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옥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그의 시에는 낮고 가난한 것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엿볼 수 있다.
한 평생 쇠똥을 밀고, 쇠똥을 먹으며 거꾸로 서서 굴리는 쇠똥구리의 삶이 그러하듯,
허섭스레기가 그렇게 절박한 밥인 수염거친 사내, 땅거미처럼 스며드는 사내의 삶도,
산소용접기로 불에 터진 뼈대의 상처를 불로 꿰매는 목재공의 삶도 모두들 그렇게 따뜻하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비가(悲歌)
시집 <거꾸로 서서 굴리다>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비가(悲歌)다. 시골집 행랑채도 사라지고, 쇠똥구리도 사라지고, 돌담도 사라지고, 소래 기찻길도 옛 길로 이미 사라지고 말았다. 학교 문턱도 밟은 적 없어, 삶의 끝자락에서야 겨우 자신의 온몸으로 기역자를 그려내신 어머니마저 끝내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조수옥 시인은 그처럼 사라진 것들, 혹은 사라져가는 것들을 노래한다. 그래서 그의 시편은 통째로 이별 노래로 안겨온다. 그 이별 노래가 참으로 애틋하다. 더더구나 사라지는 것들은 자신만의 진실을 등 뒤에 발자국으로 찍어놓지 않는가!

 현란한 말의 유희를 넘어서 인간에 대한 믿음에 바치는 헌사(獻辭)

그의 첫 시집 <어둠 속에서 별처럼 싹이 트다>의 초점이 경계 밖 사람들에게 있었다면, 이번 시집은 그대의 모난 돌과 나의 모난 돌이 함께 맞물려 돌담이 되는 즉, 인간 신뢰가 "저 무너져가는 돌담을 함께 일으키는 힘"으로 승화되고 있다. 그의 시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말을 위한 말, 지나친 표현에의 경도, 진정성인 듯 과장된 사유와 철학, 언어의 현학적 병렬 등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예컨대 내용물에 비해 포장만 현란한 상품이기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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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토문학 동인 이규석 시인의 첫 시집

이규석 시인의 첫 시집 <하루살이의 노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서민들의 실상과 시인 자신의 체험을 극대화한 아내의 한숨을 통해 드러나는 맞벌이 부부의 긴장된 삶, 구조조정과 명예퇴직의 한파에 시달리는 일상을 시인은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겨울나무의 차가운 바람, 메마른 사막 등의 자연물에 빗대어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시인 자신의 상실감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출구 없는 현실위에 날카롭게 서있는 동시대 사람들의 고통의 읍소이기도 하다.

 

자기 삶을 통해 동시대인의 고통을 드러내는 시 쓰기
시인은 자신의 삶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삶이란 현실에 예속될 수밖에 없고 그 굴레에서 보다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저마다 마음속에 칼날을 세우고 있다. ‘숱한 제품이 들락거리고/겨울 찬바람’을 맞는 삶을 살아보지 않고는 그 고통을 말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다. 그의 시에서 군데군데 묻어나는 체취는 춥고 배고픔과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반항적 뉘앙스가 풍기고 있다. ‘바람/그 소리만 들어도/춥다’라든지 ‘세찬 바람에/나뭇잎들을 다 떨어뜨린 나무’에서 보여주는 을씨년스런 분위기는 이 땅 서민들의 애환 그대로이다.

고통스런 현실에의 반항과 자연에의 귀의
그의 시는 자신의 고통이 연유한 현실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과정에 있다. 실제로 그는 「복사기」, 「실제상황입니다」 등의 시에 이르러서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따라 불안정한 신분으로 내쫓기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 한미 FTA의 영향으로 피폐해진 농촌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한편으로 이러한 반항의 정서 이면에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쉬고 싶은 자연과의 동화의 서정이 드러난다. 「늦가을에」에서 그는 이미 가을을 감지하고 언제나 포근한 ‘들판’이고 싶고 그 자연에 순응하는 섭리를 따르고 싶은 것이다. 계속되는 불황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그는 심한 피로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는 ‘가을걷이 끝난/ 빈 들판의 기다림이면 좋겠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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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데이비드 호이와 가야트리 스피박

