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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ㅣ 보물창고 세계명작전집 22
케네스 그레이엄 지음, 아서 래컴 그림, 고수미 옮김 / 보물창고 / 2024년 6월
평점 :
아이들이랑 책 읽을 때, 그림책으로 읽어보곤 했던 이야기인데 작가님의 글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었는데 덕분에 좋은 책을 선물받게 되었습니다. 책 내용이 꽤 많긴 하지만, 챕터별로 아이들과 천천히 읽으면 각색된 동화책보다 더 깊이있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제목도 정말 서정적이지 않나요? 원서 원제도, 번역된 제목도 참 낭만적입니다.
얼마 전에 교육지원청에서 진행하는 독서 관련 연수를 듣고 왔습니다.
강사님께서 고전에 대해서 말씀하시길, 아무도 읽지 않지만 다들 중요하게 여기는 책이라고 하셨는데 많은 학부모님들께서 공감하시며 웃으시더라고요. 저도 새해만 되면 목표 중 하나가 '고전 읽기' 인데 마음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책의 내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등장하는 삽화와 글귀입니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은 다 비슷비슷할거예요. 하지만 그 감정을 타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큼 생생하게 묘사하고 그려낸다는 것은 대단한 재능이지요. 이 책은 읽는 내내 눈 앞에 장면이 그려지는 듯,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코에 냄새가 닿는 듯, 손에 만져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읽으면 정말 행복하겠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멋진 책은 작가 케네스 그레이엄이 아들을 위해 들려준 이야기들을 엮어서 만든 책입니다. 안타깝게도 아들은 성인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나지만, 아들을 향한 사랑이 가득 담긴 책은 영원히 존재하게 되었네요.
작가의 생가와 묘, 초판본 등 사진이 실려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꼭 에든버러에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가서 이 장면들을 실제로 보고 싶습니다.
'살아 있다는 게 기쁘고 청소를 팽개친 채 봄을 맞으러 나온 게 즐거웠다.'
해야할 일이 있지만, 그 순간 모든 것을 내려두고 나에게 주어진 행복 자체를 만끽하는 순간이지요. 마치 제가 책 속의 두더지가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어쨌든 휴가를 보낼 때 가장 멋진 일은 단순히 쉬는 것보다 다른 친구들이 바쁘게 일하는 걸 지켜보는 것이니까.'
가끔 남편이 평일에 연차써서 카페 데이트를 하거나 드라이브를 할 때, 심술궂은 마음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 열심히 일하는 모습보며 여유를 즐기는 상황이 너무 좋잖아요.
밖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지만, 뽀송한 실내에서 비오는 풍경을 즐기는 기분...이랄까요?
'강에 없는 건 가져야 할 가치가 없는 것이고 강이 모르는 것은 알 가치가 없는 거지.'
내 세상에 만족하는 삶이란, 어떤 행복일까요?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에 대한 가치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 물이 어찌나 차갑고 축축하던지. 두더지가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을 때 물이 귀에 대고 어찌나 노래를 하던지! 콜록거리고 캑캑대면 수면 위로 떠오르자 해가 어찌나 밝게 반겨 주던지! 다시 물속으로 빠져드는 걸 느꼈을 때는 절망감으로 눈앞이 어찌나 깜깜하던지!'
이 부분에서는 마치 제가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절망을 느끼는 기분이었어요. 어떻게 이렇게 묘사를 할 수 있는걸까요?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게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책의 뒤쪽에는 책을 더욱 즐길 수 있는 부록이 있습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는지, 에든버러는 어떤 도시인지,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시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사랑받고, 재해석되고 있는 이야기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책 잘 읽는 친구라면 충분히 함께 읽어볼만한 내용이예요. 각색된 짧은 이야기도 좋지만, 원작의 내용을 아이들과 충분히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책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