..

"그래도 한 발 담궈봤다"는
뿌듯함이 공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


[미션 6 마지막] 6-2. 흥미로웠던 페이지

수강생들과의 토론
홍해랑: 비트겐슈타인은 왜 신조어를 만드는 것
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했나요? 사유하는 사람
들은 언어선택에서 누구나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이데거가 신조어를 만든 것도 이미 있는 언어
로는 자신의 사유세계를 표현 할 수 없기 때문이
었을 텐데요. 혹시 비트겐슈타인은 사유의 폭이
나 깊이가 부족해서 신조어를 만들어야 할 필요
성에 미치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 그도 분명히
사유에서 신세계를 경험하였을 것 같은데, 왜
신조어에 대해 부정적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승종: 불교에서도 석가모니의 원음에 가장 가
깝다고 하는 『니까야』들은 술술 읽힙니다. 『니까
야』에서 얼핏 신조어처럼 보이는 것들도 사실 그
당시 인도 사회에서는 통용되던 용어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비다르마』나 후대의 대승 경전
들에서는 신조어들이 등장합니다. 아마도 비트겐
슈타인은 『니까야』같은 방식의 철학을 지향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 석가모니와 비트겐슈타인은
모두 철학이 전무후무한 것을 포착해 내거나 만들
어 내는 작업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을 초기 불교 경전의 정신으로 생각
해 보면, 그가 신조어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략)

저는 철학자들 중 신조어에서 자유로운 인물로 흄
과 니체를 꼽습니다. 그 두 사람의 글은 이렇다 할
가이드나 2차 문헌 없이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흄이나 니체는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아주
명료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더군요. 저는 이 두 사
람이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글쓰기에 혁명을 일으
킨 사람들이라고 봅니다. 이렇다 할 전문용어 없
이도 사유의 경지를 자연언어만 가지고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 사람들이라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이라면 홍혜랑 선생님
의 비판을 아마 절반 정도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비트겐슈타인과 하이데거는 비슷

한 듯하면서도 다른 길을 간 사람들입니다. 비트
겐슈타인과 비교하자면, 하이데거는 엄청난 야심
가가 아니었나 합니다. 하이데거는 서양철학 전체
를 다루면서 그 위에 더욱 개선된 방식의 형이상
학을, 혹은 형이상학 이후의 새로운 비전을 지닌
철학을 세우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트겐
슈타인은 그런 의지 자체가 오히려 올바른 철학
을 하는 데 큰 장애가 된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비트겐슈타인이 살아 있다면』이라
는 제 책의 서문에서 그의 철학에 '청빈주의'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최소한의 일상적인 언어
만을 가지고서도 철학을 서술하는 데 부족함이 없
다고 보는 입장 말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당대에

큰 돈을 상속 받아 억만 장자가 될 뻔한 사람입니
다. 그런데도 그 돈들을 모두 예슬가들에게 익명
으로 나눠주고 본인은 노르웨이의 오두막에서 용
맹전진(*몹시 고된 수행을 함)하였죠. 그는 이처
럼 청빈한 마음을 가지고 철학을 한 사람이고, 저
는 이런 태도도 그 나름대로 상당한 의의가 있다
고 봅니다. p. 359~361

박득송: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칠학논고』 에서는
자연과학주의에 경도되어 있었던 것 같고, 『철학
적 탐구』에서는 자연주의로 입장이 바뀐 것 같습
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수학적인 것들보다는 인간
적인 삶에 더 관심이 많아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
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철학이나 과학이나
종교가 모두 손잡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과학이
철학과는 맞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너무 철학에만
치우친 생각이 아닐까요? 오히려 21세기에는 과
학이 철학을 이끌어 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
각도 드는데 말입니다.