대학가는 지난주에 종강을 하고 이번주가 대개 시험주간이다. 월요일 강의를 나가던 학교에 마지막으로 나가 시험감독을 하고 돌아오다가 교보에 들러 (두리번거리다가) 두 권의 책을 샀다. 양서부에서 먼저 산 책은 데이비드(데이빗) 호이의 <비판적 저항(Critical Resistance)>(The MIT Press, 2005). 저자는 현재 캘리포니아대학의 철학과 학과장을 맡고 있는 모양인데, 이번에 다시 찾아봤지만 지명도에 비해서 저서가 몇 권 되지 않는 '고마운' 학자이다. 이번에 산 것까지 포함하면 그의 주요 저작은 모두 갖고 있는 것이 된다(그래봐야 네 권이지만).

책의 부제는 '포스트구조주의에서 포스트-비판'까지로 돼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들뢰즈의 니체주의에서 지젝까지를 '비판적 저항'이란 키워드를 통해 관통하고자 한다. 일단은 책이 다루는 범위가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도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다(물론 복사할 경우보다는 2배 정도 비싸지만). 게다가 저자인 호이와는 '안면'도 있고. 그래봐야 책을 통한 안면이지만.  

데이비드 호이는 <해석학과 문학비평>(문학과지성사, 1988)으로 국내에 소개된 학자인데, 원제가 <해석학적 순환(The Critical circle)>(1978/1982)인 이 책은 "독일의 비판 철학자 하버마스와 미국의 비평가 허쉬의 해석 이론들을 가다머의 이론과의 차이로 분석한 후, 롤랑 바르트, 폴 리쾨르,자크 데리다 및 미국의 신비평과 프랑스의 구조주의, 독일의 수용미학을 해석철학과 대조한다."

그러니까 이 책 한권을 제대로 혹은 음미하며 읽으려고 해도 신비평과 구조주의와 수용미학과 해석학을 모두 건드리게 된다. 내가 그러한 비평이론과 철학적 조류들에 견문을 갖게 된 것은 다 이런 '문학이론서'를 읽으면서, 혹은 읽기 위해서였다(가장 대표적으론 테리 이글턴의 <문학이론입문>을 들 수 있는데, 나는 학부시절부터 문학이론세미나 '교사'를 하면서 이글턴의 책을 포함해 국내에 출간돼 있는 모든 문학이론입문서들을 최소한 두 번, 많게는 네댓 번씩 읽었다). 호이의 책은 '해석학'을 카바하는 기본 연장이었다. 그의 나머지 책 두 권?

하나는 저작이 아니라 그가 편집한 책 <푸코: 비판적 독해>(1986)인데, 분량은 두껍지 않지만 쟁쟁한 논자들의 푸코론을 편집한 책이고 호이는 그 서문과 함께 '푸코와 프랑크푸르트학파'를 다룬 논문을 썼다. 푸코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에 대학가 서점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책이다. 나도 그때 구입했었고.

   

그리고 다른 한권은 하버마스 전문가인 토마스 맥카시와 공저한 <비판이론>(1994). 이미지의 사이즈가 들쭉날쭉이군. 여하튼 리처드 로티의 서평을 잠시 인용하면 이렇다: “The two authors disagree strongly about important philosophical issues, but each takes the other's position and arguments seriously. The book as a whole helps greatly in clarifying what is at stake in discussions of universalism versus historicism. The level of debate is as high as might have been expected from two of America's best expositors and interpreters of recent European philosophy. . . . The so-called Habermas-Foucault debate has been at the centerof philosophical discussion in Europe for a decade, and this book is an admirable overview, and continuation, of that exchange. It is a hopeful sign of long-overdue internationalization that a debate between an important French and an important German philosopher should be continued in English with no diminution in either sophistication or acuity.”(Richard Rorty - Ethics)

호이와 맥카시 두 사람이 각각 푸코와 하버마스 라인을 대표했다(도서관에서 복사한 책인데, 이건 또 어디에 처박혀 있나). 생각난 김에 적어놓자면 <자유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열망>(새물결, 1999)이 푸코와 하버마스 논쟁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여하튼 이렇게 네 권이 호이의 주저이다. 단독저서로 치면 <해석학적 순환> 이후에 <비판적 저항>으로 건너뛰는 것이니 이 얼마나 고마운 경우인가. 이 책에 대한 맥카시의 추천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포스트-니체주의 프랑스 철학에서 저항의 이론들에 대한 호이의 통찰력있고 다면적인 설명은 독보적이다." 북치고 장구치고...

 

호이의 책을 사들고 인문 신간 코너를 둘러보다가 발견한 책은 <스피박의 대담>(갈무리, 2006). 제목 그대로 가야트리 스피박의 대담집이다. 책의 원제는 '포스트-식민주의 비평가(The Post-colonial Critic)>(1990)이고 엊그제도 다른 책들을 찾다가 책장에서 본 바로 그 책의 번역본이었다(나는 몇년 전에 책을 복사했었다). 난해하다는 평판이 자자한 스피박 입문서로서는 제격인 책. 

 

그렇다면, 여기서 퀴즈. 왜 이 페이퍼의 제목은 '데이비드 호이와 가야트리 스피박'인가? 호이의 책엔 스피박이 전혀 언급되지 않으며, 스피박 또한 호이를 다룰 일이 없는데 말이다. 둘 사이의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이 연결고리는 저자들과는 무관하다. 바로 역자가 그 고리이기 때문이다. <스피박의 대담>은 호이의 <해석학과 문학비평>을 우리말로 옮긴 이경순 교수의 번역이다. 해서, 링크 이론을 적용하자면 호이와 스피박은 2촌관계쯤 되겠다.   

 

 

 

 

어쩌다 보니 스피박의 책들은 나올 때마다 언급하게 되는데,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을 제외하곤 나와 있는 책들은 모두 원서와 함께 책장에 꽂아두고 있다. 그런 '인연'에는 물론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의 영역자에 대한 신뢰가 한몫한다(이 무명의 영문학도가 붙인 장문의 서문은 학계의 '전설'이 되었다). <스피박의 대담>은 이전에 나온 스피박 입문서 <스피박 넘기>의 저자 스티브 모튼이 "스피박을 처음 읽는 이에게 가장 좋은 책"이라고 추천한 책이다. 사실 그런 입문서적 '기질'은 대부분의 대담들이 공유하고 있는 자질이기도 하다. 하니 스피박에 처음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이 책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찾아보니, 스피박의 최신간은 <어느 학문의 죽음(Dearh of a disciple)>(2003)인데, 주디스 버틀러가 쓴 아래의 서평을 보니 그 '어느 학문'이란 '비교문학'을 뜻한다. 르네 웰렉 강의를 책으로 펴낸 얇은 책이다.

"Gayatri Chakravorty Spivak's Death of a Discipline does not tell us that Comparative Literature is at an end. On the contrary, it charts a demanding and urgent future for the field, laying out the importance of the encounter with area studies and offering a radically ethical framework for the approach to subaltern writing. Spivak deftly opposes the 'migrant intellectual'approach to the study of alterity. In its place, she insists upon a practice of cultural translation that resists the appropriation by dominant power and engages in the specificity of writing within subaltern sites in the idiomatic and vexed relation to the effacements of cultural erasure and cultural appropriation. She asks those who dwell within the dominant episteme to imagine how we are imagined by those for whom literacy remains the primary demand. And she maps a new way of reading not only the future of literary studies but its past as well. This text is disorienting and reconstellating, dynamic, lucid, and brilliant in its scope and vision. Rarely has 'death'offered such inspiration." -- Judith Butler, UC Berkeley

 

 

 

 

방티겜과 바이스슈타인의 비교문학 개론서들이 소개된 지 20여 년쯤 된 것 같은데, 그 마지막 자리에 놓일 만한 책이겠다. 한 학문의 죽음(위기)과 새로운 출발점. 끝으로 자신의 이론적 출발점에 대한 스피박의 자전적 고백을 (재)인용해놓는다.

"제가 하는 일이란 저의 학문상의 상태를 분명히 하는 데 있습니다. 저의 입장은 일반적으로 말해 반동적인 것입니다.저는 맑스주의자들에게는 너무나 기호적으로 비치고,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너무나 남성적으로 비치고, 토착 이론가들에게는 지나치게서구이론에 물들어 있는 것으로 비칩니다. 저는 이것이 불편하면서도 기쁩니다."(16쪽)

06.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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