이승종: 아까 제가 발제문을 낭독할 때 비트겐슈
타인에 대해서 5가지 딴지를 걸어 보았죠? 그중
하나가 철학과 과학을 너무 차별화하면 철학이
오히려 왜소해지고 종말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는 것이었습니다. 철학과 과학은 같이 가야 한다
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비트
겐슈타인일 뿐입니다. 철학에 대한 그의 공헌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그가 다 섭렵하지 못한 현대
의 과제들에 대해서는 우리 시대에 우리들이 펼
쳐 나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의 삶은 저마
다 각자의 몫으로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선
생님의 비판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p. 363~364

2인칭 철학은 어떻게 학장될 수 있나요?
이승종: 제 인생에서 부모님이나 친구와 맺은 2인
칭적 관계를 넘어서 세상을 2인칭으로 체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우리는 보통 책을 물건으로 취급하는데 제게 책
은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스타게이트였
습니다. 저는 책을 통해서 위대한 저자들의 영혼
속으로 빨려 들어가거나, 거꾸로 그들이 제 마음
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체험을 했습니다. 책 속에
서 그들과 직대면하여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감
사했습니다. 문학작품이 출발점이었지만, 점차
철학과 인접 분야의 책들로 견문을 넓히며 생생한
고유화를 만끽했습니다. (후략)

2인칭 철학은
예술의 영역에서 어떻게 적용될까요?
이승종: 문학작품이 독서의 출발점이었다는 점에
서 저는 예술로부터 2인칭적 체험을 시작한 셈입
니다. 예술작품은 세상이 발신하는 의미의 신호
를 수신한 예술가가 이를 생생하게 형상화해 낸
것입니다. 그 예술작품이 다시 우리에게 메시지
를 발신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를 2인칭적으로
고유화함으로써 예술가와 소통하고, 감수성을
제고하고, 삶에 대한 이해를 심화합니다.
저는 문학작품 이외에 고흐의 그림과 브루크너의
교향곡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2인칭 철학은
윤리의 영역에서 어떻게 적용될까요?
이승종: 칸트는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
하라고 했지요. 2인칭 윤리의 초석으로 삼을 만한
훌륭한 지침입니다. 사람으로부터 배울 게 많습니
다. 저만 해도 유석 씨와의 대화를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웁니다. 대화라는 교감의 채널에서 영혼과
영혼이 교류하고 그로 말미암아 서로의 마음이 풍
성해집니다.
2인칭 윤리를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인 고전으로
『논어』를 들 수 있겠습니다. 논어에서 공자는 이
론이나 강령을 공리로 삼아서 그로부터 윤리적
판단이나 실천을 이끌어 내는 톱다운의 방식이

아니라, 대화의 상대가 처한 상황을 잘 헤아려서
그에 맞는 처방을 내리는 보텀업의 방식을 선호
합니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는 역지사지와 공
감이 2인칭 윤리의 동력입니다.

2인칭 철학은 그 밖에도
어떠한 영역에서 적용될 수 있을까요?
윤유석: 2인칭 철학은 예술이나 윤리 외에도 다른
영역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교수
님께서 특별히 염두에 두고 있는 주제나 영역이
있나요?
이승종: 네, 저는 2인칭적 접근의 중요한 적용 대
상으로 역사를 생각해 왔습니다.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역사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역사에서 1인칭적인 관점은 국
수주의로 흐를 위험성이 있습니다. 자신의 것을
반성이나 비판 없이 드높이기만 하는 우월주의가
1인청적 관점의 폐단일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역사에 대한 3인청적인 관점은
역사학을 고고학 같은 실증 학문으로 생각해서,
자기 역사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취급하는 태도
에 빠질 위험성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 역사를
일구어 낸 선조들과 우리 사이에는 거리가 있습
니다. 과거의 분들인 데다가 현재의 우리와 맞지
않는 면이 적지 않은 탓에 직접적인 친연성(*친
척으로 맺어진 인연과 같은 성향)을 찾기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2인청적 관점을 우리의
역사에 투영해 '아, 이래서 저랬겠구나'하는 식으
로 때론 공감하고 때론 애정 어린 비판을 하면서
거리를 좁혀 가는 것이 바람직한 역사철학이라고
봅니다.

사료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 유물에 대한 현상학
적 접근이 2인칭 역사철학의 동력입니다.
p.42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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